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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266화 (266/350)

266화 재회 (1)

“그럼 나도 먼저 올라가 있는다?”

“그래. 공성도 성공적으로 끝났으니까, 일단 다 잊고 400레벨부터 좀 빨리 찍어라. 알겠지?”

“옥케이! 너도 할 게 많은 건 알겠는데, 레벨업에 신경도 쓰고 좀 해라. 이 형님한테 역전 안 당하려면!”

“다시 또 형님이야? 폐하 어쩌고 하던 게 아까 전 아니었나?”

잠시 소란했던 건국 후 해프닝이 끝나고, 길드원들은 다시 하나둘씩 천계로 올라갔다.

48시간의 재입장 대기시간 때문에 한번 들어가면 내려오기 힘들어, 다들 만반의 준비를 마친 뒤 떠났다.

“됐고! 아무튼 쉬엄쉬엄하고 얼른 올라와라!”

“그래. 형님들 기다리실 텐데 얼른 가봐라.”

운 좋게 신의 가호란 버프를 알게 되고 벌써 세 개나 독식하게 됐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아직 천계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많지 않았다.

최근 발견된 루네아 지역의 인던, ‘타천사의 흔적’.

이곳 또한 곧바로 클리어해봤지만, 지상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난이도 낮은 반복 사냥터에 불과했다.

설정상 루네아는 가장 마지막까지 침식에 버텼던 지역인지라, 천계 입문 루트 과정으로 마련해둔 곳 같았다.

따라서 일단은 당장 눈에 보이는 천계 필드 보스들의 퍼스트 킬이 1차 목표였지만, 맵 탐험과 스토리 공략에 조금 더 집중할 필요성이 있었다.

무엇보다 신석의 쟁탈 조건이 어떤 건지, 남들보다 반드시 먼저 알아내야만 했다.

이번 공성전을 통해 재확인된 신의 가호의 엄청난 효과.

이걸 다른 길드, 특히 태성 라인에 뺏기는 일만은 절대 막아야 했으니까.

“다들 바쁘시네요. 헐레벌떡 떠나시는 걸 보니…….”

“그러고 보니, 래빗 님은 안 올라가세요?”

“저야 가봤자죠. 어차피 레벨 차이 때문에 사냥도 함께 못 할 텐데요. 아직 여기서 할 일도 많구요.”

다시 적막해진 아베르 주성 안.

홀연히 천계로 떠난 길드원들과 달리, 핑크래빗은 지상에 남아 있을 필요가 있었다.

가뜩이나 성 살림을 혼자 도맡아 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길드가 국가가 돼버렸기 때문이었다.

“근데 정말 래빗 님께 맡기길 잘했어요. 캐슬 방어 시스템이 이렇게 효과 좋을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요.”

“어때요? 제 말대로 이번 수성전에서 도움이 제법 됐죠?”

“확실히요! 성문 따위에 레전더리 템을 투자한 건 저희가 최초라 그런지, 사람들도 엄청 놀라 하더라고요. 성문이 하도 안 뚫리니깐 태성 애들이 얼마나 당황해 했는지 모르죠?”

“길마님처럼 가까이서 보진 못했지만, 충분히 느낄 수 있었어요. 분명 저번보다 많이 몰려온 것 같았는데, 이번 수성전엔 문조차 뚫지 못했으니까요. 인터넷 보니까 유저들도 엄청 비꼬더라고요. 헤헤!”

이번 수성전의 숨은 공로자.

그건 누가 뭐래도 핑크래빗이었다.

25개나 되는 성, 그리고 오랜 점령 기간.

그간 수많은 성길의 길마들이 무심코 넘겨만 왔던 시스템을 재발견했다.

물론 레전더리 템이 성문 강화에도 쓰인다는 걸 몰랐을 수 있지만, 알았더라도 과감히 투자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손수 본인의 사비를 투자해, 멋진 성과를 만들어냈다.

차후 공성전의 판도를 바꾸게 될지도 모를 업적을, 내 길드원이 밝혀냈다는 사실이 새삼 기특하고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근데 다음 공성전 있잖아요…….”

