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화 신의 가호 (2)
“아이고, 이게 뭔 일이야! 방금 나왔는데 또 들어가라고?”
“싫음 말든가!”
서둘러 캡슐에 올라 닫히는 문틈으로, 녀석의 볼멘 투정이 들려왔다.
나도 힘들긴 했지만, 잠시나마 쉬어서 그런지 접속 가능 판정엔 무리가 없었다.
그렇게 들어오자 바로 글이 올라왔다.
[라스트챤스: 오셨네요, 형님. 바로 탑 1층으로 와주세요!]
[산드로: 탑?]
[라스트챤스: 루네아 탑 정상에서 로그아웃하셨을 거 아니에요. 이 탑 1층에 신석이 있었어요!]
[축복받은얼굴: 뭐? 그게 정말이야!]
막 접속한 현중이도 보고 놀랄 정도로, 신석이 감춰져 있던 곳은 허무할 정도로 가까이 있었다.
바로 무너진 도시 중앙, 반쯤 허물어진 탑의 가장 아래층에.
타탓!
서둘러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벌써 적잖은 유저들이 모여있었다.
실시간으로 유저들이 몰려드는 것까지 보이는 수준.
길이 막혀 다가가기 힘들 정도라 1층 천장을 거꾸로 달려 중앙에 도착한 뒤, 투구를 제사장의 머리 장식으로 바꾸어 내려봤다.
<루이튼의 신석>
하얀빛을 내뿜는 보석.
축구공만큼 커다란 탓에 보석보단 돌이란 이름이 더 어울리는 신석은, 1층 중앙에 있는 제단에 반쯤 박혀있었다.
‘저렇게 대놓고 있는 걸 발견 못 했다니!’
테터리욜이나 이테른만큼은 아니지만, 루네아도 멀쩡한 건물은 없었다.
그래서 비어있는 제단 또한 단순히 반파된 영향일 거로 생각했지, 간파로만 보이는 신석이 숨겨져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거기엔 다 이유가 있었다.
웅웅.
신석 주변에 새겨져 있는 마법진.
그게 미약하게나마 신석을 숨겨주고 보호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석이 뭔데? 정말 있는 거 맞아?”
“간파!”
“앞에 님들! 무슨 퀘스트라도 주어지나요?”
마치 이벤트가 벌어진 장소처럼 유저들로 가득 찬 1층.
그곳 천장에서 떨어지듯 내려와, 마침내 바라던 신석에 손을 대 보았다.
“앗! 새치기?”
“죄송합니다! 잠시만 볼게요!”
[현재 가호를 받는 대상이 없습니다.]
가호?
무슨 가호를 뜻하는 거지?
[라스트챤스: 형님, 금방 접촉해 보셨죠? 뭐라고 떠요?]
[산드로: 무슨 가호를 받는 대상이 없다는데?]
[축복받은얼굴: 가호는 뭔 가호야? 뜬금없게?]
사실 신석이란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이런 모습을 기대했던 건 아니었다.
천계 도시를 밝히는 찬란한 빛.
혹은 심연의 몹들을 멸할 힘이 담긴 아티팩트(artifact).
뭔가 이런 화려한 구조물로 구현돼 있을 줄 알았다.
한데 그냥 마을에서 흔히 볼법한 오브젝트같은 모습일 뿐만 아니라, 메시지의 내용 또한 특출나 보이진 않았다.
‘기대 이하인 건가……?’
천계의 메인 콘텐츠일 것으로 예상한 신석이 이렇게나 허술하고 볼품없을 줄이야.
도시 전체를 지배한다거나 특정 NPC, 가령 ‘천사’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잠깐 마주한 것만으로도 그런 것들관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모를 수가 없었다.
[축복받은무빙: 천사장의 기도부터 써 봐. 뭔가 반응이 있는지.]
[산드로: 아, 그게 있었죠? 알겠습니다!]
꽤나 당황했는지, 신석을 찾으면 곧바로 해보려던 것도 잊고 있었다.
난 얼른 파티엘이 드랍했던 천사장의 기도를 꺼내 신석에 가져다 대 보았다.
[현재 루이튼의 신석 침식도는 9%입니다. 천사장의 기도로 신석을 회복하시겠습니까?]
그러자 떠오른 알림 메시지.
무심코 버튼을 터치하려다가 생각을 바꿔 천사장의 기도를 도로 집어넣었다.
‘9%면 높은 건 아니네. 확실히 아직 침식이 안 된 지역이라 이건가?’
뭔가 이 정도 수치에 이 템을 써먹기는 아쉬웠기 때문.
대신 길드원들로부터 건네받았던 천사의 기도를 꺼내 대보자, 같은 안내창이 떠올랐다.
[YES]
승낙과 함께 손안에서 사라지는 천사의 기도.
