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화 건국 (1)
“잠깐! 나도 함께 갈게!”
[영혼 연결!]
내 몸에 생긴 아지랑이 같은 흰 실선.
축빙 형님과 이어진 영혼 연결 특유의 이펙트는 예전보다 굵고 진해진 상태였다.
“형님은 수성을 리딩하셔야죠!”
“그건 내성문 쪽 성벽에 가서도 충분히 할 수 있어! 타이탄도 당당이에게 넘겨 뒀다!”
“……알겠어요. 좀 빠르니까 잘 따라오세요!”
어차피 예나 지금이나, 오벨리스크 방어는 포기했다.
내성문 안쪽과 성벽에 모든 병력을 배치한 진형.
부활 재참전이 불가한 상황에서, 몇 배는 더 많은 공성 병력을 막아내기 위해 택한 어쩔 수 없는 올인성 전략이었다.
따라서 약점 또한 존재했지만…….
‘제독의 협조도 있고 비행 부대도 넘어올 테니까…… 잠깐은 괜찮겠지. 그나저나 나도 이 스킬을 받는 날이 오긴 왔구나!’
사실 영혼 연결은 내가 마쉴 시절일 때 전혀 필요 없었던 스킬.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모든 데미지를 절반으로 줄여주는 셈이다 보니 이보다 더 좋은 버프도 없었다.
테크트리를 바꾼 장점 중의 하나.
그건 동료들의 지원을, 이제는 적극적으로 받을 수 있게 됐다는 점이었다.
타타타탓!
빠르게 성벽을 달려 내성문에 도착하니, 성문 앞 내리막 언덕을 가득히 메운 태성의 병력들이 보였다.
그리고 얼핏 봐도 10기가 넘는 타이탄들이, 성문 인근을 감싸고 공격 중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당장이라도 성문이 뚫릴 것만 같은 급박한 상황.
하지만 천만 다행히도, 먼저 도착한 당당이가 축빙 형님의 강화된 가이라 나이츠를 소환해 성문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다수의 타이탄 공격을 일일이 전부 튕겨내고 있었는데, 날아오는 원거리 공격은 막을 방법이 없어 오래 버티지는 못할 듯싶었다.
그 모습에 난, 고군분투 중인 낯익은 아이디들을 뒤로하고 곧장 성벽을 박찼다.
[재빠른 몸놀림!]
[태세 전환!]
[그림자 밟기!]
지금 시작된 전투가 아니다.
끝없이 밀어닥치는 2만 여의 태성 병력을 흑풍단이 막고 있던 치열한 전장.
그리고 이제 막 타이탄 부대를 앞세워 성벽 앞까지 다가온 근접 병력들까지…….
그 한복판으로 순간이동하듯 단숨에 뛰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놈들도 처음엔 나의 참전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씨앙! 대체 누가 탔길래 전부 다 막아내는 거야!”
“당근 말고 저딴 미친 디펜을 누가 보여주겠어!”
“얼마 못 버틸 거다! 빨리 뚫어버리……!”
순간 눈 부신 빛과 함께.
열심히 공격 중이던 티에스 나이츠 한 대가 역소환되어 사라졌다.
“뭐, 뭐지?”
“갑자기 터졌다고? 뭐에 맞은 건데?”
성문 바로 앞 지상은, 사각으로 인해 양측 다 원거리 공격이 집중되기 힘든 곳.
덕분에 타이탄들이 마음껏 설치고 있던 상황이었다.
한데 갑자기 파괴됐다.
역소환당한 본인조차, 뭐에 공격당했는지 모를 정도로 순식간에!
[연속 베기!]
[은밀한 일격!]
이유는 하나.
스탯 재분배로 미친 듯이 급증한 내 공격력이, 각종 업적과 용살검의 추가타 옵션으로 더욱 뻥튀기됐기 때문!
나조차도 내 데미지에 놀랄 정도였으니 놈들이 황당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산드로였잖아!”
“이 답도 없는 새끼! 여긴 언제 온 거야!”
돌연 나를 향해 타이탄들이 무기를 휘둘러왔지만…….
