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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289화 (289/350)

289화 바다의 왕 (1)

“와! 도착했다. 여기다 여기!”

“이 건물은 뭔데 몹이 나오는 거야? 성이 맞긴 맞아?”

거대한 물탱크에서 수도꼭지라도 열린 듯.

성문에서 끝없이 튀어나오는 몹들을 잡다 보니 주변에 유저들이 점점 늘어났다.

우리보다 앞서 입장하고 후에 들어온 일반 유저들이 소문을 듣고 몰린 것이다.

“여러분! 괜찮으시면 성안으로 광역기 좀 넣어주세요! 입구는 저희가 단단히 막고 있으니까 위험할 일 없습니다!”

겨우 만난 다리우스네 패거리가 언제 어디로 도망칠지 모르는 상황.

처음 수중왕국에 오자마자 시공의 틈새나 천계처럼 귀환 주문서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은 확인했다.

하지만 조금 전과 같이 내가 모르는 어떤 방법을 또 사용할지 모르는 법.

그러니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이 몹들부터 속전속결로 치우는 게 우선이었다.

“파이어 볼!”

“멀티 샷!”

그렇게 시작된 유저들의 물량 공격.

처음엔 띄엄띄엄 날아오더니, 곧이어 수백 개의 공격이 쏟아졌다.

“경험치 실화야? 완전 대박이닷!”

“뭐 이리 마을이랑 가까우면서 몹도 많은 개꿀 필드가 다 있어? 수중왕국 쩌는데?”

“으하하핫! 이제부터 난 여기 죽돌이다! 입장료만 비싼 천계는 이제 안녕!”

가장 선두에 선 우리 버닝 스타 뒤로, 어느덧 오륙백 명이나 되는 유저들이 모였다.

페가수스가 없다면 올 수 없는 곳이었으니, 대부분이 타연 속 고레벨 유저들.

그렇다 보니 수중왕국의 몹들이 강하긴 했지만, 금세 정리됐다.

심연의 구슬은 그저 주변의 몹들이 몰리도록 만드는 템이었지, 몹 생성 기능이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퍼석.

내 공격에 깨지는 주먹만 한 회색 구슬.

몹들의 덩치에 가려 숨겨져 있던 심연의 구슬이 하나둘씩 깨지기 시작했다.

[당근당근단검: 2층 난간 제거 완료!]

[대탐험시대: 천장 구석도 제거 완료요!]

테네시 단검으로 구슬이 보이는 족족 부수는 당당이와, 펠아린의 날개 부츠를 활용해 우리들은 접근하기 힘든 곳까지 뒤진 대탐이.

그 덕에 우리는 짧은 시간 만에 10개가 넘는 구슬을 찾아낼 수 있었다.

[축복받은얼굴: 이 미친놈들! 도대체 심연 구슬을 몇 개나 설치해 둔 거야?]

심연 구슬은 경험치나 다름없는 어비스 수치로 교환하는 것이라 값으로도 따지기 힘든 템이다.

한데 이 좁은 성안 곳곳에 이렇게나 많은 구슬을 설치해 뒀다니.

몹들이 미친 듯이 몰려와서 성이 터져나갈 듯이 뭉쳐있을 만도 했다.

“오! 내부도 제법 특이하고 멋진데? 역시 수중왕국은 일루전이 각 잡고 관광용으로 만든 도시인가 보다!”

“근데 몹들은 어딜 통해서 들어온 거지?”

“밖에서 봤을 땐 성의 절반이 수막 건너편에 잠겨 있었잖아. 그러니 우리가 들어온 반대편에 있지 않을까?”

그렇게 앞장서서 안을 정리하며 구슬을 처리하자, 어느새 유저들도 따라 들어와 떠들 정도로 안전해졌다.

‘이쯤이면 할 만큼 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들이 더 몰리기 전에 해야 할 일에 돌입했다.

잠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다리우스와 그의 파티를 찾는 일을.

[라스트챤스: 흩어져서 찾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산드로: 아니야. 찾지 못하는 것보다 찾았는데 놓치는 게 더 억울할 것 같다. 놈들 수가 적은 것도 아니니까, 이대로 풀 파티 유지한 채로 찾겠습니다!]

[축복받은무빙: 그래, 드로 말대로 하는 게 좋겠다!]

적을 죽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죽지 않는 건 더 중요하다.

뿔뿔이 흩어지는 것보다는 전원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수색하며, 우리는 빠르지만 신중하게 전진했다.

“와…… 안이 제법 깊네요? 그쵸 오빠?”

“그러네. 확실히 일반적인 성은 아니야.”

곁에서 연신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을 멈추지 않는 연우.

그녀의 말처럼, 우리가 처음 들어왔던 곳은 일종의 전실(前室)이나 마찬가지였고 그 뒤로 길고 긴 여러 복도가 이어져 있었다.

다리우스가 나타났던 통로를 골라 들어오긴 했지만, 그저 목적지를 잃고 헤매는 몬스터들만 마주칠 뿐.

다른 성에서 볼법한 메인홀 같은 장소는 여태 나타나지 않았다.

