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화 바다의 왕 (3)
“절망의 울림!”
휘이잉- 쿵!
단숨에 수십 미터를 날아간 데이네스는 순식간에 내 동료들이 있는 곳에 떨어졌다.
다들 흩어져 있던 터라 넉백당한 건 몇 되지 않았지만, 하필이면 파티 내 유일한 힐러인 축빙 형님이 있던 자리였다.
“안식의 검!”
그리고는 펼쳐진 데이네스의 삼연격 스킬.
그 단일 타겟팅 연계기에 축빙 형님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던 찰나!
[귀신 발걸음!]
[포획!]
황급히 뒤따라온 내가 펼친 채찍에, 가까스로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쾅! 쾅! 쾅!
애꿎은 맨땅만 내리찍는 데이네스의 긴 장검.
먼저 날아온 놈 뒤로 타이탄 부대가 달려오는 걸 보며 형님께 빠르게 말했다.
“타이탄부터 소환하세요, 형님! 다른 사람들 피 관리는 신경 쓰지 마시고요!”
“저 자식이 갑자기 왜 이쪽으로?”
“작전을 바꿨어요. 절 잡지 못할 것 같자 파티원부터 잡겠다고요!”
밀폐된 공간과 강력한 네임드 보스의 도움.
그리고 보안을 위해 고르고 골랐을 50여 명의 정예.
이 정도면 우리를 충분히 잡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가 투 뮤탄에 의해 타이탄을 소모하고 체력과 마나가 닳기를 기다리며 전력을 유지하려던 계획.
하지만 내게는 예상을 뛰어넘는 살상력과 대규모 메즈기가 갖춰져 있었고.
놈들은 엉겁결에 전원 타이탄을 꺼내버리고 말아, 할 수 없이 소환 시간이 끝나기 전에 총력전을 펼치게 되었다.
‘여태껏 겪은 바로…… 타이탄을 타면 오히려 나를 더 잡을 수 없단 사실을 잘 아는 거야.’
나를 대표하는 별명 중 하나, 타이탄 킬러.
체력 및 공방력은 높지만 보유 스킬이 부족한 타이탄은 오히려 더 수월한 상대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특수한 케이스라서 가능한 일.
투 뮤탄의 공격을 받고 있는 동료들에게 갑자기 타이탄 부대까지 공격해온다면, 절체절명의 위기가 될 수도 있었다.
[그림자 밟기!]
나의 독단으로 함정에 들어온 건데 동료들이 죽게 내버려 둘 순 없는 일.
나는 어느새 타겟을 바꿔 축볼 누님을 공격 중인 데이네스의 뒤에 올라탔다.
[태세 전환!]
[난도질!]
이 쫄보 다리우스가 전면에 나선 건 전부 데이네스의 엄청난 몸빵을 믿기 때문.
난 그게 오산이었다는 걸 깨닫게 해주기 위해, 이 2개의 스킬만 사용한 채 연신 후방 공격을 먹였다.
“이 거머리 같은 자식!”
푹푹! 푹, 푹!
양손에서 빠르게 휘둘러지는 검들.
예전에도 타이탄의 천적이라고 불릴 만한 무기와 업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때보다 족히 2배는 더 강해진 공격력까지 갖추게 되었다.
거기에 새로운 패시브 스킬인 웨폰 마스터리와 치명 공격까지…….
한 방 한 방이 어지간한 랭커급 딜러의 최고 스킬과 맞먹는 평타가 초당 서너 대씩 휘둘러졌다.
“뭐 하는 거냐 다들! 내 등에 붙은 이놈 좀 어떻게 해봐!”
그리고 내 순간적인 판단이 옳았다는 게 증명됐다.
설령 버닝스타를 전멸시킨다 해도 자신이 죽게 되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급격히 줄어드는 HP에 놀란 다리우스는, 방금 자신이 내린 공격 명령도 잊은 듯 뒤따라온 타이탄들에게 나부터 공격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아무리 타이탄이 10대나 있다 하더라도 그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 편도 놀고만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채챙! 챙!
“단 한 놈도 넘어갈 수 없다!”
