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화 공성 준비 (1)
“다 들어온 것 같으니까, 이동할까요?”
“그러자. 모두 출발하겠습니다!”
짧은 휴식 시간을 마치고, 길드 전원이 테터리욜의 타비엘 앞에 모였다.
신석이 활성화된 이후, 테터리욜 지역의 도시는 하루에 걸쳐 조금씩 회복되었다.
폐허였던 건물들은 그대로였지만, 어느덧 공틈이나 루네아와 같이 도시를 감싼 거대한 결계가 생긴 것.
외곽에 떨어져 있던 타비엘도, 어느샌가 도시 중앙으로 이동해 안전지대 안으로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이테른 외곽 지역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YES]
이리아의 큰 날개 아시엘.
예전 타비엘과 같이 자그마한 결계로만 버티고 있는 이 천사를 간만에 찾았다.
“드디어 이리아의 가호도 손에 넣는구나!”
“2중첩만으로도 어마어마한데……. 진짜 선점 효과를 못 누리나 싶었는데, 제대로 빼먹는구나! 크크!”
사실 텔로라의 가호에 이어 당장이라도 이리아의 가호도 받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일단은 천사장의 기도를 얻기엔, 타이탄들이 전부 소환 대기 시간이라 트라이할 엄두조차 못 냈던 것이 하나였고.
피닉스 라인을 동원해 천사의 기도를 모으고 골드로 구매하며 50개는 이틀 만에 모을 수 있었지만…… 이테른의 도시 중앙까지 이동하기 힘들단 것이 두 번째였다.
까닭은 역시나 이곳의 필드 보스 둘, 침식된 날개들 때문이었다.
‘그래도 별로 서두를 필요가 없긴 했었지.’
하지만 태성이 먼저 차지할 염려는 하지 않아도 돼서 상관없었다.
현 상태에서 이곳 이테른 지역에 올 수 있는 건, 테터리욜 지역의 필드 보스를 잡아낸 우리들만 가능했으니까.
“그럼 바로 이동하자, 축굴아!”
“네엡, 형님! 지탱의 오라!”
예전엔 주로 내가 정찰과 몸빵을 겸해 선두에 섰었는데…… 마쉴을 버린 탓에 이제는 그럴 일도, 그럴 필요도 없었다.
우리에게는 명실상부한 길드의 메인 탱커, 현중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앞장서 결계 밖으로 나선 현중이.
그 뒤를 따라 우리는, 공격해오는 심연 몹들을 처치하며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몹들이 더 강하긴 해도…… 생각보단 순조로운데? 확실히 가호를 받은 이후로 우리가 엄청 강해지긴 했나 봐?”
“그래도 방심하지 마세요. 그럴 위험은 적지만, 자칫 동선이라도 꼬였다간 죽을 수도 있으니까요!”
이제는 편하게 폭업할 수 있는 테터리욜 지역과 달리, 이곳에서의 사냥은 한순간도 긴장을 늦춰선 안 됐다.
몹들의 레벨이 높을 뿐만 아니라, 치명적인 위험이 존재했으니까!
“아이고……. 하필이면 두 마리가 전부 도시 안에 있어서, 우릴 이렇게 힘들게 하니!”
축볼 누님의 볼멘 투정이 들려왔다.
이테른에 쉽게 다가서지 못한 결정적 이유.
그건 다른 지역과 달리 이곳의 침식된 날개는, 늘 붙어 다니는 ‘쌍둥이’였기 때문이었다.
‘아직 루네아에 있는 천사장도 클리어가 안 됐는데…… 무려 두 마리를 동시에 상대해야 한다니?’
천계 오픈 첫날, 다리우스를 비롯한 태성 패거리를 몰아내는 데 써먹었던 레시아렐.
녀석은 며칠이 지난 아직까지도, 몇만이 넘는 유저가 올라와 사냥 중인 필드를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타이탄이 없는 상태로는, 도무지 이 괴물 같은 놈을 상대할 유저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빠른 이동 속도와 빈번한 광역 공격 때문에, 어중간한 원 딜러들 따위로는 천 명 단위가 뭉친다 해도 잡기 힘든 구조였다.