놈들의 공격은, 맞아주기에 너무나 느린 속도였다.
[라이징썬으로부터 422의 물리 피해를 입었습니다.]
[매일칼퇴로부터 823의 마법 피해를 입었습니다.]
……………………
오히려 타겟팅도 없이 무작위로 날아오는 후방의 원거리 공격들이, 훨씬 더 위협적이고 아팠다.
하지만 타이탄에게 들어가는 데미지는 평소 공격력의 몇 배 수준!
흡수되어 차오르는 HP 또한, 평소완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영혼 연결이…… 진짜 좋긴 좋구나!’
반면 적중된 공격은 대부분 회피되거나 절반의 데미지만 들어왔다.
축빙 형님의 영혼 연결은 5성을 달성한 지 오래.
하지만 특별 스킬인지라, 형님처럼 스킬 포인트를 10개나 투자한 경우는 드문 일이었다.
대신 맥시멈인 데미지 50% 공유와 더불어 범위 또한 무척 넓어진 상태.
더불어 신의 가호로 체력이 늘고 스킬 쿨타임까지 줄어든 터라, 연신 셀프 힐 중인 형님만큼 믿을만한 연결 대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귀신 발걸음!]
[연속 베기!]
뛰어드는 순간부터 활성화된 단테리오의 팔찌.
이제는 MP를 HP처럼 여기며 아낄 필요가 없었다.
덕분에 공격 스킬과 이동기를 마음껏 남발하며, 적들의 기체 위를 넘나들었다.
후방의 원거리 공격에 최대한 노출되지 않도록, 타이탄의 거대한 몸체를 방패막이 삼는 것도 잊지 않으면서!
번쩍! 번쩍!
붙으면 10초를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는 타이탄들.
“진짜 밸런싱 주옥같네!”
일도양단, 동키호테, 바라기, 성박휘 등등.
그 안에서 익숙한 얼굴들이 연신 튀어나왔다.
‘전부 여기 몰려왔구나! 근데 넌……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냐!’
죽어라 도망치는 터라 뒤쫓진 못하고, 남은 타이탄들을 차례로 처리해나갔다.
당당이 또한 진작에 역소환당했지만, 내가 설치는 사이 성안으로 무사히 후퇴했다.
“10기가 당하는 동안 못 뚫었다고? 대체 이 성문이 뭐길……!”
탓!
마지막 타이탄이 사라지기 직전, 기체의 머리를 밟고 높이 점프했다.
그리곤 대도 부츠로 벽을 타고 내성문 위로 순식간에 올라왔다.
“와! 진짜 아슬아슬했네요!”
“…….”
단테리오의 팔찌가 가동되면, 가뜩이나 힘든 전투에서 생각할 것이 더 많아진다.
빠르게 돌아가는 쿨타임과 적절한 마나 배분 등등.
덕분에 전투를 마치고 돌아와 한숨 돌리는 나를, 주변의 흑풍단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단주님……. 정말 같은 유저가 맞아요? 뭐 버그 같은 걸 쓰시는 건 아니죠?”
“네?”
“단주님 같은 플레이가 가능하면…… 애써서 타이탄을 얻거나 만들 필요가 없잖아요. 안 그래요?”
그중 열심히 활을 당기면서도, 질문해오는 한 흑풍단원.
나는 잠시 숨도 돌릴 겸 그에 대답해주었다.
“제가 유독 이렇게 위험하게 플레이해서 그렇지, 저만 이런 게 가능한 건 아닐걸요?”
“그게 무슨……. 대체 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세계수 가지로 업그레이드된 성문은 튼튼했다.
그리고 기대 이상의 회복력을 자랑했다.
덕분에 타이탄을 전부 소탕했더니, 바닥까지 줄어들었던 내성문의 체력이 길드원들의 서포트로 차오르며 여유를 되찾았다.
“저만큼은 아니더라도 비슷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좀 있죠. 당당이나 카이저 형님. 그리고 적들 중에는 다리우스 정도는 가능하겠네요.”
