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화 리스타트 (2)
아무리 내가 버스를 태워줬다지만, 녀석의 이런 성장은 피나는 노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겉멋충 현중이 자식이 이젠 통합 랭킹 30위권이라니……. 진짜 고생 많았다. 너도, 그리고 나도.’
고레벨 지역에서의 몰이 사냥.
이만큼 폭업에 효과적인 것도 없겠지만, 반대로 그만큼 힘들고 고된 일이었다.
잠시만 한 눈을 팔아도 죽을 수 있어 항상 긴장을 유지해야만 하는 플레이.
거기다 이젠 페가수스도 많이 풀려서, 이곳이 노출되지 않도록 더욱 신경 쓰면서 사냥해야만 했다.
마나 쉴드와 흡수로 쉽게 사냥했던 때와 달리, 이젠 피 관리까지 해줘야 했으니 몇 날 며칠을 밤새운 것과 같이 정신력 소모가 컸을 터.
그렇게 힘들었던 일주일간의 사투를 군소리 없이 전 버텨낸 현중이였다.
놈을 잠시 기특하게 바라보고 있자, 녀석이 그에 답하듯 말했다.
“뭘 꼬라보고 있냐? 얼른 안 들어가고?”
“어? 어, 어. 들어갈게. 오라나 켜라!”
“싱거운 자식.”
풍덩!
지겹도록 반복한 입수와 동시에, 어그로 감지음이 연달아 요란하게 울렸다.
빠르게 접근해오는 머맨 전사들.
놈들을 바라보며 꺼져있던 스킬을 활성화시켰다.
[라이트닝 배리어!]
파지직! 파지직!
수중에서도 또렷이 보이는 8개의 번개 줄기들.
그와 동시에 은빛 후광이 내 몸을 은은하게 감쌌다.
현중이 녀석의 지탱의 오라 효과.
어느새 뒤따라 뛰어든 녀석이 내 바로 뒤에 자리를 잡으며 스킬을 시전했다.
[심해 머맨 전사의 공격을 회피했습니다.]
[심해 머맨 전사로부터 1,242의 물리 피해를 입었습니다.]
[심해 머맨 전사의 공격을 회피했습니다.]
[심해 머맨 전사로부터 1,106의 물리 피해를 입었습니다.]
막 처음 도착해 바닷속에 뛰어들면, 모든 몹들이 리스폰 되어 있는 상태라 몹들이 가득차 있다.
따라서 몇 시간 동안 이어지는 사냥 중에는 처음이 가장 위험한 순간인 셈.
놈들에겐 반사 데미지도 있었으니, 시작할 땐 회피 스킬을 활용해 최대한 HP를 보존해줄 필요성이 있었다.
[사냥꾼의 춤!]
[10초간 회피율이 2배로 증가합니다.]
나를 둘러싼 10여 마리의 몹들.
한데 그래도 절반은 들어오던 놈들의 공격이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마치 유령이라도 된 것처럼, 공격에 적중됐는데도 단 1의 HP도 닳지 않았다.
‘늘 감동이긴 하지만…… 언제 봐도 회피율 95%는 사기다, 사기!’
10초 동안 회피율을 2배로 증가시켜주는 ‘사냥꾼의 춤’의 액티브 효과.
비록 긴 쿨타임을 요구하지만, 활성화 시간 동안은 물리 공격에만큼은 최고의 성능을 발휘했다.
물론 완벽한 스킬은 없는 법.
아쉽게도 예상과는 다른 점도 있었다.
아직 나보다 높은 회피율을 달성했던 악마 사냥꾼이 없어 최초로 알게 된 사실.
회피율 100%란 수치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아마 다른 데미지 감소나 저항 확률도 비슷할 것 같은데, 공식적으로 명시되는 수치에는 한계가 존재하고 있었다.
[회피율: 95%]
내가 회피율을 증가시켜주는 이 좋은 스킬을 아직 단 1개 포인트만 투자한 이유.
그건 패시브보다 액티브의 효과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고등급이 될수록 쿨타임은 줄어들지만, 2배란 효과는 더 늘어나지 않는다.
