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화 대격변 (3)
[태세 전환!]
[약점 포착!]
생존력은 다소 포기하면서까지 손에 넣은 공격력.
며칠간 수천 명을 죽이며 실감했던 위력이, 이곳 오펠 성 상공에서 다시금 재현됐다.
“크아악!”
“꺼져! 꺼져! 나한테 오지 마!”
우리 비행 부대를 뒤쫓는 놈들을 추격해 죽인다.
이것만큼 즐겁고 쉬운 일이 또 있을까?
그것도 타연 최강의 기동력을 자랑하는 훼라리에 탄 채로 말이다.
서걱! 서걱!
민첩 가중치로 적용된 근접 공격력.
신의 가호로 쿨타임마저 줄어든 탓에, 난 단 1초의 공백도 없이 최강의 공격력을 계속 뽑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내 검에 후방 공격을 당한 페가수스들은…….
“크헉! 떠, 떨어진다!”
단 한 방.
양손의 검이 한 번씩 휘둘러진 찰나의 공격에, 그대로 역소환당하며 주인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하지만 놈들의 수난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쉬이익! 쉬익!
빠르게 쏘아지는 화살들.
라챤이의 연사 공격은 공중에서도 도무지 빗나가는 법을 몰랐고.
퍼퍽!
힘껏 차징한 뒤 던져진 두 자루의 테네시 단검 또한, 그에 못지않은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했다.
덕분에 한 마리씩.
하늘을 수놓은 태성의 페가수스들은, 계속 빛과 함께 사라지며 타고 있던 주인을 낙사시켰다.
“안 되겠다! 이놈들부터 잡자!
“무슨 수로요?”
“우리도 저놈들이 타고 있는 걸 잡으면 되잖아!”
날아오르던 태성 부대의 중간이 잘려나가, 태성의 후속 부대가 끊기고 말았다.
그러자 결국 앞서 나가던 놈들이 멈춰 우리를 뒤돌아봤다.
우리 측 비행 부대를 쫓자니 후속 병력이 합류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나를 잡자니 엄두가 나진 않는지, 잠시 망설이는 모양새였다.
“으악! 잠깐 스친 건데!”
그러는 사이에도 두세 명씩, 태성의 비행 부대는 지속해서 추락했다.
페가수스와 비교도 할 수 없이 많은 HP와 속도를 자랑하는 훼라리.
거기다 놈들은, 상대적으로 우리보다 페가수스에 탄 원딜러들이 훨씬 적은 편이라 들어오는 공격이 많지 않았다.
또한 난 가호 버프를 받은 채로 훼라리와 체력을 공유하고 있어서, 원래도 높은 HP와 회복 속도는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뻥튀기돼 있었다.
“차징!”
보다 못했는지, 공중에서 몸을 던진 뒤 전진기를 써서 달려드는 놈도 있었다.
[연속 베기!]
하지만 내 압도적인 공격력 앞에선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대로 가만두긴 피해가 너무 커! 그냥 위와 아래에서, 포위하듯 달라붙어 죽이자! 저 드레이크를!”
결국 놈들은, 비행 부대를 쫓는 걸 잠시 포기하고 우리부터 잡는 것으로 결단 내렸다.
일견 괜찮은 선택처럼 보였다.
펫의 체력이 다해 강제로 역소환당하게 되면, 쿨타임 때문에 이번 공성전에선 다시 써먹을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타연에서, 나보다 더 비행전을 많이 치러 본 유저가 있을까?
난 놈들의 낌새를 포착하자마자, 훼라리에게 스킬을 명령하며 뒤로 물러섰다.
[날개 돌풍!]
그렇게 놈들과의 거리를 순식간에 벌리는 한편.
가까이 있는 놈들에게 최근 획득한 테네시 단검을 던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유머스트다이: 주성 성벽 다 조졌습니다!]
[산드로: 잘하셨어요! 특이사항 없으면 방금 라켄 성처럼, 피스메이커의 선공으로 오벨리스크를 공격하세요! 뒤는 제가 맡겠습니다!]
[국선: 넵!]
