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화 스페셜 팀 (3)
정말 의외의 정보였다.
간혹 퀘스트의 단서가 되는 템들이 있고, 나 또한 익히 몇 차례 겪어본 바 있었다.
하지만 착용 가능한 장비.
그것도 주 무기가 퀘스트 아이템으로 쓰인다는 건 듣도 보도 못했다.
“아마도 7신기라는 특수성 때문이겠지. 물론 신의 선물로 얼떨결에 뽑혀 나온 거라…… 일루전에서도 의도했던 타이밍의 퀘스트는 아니었던 듯싶다. 어찌 됐건 놈들은 ‘그’ 퀘스트를 통해 수중왕국의 몹들과 동맹 같은 관계가 된 것이 확실하다.”
“아하! 뭔가 이상한 것 같았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다면 정말 모든 것들이 설명되네요!”
오픈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지역, 거기다 제한된 정보였지만…….
형님은 타연 정상급 유저답게 이미 어느 정도 신빙성 있는 추측까지 마쳐놓은 상태였다.
덕분에 나는 헤매거나 시간 낭비할 필요 없이, 형님이 제공한 단서로 앞으로의 방향성을 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네가 마신검을 가져야 하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다. ‘그곳’에 모습을 감춘 놈들을 찾아내고 습격할 수 있는 건, 나보다는 네가 훨씬 더 적합할 테니까.”
“아휴 알겠습니다, 형님. 마신검은 제가 잘 쓸 테니 자꾸 그러지 마세요. 부담 덜어주시려는 건 알겠지만…… 오히려 더 죄송스럽네요.”
“하하! 그러냐? 알겠다 그럼. 아무튼 빈말은 아니었다. 또 이건 내 오랜 게이머로서의 직감인데…… 어쩌면 신검과 마신검을 동시에 들게 되면 뭔가 특별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네? 특별한 일이요?”
내 물음에 형님은 의자를 바짝 당기고 목소리를 낮추며 대답했다.
“드로 너도 디바인 장비가 엔드 콘텐츠로 기획됐단 소리는 들어봤지?”
“네. 유저 간 전투를 활성화시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맞다. 한데 말이다, 어차피 같은 디바인급 템인데 굳이 왜 그 안에 ‘7신기’라는 무기들을 따로 설정해두었을까? 같은 등급 내에서도 성능 차이가 나는 건 레전더리나 유니크, 심지어 레어급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말이지.”
이상하긴 해도 무신경하게 넘어갔던 부분인데, 형님이 콕 짚어 지적하니 확실히 뭔가 이질감이 느껴졌다.
만약 세계관 내 한정되어 있는 특별한 타이탄, 로드급을 소환할 수 있다는 것 외에도 7신기에 다른 역할이 부여되어 있었다면?
그리고 그것이, 마신검의 예처럼 무언가 특별한 퀘스트들과 연관된 것이라면?
“7신기 중에서도 쌍둥이 같은 두 검. 신검과 마신검을 갖고 있다 보면 뭔가 특별한 퀘스트라도 발생할 수도 있다는 말씀이신 거죠?”
“역시 척하면 척이구나. 일단 나는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한 사람이 두 7신기를 갖고 있다 보면 퀘스트를 부여받을 확률이 최소한 2배는 되겠지.”
“흐음…… 확실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최근 천계 개방이 이뤄지면서 스토리에도 급진전이 있었지? 그러니 내가 보기엔 7신기와 연관된 퀘스트도 제법 많이 오플될 거라고 생각된다. 신마전쟁을 대표하는 두 단어는…… 아무래도 ‘12영웅’. 그리고 ‘7신기’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신검과 마신검, 이 두 7신기는 게임 스토리상 너무 일찍 등장했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운빨로 조기 등판하게 된 셈.
그래서 초반엔 그저 ‘무기’로서의 역할밖에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당시보다 평균 레벨은 100 정도 높아지게 되었고, 어느덧 유저가 세운 국가도 4개로 늘어났다.
게임 스토리 또한 2.0으로 넘어가 생명의 숲과 천계를 비롯한 제법 많은 신규 지역이 오픈됐다.