“에이, 다리우스가요?”
“물론입니다. 놈이랑 저랑 레벨 차이도 거의 안 나고, 뭣보다 놈도 7신기를 갖고 있는 걸요? 아직 업적은 조금 더 많을 거고요.”
“설사 그렇다 해도 이 앞까지 와서 전투를 벌일 놈이 아니잖아요. 엄청 안전한 플레이만 하는 거로 유명하구요.”
“그게 저만 특출나 보이는 이유예요. 놈도 할 수 있는데 이런 플레이를 전혀 하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거죠. 놈이 2차 전직까지 마쳤다면, 못할 이유가 더더욱 없을걸요?”
“아! 몰랐는데…… 그럴 수도 있겠네요!”
지상만큼이나, 어느새 치열한 전투가 시작된 하늘을 보며 말했다.
이건 곁에 있는 흑풍단원에게 한 말이었지만, 나 자신에게 하는 채찍질이나 마찬가지였다.
타연에서 제일 높은 레벨.
그리고 가장 좋은 템과 업적을 갖춘 유저.
정말 모순적인 일이지만, 타연에서는 점차 그런 유저가 돼갈수록 전장에서는 보기 힘들어졌다.
선두 레벨을 유지하기 위해 필드전이 벌어지든 말든 사냥하기에 바빴고…….
혹여 죽기라도 하면 힘들게 마련한 장비를 드랍할까 봐, 안전한 전투가 아니라면 나타나질 않았다.
가장 강한 유저일수록 전투에 참여하면 많은 도움이 될 텐데, 정작 활약을 펼치는 모습은 유저들이 거의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내가 유일.
아니, 최초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최전방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전투에 참여하는 랭킹 1위 유저는!
‘만약 하늘 위에서 네가 주성으로 뛰어내렸다면……. 그랬다면 오늘 수성은 실패했을지도 몰라. 알겠냐? 다리우스, 이 쫄보 자식아!’
만약 공성 초반, 놈이 방금 소모된 타이탄들과 함께 오벨리스크로 기습 강하를 시도했다면…….
오늘 수성은 그대로 끝났을 수도 있었다.
우리 병력 대부분을 차지하는 흑풍단과 생산 유저들은, 죄다 원딜러뿐이라 막을 만한 근접 유저들이 부족했으니까.
놈이라고 그 사실을 몰랐을까?
이미 지난달에도 같은 전략으로 수성했는데?
그리고 놈들의 성이, 그 같은 방법으로 연신 점령당하고 있었는데?
절대 그럴 리 없었다.
놈은 그저 위험을 감수하기 싫은 것이다.
혹여 적진 한복판에 뛰어내렸다가 죽기라도 한다면?
그 두려움이, 가장 강력한 로드급 타이탄을 스스로 봉인하도록 만들었다.
다리우스는 원래 그런 녀석이었다.
온갖 잘난 척과 우월한 척은 다 하지만, 실상 무엇 하나 본인 실력과 도전으로 달성해 본 적 없는 자식.
그런 놈의 겉모습에 감탄하며 동경하고 주눅 들었던 지난날의 나.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랬던 놈이 우습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절절하게 다짐했던 복수마저도, 너무도 하찮게 느껴질 정도로 한심하게!
[라스트챤스: 드로 형님! 성문은 버틸 만해졌으니까 공중을 지원하죠!]
상공엔 올림푸스의 페가수스 말고도 많은 비행 펫들이 새롭게 나타났다.
태성의 새로운 페가수스 부대와 기존의 그리폰 부대.
심지어 슈마허의 그리폰 킹마저 눈에 띄었다.
그야말로 본인을 뺀 길드의 정예들은, 모조리 이곳으로 출정 보낸 셈.
하지만 역시나 다리우스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훼라리 소환!”
선전 중인 피닉스의 비행 부대를 보호하기 위해, 당당이와 라챤이를 태우고 다시금 공중 위로 날아올랐다.
하늘과 지상, 그리고 타이탄 간의 전투.
