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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298화 (298/350)

298화 스페셜 팀 (4)

얼핏 스치듯 들은 적이 있긴 했다.

상당히 유명한 대장장이가 우리 성에 터를 잡았다고.

하지만 길드 단위도 아닌 개인 유저에 불과하니, 크게 신경 쓸 거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저 수수료와 세금이 없기에 찾아왔을 뿐, 개인이라면 쉽게 온 것처럼 언제든 훌쩍 떠날 수 있었으니까.

“오! 그럼 지금 바로 가보면 될까요?”

“네, 그렇긴 한데요…… 문제가 좀 있어요. 원래 이분이 좀 특이한 분으로 유명하긴 하거든요?”

“특이하다고요? 어떤 점이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자존감이 엄청나게 높은 타입이에요. 그냥 찾아갔다가는 돈을 아무리 준다 해도 거절당할 확률이 높을 거예요.”

꿈틀이 같은 채집꾼으로 따지자면 9성급 숙련도에 달한 유저.

아무런 안면도 없었기에 쉬운 만남이 될 것같진 않았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돈도 마다한다니?

“그래서 그런데…… 혹시 지금 연락 가능하세요?”

“네? 누구랑요?”

“타이토닉의 간판이신 김석용 아나운서님이요.”

“잉? 갑자기 그 아재는 왜요?”

“이것도 저 정도 되니까 알고 있는 건데요……. 그분의 자존감을 채워주기에 김석용 아저씨만한 분도 안 계시거든요.”

“대체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건지…….”

“에이, 만나면 다 이해하게 되실 테니까요, 일단 연락부터 드려보세요. 어서요!”

이유야 뭐가 됐건 김석용 아재와 연락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

예상대로 아저씨는 내 귓속말을 받자마자 쏜살같이 달려왔다.

그리고 핑크래빗을 통해 자초지종을 들었다.

“……그러니까 테디베어 님을 뵙는 데 동행해달라는 말씀이신 거죠?”

“네, 아나운서님. 가능하시겠어요?”

오늘 내가 벌인 일 때문에 한창 바쁘게 돌아다니시던 석용 아재.

그 와중에도 만사 제쳐두고 왔다는 아저씨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산드로 님이 부르시니 오긴 했는데…… 죄송하지만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네? 어째서요?”

“사실 이래 봬도 제가 타연 내에선 꽤 공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편입니다. 저도 일반 유저들처럼 사냥도 하고 레이드도 하며 게임을 즐기곤 있지만, 나름 ‘유명인’이자 ‘언론인’ 취급을 받고 있거든요.”

“그 말씀은……?”

“그러니 제가 산드로 님과 동행해서 함께 사냥을 한다거나 누군가를 만나 부탁을 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중립을 표방하는 저희 방송이 타연 유저 분들이나 타 방송 관계자분들께 비난받을 수 있고, 심지어는 그걸 구실 삼아 공격받을 수도 있죠. 저뿐만 아니라 산드로 님도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부분을 지적하는 석용 아재.

줄곧 방송에서 호의적인 멘트를 서슴지 않았기에 당연히 오케이할 줄 알았는데, 역시 관록은 무시할 수 없었다.

“아…… 그러면 힘들다는 말씀이네요? 죄송합니다. 기껏 한달음에 와주셨는데.”

“물론 어디까지나 원칙이 그렇단 겁니다, 원칙이.”

“……네?”

“산드로 님. 저희와 한 번만 더 단독 인터뷰하시죠. 시원하게 컨펌만 해주신다면, 몇 번이라도 함께 동행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 관록은, 정말이지 무시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역시 김석용 아저씨네요.”

“네?”

“역시 제가 인정한 최고다우시다고요. 그러고 보니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너무 뜸하긴 했죠? 하겠습니다, 그 인터뷰!”

“정말이십니까?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산드로 님!”

“그런데 그거…… 오늘 당장도 가능하신 거죠?”

“네?”

이렇게 된 이상 차라리 잘됐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피할 수 없는 인터뷰라면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편이 나았다.

“제가 좀 바빠서요. 오늘 저녁에 방영되는 조건으로 서두르고 싶습니다. 기왕 하는 인터뷰인데…… 저도 하고 싶었던 말들을 꼭 오늘 전하고 싶거든요.”

그간 내게 생긴 부정적 평가들을 희석시키는 한편,

태성의 사기 또한 제대로 짓밟아주는 용도로!

* * *

“처음 뵙겠습니다, 테디베어 님. 말씀은 많이 들었는데 이제야 인사를 드리게 됐네요.”

“…….”

“어떻게 아베르 성은 마음에 드시나요? 아무래도 유동 인구가 많다 보니 공방 수입이 나쁘지는 않은 편이죠?”

“…….”

김석용 아재와 핑크래빗을 동반한 채 들른 테디베어의 공방, '천하제일 대장간'.

다행히 그는 접속 중이었으나 역시 문제가 있었다.

괜히 핑크래빗이 미리 주의를 줬던 게 아닌지, 외형만큼이나 태도 또한 독특했던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테디베어 님. 이렇게 뵙는 건 오랜만이군요. 타이토닉의 김석용입니다.”

“……여기엔 워쩐 일이세유?”

땅! 땅!

2미터도 훌쩍 넘을 만한 중년의 거구.

연신 망치를 두들기는 그의 팔과 다리는 어지간한 성인 몸통만큼이나 크고 굵직했다.

대부분은 캐릭 생성 당시 이상적인 몸매로 커스터마이징을 하는데, 오히려 이 사람은 신장과 몸무게를 최대치로 늘려서 만든 모양이었다.

이러면 전투 시 피격 범위 및 스킬 사용에 손해가 발생해서 보통의 유저라면 절대 하지 않는 행위.

