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화 개전 (4)
-진짜 버닝스타 놈들 누가 견제할 필요성이 있긴 해. 잘나가는 건 알겠는데 나대도 너무 심하게 나대.
-솔직히 지들끼리만 해 처먹는 거 꼴불견이긴 함.
-산드로가 지금까지 번 것만도 몇백 억은 넘는다지? 사실상 태성한테 복수한다는 핑계로 지 욕심만 채우는 거 아니냐? 태성 PK해서 먹은 템만 해도 수백 개라던데?
모두의 우상이자 현실 속 연예인보다 더욱 신비로운 존재.
수천만 유저 중 단 180명만 얻을 수 있는 영광의 자리, 랭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단어는 마치 그 자체만으로도 빛나는 듯 드높았다.
필드나 방송에서 그들의 위력을 직간접적으로 볼 수 있었기에, 그들은 언제나 동경과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한데 지금은 전혀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존중은커녕 오히려 댓글만 봐서는, 전부 우리 버닝스타와 원수진 사람들만 모여있는 것 같았다.
“태규 오빠, 안티라뇨……. 이 많은 사람들이 전부요?”
“사실 태성이 작정하고 불을 지피긴 했겠지. 올타가 아무리 핫한 커뮤니티라 해도,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마냥 이렇게 금방 이슈가 되진 못할 테니까. 하지만 전부 다 조작일 순 없는 법이야.”
조심스럽게 묻는 연우.
물론 우리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았다.
-또또 태성 놈들 지령 떨어졌나 보네. 버닝스타가 중립 유저를 선공했다고? 세금도 안 받을 정도로 욕심 없는 길드가 그런 짓을 해? 놀고들 있네.
└흑풍단들 그새 소문 듣고 모였냐? 아발란체가 쓴 글에 웬 태성 타령?
└└씨앙! 뭐 시든 간에 우리 싼드로는 좀 가만 냅둬라잉? 구라치다 걸리면 나한테 뒈질 줄 명심허고!
바로 흑풍단들.
하지만 급격히 올라오는 악플에 묻혀 가뭄에 콩 나듯이 보기 힘들었다.
즉 누군가 이 게시글만 읽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를 비매너 악당들로 오해해도 할 말 없을 정도였다.
“태성 놈들 외에, 진심으로 비난하는 일반 유저도 많다는 뜻이에요?”
“암만 그래도…… 이렇게나 욕으로 도배될 순 없는 거잖아요! 우릴 싫어하는 안티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많았는데요?”
댓글을 살피던 라챤이와 현중이가 어느덧 평정을 잃고 흥분한 채로 물었다.
맞는 말이었다.
피닉스 라인은 차치하더라도, 나를 좋게 봐온 유저들이 흑풍단만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형님 말씀이 맞아. 대다수의 사람들은 진실 따윈 신경 쓰지 않는 거야. 특히 우리한테 뭔가 씹을 거리가 안 생기나 건수만 기다려온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네? 저희를 왜요?”
내 대답에 어이없어하는 라챤이.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 우리가 최선을 다한 결과들이…… 누군가에겐 좋게 보이진 않았나 보지.”
“설마 천사장들을 전부 독식한 것 때문에……? 말도 안 돼요! 예전 랭커들이 허구한 날 보스 독식할 때는 괜찮다가, 갑자기 지금 저희한테만 그런다고요?”
사실 그동안 이미지 관리에 신경도 많이 쓰고, 나름 베풀면서 플레이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런 반응은 사뭇 충격적이었다.
허나 어리둥절해하는 우리와 달리, 축빙 형님은 왠지 그 이유를 아시는 것 같았다.
“아마 보스 때문은 아닐 거다. 내 생각엔 신의 가호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
“네? 신의 가호가 왜요?”
“따지고 보면 이것만큼이나 박탈감이 피부로 와닿는 것도 없으니까……. 불만이 쌓이고 쌓인 건지도…….”
그런 형님이 짚어낸 건 ‘신의 가호’였다.
사실 이젠 가호 버프가 없는 스펙은 상상도 못 할 만큼 익숙해졌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 입장에서였다.
같은 라인 식구 및 흑풍단을 제외하곤, 여전히 가호는 절대다수의 유저들에게 언감생심일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너무 우리만 생각하면서 게임해 왔구나.’
현재 내 레벨은 426.
아직 랭커들 중 절반 이상이 400도 도달 못 했단 걸 고려해보면, 정말 압도적인 레벨이었다.
심지어 랭킹 1위를 달성한 후 제국 제일의 인재 효과가 사라졌는데도, 2위와의 격차가 줄어들기는커녕 계속 벌어졌다.
여기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신의 가호를 빼놓을 수 없었다.
한 달간 모든 공격력과 방어력이 20% 증가.
한 달간 최대 HP와 MP가 50% 증가 및 회복 속도 증가.