한번 보여줬더니, 알아서 척척 잘하는 동료들.
함께 있지 않아도 믿음직하기 그지없었다.
하긴 이래 봬도 몇 년간 거대 중립 길드를 꾸려온 길마이자 랭커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전투와 지휘.
동시에 끊임없이 보고되는 수성 상황까지 파악하느라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지만…….
‘아직 멀었다! 정신 차리자, 강지환!’
공성은 이제 막 시작 단계였고, 오늘 가야 할 길은 한참 멀었다.
무엇보다 난, 이번 1시간 동안 단 1초도 한눈팔지 않겠다고 각오했다.
“와순이 소환해!”
“네? 아, 네!”
이미 말해둔 게 있던 터라, 라챤이는 재차 묻지 않고 바로 와순이를 소환해 당당이를 태웠다.
그리고 난, 훼라리를 180도 틀어 적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아무리 게임이라도 소수가 다수를 압도한다는 게 꿈만 같은 일이었다.
상대가 AI라면 모를까…… 이곳의 모두는 각각 사람들이 직접 조정하는 아바타들인데, 멍청히 당하고만 있을 린 없었으니까.
따라서 난, 항상 비상식적으로 플레이하려고 노력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온, 나만의 게임 노하우였다.
“뭐, 뭐야! 온다!”
“잡아!”
나를 뒤쫓던 이백 기가 넘는 페가수스들.
훼라리를 역소환시키고 자버프를 시전하면서, 그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아무것도 없는 공중이었지만, 맨몸으로 달려드는 게 겁나지 않았다.
그들 하나하나가 내 징검다리가 되어 줄테니!
쉭! 쉭!
대도 부츠로 놈들의 머리와 어깨를 밟으며 공격하고 다시 점프하고.
[포획!]
그 와중에 군단장의 채찍을 활용해, 근처에 있던 놈을 당겨 낙사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런 미친놈이! 혼자 뭐 하는 거야?”
“네가 그렇게 잘났어? 무쌍을 찍고 싶어 환장했구나?”
“…….”
전후좌우, 위아래.
온 사방에서 나를 공격해오며 끊임없이 입을 털었댔지만…… 오늘만큼은 도발로 맞서는 걸 봉인했다.
조금이라도 그럴 정신이 있다면, 무빙과 동선에 더 집중해야 했으니까!
휙!
연달아 넷을 떨어뜨리곤, 조금 위쪽에 떠 있던 페가수스를 향해 점프했다.
스탯 리빌딩으로 타연 최강 수준으로 올라간 민첩 스탯.
수치가 올라갈수록 기본 점프력도 높아지는 민첩의 효과를 톡톡히 활용했다.
“다들 뭐하냐고! CC기 좀 걸어!”
마음은 잘 알겠지만, 의미 없는 외침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라이트닝 배리어와 함께 사냥꿈의 춤까지 활성화한 이상, 내게 물리 상태 이상기는 이뮨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약점이 된 마법 상태 이상기는, 타겟팅 과정이 필요해 이런 공중전에선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워낙 이리저리 공중에서 뛰어다닐 뿐만 아니라…….
조금 떨어져 있는 라챤이와 당당이가, 오직 마법사들만 골라 공격하며 엄호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서서히 내가 꿈꿨던 게 실현되는구나! 역시 난…… 틀리지 않았어!’
태성을 무너뜨리는 게 혼자 힘으론 불가능하단 걸 깨달은 후부터…….
난 나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버닝스타 길드원도 함께하는, ‘투 트랙’ 성장을 도모해왔다.
그리고 그때부터 노력해왔던 결실이, 지금 이렇게 화려하게 꽃피우고 있었다.
“으아악!”
“단 세 놈한테 이게 무슨!”
“산드로가 힘들면 저 두 놈부터 좀 잡아 봐!”
“그게 안 돼! 저 자식들만 왜 저렇게 사거리가 긴 건데?”
한 명 한 명이 태성의 랭커 다수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나의 길드원들.
