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일인 통제 (2)
“…….”
일동 침묵이 이어졌다.
각자의 머릿속엔 불가능하다는 생각과 함께, 어쩌면 정말 가능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바삐 오가는 듯싶었다.
“그래도 몇 명이라도 함께 가지? 라챤이가 엄호를 해준다거나 무살이나 당당이가 함께 하면 더 수월할 거 아냐?”
“아니에요. 치고 빠지기엔 혼자가 훨씬 편해요. 그리고 시간이 꽤 걸릴지도 모르는데, 딜러들이 빠지면 여기를 제대로 살펴나 보실 수 있겠어요?”
듀얼 클래스.
지난 일주일간의 사냥 동안, 이 조합의 완성도는 충분히 확인했다.
족히 2배 이상 빨리진 사냥 속도.
400레벨 전보다 요구 경험치가 더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더 빠르게 레벨업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그러니 이제는 PVP 전투에서도 먹히는지 확인해볼 차례.
원래도 태성을 때려잡고자 테크트리를 바꾼 것이었으니 자신 있었다.
“그럼……?”
“카이저 형님이 이런 일엔 가장 베테랑이시니, 저희 길드에서는 저 대신 대표를 맡겠습니다. 지옥불 형님과 함께 오더를 부탁드릴게요.”
두 분이 나이가 가장 많은 편이지만, 실력도 가장 출중했다.
혹여 이곳을 탐험하다가 죽을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 이렇게 권한 대행을 언급해두는 편이 다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젠 길마가 다 됐다니까.’
혼자 다닐 때는 생각할 필요도 없던 일.
하지만 믿음직한 동료들이 많으니 크게 걱정되진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난 역시 혼자로 움직이는 편이 아직은 맘이 편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다리우스 자식 좀 꼭 죽여버려라!”
바로 돌아가봤자 아직 놈들이 있을 테니, 잠시 5분쯤 머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심연에 잠식된 테터리욜 지역은, 회색 안개 같은 것들 때문에 안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텔로라의 큰 날개라는 ‘타비엘’.
우리 곁에 있는 이 거대한 천사가 있는 자리만이, 작은 교실만 한 크기의 결계로 안개를 힘겹게 막아내는 중이었다.
루네아도 그랬지만 이곳은 더욱 심각한 모습.
여러모로, 업데이트 광고 영상에 나왔던 화려하고 아름답던 천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저도 부디 그러길 바랍니다.”
“잠깐! 활력의 빛! 쉴드!”
“쉴드!”
쉬웅, 쉬웅, 쉬웅.
더는 시간 낭비일 것 같아 떠나려는 순간, 축빙 형님을 비롯한 길드원들이 내게 스킬을 걸어줬다.
지속 시간이 길지 않아 어차피 금세 꺼질 버프들이지만…….
뭔가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픈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은신!]
“앞으로 48시간 동안, 이곳에서 놈들의 재수 없는 얼굴은 보지 않게 만들어 드릴게요!”
난 그 말을 끝으로 타비엘에게 이동을 부탁했다.
[루네아 중심 지역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YES]
슝!
다시 되돌아온 세 천사가 머무는 무너진 탑.
뒤늦게 찾아온 피닉스와 태성 라인 몇십 명이 이곳을 살펴보고 있을 뿐, 주요 멤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런 개자식들이 왜 자꾸 시비질이야?”
“니네 정예들은 다 튀었으니까 하는 소리지. 하긴 밑에서도 피해만 다니던 놈들인데, 여기서라고 뭐 별수 있겠어?”
“맞아 맞아. 니네 길드, 요즘 탈주하는 애들로 넘쳐난다며?”
하지만 앙숙인 두 라인의 유저들이 한 자리에 있었으니, 조용할 리 없었다.
‘어쩜 저리도 추잡하게들 노는 건지. 진짜 필드로 나오기만 해봐라…….’
자기 얼굴 그대로 게임하는 유저도 많은 편인데, 정말 저렇게 도발하는 게 쪽팔리지도 않는 걸까?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고.
처음 인게임에서 실제로 마주했던 일도양단 패거리의 평소 모습을 떠올려 보면, 놈의 길드원들이 왜 저러는지 알법했다.
여하튼, 여기서는 흔한 반복 퀘스트 외에 다른 정보들을 얻을 수 없다.