무엇보다 베일에 싸여있던 과거 신마전쟁과 연관된 내용과 인물들에 관한 정보가 속속들이 공개되고 있었다.
그러니 만약 7신기를 위해 준비된 퀘스트가 있다면, 언제 주어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으니 늘 대비하고 있는 편이 옳았다.
“듣고 보니 형님 말씀이 다 맞는 것 같아요. 사실 지금은…… 당장 마계가 쳐들어온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타이밍이니까요. 형님은 늘, 제가 생각지 못한 부분을 캐치해주시네요.”
“이 자리를 거저먹은 건 아니니까 말이지. 그나저나 혼자 할 수는 있겠니? 최근 태성 라인을 잡느라 무척이나 바빠 보이던데…….”
“괜찮습니다, 형님. 언제는 제가 쉬엄쉬엄 게임했던 적이 있나요? 다리우스까지 잡아낸 지금, 계속 쉴 새 없이 몰아쳐서 놈들 사기를 제대로 꺾어 놓겠어요. 놈들이 숨어서 사냥 중이란 그곳도 찾아내, 타연 속 아무 데도 발을 못 붙이게 만들겠습니다.”
“그래, 말 한번 시원하게 잘한다. 그래야 내 동생 산드로답지.”
자신 있게 말했지만 분명 혼자서는 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일이었다.
하지만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내게는 눈앞에 있는 지옥불 형님은 물론 카이저 형님도 계셨으며…….
무엇보다 나보다 더 나를 아끼고 믿어주는 가족과도 같은 길드원들이 있으니까.
“이렇게 만난 건 처음인데 함께 술 한잔 못하고 헤어지는구나.”
“죄송합니다, 형님. 아시다시피 저희 모두 너무 바쁜 상황이잖아요? 술은 모두 다 함께, 그날이 오면 밤새 마시도록 해요!”
“하하! 그러마. 태성 길드가 해체되는 날 저녁. 그때는 무조건 피닉스와 버닝스타가 회포를 푸는 날이니 꼭 비워둬야 한다!”
“네, 형님!”
분명 무조건 마신검을 드리겠다고 홀로 찾아온 길이었지만…….
오히려 비밀 정보와 용기만 얻은 채 빠르게 귀가했다.
* * *
“정말 잘 썼다, 대탐아. 네 부츠가 아니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거야.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별말씀을요, 형님. 어차피 제가 차고 있었다면 죽어서 떨궜을 텐데요.”
“그렇게 치면 말도 없이 함정에 들어간 내 잘못이 더 크지. 아무튼 정말 고마웠어. 덕분에 신세계를 맛봤다.”
다시 접속한 아베르 성안.
대탐이를 제외한 길드원 대부분은 수중왕국 탐사에 가 있었다.
펠아린의 날개 부츠.
게임 속 이동 속도 몇%와 한두 개 있는 이동기의 쿨타임이 대단히 중요한 타연에서, 이 템이 가진 값어치는 정말이지 어마무시했다.
각종 회피 및 공격 판정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포지션을 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퇴가 자유로워 다수를 상대할수록 진가가 발휘됐다.
하지만 이건 대탐이가 게임하는 목적과도 같은 템.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으니 미련 없이 돌려줬다.
“이게 죽여주긴 했죠? 혹시 필요하실 때가 생기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세요. 오늘처럼 종종 빌려드릴게요. 형님은 절대 죽지 않는…… 타연의 불사신이니까요!”
“그래, 말만이라도 고맙다. 수고해!”
“넵!”
문자 그대로 날다가 뛰려니 뭔가 답답함이 느껴졌지만…….
정 필요하면 빌려준다는 말과, 무엇보다 새롭게 얻은 템들이 있기에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그렇게 대탐이를 떠나 보낸 후, 나는 고개를 돌려 옆을 향해 물었다.
“자, 래빗님. 템들은 충분히 살펴보셨어요? 어디부터 먼저 가야 할까요?”
“다 끝나셨어요? 그럼…… 일단 가깝기도 하고 빨리할수록 이득인 타이탄 연구소부터 가볼까요?”
“네, 그러죠.”