그중에서도 가장 강한 두 사람이 서포트해주다 보니, 단 세 명이서 수백 명과 맞서고 있는데도 밀린단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앞에 선 놈들은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놈들로선 경험하기 힘든 공중전이 이어지던 순간.
[오펠 성의 오벨리스크가 점령당해 공성전이 종료됩니다.]
[‘피스메이커’ 길드가 오펠 성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습니다.]
[오펠 성의 공성전이 종료되어 모든 유저는 내성 안에서 추방됩니다.]
눈앞에 기다리고 있던 전체 알림창이 떠올랐다.
“뭐얏? 벌써 뺏겼다고?”
화들짝 놀라는 태성 놈들을 골려주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오늘 난 가장 강력한 전투 요원이자 지휘관.
당장 휘두르던 검을 멈추고, 지금 상황을 가장 잘 활용할 만한 오더부터 내렸다.
[산드로: 잘했습니다. 그럼 다들 바로 토레노로 가주세요! 그곳에 대기 중인 흑풍단과 합류하시면 됩니다!]
[아기코끼리: 어서들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얼떨결에 공중에 날아올랐다가, 우리 셋에 발이 묶여버린 태성의 비행 부대들.
놈들은 아직 오펠 성 공성 지역에 들어섰던 게 아니었기에 마을로 추방당하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마을로 추방당한 우리 비행 부대는 곧바로 순간이동술사를 이용할 수 있다는 뜻.
놈들 중에도 이 사실을 눈치챈 몇몇이 공격을 멈추고 귀환 주문서를 캐스팅했지만…….
[날개 돌풍!]
[화염구 브레스!]
돌연 훼라리를 소환해 광역 스킬부터 날려, 놈들의 귀환을 캔슬했다.
토레노 외성 마을에서 우리 측 비행 부대가 날아오르는 걸, 이 자식들이 뒤쫓지 못하게 잡아둬야 했으니까!
“시간 끌기다! 흩어져!”
“놈들이 어디로 텔 탔는지 확인해!”
전투하다 말고 소란스러워진 전장.
하지만 이곳과 달리, 우리 측 병력들은 브리핑했던 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주리라.
“그림자 밟기!”
“회전 베기!”
그러니 굳이 내가 함께 가줄 필요는 없다.
그렇게 난 아군을 굳게 믿으며, 눈앞의 페가수스와 그리폰 라이더들의 숫자를 최대한 줄여나갔다.
* * *
[아카시아: 성공입니다! 토레노도 점령했습니다!]
[산드로: 전체 알림 봤습니다. 애쓰셨어요!]
[아기코끼리: 이게 정말 있을 수 있는 일이에요? 공성 시작 15분 만에 성을 3개나 점령하다뇨?]
[산드로: 축하드립니다, 아코님! 어때요? 정말 성주 되는 게 그닥 어렵지 않았죠?]
[아기코끼리: 와.... 제가 성주가 됐다니...]
올림푸스에 흡수된 고조선 길드의 주력 성.
호박 마켓의 본거지기도 했던 토레노 성은, 줄곧 그곳 외성 마을에 대기 중이었던 아기코끼리 측 흑풍 길드가 점령했다.
앞의 두 성과 비슷하게, 저레벨 지역에 있는 토레노는 중요한 성이 아니었다.
따라서 수성 병력이 많이 배치되진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 비행 부대가 나타나고, 같은 전략으로 내성문을 무시한 채 오벨리스크로 향하자…….
놈들은 즉흥적으로, 내성문의 수비를 포기하고 주성으로 몰려와 오벨리스크를 집중 방어했다.
나름 앞선 경우와 같이 쉽게 빼앗기지 않겠다고 대처한 행동.
하지만 그 때문에, 성은 오히려 더욱 빨리 점령당하게 되었다.
페가수스가 없는 우리 측 천여 명의 공성 흑풍단들이, 그 틈을 노려 진격하자 무혈입성하듯 내성문을 뚫어버린 것이다.
토레노 성을 지키던 병력으로선, 한정된 인원 탓에 이도 저도 못하다 최악의 선택을 해버린 셈.