확실히 천사장의 기도가 아닌 이것으로도 회복에는 효과가 있었다. 설명에는 적혀있지 않았던 탓에, 먼저 온 유저들 중에서 시도해본 사람은 없는 듯싶었다.
하나를 사용할 때마다 2%씩 줄어드는 수치.
총 5개를 바치자, 마침내 신석으로부터 새로운 반응이 나타났다.
[침식 상태에 빠져있던 루이튼의 신석이 기도를 통해 온전한 모습을 회복합니다.]
침식도 0%를 달성한 신석은, 알림창과 함께 루이튼의 고유 색인 하얀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뭐, 뭐야?”
그리고 조금씩 떠오르는 신석.
반쯤 묻혀있을 땐 몰랐는데, 신석은 세로로 기다란 마름모꼴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며, 몰려든 유저들 또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산드로 님이 뭔가 하신 모양인데?”
“또 버닝스타야? 와, 공략 속도 미쳤네!”
팟!
그러던 한순간.
신석에서 내뿜던 빛이 폭발한 듯 빛나더니 사그라들었다.
그리고는 전체 알림창이 떠올랐다.
[버닝스타 길드가 빛의 신 루이튼의 신석을 회복했습니다.]
[천계의 서부, 루네아가 다시 신성을 되찾습니다.]
그리고 내 눈에만 떠오른 두 개의 알림창.
[업적 ‘신석 쟁탈자’를 획득했습니다.]
[빛의 신 루이튼의 가호가 주어집니다.]
[업적: 신석 쟁탈자(A)]
* 천계의 신석을 회복하거나 쟁취한 자에게 주어지는 업적입니다. (모든 스탯 +20)
* 업적 효과로 신에게 축복받는 몸을 갖게 됩니다. (모든 속성 내성 +3%)
간단한 일이었는데, 무려 A급 업적을 얻었다.
심플하지만 상당한 효과를 자랑하는 수치들.
‘꽁으로 A급 업적이라니…… 스펙도 좋고. 운이 따르네!’
하지만 업적보다도 더 대단한 게 아직 남아있었다.
떠올라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신석.
루이튼의 신석이라고 적혀있는 이름 밑에 새로운 정보가 한 줄 더 추가되어 있었던 것이다.
<가호를 받는 자: 버닝스타>
미처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조금 전부터 나를 비롯한 몇몇 유저들의 몸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유저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우리 버닝스타 길드원들이었다.
[라스트챤스: 루이튼의 가호가 주어졌다는데, 그게 뭐죠?]
[축복받은무빙: 신석의 용도가 버프였어? 대박이다!]
[무적살라딘: 네? 그걸 어디서 확인할 수 있어요?]
[대탐험시대: 버프창 목록을 봐 보세요! 하나 추가됐어요!]
[산드로: 일단 신석 획득엔 성공한 것 같으니까, 다들 라시엘을 통해 테터리욜로 넘어가세요. 그곳에서 정리하겠습니다!]
이리저리 정신없는 상황이라, 침착히 오더를 내리고 신석을 좀 더 살펴봤다.
그리고 확인해볼 건 충분히 다 확인한 후, 다시 계단을 올라 테터리욜의 타비엘에게로 이동했다.
“드로야! 대박 터졌다! 와, 난 갑자기 퇴근하자마자 야근에 불려온 기분이었는데……!”
“넌 또 헛소리냐?”
“그만큼 기분 쩐다는 거지!”
까불며 다가온 현중이한테서도 은은한 하얀빛이 느껴졌다.
우리 길드원 전원에게 추가된 빛.
덕분인지, 뭔가 다른 유저들과는 차별화된 어떤 고급스러움마저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효과가 진짜 미쳤구나. 천계 콘텐츠의 정체도, 그 수준도 기대 이상이야…….”
“그렇죠? 막상 저도, 제가 해놓고도 놀랐다니까요.”
각 신의 지역마다 존재한다는 신석.
이것의 정체는 바로 대규모 ‘버프’였다.
[루이튼의 가호(빛)]
* 한 달 동안 모든 공격력이 20% 증가합니다.
* 한 달 동안 모든 방어력이 20% 증가합니다.
“와! 이 정도면 최상급 버프보다도 더 좋은데요? 아니, S급 업적보다도 훨씬 더 좋은 수준이에요!”
“그러니까요! 이 정도 버프가 한 달 동안이나 지속된다니……. 미쳤다 정말!”
시야 위쪽에 새로 생긴 버프 표시가 왠지 낯설지 않았다.
일전 테오시스로부터도 대규모 가호를 받았던 적이 있었기 때문.
일주일간 ‘성장의 축복’과 ‘부활의 축복’이란 특수 효과가 주어졌던 버프, ‘테오시스의 가호’.