다가온 놈들을 저지한 단 한 기의 타이탄, 프리덤 나이츠.
솔저급이면서 로드급을 상회하는 기량으로 모든 공격을 블로킹한 당사자는, 어느새 타이탄 대전에 참전한 당당이었다.
“이익! 비켜랏!”
“뭐 이딴 놈이 다 있어!”
검을 쑤셔 박는 와중에도 힐끗 뒤돌아보니, 티에스 나이츠들이 그렇게 외치는 게 십분 이해됐다.
‘내가 봐도 어이없는 녀석이니까.’
덩치 큰 타이탄들이 몰려봤자 실제로 타겟을 공격할 수 있는 건 절반 정도.
아무리 그래도 그것만도 5기는 되는데, 그걸 전부 장검 하나로 걷어내고 있었다.
‘스킬’이 아닌 일반 공격으로는 털끝 하나 건들 수 없어 보이는 철벽 디펜스.
최상의 감각과 컨트롤을 겸비한 타이탄 라이더가 오직 방어에만 몰두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듯싶었다.
[데이네스로부터 6,332의 물리 피해를 입었습니다.]
[데이네스의 공격을 회피했습니다.]
등 뒤로 검을 휘두르며 어떻게든 나를 공격하는 다리우스.
하지만 회피를 뚫고 들어온 몇 번의 공격 정도는 피 흡수로 금방 회복되었다.
‘솔저급이라면 10초도 안 걸리니까 데이네스 정도도 1분이면 충분해!’
길다면 긴 1분이란 시간.
하지만 로드급 타이탄처럼 까다롭고 강한 존재를 혼자서 무력화하기엔 말도 안 될 정도로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 안에 타고 있는 놈이 다리우스였기에 결코 도중에 멈출 수 없었다.
이 타이탄 안에서 꺼내게 되면 뭐가 됐건, 둘 다 도망칠 수단 없는 이곳에서 단판 승부를 벌이게 될 테니까.
『명하노니, 내게서 벗어나지 말지어다! 아이스 월!』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이곳엔 우리 두 길드만 있는 게 아니었다.
내가 시선을 끄는 동안 투 뮤탄을 상대하던 우리 길드원들의 공격에, 어느덧 투 뮤탄이 다음 페이즈에 접어들었고.
갑자기 새로운 패턴의 마법인 아이스 월(ice wall)을 사용한 것이었다.
“으헉! 이게 뭐야!”
“한번에 몇 개를 만든 거야!”
쩌저정!
5미터 높이로 공동 곳곳에 생성된 수십 개의 아이스 월.
이 얼음벽은 이번만큼은 태성도 예외 없이 이 안에 있는 모두를 단절시켜 버렸다.
“작작 좀 하고 떨어져! 이 개새끼야!”
“박태후 너, 그거 아냐?”
“갑자기 뭔 소리냐!”
그리고 우리 둘 또한 순간적으로 따로 고립됐다.
난 놈이 탄 타이탄의 등을 거침없이 쑤시고 베며, 그 말에 대답했다.
“나. 여기 일부러 들어온 거야.”
“뭐라고?”
“아직 이해 못 했어? 오늘 내가 죽든 니가 죽든, 우리 둘 중 하나는 꼭 죽고 말 거라고!”
슈웅!
쿨타임이 차 또다시 절망의 울림을 시전한 데이네스.
천장에 닿을 듯 높이 떠오른 우리 둘은, 곧장 태성 유저들이 모인 한복판에 착지했고.
“쳐라!”
“챠징 샷!”
“아이스 터치!”
“파이어 블래스터!”
타이탄과 달리 마음껏 스킬을 쓸 수 있는 태성의 원딜러들은 등에 매달린 내게 공격을 퍼부었다.
[레오닉의 공격을 회피했습니다.]
[극딜공쥬로부터 4,225의 마법 피해를 입었습니다.]
[후드로빈으로부터 1,888의 물리 피해를 입었습니다.]
……………………
하지만 후방 공격과 타이탄에 대한 추가 데미지 때문에, 수백 명도 아닌 십여 명의 공격 따위는 그다지 위협이 될 순 없었다.
“블랙 드레이크 소환!”