95%라는 캡(cap)이 존재하기에 찍어봤자 아무 효과가 없는 것이다.
[축복받은얼굴: 그러고 보니 너 어제 로그아웃 전에도 어깨 하나 더 구해서 강화했지? 그건 어떻게 됐냐?]
스킬 사용과 동시에 들어오는 물리 데미지가 급격히 낮아지자, 눈앞의 대규모 머맨 전사들이 전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이곳에 도가 튼 지도 오래라, 약점인 배 부근만 공격하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은 상태.
덕분에 몰이 사냥 중에도, 현중이 녀석과 한가하게 잡담을 나누는 여유도 가능했다.
[산드로: 떴지. 확실히 이젠 내 손이 금손이 됐나 봐.]
[축복받은얼굴: 뭐? 정말?]
[산드로: 벌써 몇 개째인데 고작 그거 가지고 놀라? 평균보다 조금 잘 뜬 수준인데.]
어제저녁 404레벨을 달성한 내 풀 HP는 이제 5만이 넘어섰다.
체감 HP가 30만을 넘어서던 8성 마쉴 때와 비교하긴 힘들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고레벨 기사의 HP보다 높은 수준.
이게 가능해진 이유는 지난 일주일 사이 몇몇 템들, 그것도 가장 메인이라 할 수 있는 갑옷 3피스를 전부 강화 레전더리 템으로 교체한 덕분이었다.
-부탁하셨던 히드라 세트입니다. 갖고 있던 것도 있던 터라 더 구할 수 있었는데, 이미 누가 한 차례 쓸어간 뒤라 매물을 구하기 어려웠네요. 그래도 겨우겨우 2세트는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정도만으로도 너무 감사한걸요. 고생하셨습니다, 마스터 님.
-공짜도 아닌데 뭐 이 정도로 그러십니까. 저희가 드로 님 덕을 얼마나 많이 보고 있는데요, 하핫!
상인 길드 ‘호박’의 길마, 알바마스터.
그의 도움을 받아 원하던 레전더리 갑옷 세트를 큰 어려움 없이 상당량 구할 수 있었다.
의뢰한 물건은 ‘구두룡 젤 루퍼의 가죽 갑옷’ 세트.
타연 최초의 초대형 필드 보스 히드라가 드랍하는 재료로 만든 제작 템이었다.
허나 그런 만큼, 등장한 지도 제법 된 터라 물량이 상당히 많이 풀리기도 한 물건이었다.
-네? 스탯과 스킬을 초기화했다고요? 그럼 얼마 전부터 이걸 구해달라고 하셨던 게…… 길마님이 직접 차시려고?
-맞아요. 이건 비밀이니까 누구한테 말하진 마요. 알겠죠?
-제가 누구한테 말하겠어요? 아무튼 부탁하실 게 있다면, 앞으로도 맡겨만 주세용! 퀘스트로 벌어둔 빛마석으로 여유 자금은 짱짱하니까요!
그리고 내 전용 장사꾼이나 다름없는 핑크래빗.
그녀의 도움으로 한 세트를 더 구할 수 있었다.
그녀의 아이디어를 활용한 아베르 성 퀘스트로 편하게 큰돈을 벌었는데도, 그녀는 별 거 아니라며 히드라 세트 또한 저렴한 가격에 넘겨주었다.
그렇게 상당히 큰돈을 들여 마련한 총 3벌의 레전더리 갑옷 세트.
난 그걸 가지고 라챤이를 찾아가 강화를 부탁했으나.
-죄송합니다, 형님! 아니, 뭐가 이렇게 안 뜨지? 아…… 진짜 원래 강화하면 라스트챤스였는데……!
기대와 달리 3세트 총 9개의 레전더리 템 중 3개를 연달아 날려버린 라챤이.
단 한 피스도 +3 강화를 만들지 못하고 증발시켰다.
-켁! 이럴 바엔 그냥 내가 할게!
한 번에 6드라코닉 보우를 만든 강화의 왕.
하지만 내 템에는 그 행운이 따르지 못했다.