여기다 비싼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온 천계인데, 한 번 죽으면 최대 48시간 동안 올 수 없단 사실 또한 유저들을 소심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현재 루네아는 보스들이 출몰하지 않는 서부 지역과 새로 발견된 인던이 중점 사냥터가 된 상태였다.
“다들 스톱! 발견했습니다!”
앞장선 현중이.
그 뒤에 바짝 붙어서 이동 중이던 라챤이가 큰소리로 외쳤다.
이글 아이를 가진 탓에 시야가 넓어, 이 짙은 안개를 뚫고 보스들을 발견한 것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여기서부턴 두 팀으로 나누겠습니다!”
브리핑대로 둘로 나눠진 길드원들.
하지만 외톨이처럼, 당당이는 둘 어디에도 서지 않고 홀로 남겨졌다.
-드로 형. 지금 쌓인 어비스 수치를 바치면…… 아마 레벨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 진짜? 와, 빠르네. 벌써 400렙인 거야?
-네, 형.
-그럼 테크는?
-말씀드렸던 대로 전직하려고요.
-좋았어! 그럼 이따 점심 먹고 바로 이테른에 가자. 그리고 이번 업적 획득자는 너다, 당당아. 네가 신석을 회복시킬 거야!
-네? 저요? 축빙 형님이나 무살 형님이 아니시고요?
-그래. 우리 길드 모토 알지? 뭐든 무작정 나누기보다는, 가장 효율적으로 분배하자는 거? 다음은 네 차례가 맞아. 네가 우리 중에서 나 다음으로 강하니까!
업적 ‘심연과 조우한 자’, 그리고 ‘천계를 정화하는 자’.
심연 몹들에게 토탈 +30%의 추가 데미지가 들어가는 우리들에게, 천계는 최고의 사냥터일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공틈처럼 다른 유저들과 몹을 경쟁할 필요도 없었기에, 정말 300레벨 후반대라고는 볼 수 없는 미친 렙업 속도를 보여줬다.
거기엔 당연히 DPS가 높은 캐릭들이 더 유리했고, 덕분에 당당이는 기록적인 폭업을 자랑할 수 있었다.
“자, 다들 준비됐으면 시작하겠습니다!”
내 오더에 따라 각각 현중이와 대탐이를 필두로 나눠진 두 팀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똑같이 생긴 타천사 두 마리가 검은 안광을 일렁이며 저공비행으로 날아왔다.
“도발의 살기!”
“도발의 살기!”
두 필드 보스가 지키고 있는 도시.
덕분에 심연 몬스터들을 정리할 수도 없어, 이리아의 신석이 있는 곳은 접근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래서 우리가 세운 작전.
그건 필드 보스 하나씩을 두 팀이 나눠서 어그로 끄는 사이, 당당이가 신석을 회복시키고 귀환 주문서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귀환이 캐스팅된다는 건, 진작 확인했던 바였으니까.
“당당아, 타!”
차례로 어그로를 나눠 먹은 뒤 반대 방향으로 흩어지는 두 팀.
그 모습을 본 나는, 램보를 소환해 당당이를 태우고는 도시를 향해 내달렸다.
띠딩! 띵! 띵!
보스 몹은 사라졌어도 도시 안은 여전히 심연 몹들이 우글대는 곳.
그렇다 보니 어그로 감지음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여기다! 형은 갈 테니까 바로 시작해!”
“넵! 간파!”
하지만 우리는 램보의 빠른 이속 탓에 도시 중앙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고.
난 당당이를 신석 바로 위에 내려다 주고는, 다시 도시를 우회해서 밖으로 뛰쳐나왔다.
심연 몹들의 특징.
어그로 감지 범위가 넓지만 이속이 느리다는 것을 이용한 작전이었다.
