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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254화 (254/350)

254화 공성 준비 (3)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30명 가까이 있는 채팅창이 일순 조용해졌다.

그럴 만도 했다.

뜬금없이 공성에 참가해볼 생각이 없냐니?

현재 타연에서, 성을 뺏으려면 누굴 공격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말이다.

[땡겨땡겨: 지금 산드로님 말씀은..... 저희보고 태성을 함께 치자는 뜻인 건가요?]

[산드로: 네, 맞습니다. 현존하는 25개 성 중에서 태성이 17개를 차지하고 있으니, 당연히 놈들을 선공하자는 뜻으로 드린 말입니다.]

[일타삼피: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아시는 거죠? 지난달에야 저희에게 명분이 있었으니 태성에게 조금 찍히고 마는 정도였지만.... 먼저 공격해 들어가는 건 완전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것도요?]

[산드로: 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여쭤본 겁니다. 태성과 피닉스 라인 간의 전쟁에... 선봉에 같이 서고 싶으신 분이 안 계신지 말입니다.]

흑풍단이 아베르 수성전에 참여했던 데는 별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냥 성을 함께 지키는 것이야 누구든 할 수 있는 데, 템까지 공짜로 줬으니까.

하지만 성을 뺏고자 ‘공성’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

대놓고 적이 되고 타겟이 되겠단 것을 의미하기에 다들 망설이는 게 느껴졌다.

새 글이 올라오지 않아 침묵에 잠긴 채팅창.

하지만 자발적인 참여가 아니라면 의미 없기에, 강요할 순 없었다.

[산드로: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정말 성주가 돼보고 싶은 분이 단 한 분도 안 계신 겁니까?]

직접 만나 초대한 사람들이지만, 현재 함께 있는 건 아니었다.

누구는 아직도 모여서 사냥 중일 수도 있고, 누구는 마을에 혼자 있을 수도 있고…….

뭐가 됐건 제각기 고민하거나 지인과 의논하기엔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결국, 누군가는 결단을 내렸다.

[아기코끼리: 저요! 다들 망설이시는 것 같으니, 저와 저희 흑풍 길드가 총대를 매보겠습니다!]

[산드로: 오, 아코님! 걱정이 많으실 텐데, 이렇게 용기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기코끼리: 잘못돼봐야 접기밖에 더 있겠어요? 근데 이대로 태성이 타연을 다 먹어버리면, 그때도 마찬가지로 접을 거 같아서요.]

이곳에 모은 흑풍 길드가 얼마나 참여할지는 모르지만…….

태성의 성을 뺏어 성주가 되는 건, 다리우스의 눈에 제대로 찍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다들 선뜻 나서기를 주저했던 것이었다.

[산드로: 사실 전 여기 채팅창에 계신 분들에 대한 그 어떤 사전 정보도 없습니다. 그저 흑풍단이란 이름 아래 모이고 플레이하셨던 걸 믿을 뿐이죠. 따라서 이번 일을 계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호되게 당할 수도 있단 생각도 갖고 있습니다.]

[아기코끼리: 저희 흑풍단 길드는 자발적으로 모인 사조직이잖아요? 그저 산드로 님의 플레이에 감동하고, 함께 재미를 추구하고자 모였다가 유지된 거였지.... 뭔가 뒤통수를 치거나 배신하려고 가입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산드로: 물론 저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아무 제약도 없이 모인 관계이기에... 어떤 계기만 주어진다면 금세 생판 남처럼 흩어질 수도 있다는 걸, 길마이신 여러분들이 더욱 잘 아실 거로 생각합니다.]

사실 이와 같은 이유로, 흑풍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단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않았었다.

그저 그들의 참전과 분투가 고마웠을 뿐.

하지만 천계를 경험하고 난 뒤, 그 생각은 바뀌었다.

그들이 메인 전력이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에!

[파볼난무: 드로님.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어떤 거예요? 자꾸 빙빙 돌리지만 마시고 분명하게 말씀하세요! 저희는 전부 드로님의 팬이나 마찬가지인걸요?]

[산드로: 여러분들 중 그 누구도, 태성만 남게 될 타연을 바라진 않으시겠죠? 그렇다면... 부디 피닉스 라인을 도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미 천계 쪽 흑풍단 분들 또한 참전을 약속했습니다. 여러분들께도 부탁은 드리되 억지 참가는 바라지 않았기에, 이렇게 먼저 의중을 여쭙게 되었습니다.]

요 며칠 천계를 통제하는 동안, 난 많은 유저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천계의 입장 가능 레벨은 350 이상.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흑풍단 중에 가장 레벨이 높은 유저들 또한 만나볼 수 있었다.

-와, 여기서 사냥 중이신데 심연 망토를 착용 중이시네요? 레어 템인데 괜찮으세요?

-따로 구해서 10강화로 만든 거라 괜찮아요. 제 친구 중엔 외변해서 쓰는 놈들도 있고요. 아무래도 흑풍단의 상징이자 생명은, 이 심연 망토잖아요? 그나저나 태성 놈들이 얼씬도 못 하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냥하기 너무 편해요!

