236화 듀얼 클래스 (3)
“짜식 오버하기는……. 뭘 이런 거 가지고 놀라냐? 진짜는 아직 보여주지도 않았는데?”
“응? 뭐라고?”
사실 인챈터는 등장하자마자 타임 어택 순위권에 오르며 주목을 받았다.
그러더니 이제는 벌써 파티에서 귀족 취급을 받을 정도로 선호되고 있었다.
하지만 악마 사냥꾼은 초반에 주어지는 고유 스킬 들이, 크게 두드러지는 효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거기에 근딜러와 원딜러를 넘나드는 애매한 포지션 탓인지, 선택률이 저조한 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무리 둘이 바쁘고 바쁜 랭커들이라 할지라도 악마 사냥꾼의 스킬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
“얼마 전 200레벨이 넘은 악사 유저가 글을 올렸어. 그리고 그 글을 읽어서, 내가 민첩으로 결정한 거고. 지금 배우는 게 바로, ‘그’ 스킬이다.”
난 또다시, 남아있는 스킬북 중 하나를 추가로 터치했다.
[‘스킬북: 태세 전환’을 사용하여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잠시 번쩍이는 빛이 사라지자.
난 신중하게 성장하기 위해 일단 1성만 배워둔 다른 스킬들과 달리, 이 스킬에는 포인트 5개를 거침없이 투자했다.
[태세 전환(고유 스킬): ★★★★★☆☆☆]
* 마나 소비: 240
* 사용 대기시간: 30초
* 24초 동안 근거리 공격 데미지는 민첩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 24초 동안 원거리 공격 데미지는 근력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악마 사냥꾼들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비전의 기술.
그들을 멀티 플레이어로 활약하게 만들어주고, 독특한 정체성을 확립시켜주는 스킬.
8성까지 찍은 것답게 쿨타임과 지속 시간이 무척이나 많이 조정된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앞으로 내 캐릭의 주력 밥줄이 되어줄, 또 하나의 8성 스킬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뭘 배운 거야? 네가 지금 보여준 스킬들만 해도, 이미 너 하곤 시너지가 쩔 것 같은데?”
“명색이 방어를 좀 포기하면서 공격 테크로 바꾼 건데…… 그 정도론 너무 시시하잖아? 흠…… 그게 좋겠다. 이건 직접 보여주는 것보단 몸으로 체험하게 해줄 게. 너 혼자는 시시하니까 라챤이랑 함께 덤벼 봐.”
“어쭈? 이게 아직도 형님을 무시하네?”
“드로 형님. 이제 막 세팅을 바꿨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여긴 탁 트인 곳이라 좀 불리하실 텐데요?”
“암만 니들이 랭커라 해도, 내가 두 명한테 겁먹어야겠냐? 나가자. 궁수답게 넓은 곳에서 싸워야 승산이 조금이라도 있지.”
“어허어허, 이 형님 안 되시겠네. 너무 오래 착용 중이라서 잊어버리신 거 아니에요? 형님 이제 마쉴도 없는데 방어구는 로브 세트잖아요? 그것도 유니크급! 그 정도로 버티실 수 있겠어요?”
먼저 내성 광장으로 나서는 내 뒤를 따르며, 라챤이가 호기롭게 외쳤다.
녀석의 말대론 여전히 난, 저레벨 시절에 구입한 ‘칠흑 마탑 마도사의 로브’ 세트를 착용 중이었다.
+10과 +9로 이루어져 있어 유니크지만 레전더리급 방어력을 상회했고, 높은 강화 수치로 인해 무려 1만이 넘는 MP 수치를 올려주는 세트 아이템.
무엇보다 스킬 사용 시 마나를 되돌려주는 ‘마나 재사용’ 옵션을 포기할 수 없었다.
쌍 마나 흡수 반지와 더불어, 내가 적정 MP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금 붙어보자고 한 건데 눈치 못 챘나 보네. 내가 제대로 된 갑옷들을 갖추기 시작하면, 더 답이 없을 거니까.’
물론 현 상태로도 질 거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지만, 이 둘이 쉬운 상대란 건 아니었다.