“오, 벌써부터 다음 달을 준비하게요?”

“네. 이번에야 태성도 몰라서 막혔겠지만, 다음 달은 안 그럴 거잖아요? 그래서 결재 좀 부탁드릴 게 있는데요.”

“결재요?”

“성 경비병들 있잖아요? NPC들이요. 레벨업 좀 시키고 싶은데 골드가 좀 많이 들더라고요. 어떻게 180만 골드 정도만 투자해도 괜찮을까요?”

“180만이라면 1억 8천이네요?”

경비병 훈련.

이것도 캐슬 방어 시스템의 하나로, 이미 알고 있는 파트였다.

역시나 다른 성길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돈 잡아먹는 시스템.

하지만 이미 핑크래빗의 말을 들어서 효과를 톡톡히 본 터라, 돈 낭비 같아 보이긴 했지만 거절할 것까진 없었다.

“괜찮을 것 같아요. 한 번 해보세요. ”

“어머, 정말요? 고마워요!”

“뭘요. 이미 믿고 맡기기로 했으니까 팍팍 밀어드려야죠. 골드는 외성 마을 수입으로 처리해도 부족하지 않겠죠?”

“네, 맞아요! 공성도 끝나서 이번 달 임대료를 올려 받을 수 있을 테니, 충분히 쓰고도 남을 거예요!”

“그래요? 그래도 너무 많이 올리면 불만이 생길 수 있으니까, 적당히 받으세요. 물론 알아서 잘하시겠지만요.”

“그 사람들한텐 좀 더 받아도 돼요. 매장이 시공 포탈 앞이라 돈을 얼마나 쓸어 담는데요!”

“하핫! 그래요? 아무튼 그들도 투자한 대가를 받고 있는 거니까 너무 매정하게 굴진 마세요.”

세금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성이지만, 그래도 수익이 제로인 건 아니었다.

이유는 역시나 부동산 수익 때문.

어떤 성이든 성 소유의 건물을 임대 줘서 들어오는 금액은 생각보다 짭짤해서, 아무리 저레벨 지역의 성이라 해도 성길은 성길이었다.

“원래부터 아베르 성 경비병 레벨은 최고 수준이었잖아요? 여기다 레벨업까지 꾸준히 투자해주면 나중엔 정말 장난 아니게 도움 될 거예요.”

“정말 그러겠네요. 저도 최근에 느끼고 있는데, 좋은 것들은 하나씩 추가될 때마다 덧셈이 아니라 곱셈으로 적용되는 느낌이더라고요. 템도 그렇고 버프도 그렇고…… 이 캐슬 방어 시스템도 원래는 그런 의도로 만들어진 것 같아요. 그래서 투자 초창기엔 효과가 미미할 수밖에 없는데, 사람들이 진가를 몰라본 거죠!”

“역시 우리 길마님! 제가 생각과 똑같아요! 냉기 화살에 이어 성문 강화까지 됐으니, 이제 레벨만 오르면 훨씬 강력해질 게 분명하거든요! 늘어나는 비행 부대를 처리해줄, 비장의 대공 부대가 돼주지 않을까요?”

평소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을 즐겨했다던 그녀.

가까이서 보고 있자니, 이런 인재가 좌판만 깔고 레어 템 되팔이만 해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런 건지도…….’

나만 하더라도 게반 마을에서 반복 퀘 노가다를 하다 그녀와 만났다.

그녀가 날 만나지 않았다면 여전히 광장에서 매입만 외치는 소규모 장사꾼에 머물렀겠지만, 우연히 신검을 줍지 않았다면 나 또한 랭킹 1위나 국왕 같은 놀라운 위치에는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지금도 지원만 충분하다면, 그녀처럼 재능을 꽃피우거나 나처럼 탑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유저들도 얼마든지 묻혀있다고 해석할 수 있었다.

