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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261화 (261/350)

261화 건국 (2)

한 시간 내내 치열하게 진행되는 공성전은 드물다.

막고 뚫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죽음을 비롯한 많은 소모가 발생하기 때문.

따라서 어느 정도 간을 보듯 전투하다가, 결국 중반 이후 결정적 한타로 승부를 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것이 내가 초반을 집중적으로 노린 이유였다.

놈들이 방심한 틈을 타 시작부터 허술하고 영양가 없는 성들을 점령한다.

따라서 4, 5분 만에 먹을 수 있을 거라곤 생각했지만, 이 정도 성과를 거둘지는 상상도 못 했다.

당초 목표는 4개.

그것도 넥스트 길드가 선전해 줘야 한다는 가정 하에서의 목표였다.

거기까지 먹으면 적들도 비행 부대를 대처할 방법을 찾을 테니, 그쯤부터는 상황을 봐가며 수성에 참여하려고 했다.

한데 무려 6개라니?

이 정도 성과는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상대는 그 막강하다는 태성 라인이었으니까!

“카이저 형님, 오늘 도움도 감사했습니다. 잠시 뵐 분들이 계셔서…….”

“괜찮다. 네가 한 달간 해준 게 있는데, 나도 이 정도 밥값은 해줘야지.”

“그럼, 나중에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공성전이 끝나 길드원들과 기쁨을 나누기도 전에, 서둘러 가볼 곳이 있었다.

먼저 외성 마을에 들러 수성에 참여해준 흑풍단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다음.

지옥불 형님을 비롯한 피닉스 라인의 길마들을 직접 만나보기 위해, 홀로 번스타인 성으로 향했다.

“어서 와라.”

“벌써 다 모여 계셨네요! 다들 정말 멋지셨습니다!”

국선, 유머스트다이, 검객, 아카시아, 아기코끼리, 콩콩이 등등…….

1시간 전만 해도 아는 사람들만 알던 유저들이, 이제는 타연에서 모를 사람이 없는 성주가 되어 다시 모였다.

“정말 축하드려요! 저만 해도 벌써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는데, 지옥불 님이나 산드로 님은 어떠세요?”

“허허, 아카 님께선 처음이라 잘 모르시는군요? 원래 공성이 끝나면…… 귓속말 차단부터 해야 한답니다.”

“아, 그런 거예요? 제가 어설프게 공성 경험 없는 티를 냈네요. 하하!”

“다 성주가 돼봐야 아는 일이지요. 앞으론 쭉 성주 역할을 하시게 될 테니, 곧 익숙해지실 겁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주성 안 회의실.

많은 각오와 희생을 치르며 벌인 전투였기에, 다들 회포를 풀며 승리를 만끽했다.

“근데 어지간히 멍청한 놈들만 있나 봐요? 아무리 하늘을 제압당했더라도, 몇 번 당했으면 지원이 와있어야 정상인데……. 세마에 이어 레디치까지 그냥 내주다니요?”

“저희 흑풍 길드원들도 다들 그걸 의아해했어요. 우리가 올림푸스를 이렇게 쉽게 물리치고 점령한다는 게요. 성을 먹는 것이 이렇게 쉬운 건 아니라고 알고 있었는데…….”

“…….”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말을 해야만 했다.

그게 짧은 시간, 제독과 나눴던 거래이자 약속이었으니까.

“실상 부딪혀보니 정말 별것 아닌 것 같더라고요? 저쪽은 이름만 한 편이지 단결력도 약하고, 우리에겐 워낙 사기 버프인 신의 가호가 있었으…….”

“말을 끊어서 죄송합니다, 아카 님. 사실 저희가 올림푸스의 성을 쉽게 탈환했던 건, 전부 사전에 거래가 있어서였습니다.”

“네? 거래라고요?”

“그게 무슨 말이냐, 드로야. 내가 모르는 거래가 있었다니?”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는 성주들.

하지만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다.