비록 높이는 낮을지 몰라도, 면적만큼은 그 어느 곳보다 넓은 성인 듯싶었다.

“맞아요. 어떻게 보면 일종의 던전 같은 구조 같기도 하네요.”

평소 파티를 리딩하는 탱커답게, 연우는 맵을 파악하는 능력이 수준급이었다.

나 또한 마침 같은 생각이 들던 참이었던 것이다.

‘성이 아니라 필드 던전이라…….’

수중왕국이라는 콘셉트답게, 이 성이 ‘왕성’이란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정확한 용도는 아직 단정 짓기 일렀는데, 아무리 봐도 여긴 ‘공성전’ 등을 통해 점령할 수 있는 성은 아닌 것 같았다.

“대탐아, 네가 보기엔 여기가 뭐라고 생각해?”

“저도 다 듣고 있었어요. 제 오랜 탐험 짬밥상, 여긴 던전일 확률이 99%입니다.”

대탐이까지 이렇게 말할 정도면 확실했다.

그렇다면…….

“그럼 이 성 어딘가에 보스룸이 있을 수도 있겠네?”

“네? 설마요!”

“왜? 우리 추측이 사실이라면 없는 게 더 이상하잖아.”

유명 필드 던전인 레던만 하더라도, 마지막 층에 도착하면 레인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니 이곳의 정체가 던전이 맞다면 당연히 필드 보스도 있을 것이다.

‘수중왕국의 성이니까…… 아마도 보스는 이 도시의 왕일 가능성이 높겠지? 그렇다면 놈들이 심연의 구슬을 설치한 것도 모자라 입구까지 나와서 시간을 끈 이유는……?’

“설마 보스 타임이 다돼서?”

원하던 무엇을 아직 끝마치지 못했거나…….

아니면 최대한 버티며 기다리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

모든 것을 종합해볼 때 후자가 유력했다.

“네? 드로 형님, 뭐라고요?”

“다들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서둘러야겠어요! 꼬이는 몹들은 나중에 한꺼번에 잡고, 일단은 달려요! 현중아 어서!”

“어? 어, 어!”

생각해보면 놈들에게는 이곳을 벗어날 시간이 얼마든지 있었다.

일반 유저가 천 명 단위로 몰려올 동안 도망칠 틈이 없었다는 건 말도 되지 않았으니까.

한데 놈들은 이곳이 들킨 걸 알아챈 후에도 3시간 동안, 도망치기는커녕 다른 짓을 꾸미고 있었다.

심연 구슬의 유효 시간은 24시간.

본인들은 사냥할 수도 없는 몹을 위해 값비싼 구슬을 수십 개나 사용했을 린 만무.

분명 곧 있으면 쳐들어올 유저들을 저지하고자, 몹들을 이렇게나 많이 몰려들도록 작업한 게 확실했다.

“와! 여기 뭐야? 타연에 이런 곳이 있었어?”

그렇게 달려서 도착한 곳, 성의 메인홀.

거대한 강당만큼이나 큰 곳에 수십 개의 석상이 양 갈래로 줄지어 서 있었고…….

정면 끝에는 거인이나 앉을 법한 거대한 왕좌가 텅 빈 채로 있었다.

그리고 그 왕좌 뒤에는, 마치 가로세로 수십 미터는 넘을 듯한 유리벽이 있는 것처럼 바닷속 풍경이 여과 없이 펼쳐져 있었다.

잔잔하게 헤엄치는 크고 작은 물고기와 거북이, 상어 등등…….

바닥부터 천장까지 빈틈없이 이어진 수막은 바닷물을 완전히 차단해서 안과 밖을 완벽하게 분리하고 있었다.

한데 그 모습이 정말이지 신비롭고 아름다워 경외감마저 들 지경이었다.

“끄륵! 꾸루륵!”

철퍽철퍽.

한데 마치 스크린 속 캐릭터가 튀어나오듯, 그 거대한 수막을 뚫으며 무언가가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이곳으로 넘어오자마자 발이 돋아나는 기괴한 모습.

지금껏 질리도록 죽여온 심해 머맨과 기타 몬스터들이었다.

“오호…… 이런 식으로 몹들이 넘어온 거구나?”

“이야, 여기 진짜 재밌고 편한 사냥터였네?”

예전 나와 같이 바닷속에서 전투를 하는 유저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헤엄치며 몹들을 상대하는 사냥 방식을 선호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따라서 추측건대 이 성은, 개발자들이 그런 유저들도 편하게 사냥할 수 있도록 배려해서 이런 모습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됐어! 볼 거 다 봤으니까 빨리 이동하죠!”

“네? 드로 형님, 수막 건너편은 조사 안 하고요?”

“볼 것도 없어. 저긴 밖이잖아? 다리우스 놈들은 무조건 이 성안에 있다.”

성 밖으로 이동할 놈들이었으면 굳이 성안에 심연 구슬을 풀었을 리 없다.

틀린 판단일 수도 있지만, 지금은 몹이나 잡으며 뭉그적대기보단 수색이 우선이었다.

여기가 필드 던전이 맞다면 어딘가 다른 곳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을 것이고…….