-별말씀을요. 늘 이렇게 흑풍단을 자처해주셔서, 저야말로 감사하죠.

줄곧 중립에 속해 있다가 지난 공성 때 흑풍단이 된 고레벨 유저들.

평소 고마웠던 마음 반 반가웠던 마음 반으로, 그들이 천계 서부에 자리를 잡도록 은연중에 도움을 주었다.

그 과정에서, 상당히 고레벨들로만 이루어진 수백 명 단위의 길드로 성장한 흑풍단도 두 개나 알게 됐다.

바로 '최강흑풍단'과 '흑풍단01' 길드.

그 두 곳의 길마와 이번 계획을 구체적으로 의논하게 됐고, 이렇게 공틈에 남아 있는 길마들의 명단까지 건네받았다.

-저희가 흑풍단의 정예라면, 공틈의 흑풍단은 본 병력이라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다만 수는 많지만 대부분 친목으로 뭉친 거라서…… 피닉스 라인에 순순히 합류할지는 의문이네요.

-저희 라인에 합류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저 흑풍단이란 이름으로 태성의 성을 뺏고, 그 성을 지켜나갈 의지만 있다면 충분하거든요. 이대로 태성 라인에 성을 내주다 보면, 결국 타연이 망겜이 될 거란 사실을 다들 짐작하시겠죠.

-그 정도라면…… 고민은 하겠지만 대부분 저희처럼 합류하게 될 겁니다. 애초에 태성을 싫어하지 않거나 반골 기질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흑풍단이 될 생각 자체를 안 했을 테니까요.

최강흑풍단의 길드 마스터, ‘아카시아’.

3년 넘게 솔플만 하다, 어쩌다 보니 흑풍단 길드까지 창설하게 됐다는 그.

의외로 길마가 체질이었는지, 그의 흑풍단 길드에는 어느새 200명이 넘게 가입해 있었다.

그렇게 단 한 달 만에 길드 레벨을 중급까지 성장시킨 그는, 모든 흑풍단 길드의 구심점이 될 만한 유저였다.

[아카시아: 타연은 우리 흑풍단이 지킵시다! 그러니 여기 계신 여러분은, 부디 아기코끼리님을 필두로 내일 공성에 모두 참여해 주세요! 저도 처음부터 끝까지, 흑풍단의 일원으로 함께 싸우겠습니다!]

[일타삼피: 엇, 아카님!]

[땡겨땡겨: 좋습니다! 그럼 저도 저희 흑풍단11 길드원들을 설득해 볼게요! 흑풍단이니까 어련하겠지만....!]

그리고 그는, 처음부터 공격대의 일원으로 참석해 채팅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과 같이 마지막 도화선을 당겨줄 역할을 해주기 위해!

[산드로: 그럼 다른 분들도 결정을 내리셨을 것 같군요. 내일 공성 참여를 꺼리는 흑풍 길드는, 지금 공격대에서 나가시면 됩니다. 죄송해하실 건 전혀 없습니다. 이번에도 수성에 참석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일인걸요.]

마지막 선택의 시간.

하지만 아카시아의 지원 덕분일까?

공격대에서 나간 길드는 단 하나도 없었다.

[마이티: 아무래도 없는 모양이군요....]

[산드로: 모두 감사드립니다. 그럼 바로 전달 사항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다들 자신의 길드에 있는 흑풍단원 분들께 내일 공성 참가 여부를 여쭤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참가 확답을 받으신 분은, 그 아이디를 저희 길드의 ‘핑크래빗’님께 전달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기코끼리: 네? 아이디를요? 왜요?]

[산드로: 제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한 마음에.... 선물을 좀 드릴까 해서요.]

[땡겨땡겨: 선물요? 지난달의 심연 망토처럼요?]

[산드로: 내일 공성이 시작할 때쯤이면, 모두 알게 되실 겁니다^^]

[파볼난무: 매달 이렇게 선물을 주신다니.... 아이디를 산드로가 아니라 산타로로 짓지 그러셨어요~]

몇만 명이나 되는 유저들에게 대규모 버프를 뿌렸던 테오시스.

나 또한 이번 공성전에 앞서, 돈은 좀 들겠지만 운영자 흉내를 내 볼 생각이었다.

* * *

(핑크래빗: 꺄아! 길마님! 절 얼마나 더 부려먹으려고 이러세요!! 한 달간 이것저것 하면서 렙업까지 하느라, 제가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나: 하하! 죄송해요, 래빗님. 그래도 부탁 좀 드릴게요. 이래 봬도 저희 길드의 살림을 맡고 계시잖아요?)

(핑크래빗: 살림이요? 제가요?)

(나: 그럼요. 다들 전투하느라 바빠서, 길드 업무와 성 관리는 래빗님이 전담하시잖아요? 이번 일도 그 일환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핑크래빗: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넵! 알겠어요! +_+)

레벨이 상대적으로 낮은 탓에 늘 비전투 일원이었던 핑크래빗.