뜨거운 불판 위에라도 올라간 듯 오두방정을 떨며 나를 떨어뜨리려던 다리우스.
놈은 이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꺼내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 수를 가지고 나를 떼어낸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이런 지독한 놈! 다들 방금 말했던 대로 놈의 부하들부터 쳐라! 힐러나 원딜러들부터 처 잡으라고!”
오락가락하는 녀석의 오더.
도저히 타이탄 상태로는 나를 상대할 수 없단 사실을 깨닫자, 뒤늦게나마 다시 처음의 선택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타이탄 부대는 어이없게도 당당이 하나에 막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고, 레벤다스를 비롯한 축볼 누님의 로파티엘이 맹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쉴드 어택!”
“암석 폭풍!”
비록 몇 개 없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솔저급과는 비교할 수 없이 좋은 나이트급 타이탄의 스킬들.
어느덧 우리 길드원들은 보유한 타이탄을 전부 꺼내서 긴급한 상황은 벗어났다.
그리고 오히려 발이 묶인 타이탄 부대를 향해 반격하고 있었다.
피피피픽!
특히나 그중에서도 라챤이가 탄 궁수형 타이탄의 스킬, 멀티플 샷이 모든 타이탄들에게 골고루 데미지를 입히는 모습은 압권이었다.
‘역시 우리 버닝스타! 이날을 위해 그토록 피땀 흘리며 강해진 보람이 있구나!’
이 불리한 상황에도 각자 최선의 대처와 컨트롤로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살짝 울컥했다.
믿었으니 함께 들어온 것이지만, 그 기대를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모습이 너무 고마웠기 때문이었다.
다리우스에 대한 맹목적인 복수심에 아무 생각도 없이 길드원들을 사지(死地)로 끌고 온 건 아니다.
아니, 뒤늦게야 깨달았더라도 그렇게 생각할 길드원은 아무도 없었다.
각자 경중이 다르긴 해도, 우리는 전원 태성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모인 멤버들.
오히려 이 같은 기회를 반길 사람들이란 걸 알기에 함정인 걸 알면서도 과감히 들어온 것이었다.
“이런 제길! 아직 한 놈도 못 잡은 거냐! 할 수 없다. 전원 죽기 살기로 힐러부터 잡아라! 명령이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다리우스.
놈은 땅이 울릴 정도로 큰 소리로 오더를 내린 다음, 다시 뛰어올랐다.
이번 절망의 울림이 착지한 곳은 강화된 가이라 나이츠가 있던 곳.
현재 투 뮤탄의 어그로를 받고 있어 홀로 떨어진 채 몸빵 중이던 축빙 형님의 앞이었다.
꽈당.
미처 대비하기도 전에 떨어진 리프 어택에 맞아 넉백당한 형님.
다리우스는 그런 축빙 형님의 타이탄을 향해 안식의 검을 시전했고…….
콰콰쾅!
형님은 무방비 상태로 그 공격들을 전부 맞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당당이에게 막혀 있던 티에스 나이츠 몇 대가, 그곳에서 빠져나와 이곳으로 와 스킬을 사용했다.
꽈당!
연계된 스킬들은 전부 넉백기.
타이탄 생산 과정에서 랜덤으로 뜨는 스킬 중, 운 좋게 넉백 스킬이 뜬 타이탄들만 달려온 모양이었다.
“이런!”
급한 마음에 루이투스를 소환해 공격들을 블로킹해주고 싶었지만, 대규모 학살에 사용했던 터라 아직 쿨타임 중이었다.
데이네스까지 총 4대.
그리고 날아오는 원딜러들의 일점사를 누워있는 가이라 나이츠는 피할 수 없었고…….
나로선 그저 데이네스에게 후방 공격을 먹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놈의 타이탄은 도대체 언제 사라지는 거냐!’
한번 물은 이상 중간에 타겟을 바꾸는 건 최악의 선택.
그 생각으로 처음 데이네스가 모습을 드러낸 후부터 지금까지 공격해왔지만, 역시나 로드급 타이탄!
아무리 혼자라지만 내 무지막지한 딜링을 이렇게나 버틴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었다.