‘그러니 자만하지 말고 항상 조심하자. 영원할 것 같던 다리우스의 1위 자리를 내가 뺏은 것처럼, 나도 영원할 순 없을 테니까.’

건국으로 들떴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핑크래빗과의 대화로 새삼 많은 것을 깨달았지만, 아직 그녀에게 한 가지 더 볼 일이 남아 있었다.

“……아무래도 타이탄 제작 연구소는 만드는 게 좋겠죠?”

“그럼요! 돈이 얼마나 들어가던 시간이 얼마나 들던, 그건 만들어야죠! 설마 안 만드실 생각이셨어요?”

“그건 아니지만…… 1성 국가가 되면 제작 하나 하는 데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요. 솔직히 솔저급은 만들어 봤자 성능이 썩 뛰어난 것도 아니고요.”

“에이, 돈도 많으신 분이 무슨 그런 걱정을 하고 계세요? 뭔가 방법이 생기겠죠! 이제 막 등장한 지 반년밖에 안 된 시스템인데,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도 얼마나 많겠어요?”

500만 골드.

국가가 되면 할 수 있는 특권 중 하나인 ‘타이탄 제작 연구소’의 설립 비용이었다.

무척이나 비싼 편이었지만 타이탄을 제작할 수 있단 메리트를 생각하면 수긍이 가는 금액.

문제는 성을 많이 갖고 있을수록 자주, 성이 적을수록 간혹 제작에 도전할 수 있다는 시스템이었다.

몇 번씩 실패가 뜰 테니 5성이어도 잘 만들 수 없는데, 1성 국가가 연구소를 가질 필요가 있을까?

돈 때문이 아니라 효율이 문제라서 살짝 망설였는데, 듣고 보니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이번 캐슬 시스템처럼, 뭐든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면 일단 시도해보는 게 좋았으니까.

[5,000,000 골드를 소모하여 타이탄 제작 연구소를 설립하시겠습니까?]

[YES]

내친김에 핑크래빗과 함께 아베르 성의 총관인 요나탄을 찾아갔다.

그리고 곧바로 거금을 넘기고 연구소를 설립했다.

“잘하신 거예요. 타이탄 연대기란 게임을 하는데 타이탄에 투자하는 돈을 아끼시면 안 되죠.”

“안 만든다고는…… 하지 않았다니까요…….”

“어허, 제 말에 토 달지 마시고요! 그리고 길마님, 창고에서 그거 좀 꺼내서 저한테 넘겨주세요. 연구소가 완공되면 확인해 볼 게 있으니까요.”

“네? 어떤 거요?”

게임답게 연구소가 뚝딱 하고 만들어지면 좋으련만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곧 천계로 올라갈 나로서는 타이탄 연구소가 완공돼도 바로 이용할 수 없었다.

“파괴된 타이탄의 정수 조각이요. 그거 갖고 계시다는 걸 들었어요. 아마 타이탄 연구소에서 활용할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아…… 맞네요! 그 아이템이 있었지!”

가이라 제국의 침공 당시 타이탄들을 부수고 얻게 된 ‘파괴된 타이탄의 정수 조각’.

유저가 탄 타이탄은 역소환만 가능하지 파괴는 할 수 없어, 현재 이 템을 갖고 있는 유저는 대부분 우리 길드원뿐이었다.

하지만 그 쓰임새를 알지 못해 오랫동안 창고에 처박아둔 채 잊고 있었던 템.

핑크래빗은 살림꾼답게, 내가 놓치고 있던 부분을 기가 막히게 캐치해줬다.

“제가 괜히 설립을 밀어붙인 게 아니랍니다?”

“그러네요. 아! 정말 일을 너무너무 잘해서 이뻐 죽겠네요!”

“네? 그게 무슨……?”

“하하! 말이 그렇다고요. 아무튼 바로 꺼내드릴 테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네.”

그렇게 난 국왕으로서의 업무를 대략적으로 끝내고 지옥불 형님을 찾아뵀다.

그리고 짧은 대화를 나눈 후, 곧바로 세계수로 향했다.

우리가 오픈한 신규 맵들.