그와 관련된 조언을 얻기 위해 부른 핑크래빗.
그녀가 링크 걸어준 템들을 살펴보고는 내가 들러야 할 곳을 제시해 주었다.
“저만 전투에 참여 못 해서 아쉬웠는데…… 생각해보면 진짜 짠돌이 보스 몹이었네요! 무슨 완성템을 하나도 안 주는 보스가 다 있는지…….”
“그렇긴 하죠? 그래도 설정 상 모든 걸 잃고 지하에 갇혀있던 놈이었잖아요? 무기조차도 자기를 묶고 있던 쇠사슬과 돌덩어리였으니 말 다 했죠. 그래도 재료 템만큼은 역대급으로 많이 줬으니까 나쁘지는 않잖아요?”
“무려 퍼스트 킬이었는데 거지였으면 말도 안 되죠. 길드원들이 그러던데, 투 메르타스보다 더 강한 놈이었다면서요!”
“뭐 애초에 목표는 보스가 아니라 다리우스였으니까 괜찮아요. 다들 S급 업적을 받았으니 소득도 있었고요. 일찍 죽은 네 분은 아쉽게 됐지만요.”
놈을 죽이고 얻은 업적은 B급 ‘생존본능’과 S급 ‘바다의 지배자’, 이렇게 2개였다.
그중 생존본능은 B급답게 다른 업적과 별 차이 없는 스탯 증가 효과만 붙어있었지만, S급은 확실히 남달랐다.
[업적: 바다의 지배자(S)]
* 옛 바다의 지배자를 처치한 자에게 주어지는 업적입니다.(모든 능력치 +30)
* 업적 효과로 바다에서의 운신이 자유로워집니다.(익사 면역, 수중 이동 속도 페널티 없음)
* 모든 바다 생물체들로부터 은은한 두려움을 받게 됩니다.
늘 수면 근처에서만 사냥해야 했던 이곳의 페널티.
내가 진작 수중왕국의 위치를 가늠했음에도, 차마 심해 깊숙이 들어가지 못했던 ‘호흡’ 문제가 이 업적 하나로 깨끗이 해결됐다.
거기다 사냥 중에 헤엄도 쳐야 해서 제약이 많던 물속에서의 움직임이 마치 공중을 날아다니는 것처럼 자유로워졌다.
이제 막 수중왕국을 방문 중인 유저들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되는 혜택이 신규 지역 오픈과 동시에 제공된 셈이었다.
게다가 뜬금없게도 내 A급 업적 ‘킹 슬레이어’가 경신되며 추가 스탯 포인트도 상승했다.
업적의 등급 자체가 올라간 건 아니었지만, ‘국왕’ 살해라는 특수 조건이 몹에게도 적용되는 줄 몰랐었기에 보너스를 받은 느낌이었다.
“도착했네요. 길마님, 어서 알려드린 키워드를 말해보세요!”
“네. 메이슨, 이 ‘타이탄의 정수’를 ‘파괴’ 혹은 ‘분해’할 수 있겠어? 이걸 ‘타이탄의 정수 조각’으로 만들고 싶어서 말야.”
금세 도착한 타이탄 연구소.
나는 최근 연구소를 2티어로 업그레이드 중인 NPC, 메이슨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마이 로드, 산드로 님이시여. 타이탄 정수의 분해 말씀이십니까? 그건 크게 어렵지 않지요. 제게 정수를 주신다면 바로 실행해 보겠습니다.”
[분해할 타이탄의 정수를 빈칸 위에 올려주세요.]
그리고 곧바로 처음 보는 알림창 하나가 떠올랐다.
“오! 진짜 래빗 님 말씀대로 분해가 되네요? 아니, 이걸 어떻게 아셨어요?”
“엣헴! 감이죠 감! 원래 타이탄 제작에 성공하면 보유 스킬은 랜덤으로 떴잖아요? 그럼 스킬이 마음에 안 들면 버리고 다시 도전할 시스템도 왠지 준비돼 있을 것 같았거든요. 대부분의 게임들엔 그런 게 다 있잖아요.”