또한, 터놓고 밝히는 편이 오히려 오해를 방지할 수 있었다.

“공성 도중 우연히 마주친 제독이 뜻밖의 제의를 해왔습니다. 세마 성과 레디치 성은 제대로 막지 않을 테니, 그대로 공격해 오라고요.”

“헉? 정말요? 설마, 그래서 타이탄이 얼마 안 보였던……?”

“맞습니다. 적의 비행 부대가 뜬금없이 다른 성을 막으러 가고, 올림푸스 성에는 다른 지원 세력이 오지 않았던 이유죠. 저도 반신반의했지만, 직접 성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진심으로 했던 제의라는 걸 확인했습니다.”

“그건 몰랐구나. 확실히 성을 6개나 먹은 건 의외였지. 성의 개수가 밀리게 되는 건, 태성 측에게도 제법 뼈아픈 손해일 테니까…….”

비록 저레벨 지역에다 세금도 잘 걷히지 않는 무늬만 성을 먹었다 해도…….

속사정을 자세히 모르는 유저 입장에서는, 누가 더 성을 많이 갖고 있는지가 비교의 척도였다.

한데 이번 공성을 통해, 근소한 차이지만 우리가 앞서게 됐다.

분명 이 일은 뉴스에서도 그렇고 커뮤니티에서도 그렇고, 태성 라인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될 것.

한데 그중에서도 신화국의 메인 성이던 레디치마저 빼앗겼단 사실은, 놈들이 방심했단 변명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 대형 사건이었다.

“제독이 제시한 조건 중 일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염치가 없는 일이라 주저되지만, 원치 않으신다면 거절하셔도 괜찮습니다.”

“뭔데 그러는 거냐, 드로야?”

“이번에 되찾게 해드린 성, 그리고 처음으로 차지하시게 된 성. 죄송하지만, 제게 양도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다음 달에 바로 되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뭐라고요?”

예상대로 갑자기 뭔 소리를 하냐는 듯한 격한 반응.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제독이 건넨 조건은 2개였습니다. 하나는 이번에 저희가 성을 최대한 많이 차지한 뒤, 제가 국왕이 되는 것!”

“국왕? 너보고 건국하란 뜻이냐?”

“네, 형님. 성길이 된 길드들을 병합해서 5성 길마가 되라는 게 제독의 조건이었습니다.”

“평소 속을 모를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제독은 정말이지 이상한 사람이구나. 어째서 너보고 건국을……?”

놈의 의중부터 궁금해하는 지옥불 형님과 달리, 넥스트의 검객은 거래 내용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일단 다 듣고 나서 판단해 보겠습니다. 놈의 두 번째 조건은 뭐였습니까?”

“이 자리에 계신 일곱 분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그건 약속한 사항이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사실 이 거래 사실을 밝히는 것조차, 상당히 위험한 일이라서요. 저희 라인에 손해인 조건은 아니었으니, 부디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흐음…….”

각자 성을 갖고자 필사적으로 준비하고 전투했을 텐데, 이렇게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 채 달란 소릴 들으면 어떤 기분일까?

하지만 그래도 말해줄 순 없었다.

-두 번째는…… 만약 태성이 둘 간의 전쟁에서 지게 되면, 우리 올림푸스를 너희 라인에 포함시켜 달라는 거다. 만약에 대비해서 드는 보험이라고나 할까? 그러기 위해선 네가 국왕이 되어 피닉스 라인의 메인 세력이 돼야겠지. 지금 우리가 한 약속을 지켜주려면……!

그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

만에 하나 다리우스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끝장일 테니까.

‘정말 제독 당신은…… 뼛속까지 박쥐 같은 사람이구나.’

그가 내게 이 제의를 해왔을 때 든 생각이었다.

아무리 격식 있게 말하고 쿨한 척해도, 그의 속마음은 천박하기 그지없었다.

타연에서 어떤 세력이 득세하든지 간에, 자신은 기득권에 계속 머무르겠다는 이기주의와 보신주의.