그걸 확인한 놈들은 곧장 다른 장소를 둘러보기 위해 이곳을 떠난 상태였다.
(국선: 도시 북부 쪽으로 이동 중입니다.)
하지만 내겐 이미 추적기가 하나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 폐허에 갈 만한 곳은 한정돼 있는 법.
덕분에 넓은 도시였는데도 놈들의 행적을 곧바로 찾아낼 수 있었다.
(나: 잘하셨어요. 이제 붙었으니까 빠지셔도 좋습니다.)
(국선: 네, 알겠습니다. 조심하세요!)
놈들의 수는 대략 50여 명.
천문을 타고 유저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보니, 금세 수가 많이 불어난 상태였다.
아무리 그래도 지역 탐방이나 퀘스트를 하기엔 다소 많은 숫자라 조금 당황했지만, 어차피 상관없었다.
(나: 꿈틀이님. 죄송한데 혹시 로그아웃해서 재접속 한 번만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꿈틀이: 네? 왜요?)
(나: 귀환 주문서를 쓰면 지상으로 가는 건 알겠는데, 재접속해도 천계인지 몰라서요. 생각보다 태성 놈들이 빨리 올라와서 전투에 앞서 꼭 좀 확인해봐야 할 것 같은데, 정말 죄송하지만 부탁드릴 분이 없네요.)
(꿈틀이: 흠... 알겠습니다. 채집이야 좀 늦어져도 상관없는데, 전투는 그렇지 않으니까요! 지금 바로 해볼게요!)
이미 다대일 전투는 해볼 만큼 해본 경험이 있었고, 방법이야 없으면 만들면 그만이었다.
50 대 1?
100 대 1의 전투라 할지라도 겁나지 않았다.
놈들이 전부 랭커로 채워진 놈들이라 할지라도!
(꿈틀이: 제 자리예요. 재접속해도 천계에서 접속되네요.)
(나: 오,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됐어요!)
예상은 했지만 다행히 재접속은 그 자리.
하긴 올라오는 데 소모품도 드는데, 로그아웃 한번에 바로 아웃이었으면 무지하게 욕 얻어먹었을 필드였을 것이다.
‘이제 대충 준비는 끝났다. 이제 너희가 필드로 나가기만 하면 돼!’
밥상은 다 차려놨다.
애초에 많은 수가 올라와 있지도 않았고, 그마저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걸 직접 보여줬다.
반면 태성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올라와 합류하고 있었다.
이 새로운 지역, 천계에 올라오고도 설마 그냥 내려갈까?
오랜 기간 1위를 차지했고 온갖 퍼스트 클리어의 대명사인 네가 그럴 린 없잖아?
아무리 죽으면 마신검을 떨굴 위험이 있다곤 해도!
“이곳의 심연 몹들을 좀 잡아봐야 할 것 같다. 알아보려고 해도 이곳에 천사라곤 아까 전의 세 마리가 전부라 들어 볼 게 없어. 직접 부딪혀 딴 놈을 찾아 보는 수밖에!”
“네, 형님!”
그리고 마침내.
녀석이 이리저리 흩어져서 뒤지던 길드원들을 한 자리에 소집했다.
회색 안개를 막고 있는 결계 부근.
누가 봐도 도시의 끝부분으로 보이는 곳에 다다른 녀석은, 이윽고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수십 명의 부하들이 그 뒤를 쫓았다.
‘진짜로 되려나?’
그 모습에 겁이 안 난다 하면 거짓.
하지만 난 나 자신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다시금 8성 은신을 재사용해 쿨 타임을 돌리며, 놈들의 뒤를 밟았다.
* * *
“잠깐 피 타임!”
“옙!”
도시를 나선 지 30분.
놈들은 정말, 정말정말 정말이지 조심스럽게 사냥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그도 그럴 만은 했다.
이곳에 뜨는 몬스터들이 무조건 파티 플레이를 강요할 만큼, 하나같이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심연의 파편 덩어리>
<심연의 파편>
공틈에서 가장 많이 뜨는 파편 조각은 찾아볼 수 없었고, 그 위 등급인 파편 덩어리가 가장 약한 놈이었다.
심지어 반복 퀘스트의 대상이었던 ‘파편’은, 더 짙은 회색을 띠고 있을 뿐 아니라 거의 준필드 보스급에 가까울 만큼 강한 놈이었다.