그렇게 타이탄들의 연계 넉백 3번이 이어지는 동안, 형님의 타이탄은 일어서질 못했다.
제자리 과녁이나 다름없는 상태라 쏟아지는 원거리 공격들도 그대로 전부 적중됐고.
결국 가이라 나이츠는, 근 10여 초도 버티질 못한 채 역소환되어 사라졌다.
“됐다!”
그리고 그 순간.
천만다행으로 다리우스가 탄 데이네스 또한 동시에 체력을 다하고 역소환됐다.
[포획!]
나는 곧장 형님을 내게 끌어당겨 일점사에서 벗어나게 만든 후, 뒷걸음질로 이곳에서 벗어나려 했다.
한데 뜬금없이 우리의 뒤로 높은 빙벽이 솟아올랐다.
『명하노니, 내게서 벗어나지 말지어다! 아이스 월!』
투 뮤탄이 다시금 마법을 사용한 것.
그 탓에 축빙 형님과 나는 타이탄 10여 대와 원거리 공격들에 고스란히 노출된 채로 퇴로가 막혀버렸다.
“훼라리 소환!”
그 에 당장 훼라리부터 소환해 형님을 태워 날아오르려 했지만!
“어딜 감히!”
타이탄 10여 기가 달려들어 우릴 빙벽에 가둔 채 린치를 가하듯, 머리 위까지 감싸서 날아오르지 못하게 만들었다.
“드로야, 다리우스 놈은 꼭 죽여야 한다!”
날지 못하는 훼라리는 그저 대형 몬스터에 불과할 뿐.
타이탄도 순식간에 없앤 놈들의 일점사에 훼라리는 제대로 쓰이지도 못한 채 바로 역소환됐고.
[축복받은무빙이 사망하였습니다.]
힐러 최고의 약점인 이동기의 부재 때문에, 형님은 그대로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이런 개자식들!”
그리고 나는 혼자만 대도 부츠로 빙벽을 타올라 빠져나온 후, 그 모습을 전부 내려다보고 있었다.
끓어오르는 분노.
데스 매치답게 피해가 없을 수 없는, 분명 누군가는 죽을 수밖에 없단 사실을 충분히 알고 시작한 전투였지만…….
눈앞에서 형님이 집단 공격에 무참히 죽는 모습을 보니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귀신 발걸음!”
그래서 축빙 형님을 죽이자마자 공중 위로 날아오른 다리우스를 향해 점프했다.
그리고 허공에서 사용한 이동기로 놈이 탄 블랙 드레이크에 올라타려 했지만!
콰콰콸!
갑자기 어디선가 날아온 물줄기에 맞아 줄 끊어진 연처럼 추락하고 말았다.
“뭐, 뭐야?”
땅에 떨어진 나는, 정신을 붙잡으며 황급히 공격이 날아온 방향부터 살펴봤다.
범인은 투 뮤탄.
바다의 왕이 이번엔 내게 어그로가 꽂힌 듯, 나를 향해 뻗은 손을 거두며 다가오고 있었다.
“이런 제기랄!”
정말이지 답답하고 짜증 나는 순간이었다.
하필이면 저딴 랜덤 타겟 보스 몹이 여기에 있다니!
이미 내가 쓴 마나만 해도 절반이 넘는다.
이 상황을 벗어나고자 단테리오의 팔찌를 가동시키면, 아껴두고 있던 정령왕을 써먹을 마나가 없게 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양 손목을 부딪치려는 데, 갑자기 내 앞에 누군가가 날아와 착지했다.
“드로 형님!”
“……어? 대탐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 방법밖에 없어요. 이거 드세요! 그리고 저 잡것들 좀 시원하게 정리해 주세요!”
그리고는 내 앞에 낯익은 장비 하나를 드랍했다.
이 대담한 행동에 놀란 난 얼른 녀석이 벗은 아이템을 반사적으로 주웠고.
“이, 이건?”
[펠아린의 날개 부츠(디바인)를 획득했습니다.]
줄곧 착용 중이던 대도 부츠는, 곧바로 공중을 자유롭게 날 수 있는 타연 최강의 부츠로 대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