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244화 (244/350)

244화 일인 통제 (4)

“저 미친 자식. 아무리 랭킹 1위라도…… 지금 이게 말이나 되는 상황이야?”

“일루전 새끼들. 진짜 게임을 어떻게 만들어 놓은 거야!”

“…….”

나를 향해 고래고래 고함치는 태성 측 유저들.

반면 난 그 모습을 덤덤히 바라만 보았다.

“크크, 꼴 좋다. 밑에선 그렇게나 나대고 다니더니, 산드로 님 앞에선 찍소리도 못 하네!”

“뭐, 이 새끼야? 넌 마을 벗어나기만 해봐라. 그때도 지금처럼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놀고 있네. 죽을까 봐 안전지대를 못 벗어나고 있는 건, 정작 누구죠? 너희 태성 아니야?”

유저 간 전쟁이 있는 게임이면 으레 다 그렇듯.

본의 아니게 피닉스와 태성 라인이 안전지대에서 함께 섞여버려, 치열한 입배틀을 뜨고 있었다.

평소엔 등록한 마을이나 활동 반경이 달라 잘 마주치기 힘들었는데, 이곳은 타연의 모든 고레벨들이 몰려오는 중이다 보니 벌어진 일이었다.

“와, 여기가 천계?”

“천계가 뭐 이따구야? 광고 영상은 다 사기였던 거야?”

“여기만 이럴 수도 있고, 나중에 변할 수도 있는 거겠지. 아무튼, 이곳이 천계다워지려면…… 시간이 많이는 필요 하겠다!”

그리고…….

천문을 타고 올라오는 건, 당연하게도 태성과 피닉스 라인에 속한 유저들만은 아니었다.

공성전이 타연의 주력 콘텐츠고 필드전이 핫하다고는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런 것들엔 일절 관심 없이 플레이 중인 유저도 많았기 때문.

심지어 개중에는 흑색 망토를 두른, 흑풍단으로 보이는 유저들도 적지 않게 보였다.

“엇, 충성! 흑풍단주를 뵙습니다!”

“아, 예……. 반갑습니다.”

그리고 그런 유저들은 내게 다가와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요즘 잘 안 보이신다 싶더만…… 여기서 태성 애들을 참교육 중이셨네요.”

“어쩌다 보니까요. 흐흐흐.”

또한 기어코 흑풍단 티를 내는 유저답게, 태성의 랭커들이 눈앞에 즐비한 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놀려댔다.

“저 흑풍단 새끼가 진짜 겁대가리를 상실했네?”

“그러게. 지가 무슨 버닝스타인 줄 아나? 아디 외웠다. 조만간 타연 접게 만들어 주마.”

그에 협박하는 태성의 랭커들.

“과연 누가 접을지는 두고 보면 알겠죠?”

하지만 전혀 겁먹지 않는 흑풍단 대원이었다.

확실히 태성이 라인을 만들고 나서부터는 분위기가 사뭇 바뀌었다.

상대적으로 소수만 알고 경험했던 태성의 패악질을, 이제는 일반 유저들도 체감 중이라 그런지 옹호하는 이가 없는 것이다.

태성이 뭐라 겁박하고 불이익을 빌미로 협박한다 해도, 그에 굴복하지 않는 유저들이 보는 것처럼 지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그러니 난 이런 변화를 더욱 크게 발전시킬 필요가 있었다.

잠시 세력이 밀렸던 피닉스가 성장하고, 흑풍단이 늘어나며, 태성에 대한 일반 유저들의 반감이 더 커질 수 있도록!

놈들이 알짜 사냥터에서 통제를 걸고 무분별하게 PK 했던 과거.

그곳을 부럽게만 쳐다보거나 마음 졸이며 몰래 사냥했던 일반 유저들.

타연의 새로운 메인 필드인 이곳 천계에서, 난 놈들에게 그와 똑같은 경험을 선사해줄 생각이었다.