오늘 공성전에서 벌어지는 모든 공방전에는, 나 산드로의 활약이 절실히 필요했으니까!
* * *
[모든 공성전이 종료되었습니다.]
[아베르 성의 공성전이 종료되어 모든 유저는 내성 안에서 추방됩니다.]
[아베르 성의 점령 길드원이기에 추방당하지 않습니다.]
[아베르 성 수성에 성공하여 길드 업적치 150,00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끝났다! 수성 성공!”
“구웃! 이번 달도 지켜냈다!”
실제 전쟁터를 방불케 할 만큼 수많은 유저들로 뒤덮였던 성문 앞 언덕과 내성 안.
그 모든 유저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전부 사라졌다.
남은 것은 우리 버닝스타 길드원 십여 명뿐.
덕분에 원래라면 성이 떠나가라 시끄러웠을 환호성도 크진 않았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기쁨은, 누구라도 알아챌 수 있을 만큼 컸다.
“모두들 고생하셨습니다!”
“진짜 역대급 공성전이었다!”
“길마님, 진짜 대단하세요! 오늘 방송 각이 제대로 뽑혔을 거 같아요!”
“하핫! 제가 뭘요. 다들 열심히 힘을 합쳐서 해낸 성과죠!”
공성 초반.
마치 순회하듯 태성 라인의 성들을 점령한 뒤, 숨 고를 틈 없이 아베르 수성에 참전했다.
그리고 남은 20여 분간, 나는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을 탄생시키며 수성에 몰두했다.
적의 타이탄이 나타나면 순식간에 접근해 없애버리고.
하늘 위 비행 부대는 스치면 삭제하듯 낙사시켰다.
막판 모든 것을 걸었는지, 태성의 전 병력이 죽음도 불사한 진격을 해왔지만…….
카이저 형님과 나의 타이탄, 2기의 로드급 타이탄으로 그마저도 막아서며 한참을 버텨냈다.
결국 타이탄이 역소환되고 내성문이 뚫리기는 했지만…….
보다시피 공성 시간이 다해, 수성은 우리의 승리로 끝이 나게 되었다.
[산드로: 정말 멋진 공성이었습니다! 막판 전투에 집중하느라 전황을 못 살폈는데, 다들 피해는 없으셨나요?]
[아카시아: 후방에서 계속 국지전을 벌여 죽기도 많이 죽었지만 괜찮습니다! 우리 흑풍단이 성을 먹게 됐는걸요!]
[산드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피닉스는 어떠세요?]
[지옥불: 전부 아베르에 몰려갔는지, 우리 측 수성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제국 때문에 버렸던 슈페린 성은, 예상대로 놈들이 가져가게 됐지만. 다리우스는 그곳에 나타났다고 하더구나.]
지난달 번스타인 점령에 성공하며 7성이 된 피닉스.
그대로면 제국이 다시 침공해올 터라, 새롭게 국경이 된 슈페린 성의 소유권을 포기했다.
미점령 상태인 성을 획득하는 건 NPC들뿐만 아니라 다른 길드들과도 경쟁해야 했다.
따라서 이번 비행 부대의 기습 전략은 써먹을 수 없었다.
그래서 거긴 전적으로 피닉스에 맡겨두었는데, 역시나 전력 차이로 인해 실패한 모양이었다.
[산드로: 아.... 다리우스가 거기 갔었군요? 어차피 슈페린은 먹어도 다시 포기했을 성이니까 상관없습니다. 그래도 선방하셨네요. 정말 고생하셨어요!]
[지옥불: 선방 수준이 아니다. 이건 타연 역사상 가장 큰 대승리야! 우리가 놈들을 앞서게 됐다고! 전부 다, 드로 네 덕이다!]
하지만 그 성을 재점령하는 데 실패했다고 아쉬워한다는 건,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총 25개 성 중 17개를 차지하고 있던 태성 라인.
놈들은 오늘 6개나 되는 성을 넘겨준 대가로, 고작 그 성 하나만을 겨우 가져갔으니까.
그 결과…….
총 13대 12로, 우리는 놈들보다 더 많은 성을 보유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