그저 이 둘의 진짜 실력을 끌어내고 싶어서 조금 도발했다.
내 새로운 테크트리와 도박이, 비로소 처음으로 검증되는 순간이었으니까!
“시작해볼까?”
파지직- 파지직!
이제는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라이트닝 배리어.
8개의 뇌전 줄기를 뿜어내며 물었다.
“네, 요청 주세요!”
[‘축복받은얼굴’ 님과의 결투가 시작되었습니다.]
[‘라스트챤스’ 님과의 결투가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유저들이 흔히들 마을 안에서 사용하는 방법.
일대일 결투가 중첩된다는 점을 이용해서, 굳이 투기장에 가지 않아도 이렇게 다대일 결투를 벌일 수 있었다.
“차징 샷!”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거리가 떨어진 점을 이용해 처음부터 강력한 공격을 날린 라챤이.
랭커 궁수답게, 화살은 조금도 에임이 벗어나지 않고 정확히 내 몸으로 날아와 꽂혔다.
[라스트챤스의 공격을 회피했습니다.]
하지만 허무하게도 조금도 데미지를 입지 않았다.
집중 회피와 사냥꾼의 춤, 그리고 1600이 넘어가는 민첩 수치.
거기에 바람의 정령왕을 통해 10%를 추가로 얻은 덕분에, 현재 내 회피율은 49%를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8성 마쉴의 데미지 경감률이 75%였다는 걸 감안해보면, 생각보단 높지 않은 수치.
심지어 회피율을 올려주는 템은 아직 본 적이 없었으니, 당분간은 회피율을 올리는 게 민첩 수치의 성장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여하튼 단순하게 계산해도, 두 대의 공격이 날아오면 한 대는 피하더라도 한 대는 맞는 게 정상인 수치였다.
휙, 휙!
[라스트챤스의 공격을 회피했습니다.]
[라스트챤스로부터 2,882의 물리 피해를 입었습니다.]
[라스트챤스의 공격을 회피했습니다.]
허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뭐지? 대체 회피율이 얼마길래 이렇게 안 박혀요?”
“50%가 안 돼. 49%쯤.”
“네? 말도 안 돼요! 지금 제 평타가 서너 대는 날아가야 한 대 박히는 데요?”
분명 에임에는 문제가 없었다.
화살은 내 몸에 박히는 것과 동시에 사라졌기 때문.
하지만 넘쳐나는 회피 판정 덕분에, 내 HP는 마치 마쉴이 여전하던 시절처럼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그림자 밟기!”
“방패 휘두르기!”
결투가 시작됐지만 잠시 우리를 지켜보던 현중이가, 갑자기 내 뒤에 나타났다.
이번에 배운 그림자 밟기로 내 허를 찌른 것.
[상태 이상 ‘기절’을 회피했습니다.]
하지만 현중이가 휘두른 방패는 그대로 내 몸을 휙하고 통과하듯 스치고 지나쳤다.
타격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미친! 확정 스턴기도 회피해버린다고?”
“왜, 전에 결투할 때도 한 번씩 저항이 뜨곤 했잖아?”
“저항한 거랑 아예 회피가 뜬 거랑 같냐?”
녀석은 기습 공격이 수포로 돌아가자 어찌나 허탈해하는지, 공격하는 것도 잊고 제자리에 서서 주절댔다.
“윽! 윽!”
하지만 결투가 진행 중인 상태였기에, 공격을 멈췄더라도 넋을 놓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내가 활성화한 라이트닝 배리어로부터 지속적으로 뇌전 줄기가 뻗쳐져 나갔기 때문.
“하핫! 까먹었나 보네? 나한테는 함부로 다가오면 안 되는데!”
지직! 지지직!
랜덤 타겟팅이긴 하지만 이렇게 3m 안에 타겟이 하나일 때는 오롯이 녀석에게만 공격이 집중된다.
8개라 근 80%의 확률로 발동되는 ‘감전’ 디버프에, 도무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현중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전투 초반이라, 간단하게 아무런 자버프도 사용하지 않은 ‘평타’ 공격이었다.
휘휙! 휘휙- 퍽!