한 달간 모든 스킬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25% 감소 등등…….
하나만 있어도 사기인 버프가 3개나 중첩되다 보니, 레벨업 속도가 오히려 더 빨라진 것이다.
일반 유저들은 매일 랭킹 게시판에 경신되는 레벨과 우리 길드원들의 약진을 보며 허탈감을 느꼈을 거고.
무엇보다 흑풍단과 같이 주변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는 유저들 때문에 그 차이를 더욱 실감했을 것이다.
-개눔 새끼들. 태성과 싸운대서 좋게 봐줬더니 결국 똑같은 놈들이었어. 아니, 한다는 쌈은 안 하고 사냥질만 하며 비싼 템만 독식하고 있으니 더한 새끼들인가?
└말이 거칠긴 해도 틀린 소린 아님. 신의 가호가 등장하기 전이 그나마 우리 같은 유저들이 게임하기엔 좀 더 공평하고 할 만했음.
└└사실 내 친구도 흑풍단이라 가호를 2개나 받았는데.... 레벨도 비슷하던 놈이 이젠 나보다 10이나 더 높아졌더라... 이대로 한두 달만 더 지나면 같이 사냥도 못 하게 될 듯.
“이거 봐봐. 이건 누가 봐도 일반 유저들이 쓴 글 같잖아? 근데 뭐라고 하고 있어? 대부분 신의 가호에 대한 불평이지?”
축빙 형님의 말대로였다.
‘어쩌면 신의 가호는 우리에게 양날의 검이었는지도…….’
워낙 좋은 버프라 태성에게 한 개도 뺏길 수 없다는 다급함.
그 서두름 끝에 획득한 3개의 가호는 과연 엄청난 효과를 발휘했지만, 그로 인해 많은 일반 유저들로부터 급격히 반감을 사게 되는 부작용이 발생됐다.
“그럼 이제 어떡할까요? 지금부터라도 일반 유저들한테 신의 가호를 퍼주기라도 할까요?”
“그건 무리야. 가호를 내려주자고 천사의 눈물을 소진할 순 없잖아.”
“본인들이 구해오면 주는 식으로는요?”
내 반문에 축빙 형님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진지한 어투로 말했다.
“드로…… 아니, 지환아. 잘 들어.”
“네? 네, 형님.”
“이런 일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지 마. 극단적으로 말하면, 여기 있는 글들은 전부 다 태성 놈들이 쓴 거라고 치부해도 좋아. 사람들에게 가호를 나눠주자고? 정말 그러길 원해? 천 명을 주면 만 명이, 만 명을 주면 십만 명이 해달라고 달려들 텐데? 곧 효과도 경신해야 할 텐데, 그럴 정신이나 있겠어?”
“…….”
“괜히 이런 글로 휘둘리지 말고…… 넌 하던 대로만 해. 형이 보기엔 넌 지금 너무 잘하고 있다. 레벨 차이도 충분히 벌려놨고 이번 달만 해도 타이탄을 벌써 4대나 새로 얻었지. 이대로 한 번만 더 신의 가호를 경신해서 성장하게 되면, 태성이 우리를 당해낼 수 있겠어?”
“아마 그때쯤이면…… 모두 다 함께 놈들을 아주 잘근잘근 밟아버릴 수 있겠죠.”
“그래, 맞다. 그러니 일단은 조금만 더 웅크려서 힘을 모아보자. 천계든 마계든 어떤 변수가 닥치든 간에, 우리의 최우선 목표는 태성의 몰락이니까. 알겠니?”
“……네.”
“이 글에 대한 해명 글은 내가 적을게. 지환이 네가 이런 일 하나하나에 반응하면 논란만 더 커질 테니, 최대한 전면엔 나서지 마. 부길마인 내가 적으면 그래도 어느 정도 수습은 될 거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 빠졌을 때, 축빙 형님은 늘 우리 길드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었다.
오늘도 형님의 차분한 분석을 듣다 보니, 어느새 걱정이나 불안, 억울함 같은 것들이 사라졌다.
한곳에 함께 모여 살게 된 것에, 의외로 이런 장점이 숨어있었다.
“그래요, 오빠. 자기들도 뭘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 이딴 언플만 하는 거 아니겠어요? 괜히 말려들지 말아요, 우리.”
원래 잘나가다 보면 이런저런 일도 생기는 법.
그간 겪어온 어려움에 비하면 이런 일은 작은 해프닝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결론짓고, 가짜 여론 따위에는 반응하지 않기로 결론지었다.
* * *
“어라? 타연 공공의 적이 여기 계셨네요?”
“…….”
밤새 뒤척이다 선잠을 자고 접속한 이른 아침.
어제와 같이 이테른에서 사냥을 시작한 내 곁으로, 누군가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돌아보니, 정말 재수 없게도 어제 시비가 붙었던 아발란체 파티원들이었다.
