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251화 (251/350)

251화 신의 가호 (3)

<텔로라의 신석>

눈에 띄게 망가진 마법진 한가운데 떠 있는 이름 하나.

다행히도 이곳 테터리욜 또한, 크게 접근이 어려운 곳에 신석이 숨겨져 있진 않았다.

하긴 천계 도시가 재건될 운명이라면, 다른 외곽 지역에 있는 것도 이상했을 테지만.

“제발 중복!”

발견하자마자 대뜸 이 말부터 외치는 현중이 때문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푸핫! 방금까지 야근 운운하던 놈이 갑자기 뭔데?”

“헤헤! 모르면 몰랐지…… 알게 된 이상, 두 번째도 기대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하긴 그럴 만도 하지. 스펙 업이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으니까…….”

“노노, 축빙이 형. 전 그걸 말하고 있는 게 아니랍니다.”

“응?”

“때깔부터가 다르잖아요! 이 은은하게 빛나는 버프 효과……. 한 개만으로도 이 정도인데, 중복되면 얼마나 간지나겠어요? 진정한 자체발광, 그야말로 축복받은 얼굴이 되는 거죠!”

“니가 그럼 그렇지. 뭔 소리 하나 싶더니만 그 뜻이었어? 어휴, 말을 말자.”

이만한 거물이 됐는데도 어쩜 변한 게 하나도 없는 건지…….

근데 전혀 틀린 말은 아닌지라, 녀석의 흰 롱코트는 루이튼의 버프 빛과 어우러져 확실히 도드라져 보였다.

특히 몸에서 빛이 나는 건 처음 봐서 그런지, 그간 많은 룩덕 유저를 봐왔지만 뭔가 차별화된 분위기를 자아내는 건 사실이었다.

여하튼, 그건 현시점에서 눈곱만큼도 중요하지 않은 일.

난 천천히 신석에 다가가 회복 템을 꺼내보았다.

[현재 텔로라의 신석 침식도는 100%입니다. 천사장의 기도로 신석을 회복하시겠습니까?]

‘천사의 기도는 하나당 2%였으니까…… 이놈은 얼마나 해주려나?’

아마 잘만 하면 한 번에…….

아무리 못해도 50% 정도는 회복시켜 주지 않을까?

뭐가 됐건 이번 신석 회복은 내 몫이 아니었기에, 거부 버튼을 누르고 뒤돌아섰다.

“전 이미 업적을 얻었으니까 다른 분이 천사장의 기도를 쓰시죠? 누가 하실래요?”

“누구긴 누구야. 좀 모자라 보이긴 해도, 우리 길드의 간판 탱커부터 받아야지!”

무려 A급 업적을 얻을 기회를 그냥 허비할 순 없었기 때문.

그래서 물은 질문에, 축빙 형님이 조금의 고민도 없이 현중이를 추천했다.

“또 저요? 아유, 자꾸 이러니까 부담되잖아요. 그냥 가위바위보로 정해요!”

“가위는 가위의 역할이 있고, 바위는 바위의 역할이 있는 거지. 바위를 맡은 네가 단단해지는 게, 우리 길드 전체가 강해지는 길이다.”

무살 형님마저도 이렇게 말하고 나서니 녀석이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형님은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어휴, 됐어요 됐어. 그냥 앞으론 군소리 없이 받아먹겠습니다! 먼저 먹은 다음에, 다른 분들 걸 도와드리는 게 더 낫겠어요!”

“넌 매번 같은 레퍼토리로 받아먹더라? 아무튼…… 자, 이거 받아. 그리고 이쪽으로 와.”

난 현중이에게 천사장의 기도를 넘겨주고, 간파가 없어 마법진과 신석이 보이지 않는 녀석이 사용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었다.

“여기에다…… 이렇게 하면……. 어? 됐나? 떠오른다!”

잠시 허우적대던 녀석이 승낙 버튼을 터치했는지, 땅에 파묻혀있던 신석이 조금씩 들썩이며 떠올랐다.

아니, 조금 떠오르다가 말았다.

“멈췄네. 지금 몇 퍼센트야?”

“침식도? 보자…… 오! 이제 50%밖에 안 남았다는데?”