“커헉!”
마치 이미 재빠른 몸놀림을 쓴 것만 같은 빠른 공격 속도.
한번에 양손으로 두 번씩 휘두르는 공격 탓에, 1초도 안 되는 사이에 4번의 평타 공격과 1번의 ‘치명 공격’이 터져 들어갔다.
“자, 잠깐! 좀 멈춰 봐! 아이 씨, 천상의 방패!”
그렇게 감전에 빠진 현중이에게 순식간에 8번의 공격을 쏟아내자, 녀석은 기겁하며 가까스로 무적 스킬을 사용해 빠져나갔다.
“힐! 지탱의 오라!”
그리곤 더욱 거리를 벌리며 황급히 체력을 회복했다.
한편, 남아있던 한 명이 이 모습을 그냥 지켜만 보고 있을 린 없었다.
“폭풍 연사!”
짧은 준비 시간이 필요하고 이동 불가 상태가 되지만, 잠시동안 몇 배나 되는 속도로 화살을 연사하는 궁수의 대표적인 딜링 스킬.
‘폭풍 연사’를 시전한 라챤이의 공격이었다.
휘휙! 퍽! 휘휙! 퍽!
역시나 높은 확률로 회피가 떴으나, 제법 화살들이 명중되어 HP가 크게 깎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건 내 회피 판정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였던 것이지, 원래라면 이렇게나 많이 맞을 일이 없었다.
“재빠른 몸놀림!”
“그림자 밟기!”
악마 사냥꾼이란 직업을 새로 얻었어도 원래 직업이 사라진 건 아니기 때문.
난 잠시 무빙을 하며 타겟팅을 혼란 시킨 후, 재빠른 몸놀림으로 빨라진 이속으로 거리를 좁히다가 그림자 밟기를 사용했다.
“엇! 백스텝!”
하지만 이미 내게 거리를 허용한 현중이가 어떻게 됐는지 목격한 뒤라, 곧바로 이동기를 사용한 라챤이.
녀석은 센스있게 라이트닝 배리어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400레벨을 달성해 듀얼 클래스가 된 나와 라챤이 사이에는, 이미 당분간은 결코 좁힐 수 없는 갭이 생겨버린 상태였다.
“귀신 발걸음!”
내게는 악마 사냥꾼의 고유 이동기가 새롭게 주어진 것이다.
이동기가 무려 2개라니.
현중이 같이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라면, 도무지 컨트롤로는 커버할 수 없는 벽이나 마찬가지였다.
“으악!”
[‘라스트챤스’ 님과의 결투가 종료되었습니다.]
그렇게 연속으로 감전에 빠지는 라챤이를 공격하다 보니, 녀석은 금세 모든 체력이 소진돼버리고 말았다.
마치 ‘급소 공격’에 적중된 것처럼, 도무지 내 공격으로부터 빠져나가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와! 무슨 검으로 폭풍 연사를 쓰는 것마냥 미친 공속이네요…….”
“아직 난도질은 쓰지도 않았는데 그 소리야?”
“헐? 그러네요? 진짜 미쳤구나…….”
그렇게 순식간에 라챤이와의 결투를 종결짓자, 잠시 내 눈에서 멀어져 있던 현중이가 다가왔다.
이제 막 무적 상태가 끝나, 결투를 포기하려는 모습이었다.
“야, 이제 볼 만큼 봤으니까 항복하련다. 각 잡고 제대로 공격 테크로 전환하니까, 무슨 공격력이 그따위 말도 안 되는 수준이 돼버리냐? 한방 한방이 아프진 않아도 공속이 워낙 빨라서, 답이 없네 답이 없어.”
“잠깐 멈춰 봐! 아직 제대로 보지 못했잖아!”
“응? 뭘?”
“잊었냐? 내가 이 직업을 택한 진짜 이유인 스킬을 보여준다고 했잖아. 얼른 만피나 채워봐. 그거 보여주고 끝낼게.”
“아아, 그랬지. 오케이. 힐!”
제 자리에서 마저 체력을 회복하는 현중이.