레전더리라 한 피스에도 억을 호가하는 템들.
날리더라도 내 손으로 직접 날리는 게 덜 원망스러울 것 같아, 결국 직접 러쉬를 감행한 결과.
<+5 구두룡 젤 루퍼의 가죽 갑옷 상의(레전더리, 흉갑)>
<+5 구두룡 젤 루퍼의 가죽 갑옷 하의(레전더리, 하의)>
<+6 구두룡 젤 루퍼의 어깨 보호구(레전더리, 견갑)>
정말 운이 좋게도, 모든 피스들을 5까지 강화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투구나 부츠, 장갑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가 증가하는 갑옷 피스들.
이들을 유니크 로브 세트에서 레전더리 가죽 세트로 바꾸자, 이것만으로도 HP가 2만 가까이 증가됐다.
HP뿐만 아니라 체력 스탯을 올려주는 템을 고른 효과였다.
“힐!”
“활력의 축복!”
채 1/4도 닳지 않은 체력.
하지만 한차례 정리했어도 계속 몰려올 것이기에, 현중이는 차분히 내게 힐과 재생력 증가 버프를 넣어주었다.
[산드로: 지탱의 오라 대신, 바로 투쟁의 오라로 해도 되겠다.]
[축복받은얼굴: 오케이!]
테크트리를 바꾸고 한 가지 더 좋아진 장점.
더는 무게 게이지를 채우고 다닐 필요가 없어, 자연 재생 회복 효과를 온전히 누릴 수 있었다.
여러 업적과 엔드 급 템들에 붙어있는 회복 증가 효과.
덕분에 내 HP와 MP는, 1초마다 무려 수백 틱씩 회복되는 괴물급 회복력을 자랑했다.
비록 더는 용맹한 오크 로드의 증표를 착용하지 못하는 점은 아쉬웠지만…….
대체한 +10 불굴의 의지가 훨씬 더 좋은 템이었으니, 어느 정도 미련을 떨쳐버릴 순 있었다.
그렇게 다시 안정적으로 이어진 현중이와의 사냥.
녀석은 도트 데미지와 힐링, 버프 스킬 등을 가지고 있어, 함께 몰이 사냥을 하기에는 최적의 파트너였다.
[빛나는 마력석(1)을 획득했습니다.]
‘어라? 그새 또 나왔네?’
한계돌파와 함께 사냥할 땐 시간당 빛마석을 하나 정도밖에 먹지 못했다.
한데 현중이와 사냥한 뒤론 시간당 거의 3, 4개는 먹었다.
이것만 봐도, 테크트리를 바꾸고 얼마나 사냥 속도가 빨라졌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믿을 수 없이 강해진 공격력.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했지만, 새롭게 바뀐 내 캐릭이 여전히 한 번씩은 생소하게 느껴졌다.
[산드로: 현중아, 오전 사냥은 이만 끝내자.]
[축복받은얼굴: 어? 벌써 시간이 됐냐?]
[산드로: 어. 다녀올 테니까 조금만 쉬고 있어.]
그렇게 3시간을 내리 사냥했다.
한번 들어오면 무게 게이지가 무거워지기 전까지 나오지 않는 편이었으나, 이번엔 조금 일찍 사냥을 멈췄다.
약속한 시각이 다 되었기 때문이었다.
* * *
(나: 곧 도착합니다, 형님. 문 좀 열어주세요.)
(지옥불: 아, 그래? 생각보다 일찍 왔구나. 나가보마.)
만나기로 한 대상은 다름 아닌 지옥불 형님.
이제는 어엿하게 피닉스의 메인 성이 된 번스타인 성으로 이동하며 귓속말을 넣었다.
슝!
순간이동을 하자마자 나타난 복잡하고 시끄러운 외성 마을 광장.
언제 방문해도 항상 유저들이 이렇게 넘쳐났다.
유저들의 레벨이 상향 평준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인기는 전혀 시들지 않고 그대로였다.
‘아니, 오히려 더 복잡해진 건가? 신규 유저들이 그만큼 늘어났으니까.’