대관식 당시 대략 5만 명이 넘는 유저들에게 적용됐던 버프였는데, 이 ‘신의 가호’도 비슷한 부류의 버프인 듯싶었다.
“아직 이 정도로 놀라긴 일러요.”
“응? 드로야, 여기서 더 놀랄 게 있다고?”
“네.”
오늘 여러 가지로 놀라는 축빙 형님.
하지만 내가 추가로 알아낸 사실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게 뭔데 이 형을 또 설레게 하니?”
“에이, 그냥 말씀드리면 재미없죠. 곧 넘어올 분을 보시면 바로 알게 되실 거예요.”
“녀석. 나를 말하는 거냐?”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타비엘을 타고 넘어온 유저.
그는 바로 지옥불 형님이었다.
“오셨습니까, 형님?”
“그래. 잠시 씻는 사이에 벌써 이런 난리가 끝나 있을 줄이야. 덕분에 조금 늦었구나.”
“괜찮습니다, 형님. 근데 어떠세요? 놀라셨죠?”
“그러게 말이다. 카이저 님이 말씀하신 대로…… 분명 천계에서는, 신석 쟁탈전이란 게 벌어질 수밖에 없겠구나!”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넘어온 다른 피닉스 길드원들.
그들의 모습 또한 낮에 봤을 때와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우리 버닝스타와 마찬가지로 은은한 빛을 내뿜고 있었기 때문에!
“아니, 어떻게……? 드로, 설마 네가 말한 게 바로 이거였어?”
“네, 맞아요. 신의 가호 버프는…… 신석을 보유한 길드가 원하는 대상을 정할 수 있더라고요.”
“…….”
“…….”
순간 다들 말을 잃었다.
그리고는 동시에 환호성을 터뜨렸다.
“대에에박!”
“미쳤네, 미쳤어!”
“아니, 이 버프를 우리 맘대로 골라서 줄 수 있다고? 정말?”
“정말입니다. 물론 대가가 필요하긴 했지만요.”
잠시 남아서 루이튼의 신석에 시험해봤던 것.
그건 바로 도네타의 안식처에서 얻었던 ‘천사의 눈물’을 사용해 본 것이었다.
그곳에서도 틈틈이 사냥했던 터라 제법 모았지만, 아직까지 용도를 모르고 있었던 템.
이걸 사용하자 신의 가호가 적용될 대상을 마음껏 추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천사의 눈물을 사용하면 대상을 한정 지을 수 있어요. 아마 우리 길드원들이라면 전부 다 가능하실 것 같네요. 물론 하나당 한 명이라 빡세긴 한데…… 그래도 버프 지속 시간이 한 달이나 되니까 괜찮은 편이죠?”
“그걸 말이라고 해? 최상급 버프 수준을 2개나 받은 수준인데? 그것도 시간제한도 없고 지워지지도 않는?”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천사의 눈물은 인던에서 나오잖아요? 그렇다면 사람만 집어넣으면 얼마든지 나온단 소리죠!”
“와…… 이거 진짜 무서울 정도네요. 이런 삭제도 안 되는 버프를 타인한테도 줄 수 있다니…….”
“아직 놀라긴 이르다니까요?”
“또? 드로 이 자식아, 형을 얼마나 더 놀라 켜야겠는데? 뭐가 또 남았어?”
방금 우리가 얻게 된 신의 가호 버프.
신석의 효과는 우리가 상상했던 것 그 이상이었기에 모두가 정신 못 차릴 정도였다.
하지만 우리가 이곳으로 넘어오고 바로 피닉스를 불렀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아마도 신의 가호 버프는 중복 적용이 될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테오시스가 나타나서 지역 이동을 막으려 했을 리 없으니까요.”
* * *
그 길로, 우리 버닝스타와 피닉스의 정예는 다시 테터리욜 지역 중심부를 향해 전진했다.
목표는 폐도시의 중심부.
루네아와 마찬가지로 탑이 있었을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었다.
“야근이 농담이 아니라 진짜가 돼버렸네…….”
“인마, 투정 좀 그만 부려라. 다들 힘들고 피곤한 상태야.”
투덜거리는 현중이었지만, 열심히 앞장서서 길을 뚫었다.
하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나타나는 건 오직 심연의 몬스터들뿐.
도시 중앙을 배회하던 필드 보스는, 다행히도 우리가 이미 잡아버린 후였기 때문이었다.
“여기인 것 같은데요?”
“그래. 잔재들 배치를 보니까 이곳에 탑이 있었을 것 같다.”
뿌연 안개 덕에 처음 왔을 때는 잘 몰랐는데, 계속 맵을 가늠하면서 자세히 살펴봤더니 마침내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에는 제사장의 머리 장식을 계속 착용한 상태였기에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 맞네요. 저기 보입니다.”
땅에 반쯤 파묻혀있는…….
녹색 빛을 띠고 있는 한 보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