“죽이든 말든 마음대로 하시고요. 이것만 좀 명심하세요. 함부로 PK 하다가 머더러가 되면, 여차하면 겜 접을 각오하라는 걸요. 누구처럼 바로 무기를 떨굴 수도 있으니까요.”

여전히 결계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 태성 유저들을 보며 한 마디하고.

스르륵.

은신으로 몸을 감췄다.

* * *

“후아, 힘들다 힘들어! 하도 집중했더니 머리가 다 아프네.”

“그래? 암만 그래도 나만큼은 아닐걸?”

“그걸 말이라고 하냐? 흐흐흐, 넌 정말 내 친구지만 제대로 미친놈이야 정말. 도대체 몇 명이나 죽인, 아니 학살한 거냐?”

“글쎄……. 아마 500명은 족히 넘을걸?”

“뭐? 6시간 만에, 진짜? 와, 이 자식 조만간 만인살 찍고 말겠구나!”

각자 캡슐에서 나오자마자, 나와 현중이는 거실 소파에 앉으며 천계에서 못다 한 재회를 했다.

오전이 끝나가는 시간.

새벽부터 달린 파티원들은, 식사도 할 겸 휴식 시간으로 다 같이 1시간 정도 로그아웃했다.

하루 이틀만 게임할 건 아니었기에, 제대로 된 공격대나 대규모 파티를 진행하다 보면 이런 브레이크 타임이 필수였다.

“올라오는 태성 놈들이 좀 많아야지. 그래도 할 만은 해. 한 번만 죽이면 48시간 동안 다시 볼 일 없으니까.”

태성의 1차 부대였던 다리우스 패거리의 원딜러와 힐러들까지 잡아버렸더니, 놈들의 탐험 의욕이 확 죽어버렸다.

물론 태성 라인의 유저들이 계속 올라와 보충됐지만, 다리우스는 타이탄이란 비장의 생존 카드를 써버린 상태.

결국 놈은 몇백 명 단위로 뭉친 다음에야 필드로 나갔는데, 그마저도 처음 레시아렐을 만난 곳과 같이 멀리까지는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난 타겟을 바꾸었다.

다리우스가 아닌, 천계에 올라온 태성 라인 전부로!

“캬! 진짜 혼자서 그런 플레이가 가능하단 걸, 같이 겜하는 나도 못 믿겠네. 예전에도 비슷한 짓은 했지만, 그땐 상대가 랭커급은 아니고 장비 차이도 심했었잖아.”

“아…… 혼자서 백 명 잡아내고 불 질렀을 때?”

“그래. 근데 지금은 죄다 랭커급에 다들 레전더리 템 정도는 착용한 놈들인데 이런 플레이가 가능하다니……. 괜히 또 엄한 개발자들만 밸런스 타령으로 욕 처먹겠구나!”

“PVE는 다소 포기하더라도 PVP에 힘을 주려고 바꾼 테크트린데, 이 정도는 돼야지. 지금까지 참아왔던 게 얼만데……. 마침내 준비를 다 마쳤으니까, 놈들이 편하게 겜하는 날도 다 끝난 거지!”

“하긴…… 니가 그렇게 열렙하고 레이드했던 것도, 다 태성을 무너뜨리려고 그랬던 거였지. 그럼 이제 시작인 거네.”

“맞아. 이제부터 시작이야. 나…… 아니, 우리와 태성의 전쟁은!”

이미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태성과의 첫 전투에서 난 곧바로 400레벨이 생각보다 중요한 분기점이었단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전직과 이중 직업을 얻을 수 있는 400레벨.

설령 399레벨과는 단 1레벨 차이라 할지라도, 그사이에 존재하는 메울 수 없는 격차를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이중 직업만 해도 이동기와 공격 스킬이 배로 늘어나는 셈이니까……. 만약 제루티안의 축복이 없었다면 이 정도 파급력은 없었을지 모르지만, 그도 아니니까…….’

