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화 신의 선물 (3)
“그 쓰레기? 그걸 신의 가호에 써먹겠다고?”
“네. 천사의 눈물, 천사장의 눈물. 그리고 뽑기에서 나온 신의 눈물까지……. 이 눈물 시리즈가 신의 가호의 발동 재료들이거든요.”
이미 암암리에 퍼지긴 했지만, 이번 공성전을 통해 신의 가호의 정보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버프를 받은 유저의 수만 해도 천 명 단위가 넘어갔으니, 감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 가호를 부여할 수 있는 유저는 우리 길드원들뿐.
따라서 이 버프에 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여전히 극소수에 불과했다.
“아아, 정정하지. 아무리 그래도 디바인급 템인데 쓰레기라고 부른 건 너무했지? 그래, 뭘 어떻게 쓰겠다는 건지 좀 자세히 들어볼 수 있을까?”
‘제독 이 양아치 새끼……. 또 수작 부리기 시작하네.’
굳이 심리전을 벌이기 귀찮아 본론부터 꺼냈는데, 역시나 안면몰수하고 계산질에 들어간 게 뻔히 보였다.
돈 냄새가 풍기려고 하니, 조금이라도 이득을 챙기려고 수 쓰는 모습이.
“신의 가호란 버프를 발동시키는 데 천사의 눈물이 들어간다는 건 들어보셨죠? 새로 발견된 천계 인던에서 나오는 거요.”
허나 애초에 이 싸움은 성립될 수 없었다.
신의 눈물이란 템의 정확한 쓰임새.
그리고 신의 가호의 정확한 발동 조건.
아직 제독은 모르고 있는 이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그는 바가지를 씌우기는커녕 오히려 덮어쓸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으니까.
“어? 으응……. 그렇다고는 들었다.”
“근데 문제가 있어요. 가호 하나당 눈물이 하나씩 필요하거든요. 즉, 효과가 좋긴 좋은데…… 유지비가 너무 비싸다는 게 문제예요. 그래서 저도 이번 공성전에 돈 엄청 깨졌습니다. 그 많은 흑풍단들한테 가호를 내려주다가요.”
“그것 또한 알고 있다. 그런데?”
“제가 한 시간 전에 뽑은 신의 눈물. 저희 길드원이 이걸 가지고 먼저 천계에 올라가 봤어요. 이미 다른 곳은 다 확인해봤다고 하셨으니, 시험 삼아 신석에 먹히나 확인해보려고요.”
아닌 척하지만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듣고 있는 제독.
사실 신의 가호의 효과를 아는 유저라면 이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변심한 주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전력을 급상승시켜줬던 사기 버프니까.
따라서 한 국가의 수장이자 앞으로 신석을 두고 경쟁할지도 모르는 그의 입장으로선, 허투루 들을 수 없는 게 당연했다.
“……그래서?”
“그 결과, 제 예상이 정확히 들어맞았습니다. 신의 눈물은 신의 가호를 소모 없이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재료템이었어요. 비록 쿨타임이 존재하긴 하지만, 유지비 측면에선 말도 안 되게 높은 효율을 자랑하는 템이었던 거죠.”
“오! 이게 거기에 쓰이는 거였군? 신의 가호에 필요한 템이었으니 여태껏 내가 못 찾을 수밖에!”
그래서 또한, 이렇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기가 막히게도…… 어쩌다 보니 이 디바인 템의 이름에 ‘눈물’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었으니까!
“쭉 모르고 있던 용도를 알려준 건 고맙다. 그런데 말야, 내가 이걸 판매하는 건 힘들 것 같은데? 나중에 내가 신석을 차지하게 되면, 그땐 나도 이걸 써야 할 텐데 굳이 넘길 이유가 없잖아……?”
“그러니 대가로 버프를 드릴게요. 저희 동맹 측과 흑풍단에게만 내려줬던 그 신의 가호를, 특별히 지정하신 분들께 내려드리겠습니다. 겉으로 가호 이펙트가 드러나긴 하는데…… 온 오프가 가능하니까 걸릴 염려는 없어요.”
