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237화 (237/350)

237화 리스타트 (1)

최초의 400.

타이탄 연대기에서 가장 높은 레벨.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캐릭을 처음부터 새롭게 키우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리셋된 스탯과 새로운 직업으로부터 얻은 스킬들은, 나를 기존의 캐릭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 만들어 주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그 사이 세상에는 많은 일이 벌어졌고, 또 여느 때와 같이 흘러갔다.

가장 먼저, 내가 듀얼 클래스의 길을 선택했단 사실이 타연의 모든 커뮤니티를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두 번째 직업을 선택한 날 자정.

매일같이 업데이트되는 랭킹 게시판에, 내 정보가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적혀있었기 때문이었다.

-1위 산드로(lv.400, 악마 사냥꾼)

다른 유저들은 레벨만 적혀있는 괄호 안에, 내 세컨 직업이 추가된 것.

매일 같이 수십만 명이 넘는 유저가 확인해보는 게시판인데,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랭킹 1위 산드로, 전직 대신 이중 직업을 택하다!

-산드로의 선택은 악마 사냥꾼! 과연 이 직업의 매력 포인트는?

-그가 인챈터 대신 악마 사냥꾼을 선택한 이유는?

-유명 너튜버 및 전문가들 ‘아무래도 마계 지역을 염두에 둔 선택으로 추측돼’

곧바로 수많은 뉴스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내가 스탯과 스킬 포인트까지 리셋했을 거란 추측을 내놓은 사람은 없었다.

당연했다.

산드로에게 마쉴이 없다니?

그게 어떻게 ‘산드로’란 말인가?

마쉴도 없이 필드를 활보할 나는, 마치 걸어 다니는 황금 고블린이나 마찬가지라고 간주해도 무방했다.

그러니 설마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그런 무모한 선택을 했을 거란 상상은 한 명도 하지 못했다.

그다음으로 타연러들을 시끄럽게 만든 사건은 투 메르타스의 레이드였다.

두 번째 레이드 때만 해도 온갖 길드들이 뒤엉켜 치열하게 싸웠던 드래곤 쟁탈전.

하지만 이번 드래곤은 뜬금없이 새벽에 리스폰 됐는지라, 생각보다는 조용하고 싱겁게 끝나버렸다.

지난 레이드에서 처절하게 싸웠던 올림푸스는 한 달 새 태성과 한편이 되었고, 피닉스는 그들과의 끝나지 않는 필드전에 힘겨운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나를 비롯한 우리 버닝 스타 전원이…….

마치 잠적이라도 한 듯 최근 필드에 전혀 나타나지 않았기에, 놈들이 더욱 마음 놓고 활개 칠 수 있었다.

-태성이 밝힌 레이드 공략법. 비결은 타이탄 활용!

-제2의 드라코닉 갑옷 세트는 과연 누가 착용하게 될지?

또한 우리가 개척하는 데 성공한 생명의 숲.

줄곧 꽉 틀어막고 있던 엘프 순찰자들이 더는 공격을 하지 않게 되자, 이곳을 방문하는 유저들이 제법 늘어났다.

물론 엘프 순찰자들을 비롯한 네임드 NPC인 티로엔의 입장 퀘스트는 깨야만 가능했지만.

어찌 됐건 그곳의 놀라운 풍경과 새로운 아이템과 퀘스트, 업적 등에 관한 소식들이 알려지면서 고레벨들의 새로운 사냥터로 각광받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바로 어제.

타연에 또 하나의 핫 이슈가 전해졌다.

오랜만에 들려온 다리우스의 뉴스.

마침내 그 자식이 400레벨을 달성했다는 소식이었다.

이 역시 랭킹 게시판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려진 사실.

사람들은 그가 전직을 택할지, 아니면 나처럼 듀얼 클래스를 택할지 열띤 토론을 하며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진행된 일주일 동안.

우리 버닝 스타 전원은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지냈다.