“그래? 역시 한 번에 회복되진 못했네.”

비록 단번에 회복되진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얼굴 님. 그럼 저희 것도 받으시지요.”

“엇, 지옥불 형님. 뭘 이런 걸 다…….”

천계에 올라왔던 피닉스 길드원들이 종일 모았던 천사의 기도를, 지옥불 형님이 전부 챙겨오셨기 때문.

거기다 진작에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낮부터 미리 대비해 두었던 게 빛을 발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알바 님.

-뭘요, 드로 님께서 구매 보장을 해주셔서 사는 건데요. 이런 게 저희 일이니깐 부담 갖지 마시죠!

아직 천사의 기도의 용도를 아는 유저는 없었다.

따라서 혹여 퀘스트 보상을 받았다거나 사냥 중에 드랍된 걸 먹은 유저가 있다면, 꼭 좀 대리 구매해달라고 호박 마켓에 부탁해 뒀다.

온종일 사냥한 우리도 한 개밖에 먹지 못할 만큼 드랍률이 낮았던 템.

하지만, 이미 오늘 하루만 해도 루네아에 수만 명이 넘는 유저들이 올라왔다.

팔지 않는 유저가 더 많다 하더라도 그중 파는 사람 또한 없지는 않을 터.

잠시 시간을 내 만나고 온 알바마스터는, 고맙게도 무려 10개나 되는 천사의 기도를 구매해둔 상태였다.

-부탁하셔서 구매하긴 했는데…… 이거 혹시 시세 차익 좀 볼 물건인가요?

-이 천사의 기도요? 그런 템은 아닐걸요? 다만 저희는 급히 좀 쓸 일이 있어서요. 아마 당분간은, 제가 드린 금액보단 시세가 낮을 겁니다.

-그런가요? 드로 님 말씀대로라면 차액을 좀 돌려드리겠습니다. 굳이 손해를 보시면서까지 저희를 챙겨주시진 않아도 되거든요.

-아니에요. 오늘 제법 번 돈이 있어서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그리고…… 좀 챙겨도 드려야, 다음에 또 이렇게 부탁드릴 수 있지 않겠어요?

지옥불 형님께 배운 바대로, 거래는 철저히 ‘기브 앤 테이크’로.

비용은 천문을 개방하자마자, 핑크래빗에게 부탁한 정마석의 시세 차익만으로 충당되고도 남았다.

“자, 이것들도 받아서 써 봐.”

그렇게 나 또한, 방금 구매해온 천사의 기도를 전부 건네주었다.

열심히 허공을 반복해서 터치하는 현중이.

그럴 때마다 박혀있던 신석이 조금씩 솟구치더니, 마침내 땅을 박차고 떠올랐다.

번쩍!

[버닝스타 길드가 빛의 신 텔로라의 신석을 회복했습니다.]

[천계의 남부, 테터리욜이 다시 신성을 되찾습니다.]

또다시 떠오른 전체 알림창.

가뜩이나 조금 전 회복된 신석 때문에 난리일 텐데, 기름을 붓는 메시지가 모든 이들에게 전달됐다.

“오예! 업적 획득!”

“가호 추가됐다! 와! 정말 중복으로 적용됐어!”

동시에 들린 축빙 형님의 환호성.

그에 얼른 버프창을 살펴보자, 새로 얻은 가호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텔로라의 가호(땅)]

* 한 달 동안 최대 HP가 50% 증가합니다.

* 한 달 동안 최대 MP가 50% 증가합니다.

“미쳤네 미쳤어…….”

“이거 진짜 실화냐? 이런 개쩌는 버프를…… 우리들이 벌써 두 개나 독식하게 됐다는 게?”

급격히 늘어나 있는 체력과 마나.

단 1포인트에도 죽고 사냐가 결정되는 게임 속에서, 이 정도의 스펙 업이라니…….

그것도 시간제한도 없을뿐더러 죽더라도 지워지지 않는 버프가 생겼다는 건, 가히 ‘사기’라 불려도 할 말 없는 수준이었다.