가호로 몸이 은은하게 빛나는 가호 이펙트는, 이쁘긴 했지만 너무 눈에 띄었다.
그래서 공성전같이 수천 명이 모여 있을 때는 장엄한 광경을 연출하기도 했지만, 혼자나 소수로 다닐 때는 없는 편이 나았다.
디바인 템의 외변마저도 가능한 타연.
당연히 나 같은 유저를 위해 가호 효과 또한 끌 수 있도록 설정이 가능해, 설령 받게 되더라도 본인만 입 다물고 있으면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었다.
“확실히 가호가 탐나긴 하는데……. 혹시 그냥 좀 주면 안 되겠니? 흑풍단한테는 잘만 주던데…….”
“네? 농담이시죠? 뭐 하나 공짜가 없던 분이 갑자기 그런 말을 하시니…… 살짝 당황스럽네요?”
내 칼 같은 태도에 다시 고민에 빠진 제독.
하지만 결코 이대로 신의 가호를 포기할 리 없었다.
현재 그는 후에 있을 신석 쟁탈에 성공한다는 보장은커녕, 조건조차도 모르는 상태.
한데 당장 이 가호를 받게 되면, 전투를 비롯해 레벨업 속도까지 급증하는 많은 이득이 생긴다.
따라서 이곳에 난, 제독이 내 제안을 거절할 거란 선택은 아예 염두에도 두지 않고 왔다.
그저 어떤 핑계와 조건을 달면서, 내게 신의 눈물을 넘길지가 궁금했을 뿐!
“벌써 2개나 나왔죠? 이게 정말 우리가 아는 디바인급이 맞아요? 그리고 언제 어디서 또 튀어나올지 모르는 걸 가지고, 계속 묵혀만 둘 거예요? 앞으로도 직접 쓸 날이, 올지 안 올지 모르는 템을요?”
“아니, 그래도…….”
“저도 싫다면 굳이 팔아달라고 애원할 생각은 없어요. 그저 가호를 줘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장기적으로 비용 좀 아껴볼까 싶어 물어본 거니까요. 본인께서 쓰레기라고 하길래 만나자고 한 건데……. 이거야 원!”
“크, 크흠!”
“대답이 없으신 걸 보니 싫다는 뜻이죠? 알겠어요. 공성 때문에 미뤄왔는데, 천계의 천사장들이나 하나씩 트라이 해봐야겠네요. 왠지 놈들이라면 퍼킬 보상으로 이 템을 드랍할 것도 같거든요.”
날 위하는 척.
혹은 태성을 적대하는 척.
항상 본인 이득을 위해 나를 기만해왔던 제독.
하지만 이번엔 내가 그에게 복수할 차례였다.
난 당한 게 있다면, 꼭 갚아줘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으니까!
“자, 잠깐! 누가 안 판다고 했어? 잠깐 생각 좀 하느라 말을 못 한 거지.”
뭐라고 말해봤자…….
생각이 아니라 열심히 계산기만 두드렸단 걸 알고 있다.
“어쩌실 건데요? 팔 거예요?”
“먼저 금액 전에, 가호는 100명 정도 가능할까?”
“네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세요? 10명도 힘들어요!”
“힘들긴 뭐가 힘들단 거냐? 몇천 명이나 되는 흑풍단한테는 잘만 줘 놓고!”
“그런 중레벨들과 같아요? 아직 저희가 표면상이긴 해도 적이잖아요? 고레벨일수록 효과가 급증하는 버프를 100명이나 드릴 순 없죠! 거기다 많이 주면 당연히 입단속도 어려워지고 의심하는 사람도 늘어날 거고요. 설마 다리우스한테 저희 거래를 들키고 싶으신 건 아니죠?”
“그럼 30명은?”
“10명. 그 이상은 안 돼요.”
“20명이라도……?”
“말했잖아요, 최대 10명이라고요. 대신 전부 3중첩, 풀 가호로 드릴게요.”
사실 몇 명을 주나 어차피 별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줄곧 머리만 굴린 게 괘씸해서 끝까지 밀어붙였다.