최근 우리가 보여준 성과와 천계에서의 학살.

그리고 단숨에 피넬리 성까지 빼앗기는 것을 보고, 불현듯 위기감이 들었던 게 분명했다.

자기가 타연 속에서 이룩했던 것들이, 어쩌면 태성과 함께 모조리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그러니 아무리 구구절절하게 협박을 당했다는 둥, 어쩔 수 없었다는 둥 말해봤자…….

그나마 동정할 만한 여지는 깨끗이 사라졌다.

하지만 난, 결국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일단 태성과 별개로 올림푸스에게는 원한이라 할 만한 게 없었고.

자존심만으로 그의 제안을 거절하기엔, 우리 측이 너무 열세였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상황을 반전시키려면, 이 같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평소 극혐해왔던 정치꾼들과 지금 내 모습이 다를 게 없구나.’

영원한 적은 없다.

내 가치관과는 다른 말이지만, 그의 뜻대로 한번 행동해보기로 했다.

리더란 자리는, 원치 않은 선택이라도 종종 해야만 하는 자리였으니까.

“쉽게 내릴 수 없는 결정이니까, 하루 동안 고민해보시고 내일 말씀해 주세요. 저희 버닝 스타 길드에 합병돼도 정말 괜찮으실지를요.”

“저희 최강흑풍단은 찬성입니다! 길드원들도 당연히 불만 없을 거예요!”

“저희 흑풍단01도 찬성이에요!”

충분한 시간을 줬건만, 흑풍단의 길마들은 곧바로 동의해왔다.

재차 조금만 더 고민해보라고 만류해봤지만…….

“단주님, 그거 아세요? 전 이미 예전에 단주님 길드에 가입했었다는 사실을요?”

“네? 아코님, 그게 무슨……?”

“버닝스타 말고요. ‘내집마련’이란 이름이었죠? 칼젠 성 광장에서 한 시간 동안 줄 서서, 노블 패밀리 업적을 받았던 적이 있어요. 그러니 단주님의 길드원이 되는 건 이번이 두 번째인 셈이죠.”

“…….”

“단주님 같은 사람은 생전 처음 봤어요. 그리고 생각했죠. 이런 사람과 타연을 함께 하면 얼마나 재밌을까? 나서기 싫어하는 제가 흑풍단 길드를 창설했던 것도, 그런 단주님의 모습이 좋아서였던 거예요. 그러니 고민할 필요가 없어요. 짧지만 이미 성주도 돼봤고, 제가 국왕이 되시는 걸 도와드릴 수 있으니까 만족해요!”

여러 사람 앞에서 이런 낯간지러운 소리를 듣고 있자니 민망했다.

하지만 아기코끼리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있었고, 그래서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전 아코 님 같은 이유는 아니지만 같은 생각입니다. 이번 공성의 대승도, 사실 저희 때문이 아니라 단주님의 전략이 성공한 탓이죠. 그리고 솔직히 말해, 유저 입장에서는 다리우스보단 단주님 같은 분이 국왕이 되는 게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레디치 성의 성주가 된 아카시아도, 세마 성의 성주가 된 콩콩이도.

성길이 된 흑풍단 대표 길드 3곳은 만장일치로 합병에 찬성했다.

남은 성은 이제 화랑과 피스메이커, 그리고 새롭게 합류한 넥스트 중 하나.

중립 길드로 긴 시간을 함께 지내온 길드원들의 허락이 필요해서, 국선과 유머스트다이는 다소 주저하는 모습이었다.

반면 넥스트의 검객은 달랐다.

“다른 두 분이 망설이시는 것 같으니, 저희 넥스트가 합병하겠습니다. 이거야 원……. 원래 성길이 목표라 들어온 라인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일이 커지게 됐군요.”

“아니 검객님, 굳이 그러시지 않아도 됩니다. 충분히 고민해보시고 결정하세요!”