“찾았다! 저기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어요!”

다행히도 라챤이가 그곳을 타이밍 좋게 찾아냈다.

“다들 전속력으로 따라오세요. 몹이 얼마나 쫓아오든지 간에 보스룸까지 멈추지 않고 달리겠습니다!”

그리고 난, 우리 길드원들의 생존력을 믿고 앞장서서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 * *

“여, 여기서부턴 조금만 천천히!”

“그래, 드로야. 지금부턴 뒤 좀 보면서 달려라!”

지하로 내려온 우리는 마침내 지하 5층에 도달했다.

왕성답게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진 던전이 아닌지라, 미친 척하고 달리니 순식간에 돌파한 것이다.

머맨 정예병, 머메이드 주술사 등등…….

갈수록 강력한 몬스터들이 나타났지만, 우리에게 위협이 되진 못했다.

수백 마리도 겁내지 않고 과감히 몸을 던지던 나를 비롯해, 2차 전직을 마친 현중이와 연우 등의 막강한 탱커들이 모든 공격을 대신 맞아줬기 때문.

다행히 다음 층에 도착할 때마다 어그로가 풀렸기에, 5층까지는 꽤나 수월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우리라서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다들 고생하셨어요. 그래도 조금만 더 힘내보죠! 이 층은 뭔가 좀 다른 것 같으니까요!”

하지만 다리우스 패거리는 이곳 몬스터들에게 아무런 공격도 받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가 아무리 서둘렀다 해도, 놈들은 진작 이곳을 통과했을 터.

그 생각 때문에 조급했지만 그래도 이번 층에 도착하니 조금 여유가 생겼다.

“그러네? 층고가 지금까지보다 서너 배는 더 높은 거 같은데? 땅도 대리석이었던 건물 바닥과 달리 무슨 동굴같이 암석으로 이루어졌고.”

내 말에 호응하는 축빙 형님.

다들 하루 이틀 게임해왔던 것이 아니기에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다.

여기는 이 던전의 끝 층이라고…….

그래서 갑자기 나보고 속도를 늦출 것을 주문한 것이었다.

저벅저벅.

파티원들의 요구대로 난, 달리던 걸 멈추고 걷기 시작했다.

확실히 다른 층과 다르게 어떤 몬스터들도 나타나지 않았고…….

그렇게 계속 나아가자 마침내 막다른 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발견했다.

마치 드래곤 레어처럼 거대한 공동으로 이루어진 오픈된 보스룸.

벽과 바닥과 연결된 큼지막한 쇠사슬로 묶여있는 어떤 한 존재와, 그 곁에 서 있는 한 무리의 유저들을.

“……드디어 만났구나.”

앞서 잠깐 나와 마주한 뒤 곧바로 이곳으로 이동한 듯한 다리우스 패거리.

놈들의 모습이 보이자, 축빙 형님이 감회가 새로운지 나지막한 탄성을 내뱉었다.

“그러네요. 그것도 아주 베스트예요. 필드에서…… 그것도 우리들만 따로 이렇게 밀폐된 공간에서 마주하다니요.”

“뭐해요? 안 달려들어요?”

“잠깐만 당당아. 어차피 귀환도 못 하고 다른 유저들도 여기까지 올 순 없을 텐데, 대화 좀 해보자. 낌새를 보아하니 우릴 기다렸던 것 같은데.”

예상은 적중했지만 모든 게 맞은 건 아니었다.

다리우스가 보스 몹이 리스폰되길 기다리기 위해 시간을 끈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미 보스는 떠 있었던 것이다.

<바다의 왕이었던 투 뮤탄>

대충 봐도 10미터는 넘는 거대한 체구.

두 손과 두 발은 마법진이 새겨진 청록색 쇠사슬에 감겨 있었는데, 얼굴 양옆에 돋아난 아가미가 영락없는 머맨의 생김새였다.

그리고 그 바로 옆에선, 다리우스가 고고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리우스! 도망치는 것도 지겨워서 이젠 다 포기한 거냐?”

나는 홀로 앞으로 나와, 놈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말을 걸었다.

그러자 놈 또한 겁나지 않는지 나를 향해 마주 다가오며 대답했다.

“도망이라니? 내가 무서워서 꼭꼭 숨어지내는 건, 네가 아니었던가?”

“그 알량한 자존심은 여전하네? 물론 그것도 오늘로 끝이겠지만.”

“너야말로 헛소리가 여전하군, 산드로. 아니, 강지환!”

내 실명을 거론하며 검을 빼 드는 다리우스.

나 또한 그에 응수하며 쌍검을 뽑아 들고는 놈에게 말했다.

“오호, 오늘은 뭔가 다른데? 드디어 결심이라도 한 거야? 지든 죽든 접든, 오늘 승부를 보기로?”

“너 따위와 승부는 무슨! 다들 시작해라!”

하지만 달려들 것 같던 기세와 달리, 다리우스는 큰소리로 외치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 뒤편으로, 일도양단이 기세등등하게 외치는 모습이 보였다.

“넌 오늘 뒤졌다 산드로! 투 뮤탄이여, 저것들을 공격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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