종적을 감춘 우리의 근황을 묻는 유저들이 많았으나,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뭘 하고 있는지 모르는 유저들은 한 명도 없었다.

우리가 미친 듯이 사냥에만 몰두하고 있단 사실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 역시 매일 자정, 폭발적으로 역주행 중인 각 직업의 랭킹 게시판을 통해!

* * *

“흠, 여전히 이건 올리는 대로 다 팔려나갔네. 이렇게 계속 매물 올리는 것도 일이라니까.”

“와, 아직도 팔고 계신 거예요? 진짜 형님은 물량을 얼마나 쌓아두신 거세요? 그 정도 벌었으면 동생들한테 소고기 좀 쏘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세금이 없는 터라 항상 북새통인 우리 아베르 외성 마을의 거래소.

잠깐 이곳에 들렀는데 우연히도 라챤이와 마주쳤다.

“형이 너한테 그거 하나 못 사주겠냐? 다음에 만나면 배 터지게 사줄게. 근데 이거 진짜 마르지 않는 금광을 캐고 있는 느낌이네. 사 모을 때는 잘 몰랐는데…… 팔려서 돈 들어오는 걸 보니까, 이제야 실감이 좀 난다. 이건 완전 골드를 긁어모으는 수준이라는 걸!”

거래소에 들러 간밤에 올린 매물이 팔려서 들어온 골드를 수령했는데, 이미 익숙해질 만도 한데도 여전히 놀라웠다.

286만 골드.

거의 12시간 만에 들른 건데 벌써 3억에 가까운 엄청난 금액이 들어와 있던 것이다.

하지만 이만한 골드를 건네받았는데도, 내가 가진 총금액의 앞자리는 변하지 않았다.

<소지금: 46,532,658 골드>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는…….

평생을 모아도 만질 수 없는 엄청난 금액이, 이미 내 인벤토리에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절반 좀 넘게 판 건데 이 정도라니……. 심지어 골드를 안 쓴 것도 아니고 쓸 만큼 썼는데도!’

거의 반년 전부터 틈날 때마다 시세를 조정하며 사 모은 ‘빛나는 마력석’.

이 템은 사용처를 전혀 찾아볼 수 없던 쓸모없는 시절에도, 결코 저렴한 가격이 아니었다.

당시 개당 10만 원이 넘어가던, 아무나 달려들 수 없던 고가의 재료 템.

하지만 나보다 정확한 정보를 가질 수 있는 유저는 없었기에, 저렴하게 세팅된 내 사재기 행진은 비교적 긴 시간 동안 유지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렇게 오랜 기간 모아만 온 것들을 털어낼 시점이었다.

확연히 늘어난 타이탄의 숫자만큼 절정에 다다른 수요.

더불어 생명의 숲이라는 새로운 마력석 공급처가 등장한 시기였기에!

“캬! 그게 다 태성 놈들이 힘들게 모은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라니……. 부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완전 통쾌하네요!”

“뭐 장사꾼들도 껴 있을 테니 전부 태성이 사는 건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놈들이 가장 많이 사긴 하겠지.”

물론 열 배를 훌쩍 넘긴 막대한 수익은 너무 기분 좋았지만, 사실 사재기로 돈을 번다는 게 떳떳하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크게 보면 내가 이득을 보는 만큼, 누군가는 그만큼 피해를 보는 구조니까.

하지만 의도하진 않았지만, 빛마석 사재기로 인한 피해는 거의 고스란히 태성 라인에게 돌아가는 상태였다.

현재 우리와 피닉스 외에, 타이탄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빛마석을 지속적으로 필요로 하는 건 그들밖에 없었으니까.

처음엔 그저 돈 걱정 없이 다른 장비나 마련해볼 생각으로 시작한 사재기였는데, 어느 샌가 놈들에게 의외의 방식으로 복수하고 있는 셈이었다.

“오늘도 벨루타에 가세요?”