“와, 설마 여기서 솔플 중인 거예요? 역시 독식 지존, 산드로 답다고나 할까?”
“…….”
“돈도 잘 벌고, 레벨업도 잘 하고…… 못하는 게 없네요. 아하! 그러고 보니 수작도 잘 부리죠?”
“뭡니까? 절 찾아다닌 겁니까? 적당히들 하시죠?”
계속된 도토리의 도발.
못들은 체하며 사냥에 집중하려 했는데, 도저히 대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맨날 그렇게 명분 있는 척, 유저를 위하는 척하더니만……. 다 뽀록났죠? 지들은 그렇게나 욕하던 태성보다, 더 드럽고 악랄한 놈들이란 게?”
“3자인 척 굴지 마시죠? 댁들 아발란체는 이미 태성과 한패라는 거 다 알고 있으니까요.”
“에이, 확신을 못 하니까 선공 안 하시는 건 아니고요? 한 패인지 아닌지는 까봐야 알죠. 당신네들이 수작질 부리다가 다 까발려진 것처럼요!”
“맞아맞아! 다 돈 때문에 그랬던 게 전부 들통났잖아! 산드로! 이제 가면을 벗어! 사실 복수 핑계로 마음껏 PK해서 떼돈 벌고 싶었던 거라고!”
곁에 있는 동그라미마저 득달하며 소리치자, 인내심의 한계가 느껴졌다.
어젯밤.
축빙 형님은 해명 글을 통해 라챤이가 머더러가 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리고 이건 언플을 위한 고의적인 함정이었다는 코멘트까지 달았다.
그러자 뭔가 이상한 것 같았다는 글들이 올라오며 댓글 여론이 반반쯤으로 희석되어 갔는데…….
새로운 글 하나가 더 올라왔다.
작성자 다리우스.
이젠 비록 랭킹 2위지만, 아직도 가장 유명한 유저.
놈이 장문의 글을 올려 꺼져가는 논란에 기름을 부어버렸다.
-[필독] 다들 산드로와 버닝스타에 속고 계신 겁니다.
-어쩌다가 오늘 저녁 있었던 아발란체 길드와 버닝스타 간의 논쟁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게 됐습니다. 사실 타연 속 일로 이렇게 현실에서 왈가왈부하는 건 최대한 자제해 왔지만... 버닝스타 길드의 뻔뻔함 모습에 이렇게 처음으로 글을 적습니다.
놈은 처음부터 격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그동안 산드로가 천계에서 숱하게 뒤치기하며 수많은 길드원과 동맹들을 죽여도 조용히 참아왔습니다. 어찌 됐건 간에 버닝스타와 저희는 엄연히 적대 관계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레이드 도중, 중립 유저분까지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 나니 역시나 이제 슬슬 본색을 드러낸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다 용기 있는 아발란체의 폭로를, 오히려 거짓이라고 기만하는 놈들의 태도에 더는 참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저희는 한 가지 비밀로 하고 있던 일이 있습니다. 밝혀봤자 좋은 일도 아니고, 당한 저희에게도 부끄러운 일이라 밝히지 않았었죠. 하지만 두 길드 간의 다툼을 지켜보다가, 누가 정말 거짓을 말하고 있는지 밝히고자 저희도 공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현재 버닝스타 길드에 가입되어있는 길드원이자 랭커인, ‘연우’. 그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태성 1군의 길드원이었습니다. 제가 신검을 드랍하던 당시부터 산드로가 투입해놓은 스파이였죠.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 길드로부터 숱한 비밀 정보를 빼가며 버닝스타 길드의 성장을 도왔습니다. 즉 버닝스타가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우리 길드에 투입해 놓은 배신자 때문이었습니다.
터무니없는 다리우스의 고백.
하지만 올타에 처음 글을 쓰는 녀석이 이런 내용을 적자, 사람들은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동영상 녹화 같은 기능이 없는 타연인지라, 사람들은 드러난 정보를 토대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분명 태성 라인에 있던 유저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버닝스타에 들어가 있는 게 이상하긴 했어...
└└그러게? 그렇게 원수라는 태성 길드원을 산드로가 받아들였다? 이거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스파이란 게 들켜서 돌아왔다면 모를까!
무엇보다 놈의 글에 신빙성을 가져다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내 놀라운 활약상이었다.
└이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되네. 솔직히 신검 하나 주웠다고 산드로가 이렇게나 잘 큰 게 기적 같았는데.... 전부 태성의 정보를 스틸해서 큰 거였구나!
└└이게 사실이라면 다리우스만 개불쌍한 거 아님? 멀린한테 배신당한 후에도, 또 다른 배신자를 부하로 데리고 있었다니.... 이러니 랭킹 1위에서 밀려날 수밖에!
도토리가 올린 글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파급력.
거기다 놈의 글에는 반박 글도 올라오지 않아, 하룻밤 새 우리에 대한 여론은 급속도로 악화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