“흐음! 좋다! 대신 이번 달뿐만 아니라 신석을 뺏기는 날까지 계속 줘야 한다!”
“알겠습니다. 아…… 3중첩까지 드릴 생각은 없었는데, 땡잡으신 줄 아세요.”
“그, 그래. 그건 고맙다.”
그렇게 단돈 200만 골드.
어지간한 레전더리 장비 하나 수준의 헐값으로, 나는 신의 눈물을 구매하는 데 성공했다.
* * *
“히야, 이 형님 진짜 국왕님이 맞긴 맞네! 설마 이걸 바로 구해오실 줄이야!”
“어떠냐? 형님의 무궁무진한 능력이 감탄스럽지?”
떠난 지 얼마 됐다고, 금방 또 다른 신의 눈물을 가지고 돌아오자 설마 했던 길드원들이 기겁했다.
그중 내심 미안해하던 기색이었던 대탐이가 가장 기뻐하며 물어왔다.
“와! 뭘 어떻게 구워삶았길래 제독이 이걸 판 거예요? 우리가 아는 제독이라면 암만 재료템이라도 절대 디바인 템을 팔 리 없는데요!”
“평소에 똑똑한 척하던 사람은, 결국 다 자기 꾀에 넘어가게 돼 있어. 별로 필요도 없단 식으로 떡밥 몇 개만 던져주니까, 자기 혼자 계산기 두들기고 오케이 하더라? 티는 안 냈어도 속으론 개이득이라고 생각했겠지.”
무슨 일이든 조금의 손해도 없이 이득만 챙기려던 제독.
물론 길마로서 길드의 이익을 위해서만 행동하겠다는 그의 가치관은, 충분히 본받을 만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의 끝엔, 항상 본인의 이득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다시 말해, 그는 이기적인 자신의 욕심을 항상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이나 길드원을 핑계로 챙겨왔다.
그 본성을 똑똑히 알게 된 이상, 이보다 더 쉬운 거래는 없었다.
그저 팔지 않으면 손해고 팔게 되면 이득이라는 메시지만, 계속계속 던져주기만 하면 됐으니까.
“다들 오래 기다리셨으니까, 바로 복구해 볼게요!”
“그래!”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계속 시공의 틈새에서 나를 기다려준 길드원들.
그들과 함께 주나스에게 돌아가 말을 걸었다.
[신의 눈물로 마력을 잃은 요정왕의 서클릿을 회복하시겠습니까?]
그리고 떠오른 익숙한 선택창.
이번엔 거절 대신 승낙을 터치하자, 주나스가 다시금 아까와 같은 퍼포먼스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윽고…….
[주나스로부터 ‘요정왕 세리온의 숭고’를 건네받았습니다.]
빛을 잃었던 중앙의 보석이 환히 빛나는 상태로 되돌아왔다.
그 때문에 돌려받은 서클릿은, 흡사 왕관인 것마냥 화려하면서도 위엄 있어 보였다.
“와! 대박박!”
“왜요, 왜?”
“개 미친 옵션이 새로 추가됐어!”
하지만 내가 현중이도 아니고 그런 거나 살피고 있을 새는 없었다.
곧바로 설명창부터 읽어보니, 놀랍도록 뻥튀기된 수치들과 신규 옵션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요정왕 세리온의 숭고(디바인, 투구)>
* 방어력: 550
* 마법 방어력: 660
* 모든 속성 내성 +10%
* 모든 능력치 +30
* 최대 HP 및 MP +3000
* 초당 HP 및 MP 회복 +65
* 정신계 공격 마법 저항 +100%
* 스턴 저항 +50%
* 특수 스킬 ‘마법 흡수(!)’ 사용 가능(사용 대기시간: 1시간)
* 이 아이템은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 신마전쟁 당시 요정계를 다스렸던 12영웅 중 하나, 루엘 세리온의 서클릿입니다.
* “이곳에 모인 연합의 영웅분들께! 우리 페어리들이 왜 마법 종족으로 불리는지, 똑똑히 보여드리겠습니다!” - 몰살의 세리온 -
레전더리 때보다 근 3배 가까이 올라버린 기본 스펙들.