400레벨까지 스킬 포인트를 찍지 않고 모으기만 하는 유저는 찾아볼 수 없다.

아니, 있더라도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니 전직이나 이중 직업을 택하더라도, 원래라면 새로운 스킬을 몇 개씩이나 익히는 건 시간이 좀 더 흐른 후에나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제루티안의 축복을 사용해 필요 없는 고유 스킬과 공통 스킬들을 버렸다.

그리고 악마 사냥꾼의 스킬들을 대신 채워 넣었다.

테크트리와 콘셉트를 과감히 바꾼 것도 있지만, 400레벨이 되자마자 눈에 띄게 강해진 데는 이 같은 이유가 숨어있었다.

“야, 이것 좀 봐라. 벌써 네 소식이 쫙 퍼졌네.”

“응? 뭐라고 그러는데?”

“직접 봐봐. 욕하는 놈은 별로 없으니까.”

올타에 자주 접속하는 편이었지만, 내가 언급되는 글은 거의 보지 않았다.

막무가내로 욕하고 비난하는 글부터 저주를 퍼붓는 글, 혹은 감정에 호소해 내 플레이에 영향을 주려는 글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

내게 관종 기질이 있다고들 하고 이젠 인정도 하는 편지만…….

요즘은 앞만 보고 달려가기에도 바쁜 터라, 자유 게시판이나 잡담 게시판에는 굳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오늘은 날이 날인 만큼, 배달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간만에 들어가 몇몇 글들을 읽어봤다.

-지금 천계에선 산드로가 학살 중!

└태성 라인 애들 마을 밖을 못 나가고 있다. 한 번씩 2, 3백 명씩 모여서 나가던데, 그마저도 치고 빠지면서 죽이고 있나 봐!

└└미쳤네ㅋㅋㅋ 늘 혼자 다른 게임하고 있는 산드로답다ㅋㅋ

└└└우리 싼드로 접었다고 했던 넘들~ 어디 가고 아닥중이냐잉! 이게 접은겨? 눈깔을 확!

-출처가 불확실하긴 한데, 산드로도 제축 썼나 본데? 마쉴 버렸다는 얘기가 돌고 있음.

└ㄹㅇ임? 그럼 이제 원래대로 종이 몸인 도둑으로 돌아왔겠네? 왜 그랬지?

└└종이 몸이면 지금 혼자 학살 중인 게 가능하겠냐? 직접 싸워본 건 아니라 모르겠지만, 뭔가 있겠지. 그게 아니라면 필드 나올 사람도 아니고.

-천계 올라가려면 정마석 들어서 비싼데, 지금은 가 봤자더라. 사냥말곤 뭐 할 게 없음.

└가본 척 쩔쥬? 350렙은커녕 300렙도 안될 니가 걱정할 건 아닌 거 같은데?

└└안 그래도 이 소식 듣고 바로 거래소 가봤는데, 누가 전부 쓸어갔더라. 하여간 타연러들 돈 냄새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맡는다니깐

확실히 타연은 타연.

평일 오전에 벌어진 일이었는데도, 소문이 퍼지는 속도가 장난 아니었다.

타연 유저라면 누구나 천계 지역에 관한 관심이 높았을 터.

기습적으로 필드가 오픈된 지금 상황에, 아무래도 신이 나 있을 수밖에 없을 만도 했다.

“아무튼…… 오전에 성과는 좀 있었냐?”

“아아, 우리? 아직 별건 못 찾았다. 그저 심연 몹들만 실컷 잡았지. 경험치 하나만큼은 잘 주더라.”

“흠……. 카이저 형님과 지옥불 형님. 그리고 당당이와 대탐이까지도 있는데 그렇단 말이지?”

“어. 막판에 루네아보다 더 폐허가 된 도시에 진입하긴 했는데, 뭐 아무것도 없더라고. 안전지대도 없어서, 한참 뒤져본 다음에 로그아웃도 겨우 한 거야.”