타탓! 탓! 탓!금세 3, 40마리나 쌓인 몹들을 끌며 달리는 내 시야에, 곧 전체 알림이 떠올랐다.
[버닝스타 길드가 물의 신 이리아의 신석을 회복했습니다.]
[천계의 북부, 이테른이 다시 신성을 되찾습니다.]
“됐다!”
일단은 여기까지 성공!
하지만 피닉스 측에도 가호를 공유해줄 대상이 많아서, 시간을 조금 더 벌어줘야 했다.
난 램보를 지그재그로 운전해 아시엘에게 돌아가면서, 새롭게 주어진 가호의 효과를 확인해 보았다.
[이리아의 가호(물)]
* 한 달 동안 모든 스킬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25% 감소합니다.
* 한 달 동안 HP와 MP의 회복 속도가 25% 증가합니다.
“컥!”
이번엔 또 어떤 엄청난 효과가 주어질까?
이런 기대를 하며 찾아온 곳이긴 했지만, 기대 이상의 효과가 적혀있어서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라스트챤스: 캬! 이번 가호도 미쳤구나!]
[축복받은얼굴: 신의 가호, 이거 진짜 뭐지? 정말 밸런싱은 생각하고 만들어 둔 건가?]
[축복받은무빙: 인마! 지금 채팅할 시간이 있어? 얼른 아시엘로 튀어!]
[당근당근단검: 일단 명단대로 완료했습니다! 귀환할게요!]
당당이 혼자 다시 아시엘까지 돌아오는 건 무리.
안전하게 귀환으로 지상에 내려간 사실을 전해오자, 우리도 다들 아시엘을 통해 테터리욜로 돌아왔다.
“미션 석세스! 역시 잔머리만큼은 우리 길마님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니까!”
“현중아, 말이 좀 그렇다? 잔머리가 아니라 명석한 두뇌라고 좀 불러줄래?”
“두 분은 맨날 애같이 구시더라. 그나저나, 이번 가호도 진짜 대박이네요. 쿨타임을 줄여주면서 회복 속도는 또 올려준다니……. 이렇게 대놓고 스킬을 남발하게 만들어 줘도 되는 거예요?”
신이 난 듯 말하는 라챤이.
한편으로는 너무 좋은 효과들을 연달아 얻어서 그런지, 조금은 불안해하는 기색도 엿보였다.
“그러게. 요 며칠 경험한 2중첩 효과도 무시무시했는데……. 이제 3중첩까지 돼버렸으니까 세상 무서울 게 없구나!”
“맞아요. 사실 은근히 천사장한테도 버틸 만하더라고요? 근데 3중첩이면…… 이제 타이탄 없이도 잡을 수 있는 거 아닐까요?”
“암만 그래도 아직은 힘들지. 대신 내일 공성전에선 펄펄 날아다닐 순 있겠다. 같은 유저들 사이에서는, 가호 여부가 엄청 차이 날 테니까!”
아직 모든 타이탄의 쿨타임이 돌아온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몇몇 타이탄은 다시 소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루네아나 테터리욜 지역의 보스를 굳이 퍼킬하지 않고 놔둔 이유.
그건 내일 공성전을 위해 타이탄을 아껴둬야 했기 때문이었다.
“다들 가호 덕분에 더 강해지셨으니까, 내일까지 폭렙업하고 계세요! 전 이만 지상에 내려가 보겠습니다.”
“어? 왜? 오늘이랑 내일은 통제 안 할 거야?”
“하루만 쉬죠, 뭐. 그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요.”
“응? 뭔데, 드로야.”
“내일 공성전에 대비해서 만나봐야 할 사람들이 있어요, 형님. 그리고 당장 눈으로 확인해 보려고요. 전직이란 놈이…… 과연 얼마만큼 좋은 건지!”
베일에 싸여있는 ‘테이커’라는 통합 랭킹 3위의 유저.
그 뒤를 따라 네 번째로 400레벨을 달성하는 사람은, 줄곧 도둑 랭킹 2위 자리를 사수했던 당당이었다.