녀석과 맞부딪힌 시간은 잠시였지만 그사이 워낙 많은 공격이 휘둘러졌기에, 힐을 연거푸 몇 번이나 반복한 끝에야 HP를 모두 채울 수 있었다.
“자, 다 됐다. 와라!”
“그래.”
단숨에 8성을 찍어버린 스킬.
내가 극 회피이자 극딜 테크트리로 만들어 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스킬.
이 스킬의 위력을 처음으로 직접 확인해 보는 순간이라 나 또한 조금은 긴장됐다.
‘……과연 내 예상만큼 나올 거냐?’
태성의 뒤에 있는 개발자 중 누군가.
그 자식이 어떤 방해를 해오더라도…….
새롭게 추가하는 업데이트는 제한적으로 가능할지 몰라도, 이미 정해진 걸 바꾸진 못한다.
그걸 믿고 택한 선택이자 도박.
주사위는 던지듯 이미 모든 것은 리셋한 뒤였으니, 이제는 그걸 직접 확인해 보는 일만 남아있었다.
“태세 전환!”
스킬의 발동어를 외치자 몸에서 붉고 푸른 빛이 나타나 감돌았다.
굳이 상태창을 열어 확인해 볼 필요도 없었다.
내 두 손과 내 검에 감도는 이 붉고 푸른 빛.
보기만 해도 이건 증폭된 민첩이 공격력으로 치환됐단 걸 뜻할 테니까!
휘휙! 휘휙- 퍽!
“커헉!”
빠르게 휘둘러진 4번의 평타와 치명 공격.
그리고 또 한 사이클의 평타와 치명 공격이 터졌다.
“이, 이 자식, 뭐야!”
퍽! 퍽!
폭발하듯 피격 지점에서 터지는 치명 공격의 발동 효과음.
워낙 빠르게 휘둘러지는 공격에, 그 효과음이 연달아 울리듯 4번째 들리는 순간.
[‘축복받은얼굴’ 님과의 결투가 종료되었습니다.]
“…….”
“…….”
“…….”
전투가 끝나고 머리 위에서 전투 표시가 사라졌다.
한바탕 잘 놀았으니 다들 한마디씩 할 법도 한데,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잠시 후, 마침내 라챤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드로 형님. 이거 진짜 예상하셨던 거예요? 이 정도가 될 거란 걸요?”
“……아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게 진정한 신검과 용살검의 힘이었나 보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요. 현중이 형은 타연 최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탱커인데요!”
가만히 맞고만 있었다곤 하지만, 풀피였던 녀석의 체력이 전부 소진되는 데는 단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이 정도라면 어지간한 딜러들은 내게서 잠시도 버티지 못할 거라는 계산이 나왔다.
조금 전 내게 죽었던, 라챤이와 같은 랭커급이라 할지라도!
“데미지도 데미지인데, 도대체 그 어이없는 회피율은 뭐냐? 뭔데 라챤이 같은 랭커급도 회피가 그리 많이 나는 건데? 정말 49% 맞아?”
“회피 판정이긴 한데…… 엄밀히 말하면 ‘헛방’이지.”
“헛방? 우리 정도 레벨 차이에, 헛방이 난다고?”
“어. 니들은 새 시대의 영웅 업적은 받았어도, 새 시대의 희망 업적은 못 받았잖아.”
함께 드래곤을 잡고 얻은 업적 ‘새 시대의 영웅’.
S급 답게 레벨 차이에 의한 보정 효과를 줄여주는, 훌륭한 효과를 자랑했지만…….
현중이와 라챤이는 보정 효과를 늘려주는 ‘새 시대의 희망’ 업적은 받지 못한 상태였다.
이건 페어리 퀸으로부터, 오직 우리 길드의 도둑 삼인방만이 받은 업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거 때문이라고? 그게 말이 돼?”
“말이 되지. 레벨도 내가 10이 넘게 더 높은데, S급 업적의 효과까지 더해졌으니까. 이걸 믿고 내가 도박한 거야. 아무리 많은 태성 놈들한테 둘러싸이더라도, 이 두 업적은 레벨 차이가 2, 30 정도 나는 수준을 5, 60 정도로 벌려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