그중 정신계 공격 마법은 이제 면역이나 다름없는 100%를 달성했고, 스턴 저항마저도 25%에서 50%로 껑충 뛰어올랐다.
가뜩이나 회피 테크를 타 스턴에 걸릴 일이 거의 없어졌는데, 그마저도 확률이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2였던 강화 수치가 초기화된 게…… 전혀 아깝지 않잖아!’
이 투구 하나만으로 몇 개나 되는 CC기들이 무용지물 된 것인지…….
허나 그보다 더 사기적인 건, 새롭게 추가된 특수 스킬이었다.
“뭐가 새로 붙었길래 그러는데요?”
“마법 무효화 스킬…….”
“네? 무효화요? 그게 정말이에요?”
“어……. 진짜 디바인 템들엔 죽여주는 옵션이 하나씩 붙는구나.”
물론 같은 레전더리에도 상중하가 있듯, 같은 디바인이라고 모두 끝내주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특수 스킬이 붙은 디바인 템은, 보나 마나 디바인급에서도 상급에 속하는 것들이 분명했다.
* 마법 흡수: 그 어떤 마법이라도 서클릿에 흡수해 무효화 할 수 있습니다.
옵션창에 추가로 붙어 있는 스킬 설명.
단일 타겟팅이든 광역 마법이든지 간에, 발동 시 그 마법을 흡수해버릴 수 있다는 놀라운 내용이 적혀있었다.
‘이게 말이 돼? 정말 이것만 있다면!’
비록 한 시간에 딱 한 번, 자주 사용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모든’ 종류의 마법을 흡수한다는 사기 조건 앞에서는 결코 흠이 될 수 없었다.
지혜의 마탑주 뷔잔드가 사용했던 ‘헬 파이어’ 마법.
혹은 현중이가 끔살당했던 군단장 베르몬의 검은 번개 마법.
아니면 매 턴마다 중첩되어 급증하던 파미엘의 광역 마법 등등…….
그 모든 위협에서 ‘한 번’만큼은, 무조건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템이었기에!
“와! 뭐 이딴 스킬이 있냐? 아니, 뭐 이따구 템이 다 있냐? 스펙도 죽여주는데 특수 스킬은 더 쩔잖아?”
페리엘의 망토에 붙어 있는 ‘천사장의 보살핌’ 스킬과 더불어, 내게 또 하나의 막강한 생존기가 되어줄 스킬.
그러니 보나 마나, 이 서클릿은 내 새로운 평생템이 될 운명이었다.
“진짜 디바인 템은 뭐 하나 죽여주지 않는 게 없네요. 만약 이런 디바인 템들로만 온몸을 도배하게 된다면……?”
“그러면 시너지 효과가 더 장난 아니겠지. 드로 봐봐. 벌써 망토와 반지에 투구까지……, 감히 어느 누가 죽일 엄두나 낼 수 있겠어?”
라챤이나 현중이가 하는 말대로, 디바인 장비는 모이면 모일수록 더욱 막강한 효과를 보여줬다.
신검과 용살검이라는 두 디바인 무기로 타연 최강의 딜러가 된 나기에, 이건 모를 수가 없었다.
‘만약 여기에 디바인 갑옷까지 갖추게 된다면……?’
그땐 정말 진정한 일인무쌍.
혹은 ‘일인 군단’이라고 불러도 부족함 없을 캐릭이 탄생하게 되리라.
“다들 감사합니다! 여러분 덕분에 디바인 템을 또 하나 맞추게 됐네요.”
“우리가 뭘 했다고? 고마워하려면 제독이한테 해야지! 놈이 아니었다면 그 투구를 언제쯤에나 완성시켰겠어? 호구 제독아, 내가 다 고맙다잉!”
“오, 정말 그러네요? 그럼 이건 신의 선물이 준 게 아니라, 제독이 준 선물인 셈인가요? 하하!”
처음엔 조금 실망스러웠던 신의 선물.
하지만 결국 우리는, 최고 보상에 맞먹을 만한 성과로 뽑기를 마무리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