‘이것들이 괜히 신의 가호라고 이름 붙여진 게 아니었구나. 이 정도 버프들이라면…… 절대로 뺏길 수 없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

그건 이 가호를 다른 길드들, 특히 태성이 단 하나도 못 가져가도록 막아야겠다는 것이었다.

업적이나 아이템 같은 건, 몇몇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다른 누군가가 가진 걸 나 또한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신의 가호는, 누군가가 먼저 적용받고 있으면 다른 이들은 공유를 부탁하거나 그저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쟁탈 조건이 알려진 건 아니지만, 설명을 보니 분명 공성전처럼 ‘한 달’ 간격일 터.

그러니 이런 사기 버프란 걸 먼저 알게 된 이상, 결코 다른 놈들이 가져가는 꼴은 두고 볼 수 없었다.

“와, 이러면 드로가 마쉴 괜히 버린 거 아니냐? 마나 50% 증가라니……. 기가 찬다 기가 차!”

“뭐, 지금 상태로도 충분히 좋은 걸요. 안 그래도 혼자 PK 하기엔 조금 위험한 감이 좀 있었는데…… 잘 됐어요! 그나저나 현중아, 천사의 기도는 이제 몇 개 남았냐?”

“완전 아슬아슬하게 맞아서…… 이제 딱 1개 남았는데?”

“그래? 흐음…….”

그리고 두 번째로 떠오른 건 바로 이테른 지역.

물의 신 이리아의 신석 또한, 최대한 빨리 우리가 먹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번 주 주말이면…… 또다시 공성전이 벌어질 테니까!’

정말 바삐 게임해와서 그런지…… 제법 긴 한 달이란 시간도 훌쩍 지나, 어느덧 공성전이 며칠 앞으로 다가온 상태였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이야말로 피닉스 라인이 태성을 누르고 제대로 세력 확장할 수 있는 절호의 타이밍 같았다.

“오, 다들 느끼고 있어요? 안개가 옅어지고 있는데요?”

“어라, 정말이네?”

나도 참 타연 랭킹 1위이자 한 길드의 길마가 맞기는 맞는지…….

당장 이것저것을 고민하다 보니, 눈앞에 보이는 변화를 늦게 캐치했다.

라챤이 말대로 점차 걷히고 있는 안개.

그 덕에 떨어져 있던 심연 몬스터 몇몇이 시야에 들어왔는데,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안개와 함께 도시 밖으로 물러나고 있는 것이었다.

“이 도시가 수복되려나 본데요?”

“그런가 보다. 곧 있으면 이곳도, 루네아처럼 안전지대로 변할지도…….”

단번에 천계의 모습을 되찾는 건 아닌 모양이지만, 이런 변화가 준비되어 있었다는 자체가 고무적이었다.

선두에 선 우리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천계를 공략 중이라는 증거였으니까.

“누나, 저 어때요? 이제 좀 더 간지나지 않아요?”

“……현중아. 아무래도 너, 외변 다시 해야겠는데?”

“네? 제가 왜요?”

“루이튼 꺼만 있을 땐 괜찮았는데…… 텔로라의 녹색 빛이 추가되니깐 뭔가 좀 그래. 약간…… 잡탕 같다고나 할까?”

“뭐요? 잡탕이요?”

“그래. 그러다 가호 몇 개 더 추가되면, 무지개 탱커 되는 거 아니니? 호호.”

“헉!”

그리고 새로운 가호가 적용된 탓에…….

우리 몸에는 흰색과 녹색, 두 가지 빛이 머물게 되었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잘 모를 정도로 미약한 빛이었지만, 그래도 현중이처럼 흰색 바탕의 옷을 입고 있으면 몰라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급고민에 빠진 녀석을 두고, 동료들에게 말했다.

“이제 재접한 목적도 달성했으니까, 다들 이만 해산할까요? 오늘 하루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래, 좀 더 접속해 있다간 강제 종료 당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피곤이 싹 다 날아가는 보상을 얻어서, 기분은 참 좋구나! 수고했습니다, 버닝스타 여러분. 수고했다, 피닉스여!”

천사의 기도를 다 써버렸기에, 오늘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그래서 남아있는 천사의 눈물로, 피닉스 측에도 텔로라의 가호를 걸어준 뒤 로그아웃했다.