그중 천계는 내가 하도 학살하며 통제했더니, 태성 라인 놈들이 대신 생명의 숲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숲 곳곳에서 작업장 비슷하게 자리를 잡고 사냥 중이란 소식을 전해 들었다.

진작부터 오고 싶었지만 입장 제한에 매인 탓에 미뤄왔던 곳.

그러니 지상에서도 한바탕한 다음, 천계로 올라갈 생각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나무들이 많은 숲은, 내가 마음 놓고 활약할 수 있는 최애 필드였으니까!

* * *

“그래서 잠깐만 돌려고 시작했던 게, 온종일 돌게 됐다는 거지?”

“어, 어쩌다 보니. 우리가 천계에 처박혀 있는 동안, 놈들은 오히려 맘 놓고 깽판 짓을 벌이고 있었더라고. 피닉스가 필드전에서 밀리다 보니 더더욱 활개 쳤던 것 같더라. 천계에서만 깨갱이었지, 지상에서는 완전 깡패나 다름없더라고!”

한 번만 돌고 올라가려 했는데, 하다 보니 타연 전 필드를 돌아다니며 태성 라인을 PK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덧 오후를 다 써버리고 저녁이 된 뒤라, 결국 천계는 내일로 미루고 로그아웃했다.

“그려 잘했다. 근데 암만 그래도…… 레벨업도 좀 신경 써야지. 태성 라인의 랭커들도 곧 있으면 400렙 찍을 텐데.”

“당연히 신경 쓰고 있지. 형이 저렙들은 안 잡는 거 몰라? 고렙 유저들이 경험치를 얼마나 짭짤하게 주는데?”

“됐다, 이 자식아. 내가 괜한 걱정을 했네.”

띵동!

그런데 평소처럼 녀석과 대화를 나누던 도중, 갑자기 로비 현관문의 벨 소리가 울렸다.

“어? 뭐지? 너 뭐 배달시킨 거 있냐?”

“내가 돼지냐? 아까 저녁 먹었는데 뭘 또 시켜? 그럴 시간이나 있었고?”

어떨 때는 일주일 동안 집밖에 한 번도 안 나갔던 현중이와 나.

마치 격리라도 된 것처럼 타연에만 몰두하는 우리를 찾아올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당연히 별일 아닌 거로 생각하며 인터폰을 보자, 웬 낯선 얼굴이 서 있었다.

“그럼 누구지?”

“양복을 입은 걸 보면 관리실이나 방재실 아저씨는 아닌데?”

묵묵히 카메라를 응시 중인 젊은 남성.

아무 반응이 없자 한 번 더 초인종을 눌렀다.

“집을 잘못 눌렀나 보네.”

“됐으니까 신경 꺼. 로비의 직원 분이 알아서 해주겠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테라팰리스는 고급 주상복합이라, 외부인이 출입하려면 로비 현관문을 먼저 거쳐야만 했다.

따라서 처음엔 그저 단순히 집 번호를 잘못 입력한 사람인 줄 알았다.

모니터 속 젊은 남성이, 내 이름을 부르기 전까진.

- 강지환 씨 계십니까? 잠시 좀 만나 뵐 수 있을까요?

“뭐야? 널 찾고 있잖아?”

“……뭐지 정말?”

날 찾아올 사람이 있었나?

이곳 집 주소는 우리 부모님께도 알려드리지 않았는데?

- 이 문 좀 열어주고, 잠깐 밑으로 내려와 보지? 만나서 할 얘기가 있으니까.

그 순간, 젊은 남성을 밀치고 다른 사람이 모니터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익숙한 목소리, 그리고 무척이나 낯익은 얼굴을 가진 한 남자가.

- 얼른 문 좀 열어 줘 봐. 이렇게 고등학교 ‘동창’이 직접 찾아와 줬는데, 그래도 인사는 해야지 않겠어?

줄곧 인터넷이나 TV로만 봐왔던 다리우스.

현실 속 박태후가, 내 집 앞에 불쑥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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