“응. 아직까지 거길 따라올 만한 필드 사냥터는 없으니까. 빨리 가봐야 해. 현중이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히야, 지겹지도 않으신가……. 대단하십니다, 두 분 다!”

“대단하긴 너나 다른 길드원들도 대단하지. 고생이 많다. 레벨업하는 속도를 보니까 엄청 빠르던데……. 이제 원트에 얼마나 걸려?”

“3인 기준 39분이요. 이젠 좀 익숙해져서 40분도 안 걸려요.”

“오, 그래? 대박이네! 역시 우리 길드엔 딜러들이 많아서 빠르다니까!”

마운틴 자이언트의 계곡.

생명의 숲에서 여러 퀘스트를 진행하던 대탐이가 발견한 인던이었다.

몇몇 선행 조건을 달성해야 인던으로 향하는 의뢰를 받을 수 있기에, 곧 우리 길드원만의 독점 사냥터가 되었다.

그곳엔 ‘자이언트’라는 고레벨의 거인 몬스터들이 출몰했기에, 막대한 딜량을 자랑하는 우리 길드원들에게는 안성맞춤인 사냥터였다.

물론 이 레벨대에선 공틈이 조금 더 좋긴 했다.

하지만 이제는 워낙 사람이 몰려서 몹 구경하기도 힘든 곳이 돼버린지라, 차라리 인던이 훨씬 더 나았다.

“알겠습니다, 형님. 그럼 두 분께서 오붓하게 사냥 잘 하세요! 전 가보겠습니다!”

오픈된 후로 공간이동술사를 통해 이동이 가능해진 생명의 숲.

덕분에 라챤이는 전과 달리 편하고 빠르게 사냥터를 오갈 수 있었다.

이제 막 접속했던 나도 함께 로그인해 사냥터에서 기다리고 있을 현중이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목적지는 당연히 심해 머맨들이 출몰하는 벨루타였다.

도시에 도착 후, 훼라리를 타고 해안가에서 다소 떨어져 있는 바다 한복판까지 빠르게 날아갔다.

그러자 수면에 붙은 듯, 제 자리에서 낮게 비행 중이던 현중이가 볼멘소리로 반겨줬다.

“뭐 이리 오래 걸렸어? 금방 온다며?”

“아, 쏘리 쏘리. 우연히 라챤이랑 마주쳐서. 뭐, 걔도 인던 뛰어야 한다고 금방 헤어지긴 했다만.”

“아, 그래? 아무튼 빨리 시작하자. 나 오늘 안에 꼭 레벨업 할 거란 말야! 이번 렙업만 하면, 무조건 성기사 랭킹 2위에 등극이다!”

“벌써 그만큼이나 됐냐? 와…… 하여간 내가 버스를 제대로 태워주긴 했구나. 거의 내가 랭크 업할 때랑 비슷한 속도인 것 같은데?”

“짜샤, 상부상조하는 거지 뭐. 너도 내 버프랑 힐이 아니었으면 여기서 무한 사냥이 가능했겠냐? 그 한계돌파란 분이랑 하면, 사냥 속도가 느려서 손해였잖아!”

일주일 전 듀얼 클래스의 위력을 확인했던 결투 이후.

현중이와 난, 로그아웃한 뒤에도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진짜 공격력이 말도 안 되게 세더라. 공속과 공격력을 동시에 갖추게 만드는 스킬이라니…… 직접 플레이해본 유저들이 왜 악사는 민첩이 대세 스탯이라고 한지 알 것 같다. 대부분은 원딜 베이스에 보조로 근접 무기를 세팅한 테크를 탈 테니까……. 아무튼 넌 거기다가 회피까지도 쩌니까, 더 대박이네!

-근데 현중아, 세상에 완벽한 게 있겠냐? 이 테크트리의 약점은 명확해.

-응? 뭔데?

-아까도 라챤이가 지적했잖아. 보스 몹 같은 걸 잡을 수 있겠냐고. 거기다 마방도 낮아졌으니 이제는 마법 공격도 위협적이지.