빨리 푹 쉬어서 피로를 회복해야지만…….

내일도 온종일 태성 놈들을 잘 통제할 수 있을 테니까!

* * *

-산드로 좀 어떻게 해야 하는 거 아니냐? 그 새끼 땜에 천계를 못 간다는 게 말이 됨?

└응? 난 전혀 상관없던데? 오히려 천계엔 태성 라인이 안 보이니까 쾌적해 죽겠음~

└└아니 지가 뭔데 천계를 통제하니 마냐야? 다들 이거 괜찮냐고?

└└└응 괜찮음. 지들이 실컷 통제할 땐 이렇게 통제당할 날도 올 줄 몰랐겠지? 그것도 단 한 명한테ㅋㅋㅋ 개쪽!

-다들 세뇌당하고 있는 거 아냐? 산드로 그 자식이 순수한 의도로 PK하는 줄 알아? 다 템 먹고 보스 독식하려고 그러는 거잖아!

└니들 템 좀 주워 먹고 보스 독식 좀 하면 뭐 어때? 랭킹 1위잖아. 그러려고 레벨업하고 강해지는 거 아님??

└└농담인 줄 아냐? 그 자식 길드 마크도 로만 전자로 바꾼 거 봤지? 그게 순수한 게이머가 할 짓이냐고! 아아~ 여기 있는 허접들은 천계 렙제에 걸려서 직접 본 적이 없으려나?

└└└응 태성 어서 오고~

-님들 그거 암? 흑풍단들이 점점 천계 장악하고 있음. 루네아 서부는 완전 검은 망토들밖에 안 보이더라. 난 누가 작업장 차린 줄ㅋㅋㅋ

└공틈 레벨업 다음 코스로 천계만 한 곳도 없거든~ 엊그제 인던이 발견되긴 했지만, 원딜러들이 안전빵으로 폭업하기엔 역시 심연 몹들만 한 게 없더라.

└└쉬이부럴 태성 놈들 없는 것도 한몫했제!! 밑에서처럼 고놈들이 라인이랍시고,, 모가지 빳빳이 들고 댕기는 꼴은... 천국에선 안 봐도 되니께!!!

└└└아재들이여.... 천계인지 천국인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그곳에서 편히 사냥하소서...!

“크크크. 하여간 이거 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니까?”

올타 잡담 글들은 워낙 중독성이 강하고 내 욕도 많아서 평소 접속을 자제해왔지만…….

근래 천계에서 벌인 활동 때문에 다시 조금씩 살펴보고 있었다.

“지환아, 점심시간 다 끝났다. 접속하자!”

“오냐!”

천계가 오픈된 지도 어느덧 3일.

그새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면 벌어졌고, 조용했다면 조용한 나날이 이어졌다.

매일 난 접속하고 로그아웃할 때까지, 루네아 지역에 올라온 태성 라인 놈들을 PK했다.

특히 강력한 신의 가호를 2중첩이나 받게 된 이후부터는, 위험했던 순간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미 먼저 올라왔던 랭커 놈들은 지상으로 내쫓은 후였고, 가면 갈수록 천계로 올라오는 태성 라인도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이 이틀 만에 잠시 지상에 내려간 틈을 타, 관공서에 들러 길드 마크도 변경했다.

스폰 계약을 맺은 로만 전자의 대표 로고로.

이로 인해 인터넷상에선 태성 놈들의 원성이 좀 더 격렬해졌지만…….

어차피 창설 당시부터 태성 전자의 로고를 길드 마크로 써온 놈들이 할 얘기는 아니었다.

그동안 우리 길드원들은 테터리욜 지역에서 쾌적하게, 하지만 빡세게 레벨업했다.

피닉스에서 조금씩 영웅의 전당 인던을 클리어한 정예 군들이 넘어왔지만, 사냥할 필드는 넓고도 넓었다.

그 덕분에, 시간 맞춰 천사의 기도를 충분히 모을 수 있었다.

물의 신 이리아의 지역 이테른.

그곳에 있는 신석을 침식으로부터 회복시켜 줄 만한 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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