‘이쯤이면 많이 온 것 같은데. 이제 시작할 때가 됐나……?’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놈들 또한 타연에선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강한 파티.
아니, 대규모 공격대나 다름없는 터라 순조롭게 진행했다.
탱커의 완벽한 어그로 관리와 동선, 정확한 힐링과 에임,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화력까지.
놀랍게도 놈들은, 처음 오는 사냥터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안정적인 사냥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어느 정도 도시와 멀어져서, 뒤따라오는 유저들이 없단 게 확인되자 더욱 과감히 전진했다.
아무래도 이렇게나 많은 랭커들이 몰려있는데, 아무리 8성 은신이 있는 나라도 뒤따라올 거란 생각은 못한 듯싶었다.
“제대로 온 건가?”
그렇게 처음치곤 제법 먼 곳까지 나아가자, 뭔가 새로운 지역으로 접어들었다.
거대한 신전이 있었을 것만 같은 지형.
역시나 파괴되어 나뒹굴고 있는 기둥은, 지름만 해도 10여 미터는 넘어갈 정도로 거대했다.
주변엔 몇 미터는 훌쩍 넘어갈 만한 석제 의자들이 곳곳에 이리저리 넘어져 있었고, 중앙에는 심연 몹들과 다른 무언가가 앉아있었다.
“저건 뭐지?”
“보스 몹이닷!”
<침식된 날개 데아 레시아렐>
6미터는 족히 넘어가는 거대한 체고에 두 쌍의 회색 날개.
도네타 인던에서 봤던 파미엘과는 달리, 날개는 부러지지 않고 꼿꼿이 펴 있었다.
“다들 멈춰라!”
위협적인 모습.
하지만 더욱 두렵게 느껴지는 건, 녀석의 네임바가 더없이 새빨갛다는 사실이었다.
타연 최고 레벨인 내게도 이 정도였으니, 놈들이 느낄 위압감은 말할 것도 없었다.
“리스폰되어 있는 필드 보스다. 이쪽은 살펴볼 것도 없으니까 다들 뒤로 조심히 물러서!”
“넵!”
그리고 역시나, 위험한 모험은 하지 않는 다리우스였다.
놈은 차분히 전 병력을 되돌린 후, 다른 길로 방향을 바꿨다.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칠 내가 아니었다.
‘군단장 때처럼 심연의 몹들을 끌려고 했는데…… 더 좋은 놈이 나타났잖아?’
최초로 놈을 죽이는 데 성공했던 수단, 몹몰이.
혼자 대규모 놈들을 상대하는 방법으로는 이것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었다.
오롯이 50 대 1을 상대하는 건 말 그대로 자살행위.
하지만 난장판인 상태에서 치고 빠지며 하나씩 잡아내는 건, 생각보다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뒤돌아 점차 멀어지는 다리우스 패거리들.
난 그 뒷모습을 보면서 은신을 풀었다.
그리곤 짧게 읊조렸다.
“램보 소환.”
날 수 없는 지역에서, 이보다 더 빠른 이동 펫은 없다.
난 거대한 늑대 위에 올라타자마자 천사장이 맴돌고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띠링!
『이곳이 어디라고 감히……!』
얼마 가까이 가지 않았는데도 울리는 어그로 감지음.
지독히도 먼 감지 범위였지만, 레시아렐은 눈 깜짝할 사이에 내 코앞까지 다가왔다.
내게 고개를 돌리자마자, 두 쌍의 날개를 펄럭이며 저공비행을 하듯 스르륵 날아왔기 때문이었다.
“가자! 램보야!”
그에 난 여유 부릴 새도 없이, 바로 몸을 돌려 뛰었다.
바로 근처에서 다른 심연 몬스터를 잡고 있는 다리우스 패거리를 향해!
“뭐, 뭐야! 보스 몹이 온다!”
“저 늑대는…… 씨앙! 산드로 새끼잖아!”
이쯤 되면 눈에 안 띄려야 안 띌 수 없는 법.
놈들은 내가 다가오는 모습을 보자, 순식간에 스킬을 쏟아부어 잡고 있던 몬스터를 잡아버렸다.
하지만 난 상관없이 놈들에게 붙었다.
그리고는 놈들 곁을 스쳐 지나는 순간, 가속 스킬을 활성화시켰다.
“몬스터 라이딩!”
순간 몸이 튀어나갈 정도로 빨라진 이동 속도.