“그래? 하긴 바로 뭘 찾아내기 힘들긴 하겠지만…… 내가 시간을 벌어 줄 때 앞서나가면 좋겠는데…….”

“니가 있다면 좀 더 낫긴 하겠지.”

“지옥불 형님이나 카이저 형님께도 디바인이 있는데 뭔 소리야. 그분들 데리고도 진행 못하면 네 탱킹 문제지. 나 마쉴 버린 지 오래니까 괜한 기대하지 마라. 서로 잘하는 걸 하자고.”

“……오냐.”

처음 복수를 꿈꿨을 때부터 바라왔던 순간.

그건 어쩌면, 지금이었다.

통합 랭킹 1위.

400레벨이라는 기점을 넘어 일시적으로 벌어진 적들과의 스펙 차이.

그리고 천계라는, PK 하기에 너무도 좋은 조건을 갖춘 필드까지…….

그래서 난 천계 입성을 기다린 지난 일주일 동안, 만반의 준비를 다 끝내놓은 상태였다.

필드 개척이나 퀘스트 진행 등은 그쪽에 특화된 동료들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난 내가 잘하는 것을 중점적으로 하기로.

내게는, 그게 바로 ‘PK’였다.

‘최소한 한 달 이상은…… 너희 태성이 천계엔 발도 못 붙이게 만들어 주마!’

신석 쟁탈전이라 했던가?

놈들이 거기에 참가하기는커녕 정보도 얻을 수 없도록, 사전에 발길을 철저히 차단할 것이다.

내겐 그럴 만한 ‘힘’이 있다는 것이, 이미 오전에 충분히 증명됐으니까!

“그나저나, 길드 마크는 언제 바꿀 거냐? 이미 대표로 계약서도 다 사인하고 왔잖아.”

“날짜는 내가 정하기로 했었으니까 상관없어. 하지만 아무래도 곧 바꿔야겠다. 이제 막 PK를 시작한 거라 잠잠하지만, 곧 엄청나게 시끄러워질 테니까. 생각보다 로만의 방패막이가 빨리 필요해질 것 같아.”

게임 속에서의 준비가 철저했다면, 현실에서도 나름의 준비를 끝마쳤다.

그건 바로 스폰 계약.

우리 버닝 스타는, 전에 내게 접촉해왔던 로만 전자와 결국 스폰 계약을 맺기로 했다.

이미 난 랭킹 1위를 달성해, 타연에서 가장 유명한 유저가 돼버린 상태.

이대로도 다리우스가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지만, 앞으로 내가 벌일 일들을 고려해보면 혹시 몰랐다.

이럴 바엔 내 신상을 어느 정도 공개하고 기업의 스폰을 받는 편이 훨씬 더 안전할 수 있었다.

랭킹 1위를 찍은 이상 숨길 수 있을거란 생각도 하지 않기도 했고.

어쨌든 제독이 내게 해준 경고.

그걸 듣고 계속 찜찜한 상태로 있기보단, 미리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확실히 로만 전자 측은 우리가 모르고 있던 정보들도 상당히 많이 알고 있었다.

“그래. 겁이 안 난다면 뻥이겠지만, 어차피 각오했던 일이니까. 이 정도면 충분히 한 것 같다. 태성을 무너뜨릴 준비를!”

“오, 우리 현중이 제법인데? 이제 좀 랭커다워?”

“됐어, 자식아. 다 먹었으면 들어가자. 1시간 다 채워서 들어가지 말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접속할 시간이 다 되었다.

그에 난 접속하려다, 생각을 바꿔 다시 올타에 들어갔다.

그리고 내 아이디로 게시글 하나를 올렸다.

-[공지] 오늘부터 천계에서 태성 길드 마크가 보이면 무조건 어택하겠습니다.

태성 라인만을 대상으로 한…….

이른바, ‘일인 통제’를 선포하는 글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