줄곧 본인의 장사 활동에만 집중해오던 그녀는, 우리 길드에 들어온 후부터는 많은 일들을 적극적으로 담당하게 되었다.

그러는 한편, 그녀는 많은 시간을 할애해 레벨업에도 힘써왔다.

원래 레벨업이란 마음처럼 하루아침에 이뤄지진 않는 법.

하지만 공틈이 생기고 이 지역만의 사냥법이 등장한 이후, 그녀의 레벨은 빠르게 높아졌다.

값비싼 레전더리 활 하나만 갖추고 원딜팟에 끼게 되자, 경험치와 어비스 수치를 쭉쭉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어제부로, 그녀는 천계에 입장할 수 있는 350레벨을 달성하게 되었다.

(나: 그나저나 천사의 눈물이 모자라지는 않겠죠?)

(핑크래빗: 길마님이 주신 것만으로도 4, 5천 명은 가능할걸요? 설마 이게 모자랄 거란 말씀은 아니시죠?)

(나: 개인 흑풍단원과 흑풍 길드의 참석자 명단이 얼마나 넘어오냐에 달렸지만.... 아마 넘을 것 같아요. 그래서 추가로 더 구하러 가는 중이기도 하고요...)

(핑크래빗: 헉! 모야모야! 그럼 전 못해요! 혼자서 그 많은 인원을 어떻게 다 커버해요!)

(나: 당연히 혼자서는 못하죠. 다른 길드원들도 내일 공성 직전에 도와드릴 테니, 일단 명단을 추리는 것만 좀 해주세요. 물론 전 이미 지상에 내려와서, 내일 도와드리긴 힘들겠지만^^)

(핑크래빗: 으으으.... 진짜.... 워낙 많이 벌게 해주신 분이라, 뭐라고 하지도 못 하겠고...ㅠㅠ)

(나: 그럼 부탁드릴게요! 전 목적지에 도착해서 이만~)

드디어 천계 입성 레벨이 됐다고 좋아하던 핑크래빗.

그런 그녀가 맡은 첫 임무는, 바로 신의 가호를 ‘부여’하는 일이었다.

레어급인 천사의 눈물과 달리, 드물게 얻을 수 있었던 유니크급 템 천사장의 눈물.

이건 가호를 한 번에 25명에게 부여할 수 있었다.

“왔구나.”

“네, 형님. 오면서 봤는데 성문이 벌써 다 완성됐던데요? 역시 번스타인이라 그런지, 저희보다 더 크고 멋지더라고요!”

“확실히 성문을 업그레이드하니 타이탄에도 쉽게 뚫릴 것 같지 않더구나. 네 말대로 진작 레전더리 재료템을 섞어보지 않았던 게 아쉬울 정도야.”

“하핫! 뭐 제 아이디어도 아니었는걸요. 그래도 도움이 되셨다니 뿌듯하네요.”

귓속말을 하며 도착한 곳.

이곳은 바로 지옥불 형님이 계신 번스타인 성이었다.

“자, 주긴 준다만…… 정말 흑풍단에게 이걸 이만큼이나 투자해도 괜찮은 건지, 여전히 잘 모르겠구나.”

“사실 저도 도박이라고는 생각해요. 하지만 신의 가호를 모르는 상태에서도 참전하기로 한, 그분들의 의지를 한번 믿어보려고요. 달리 도움을 요청할 데도 없고요.”

“하긴……. 우리가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긴 하지. 그래, 일단 받아라.”

“감사합니다, 형님!”

형님이 건네주신 천사의 눈물과 천사장의 눈물.

최근 필드에서 피닉스 라인을 찾아보기 힘들단 말이 돌 정도로, 요 며칠간 피닉스의 병력은 영웅의 인던만을 돌고 또 돌고 있었다.

바로 이 템들을 충분히 공급해주기 위해서!

“이것들 전부 남한테 쓰인다는 걸 알고 있는데, 감사는 무슨……. 확실히 이 신의 가호는…… 내일 공성전의 판세를 바꿀 비장의 무기가 되어줄 거다.”

“그나저나 오늘 넥스트 길드도 함께하기로 결정했다면서요?”

“그래. 성을 하나 내주기로 제시했었는데, 확답을 줬다. 아직 넥스트 길드원들도 모를 정도로 극비리인 사항이지.”

“잘됐네요. 내일 공성전이 저희 생각대로만 돌아간다면…… 정말 타연에 길이 남을 레전드로 기억되겠네요. 아참, 여기까지 왔으니까 이제 좀 말씀해 주시죠? 제가 내드렸던 숙제……. 그동안 대체 얼마나 모으셨어요?”

“하하, 녀석. 그래, 말해주마. 총 50부대. 천 기가 넘는 페가수스 라이더가 완성됐다.”

“헉, 정말요? 역시! 최강 피닉스답습니다!”

그리고…….

콘틀랑 전투 이후 이번 공성전을 위해 준비해온,

조금은 특별한 비행 부대에 관한 확인도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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