업데이트를 계기로 새롭게 타연을 접한 유저도 많았지만, 신규 직업의 등장과 함께 접었다가 다시 시작한 유저들도 적지 않았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거의 반반에 가까울 정도.
덕분에 중레벨대 사냥터가 많은 번스타인의 인기는 전성기에 못지않았다.
물론 시공의 틈새와 세금 혜택으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우리 ‘아베르’ 성은 따라올 수 없었지만.
“어서 와라. 웬일로 훼라리 대신 직접 걸어왔구나?”
“구경도 할 겸 걸어왔죠. 이곳은 저한테 추억이 많은 곳이라서요. 그나저나 성문이 많이 화려해졌네요?”
“하하! 생색내는 거냐? 확실히 많이 좋아지는 것 같더구나. 특별한 효과가 부여되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고!”
“어때요? 확실히 완성만 되면, 이번 공성전에서 제법 큰 도움이 될 것 같겠죠?”
“그래, 고맙다.”
거대한 번스타인의 내성문.
지난 몇 년간 늘 변함없던 이 성문의 외형이 변해 있었다.
크고 두껍긴 하지만 다소 평범했던 철제문.
그 중간중간에 거대한 나무줄기들이 덫 데여지고 있던 것이다.
최근 변화한 우리 아베르 성의 내성문과 비슷한 외형.
바로 성문을 업그레이드해 강화되고 있는 내성문의 모습이었다.
-산드로 님. 채집 도중에 이 레전더리를 캐게 됐는데 혹시 필요하세요? 이건 영약은 아니고 재료 템인 것 같긴 한데요…….
얼마 전 뜬금없이 연락해온 꿈틀이.
그가 캤단 아이템은 다름 아닌 ‘세계수 가지’였다.
이미 핑크래빗을 통해 이 가지의 효과를 확인한 나는, 그에게 이 아이템을 구매한 뒤 지옥불 형님께 선물로 드렸다.
이 재료 템으로 성문을 강화하면 얼마나 좋은지 알려드리는 것과 동시에.
-업그레이드에 드는 비용은 그렇다 쳐도, 아무리 그래도 레전더리 템인데 이걸 어떻게 받겠니?
-형님이 엊그제 저한테 주신 건 잊으셨어요? 그것도 레전더리였잖아요!
제루티안의 축복을 사용한 뒤에도, 내 새로운 테크트리에 관해 알게 된 유저는 극소수에 불과했는데, 그 중엔 당연히 지옥불 형님이 포함돼 있었다.
형님과 나눌 대화와 부탁드릴 것도 있었기에 곧바로 찾아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형님은 내 새로운 테크트리를 알게 되시자마자, 부탁드리기도 전에 템을 건네주셨다.
-들어보니 네 테크에는 이게 필요하겠구나. 내가 차던 걸 선물로 주마. 나보단 너한테 더 필요한 것 같으니까.
<+5 고대 뱀파이어 귀족의 루비 반지(레전더리, 반지)>
내가 예전에 듀메인 성의 인던에서 먹었던 아이템.
마나 흡수 대신 체력을 흡수하는, 피닉스 길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바로 그 템이었다.
-아니, 형님이 차시던 걸 어떻게 받아요? 그것도 5강화 인데요?
-어차피 너한테 반지는 하나만 필요하니까 더더욱 고강화가 필요해 보이는데? 나야 여분도 있으니까 걱정 마라. 루비 반지를 부탁하려고 여기 온 것도 있었지?
-형님…….
누구보다도 내 마음을 잘 헤아려주는 지옥불 형님.
그렇게 아낌없이 퍼주시는 형님께, 나 또한 항상 어떻게라도 보답해드리고 싶었다.
“근데 오늘 절 부르신 이유는…….”
“뭐겠니? 때가 됐으니 불렀지. 기다려줘서 고마웠다.”
“앗! 그럼 드디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들어선 본론.
“그래. 꽤 힘들고 귀찮았지만…… 마침내 거를 놈들은 다 걸렀다! 그러니 이제 함께 새 출발 하자. 우리가 최초로 밟는 필드인, 천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