-아하, 그랬지! 근데 네가 그 말 하는 걸 보니, 다 대비가 돼 있는 거 아냐? 몰랐던 것도 아닌데 저지른 걸 보니.

-맞아. 그래서 앞으론 더 장비를 빡세게 맞출 거야. 검과 악세는 거의 다 완벽에 가깝게 세팅이 됐는데, 방어구는 그렇지 않았잖아? 특히 이제까지 유니크급으로 버텨왔던 갑옷이 물 방어인 로브였으니 말 다 했지. 내가 괜히 돈과 시간을 투자해서 ‘불굴의 의지’를 구매했던 게 아냐. 이젠 모자라는 부분은 그렇게 템으로 채워 넣을 거야. 이 정도 공격력을 얻었는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흐음, 암만 그래도 못 미더운데…….

-나한테 페리엘의 망토가 있다는 거 잊었냐? 그동안은 마쉴 때문에 발동될 일이 거의 없었지만, 이게 있으니까 방어막이 발동되기 전까진 여전히 어느 정도 과감한 플레이를 계속할 수 있어. 당장 갑옷만이라도 체력 템 위주로 바꿔줘도, HP가 훨씬 더 높아질 거고. 그리고…….

-그리고?

-말했잖아. 앞으론 혼자서 다 하겠단 생각은 버리겠다고. 나 혼자의 성장에 집중하지 않고, 길드의 성장에도 집중하겠다고 마음먹은 지도 꽤 됐다. 이제 우리 길드원들은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타연 최고의 실력자들이자 전부 랭커가 됐잖아? 마쉴을 버렸지만 덕분에 이젠 힐도 받을 수 있고 영혼 연결도 받을 수 있어. 그러니 이젠 나 혼자가 아닌 모두와 처음과 끝을 함께 할 거야. 우리 길드원들을 믿고!

나는 항상 전투가 있을 때마다, 나의 생존만을 먼저 생각했다.

그리고 길드원들 또한, 내 생존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기꺼이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콘틀랑 정상 전투 때.

고작 잠시 시선을 끌겠다고 죽음을 감수했던 축빙 형님과 축볼 누나를 보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디바인 템을 가진 게 뭐라고…….

우리 길드원들은 이제 전원 랭커가 됐기에, 앞으로 디바인 템을 하나씩 갖게 될지도 몰랐다.

그러면 그때부터는, 더 이상 지금과 같이 희생할 수도 없었다.

‘앞으론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다. 이번이 딱 내가 그렇게 변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자 기회였어!’

내가 마쉴을 버린 배경에는, 이렇게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들이 있었다.

-결국 길드원들도 생각했던 결정이었다 이거지? 오…… 이 자식, 괜히 우리의 길마인 건 아닌데? 근데 생각해보니까 이젠 함께 사냥해도 되지 않아? 힐도 받을 수 있으니까?

-그렇지. 안 그대로 너한테 그 말 하려고 했다. 너 내일부턴 나랑 죽어라 사냥만 할거니까 각오해.

-응? 우리 단둘이서만? 내가 왜!

-이것도 말했잖아. 앞으론 뭘 하든지 혼자 하지 않을 거라고. 우리 길드의 메인 탱커는 이제 내가 아니라 너야. 지금까지 내가 반쯤 강제로 탱커 역할을 했던 짓도 이젠 못해. 그러니 네가 얼른 더 크고 단단해 져야지. 다행히 전직만 하면 확 강해질 것 같으니까, 당분간 폭렙 모드다.

-아 뭔데! 함께 사냥하는 거야 그러려니 하지만, 왜 하필 단둘인 건데! 누나라고 한 명 껴서 사냥하자!

그렇게 시작된 현중이와의 레벨업.

잠시도 쉬지 않은 무한 사냥 덕분에, 녀석은 단 일주일이었지만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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