* * *
“굳이 형까지 내려오시진 않아도 됐는데요…….”
“괜찮다니까? 형은 어차피 레벨업보단 PK에 집중하고 있었잖아. 그리고 내가 하도 죽여대고 내일이 또 공성 날이라서 그런지, 태성 놈들은 거의 안 올라오더라고. 그러니깐 너무 신경 쓰진 마.”
“그래도요…….”
괜히 자기 때문에 내려온 거라 미안해하는 당당이와 함께, 가장 먼저 공틈에 들러 어비스 수치를 경험치로 교환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400레벨을 달성한 뒤, 우리는 곧바로 도둑 직업의 마스터인 알 쿠자드를 찾았다.
“대륙 제일의 도둑 산드로가 아니신가? 허허! 얼마 전에 본 것 같은데 다시 이곳을 찾았군?”
“네, 쿠자드 님. 오늘은 제가 아니라 이 친구가 볼일 있어서 찾아뵀습니다.”
내 응답에 옆에 있던 당당이가 키워드를 섞으며 말했다.
“마스터! 이젠 저도 자격을 갖춘 것 같습니다. 제게 ‘전직’할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허허……. 어느새 자네도 내가 일러준 모든 기술을 통달할 정도에 이르렀군. 후훗, 새로운 길을 걸을 자격이 충분하고도 충분해! 허나 이제부터는 가르침이 아닌 깨달음의 영역……. 자네가 어떤 길을 선택하게 될지, 한번 시험해 보겠네.”
전에 내가 받은 것과 같은 퀘스트를 주는 마스터.
하지만 이미 한번 겪어 내용은 알고 있는 터라, 우리는 이곳을 찾기 전에 이미 전직 조건을 달성한 상태였다.
“아니, 이건……. 당근당근단검 자네, 혹시 제국의 암시장에 다녀온 겐가?”
“네, 맞습니다. 그러니 제게 새로운 가르침을 내려주시죠!”
“이런 대담한 도둑 같으니라고!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그곳에, 겁도 없이 다녀오다니……. 뭘 가져오려나 싶었는데 설마 이걸 가져올 줄이야…….”
당당이가 건네준 건, 바로 제국의 암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암살 표창’이었다.
이름도 생소한 제국 암시장에 아무 유저나 갈 수 있었을 린 만무.
하지만 우리에겐 퀘스트 전문가, 카이저 형님이 있었다.
-응? 이게 너한테 필요한 거라고?
-네. 뭔지도 모르고 얻으신 퀘템이라면서요. 이건 분명히 전직과 관련된 여러 퀘템 중 하나일 거예요. 아니라면 바로 돌려드릴 테니까, 잠깐만 빌려주실 수 있으세요? 저희 당당이가 곧 400레벨을 찍을 거라서요.
-뭐냐? 벌써 400? 그러면 나보다 더 빨리 찍겠는데?
-하핫! 그러니까 형님도 천계에서 내려가지는 마시지 그러셨어요! 아무리 퀘스트가 중요하더라도…… 레벨업엔 역시 닥사냥이 최고잖아요!
얼마 전 퀘스트와 스토리 진행에 관한 상담을 하다가, 우연히 형님이 갖고 계신 템을 하나 알게 되었다.
무기 같이 생겼지만 무기는 아니었던, 끝내 정체를 몰랐던 퀘스트 템.
하지만 아무리 봐도, 내 눈에는 도둑의 전직 템 중 하나로밖에는 안 보였다.
그리고 그 예상은 보기 좋게 적중해서…….
당당이가 ‘암살자’로 전직하기 위한 퀘스트는, 주어지자마자 초고속으로 클리어됐다.
“그대 알 사딘의 의지를 잇는 자여……. 앞으로 테론 대륙을 벌벌 떨게 할, 또 하나의 암살자가 되도록 정진하게나.”
“넵! 분부대로 하겠나이다, 마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