“암만 그래도 대박이네요 정말! 보유 중이던 정수 조각을 다 써버려서 아쉬웠는데, 이러면 당분간은 걱정 없겠는데요? 어쩌면 모든 국가 중에서 가장 먼저 3티어 연구소를 만들 수도 있겠어요!”
태성의 타이탄 라이더를 전멸시키면서 획득한 정수는 2개.
머더러가 없었는데도 이 정도인 걸 보면, 확실히 사망 시 타이탄의 정수 드랍률은 높은 편이었다.
어찌 됐건 그렇게 획득한 티에스 나이츠들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 없었다.
솔저급에 불과했을뿐더러 이름도 마음에 들지 않아, 직접 제작한 프리덤 나이츠를 타는 게 더 나았기 때문이다.
한데 만약 타이탄들을 분해해 조각으로 만든다면?
이런 비싸디비싼 돈지랄은 다른 길드들로선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일 터.
제작 및 업그레이드 속도를 높여주는 조각들만 충분하다면, 비록 뒤늦게 설립한 타이탄 연구소라도 누구보다 앞서나갈 수 있었다.
[타이탄의 정수 분해에 성공했습니다.]
[타이탄의 정수 조각(12)을 획득했습니다.]
[타이탄의 정수 분해에 성공했습니다.]
[타이탄의 정수 조각(14)을 획득했습니다.]
나는 주저 없이 분해를 의뢰했고, 결국 조각 26개라는 풍족한 여분을 얻게 됐다.
그리고 곧바로 메이슨에게 조각을 건네어 시간을 단축시켰다.
“조각 4개로 업그레이드 기간을 반의반으로 줄였어요. 이대로면 3일만 있으면 2티어가 되겠네요.”
“잘하셨어요. 확실히 우리 길마님은 투자할 땐 과감하고 아낌없어서, 제 맘에 쏙 든다니까요!”
“하하! 어차피 꽁으로 얻은 건데요. 아무튼 정수는 처리했고…… 이제 이 재료 템들은 어떻게 할까요?”
죽은 투 뮤탄은 여러 가지 템들을 수북하게, 그것도 역대급으로 많이 드랍했다.
하지만 질보단 양이었는지, 안타깝게도 디바인은커녕 레전더리급조차 완성 템은 단 한 개도 없었다.
하지만 현존하는 최강의 보스몹이었던 놈을 퍼킬한 것답게, 디바인이 전혀 드랍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바다왕의 눈동자’, ‘바다왕의 꼬리지느러미’, 그리고 ‘바다왕의 비늘’.
놈의 몸에서 나온 재료 템들은 레전더리급이 더 많았지만, 진국은 이것들이었다.
무려 디바인급 재료템이 5개나 나온 것이다.
“아무리 재료 템이라도 디바인급이 5개라니……. 정말 이제는 놀라는 것도 지쳤어요.”
“운이 좋았죠 뭐. 보아하니 무기로 만들 수 있는 재료 템은 아닌 것 같은데…… 이걸로 방어구를 만들려면 어떤 NPC를 찾아가는 게 좋을까요?”
“에? NPC를 왜 찾으세요? 길마님도 잘 아시지 않아요? NPC가 제작하면 ‘대성공’ 확률이 훨씬 낮다는 걸요?”
“그래도 디바인급 재료 템을 가공할 수 있는 건 NPC밖에 없잖아요.”
“잉? 대체 무슨 소리를…… 아아, 아직 모르시려나? 진짜 저를 바로 부르신 게 천만다행이었네요. 이제 디바인급 템 제작이 가능한 유저도 생겼어요. 바로 며칠 전에요!”
“네?”
“하긴 이걸 알만한 장사꾼이 드물긴 해요. 저도 우리 아베르 성에 있는 대장장이 유저라서 먼저 알게 된 거거든요.”
“정말요? 우리 성이라면 설마……?”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라고.
설마 우리 프리덤 국 내에 공방을 차린 유저가 디바인급 제작까지 가능한 대장장이로 발돋움한 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네, 맞아요. 호박 마켓이 터를 잡은 후 공방을 차렸던 유저. 대장장이 테디베어 님이시라면, 이 재료 템들로 멋진 방어구를 만들어 주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