그에 나와 비슷한 속도로 뒤쫓아 오던 레시아렐이 순식간에 뒤처졌다.
이대로 거리를 띄우고 10초의 로그아웃 대기 시간을 버티면, 보스 몹은 놈들을 감지할 터.
그런 다음, 쑥대밭이 된 놈들을 헤집는 게 내가 세운 즉흥 전략이었다.
팟!
[홍길동으로부터 1,050의 물리 피해를 입었습니다.]
“응?”
한데 따라붙는 놈이 하나 있었다.
다름 아닌 홍길동.
그림자 밟기를 사용해, 내게 딜을 먹이는 데 성공했다.
“너 뭐 하냐?”
“뭐 하긴 자식아, 계속 가보든가!”
한데 가속 중인 램보를 쫓으며 공격을 계속 먹이기엔 이속이 딸린 녀석.
바로 거리가 벌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순간 시야에서 사라졌다.
팟!
[홍길동의 공격을 회피했습니다.]
“어라, 뭐야? 너 설마……?”
“그래, 이 자식아! 한 번 당했던 짓에 우리가 또 당할 것 같냐!”
대략 4초 정도 만에 다시 사용된 그림자 밟기.
내가 종종 사용했던 방법이기었기에 뭔지 몰라볼 수가 없었다.
“단테리오의 팔찌!”
“오냐! 그걸 너만 가지란 법은 없잖아?”
뒤이어 2번이나 아슬아슬하게 그림자 밟기 거리를 채워 따라온 홍길동.
심지어 계속 단검을 던지면서 쫓아왔다.
그 결과, 결국 10초의 이속 가속 효과가 끝나는 동안 녀석의 추적을 떨쳐내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하핫! 꼴좋구나, 산드로!”
“다리우스…….”
멀리서 통쾌하다는 듯이 웃고 있는 다리우스의 모습이 보였다.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걸까?
놈들은 내 갑작스러운 난입에도,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어그로를 먹지 않고 내 로그아웃을 저지했다.
그 역할로 홍길동이 제격이었던 건 두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개자식! 드디어 잡는 날이 왔구나. 이제 도망도 못 갈 테니 넌 죽은 목숨이다!”
그새 곁으로 다가와 말을 거는 홍길동.
녀석은 맺힌 게 많았는지, 곧바로 단검을 휘두르며 공격해왔다.
“죽기는 내가 왜 죽어? 그건 니들 몫인데.”
하지만 놈이 실수한 게 2개 있었다.
하나는 혼자서, 내 곁에 붙어서는 안 됐다는 것.
“라이트닝 배리어!”
“뭐, 뭐라고?”
파지직, 파지직!
당황해하는 홍길동의 목소리.
그게 제대로 들리지 않을 만큼, 내 몸에서 뿜어져 나온 8개의 뇌전 줄기가 공격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컥!”
그러자 8개 중 하나가 녀석에게 곧바로 감전 효과를 먹이는 데 성공했다.
“급소 공격!”
그리고 이어진 도주 불가 스킬.
휘둘러지는 8번의 공격에 녀석은 경직과 감전 효과에 번갈아 가며 빠졌고, 중간에 치명 공격도 터졌다.
“아, 안 돼! 주지 마!”
그 모습에, 당황한 누군가가 홍길동에게 힐을 넣어주었다.
파티 상태라 순식간에 깎여나가는 홍길동의 HP를 보고 반사적으로 준 모양.
하지만 바로 옆에 나를 쫓아오던 보스 몹이 있단 사실은 망각한 실수였다.
“튀, 튀어!”
순식간에 흩어지는 모습.
하지만 난 눈앞의 홍길동에게만 집중하고 침착하게 급소 공격의 마지막 공격을 먹였다.
“커헉!”
두 번째는 내가 더 이상 예전의 산드로가 아니란 걸 몰랐다는 것.
압도적으로 강해진 내 공격력에, 홍길동은 잿빛이 되어 스르륵 사라지고 말았다.
고스펙의 장비를 착용하고 랭커인 도둑이었지만, 달라진 내 공격력에는 잠시도 버티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오, 이 자식……. 역시 태성 놈들이 장비 하나만큼은 알짜라니까? 다시 살 수고를 덜었어!”
녀석은 정말 운도 없는지, 무려 차고 있던 ‘무기’를 드랍하고 말았다.
[+3 테네시의 바람 단검(레전더리)를 획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