덕분에 공중과 지상에서 쏟아지는 공격을 맞으며, 토레노 성 또한 단 5분여 만에 오벨리스크가 무너지고 말았다.
[산드로: 잠시 보고 받겠습니다. 다들 상황 어떠십니까?]
[댜크홀스: 듀메인, 이상 무!]
[지옥불: 번스타인, 내성문 앞에서 소모전 중. 아직은 버틸 만하다.]
[슈바이쳐: 로젠타스, 이상 없습니다!]
[축복받은무빙: 아베르, 공세가 거세긴 하지만.... 아직은 문제없음!]
성을 아무리 점령해도, 그만큼 뺏기면 의미 없었다.
이번 대규모 비행 부대는 강력한 신의 가호와 기동력이 결합된 신개념 병력.
주로 오벨리스크를 포격하기 위해 꾸려진 구성이었지만, 여차하면 곧바로 수성에 투입되어도 막대한 화력을 보탤 수 있었다.
[산드로: 아직은 괜찮네요! 그러면 계획대로, 이번엔 넥스트 길드의 공성을 돕겠습니다!]
[지옥불: 그래, 부탁한다!]
우리가 이번 공성에서 최대한 많은 성을 차지하려는 이윤 단순했다.
일단 타연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반 유저들에게, 피닉스 라인이 이만큼 건재하고 강한 세력이란 걸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
태성 라인이 계속 압도적으로 강한 모습만 보여주게 되면, 사람들은 점차 그들과 맞서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당연한 일이었다.
약한 편에 서서 열심히 싸워봤자, 죽임을 당하거나 플레이가 힘들어질 게 뻔히 예상됐으니까.
‘25개 성 중에 반 정도는 차지해야…… 우리 편이 늘어날 거야!’
길드가 얼마나 강한지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
예나 지금이나 그건, 성을 얼마나 차지하고 있는지부터 확인해 보는 게 가장 손쉽고 정확한 방법이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번에 작정하고 공성 모드로 돌입했다.
아직 우리 피닉스 라인이 태성과 싸워 이길 가능성이 충분하단 걸, 모두에게 똑똑히 보여주기 위해!
지옥불 형님이 미리 성까지 약속하며, 아직 중립으로 남아있던 마지막 대형 길드 ‘넥스트’에게도 참전을 유도한 이유였다.
(나: 이번엔 너도 와야 해.)
(축복받은얼굴: 채팅 보고 이미 출발했다. 마을이야.)
(나: 그래, 부탁한다. 최대한 집중하고 조심해서, 절대 죽지 마라.)
(축복받은얼굴: 물론이지. 형만 믿어라.)
라켄과 오펠, 그리고 토레노의 공통점은 모두 저레벨 지역이라는 것.
한 마디로 인기가 시들해진 성들이었다.
그 탓에 우리는, 가장 먼저 그곳들부터 노렸다.
적들 또한 수비 병력을, 굳이 많이는 투입하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넥스트에게 제시한 성은 그런 성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어지간한 성으로는 그들의 참전을 이끌 수 없었기 때문.
따라서 막대한 세금은 물론, 성의 전용 인던마저 훌륭한 알짜배기 성을 제시했다.
아슬아슬하게 다리우스를 죽이는 데 실패했었던, 태성의 피넬리 성을!
슈웅!
공간이동술사를 통해 이동하자, 우선 검은 망토들과 피닉스의 길드 마크부터 보였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두 배는 족히 넘을 듯한 태성의 마크도 주변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역시 피넬리 성은 다르구나. 놈들도 이건, 그냥 내줄 수 없다 이거지.’
이미 수비하는 병력 자체도 비교할 수 없이 많았을 텐데, 외성 마을에마저 적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분명 금방 순간이동으로 넘어온 지원군들.
공성 직전까지도 넥스트 길드원들에게 비밀로 했던 이곳의 공격 소식이, 벌써 흘러나간 모양이었다.
그러니 이번엔 다른 방법으로 공성을 진행해야 했다.
비행 원딜러 포격 부대와 더없이 좋은 궁합을 선보일 무기.
바로 타이탄 강하 부대가 출동할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