“아닙니다. 오늘 간만에 전투다운 전투를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원래 사람은 줄을 잘 서야 한다는 말이 있죠? 이쪽 라인에 선 게 잘한 결정 같은데, 버닝스타라면 더 말할 것도 없죠.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남자답게 산드로 님께 배팅 한 번 해보렵니다. 어차피 합병하고 다시 재창설하면, 다음 달에 돌려주신다고도 하셨으니까요!”

참 염치없는 제의인 것 같아 망설였는데…….

그게 무색하게도, 마치 기다린 것마냥 4개 성의 길마들이 찬성해 주었다.

덕분에 난.

아직 우리 길드원들도 모르는 사이에, 타연의 네 번째 국왕이 되는 것이 확정됐다.

* * *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진짜 산드로 같은 플레이는 꿈에서나 가능한 거 아니냐? 예술이다 예술!

└진짜 녹화된 것만 없었으면 아무리 말해도 안 믿었을 듯. 하룻밤 새, 타이토닉 영상만 해도 300만 뷰가 찍혔더라?

└└나처럼 열 번씩 돌려본 사람이 수두룩할 듯ㅋㅋ 이거 땜에 날밤 깠다!

└└└죄다 마쉴 산드로에 맞춰서 제루티안 썼는데, 돌연 산드로가 테크트리 바꾼 것도 한몫한 듯ㅋㅋ 공격력이 미치긴 미쳤더라!

-이제 라인 간의 전쟁은 어떻게 흘러가는 거야? 태성이 압도하는 줄 알았는데, 막상 까보니까 피닉스랑 비등비등한 거 아님?

└제대로 꿀잼 모드로 흘러가는 거지. 피닉스 놈들 맨날 필드서 처발리길래 서버 다 먹혔나 싶었는데... 다행이지 뭐.

-근데 흑풍단 애들 뭐냐? 진짜 산드로 팬클럽이 맞는 거냐? 무슨 성을 3개나 먹었던데?

└ㅋㅋㅋㅋ 아무리 봐도 이게 레전설이지. 무슨 사냥 하다 뭉친 놈들이 성을 다 먹었냐?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진작 흑풍단에 들어서 성길이나 될 걸ㅋㅋㅋ

-그것도 그거지만 지금 수상한 소문이 돌고 있음

└ㅇㅇ? 그게 뭐임?

└└피닉스 라인이 성을 13개나 차지했는데 국가는 리버스 하나잖아? 그럼 하나 더 건국해도 넉넉한 상황이다 이거지.

└└└뭐? 그럼 소문이란 게 설마?

└└└└맞아. 곧 산드로가 국왕이 될 거란 얘기가 지금 고수들 사이에선 파다함~

“폐하! 제발 폰은 그만 끄시고, 접속부터 하시지요! 전하를 기다리는 분들이 많사옵니다.”

“크크, 넌 또 갑자기 뭔 헛짓거리야?”

“오늘 국왕으로 즉위하실 몸이신데, 이 정도 대우는 해드려야 맞지요!”

“오냐, 좋다! 생전 안 해주던 형님 소리보다, 듣기엔 이게 더 낫다! 드디어 주제 파악을 좀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공성만큼이나 처리할 게 많고 바빴던 지난 밤.

어느 정도 사항들이 정리되자 길드원들에게 내용을 공유했다.

그리고 오프라인에서의 축배는 태성을 무너뜨리는 날로 기약하며 로그아웃했다.

한데 아침이 밝자마자, 웬일로 일찍 일어난 현중이가 계속해서 닦달해왔다.

“아, 이거 더는 못 해 먹겠다. 됐고! 꾸물대지 말고 빨리 좀 들어가 보자. 여론이 뭐가 그리 중요해? 난 뭐가 나올지 기대돼서 제대로 잠도 못 잤는데!”

“응? 대체 뭘 또 기대했다는 건데?”

“뭐긴 뭐야? 타연 최고의 뽑기, 신의 선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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