따라서 그는 처음 캐릭을 만들 때부터 생산 활동에만 전념하기로 작정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허허, 기가 막힌 특종 거리가 있을 것 같아서요. 여기 계신 산드로 님과 테디베어 님의 조합이라면 말이죠.”

“관심 없시유.”

“혹시 지난번 인터뷰 때문에 아직도 마음이 상해 계신 건가요?”

인터뷰?

무슨 소린가 싶어 핑크래빗을 돌아보니, 그녀는 잠자코 있으란 듯 눈짓으로 신호를 줬다.

“애써 시간 내서 준비했더니 펑크낼 땐 언제구, 이제야 왜 찾아왔대유? 뭐 사러 온 거 아니라면 그만 돌아가세유. 아니다. 팔 생각도 없으니까 당장 돌아가세유.”

“펑크가 아니라 한 주만 미뤘던 거 아닙니까. 그게 싫다고 출연을 거부하셨던 건 테디 님 본인이셨고요.”

“하필이면 그때 새치기한 사람이랑 함께…… 암튼 나이 드신 분께 성내기 싫으니께 그만 돌아가세유. 지난 일 다시 꺼내서 속 뒤집지 마시고유.”

이쯤 되니 나도 서서히 기억났다.

갑자기 나와 인터뷰할 기회가 생기자, 타이토닉이 대장장이 장인이었던 한 유저와의 인터뷰를 한 주 뒤로 미뤘던 것을.

그 장인이 바로 지금 눈앞에 있는 테디베어였다.

“사실 산드로 님은 그때 잘못하신 게 없지 않습니까? 그 당시 저희 측 실수는 이렇게 사죄드리겠습니다. 그러니 한 번 얘기라도 들어 보시…….”

“됐대니께유!”

“테디베어 님. 그러지 말고 이걸 한 번만 봐 주시겠어요?”

더는 시간 낭비일 것 같아 그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교환부터 걸었다.

그리고는 교환창 위에 이번에 얻은 디바인급 재료 템들을 모조리 다 올려버렸다.

“……뭐여?”

“뭐여…… 라뇨?”

“이게 말이여, 다 뭐냐고여! 대체 이런 걸 어디서 구한 겨!”

흥분해 외치는 테디베어.

사실 그가 정말 대장장이 외길 인생이라면 이 템들을 보고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디바인 재료 템이 마련됐다는 건…… 당연히 디바인 장비 제작에도 도전할 수 있다는 걸 의미했으니까!

“이름에 적혀 있지 않습니까. 바다왕이라고요. 전체 알림창에도 떴는데 못 보셨어요?”

“이게 무신…… 고것도 당신네가 잡아분 겨? 뭐 그리 죄다 싹쓰리를 하는 겨? 다른 유저들은 대체 뭐 묵고살라고!”

그리고 확실히 이 방법이 정답이었다.

줄곧 냉담하던 그의 태도가 한순간 돌변한 것이다.

“……그럼 내가 한 번 맹그러 볼게유.”

“네? 맹글…… 뭐요?”

“내가 이걸로 잘 맹그러보것다고유. 갑옷 맹글려고 하는 거 아니였슈?”

“아, 만드신다고요! 네, 맞습니다!”

그렇게 초희귀 재료 템을 보고 나니 바로 승낙하는 테디베어.

하지만 아직 확답을 내린 건 아니었다.

“단 조건이 있어유. 김석용 씨!”

“네?”

“내가 이걸로 디바인 갑옷을 맹그는 데 성공하면, 바로 날짜 잡아유.”

“아하? 인터뷰 말씀이십니까?”

“그려유. 그래서 내가 타연 최고의 대장장이라는 걸 공식으로 인정받아야 겠시유. 알긋쥬?”

“그거야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디바인 템 제작에 성공하신다면 오히려 저희가 특종으로 모실 일인걸요!”

“좋아유. 그리고 산드로 씨. ”

“넵!”

“원래 제작 의뢰하는 데 돈이 많이 드는 건 알고 있쥬? 최상급 미스릴 주괴만 해도 100개는 넘게 제련해야 할 것 같고, 빛나는 방어구 제련석도 싹 쓸어와야 헐 테고. 달켄한티 도안을 배워봐야 알 것 같지만 다른 레전더리 재료가 필요할지도 몰러유.”

“그거야 걱정 붙들어 매세요! 필요하신 것만 말씀해 주시면, 제가 바로바로 그 즉시 구해다 드릴 테니까요!”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먼저 나서서 말하는 핑크래빗.

말려봤자 들은 척도 하지 않을 테고, 사실 그녀보다 거래소나 장사꾼들을 통해 재료 수급을 잘해줄 자신도 없었기에 말을 아꼈다.

“아따 성격 참 션션들 하구먼유? 알겠시유. 그럼 우리 가게 성주님이기도 하니께 제대로 한번 맹그러 볼게유!”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선금은 치렀고.

모든 준비가 끝나면 템을 들고 찾아오라고 연락 주기로 했다.

정신없이 지나간 하루.

다행히 모든 일은 큰 문제 없이 순탄하게 진행됐다.

그렇게 길드원들이 맵 탐사를 끝마치길 기다린 동안.

나는 짧게 인터뷰를 마친 다음, 또다시 태성 라인의 성들을 급습하며 아직 끝나지 않은 전투를 재개했다.

* *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타이토닉TV의 김석용입니다! 오늘 갑자기 긴급 편성된 탓에 정규 방송 대신 이렇게 단독 인터뷰로 인사드리게 됐습니다. 하지만 후회는 없으실 겁니다. 왜냐고요? 오늘 찾아오신 분이 바로 화제의 인물, 산드로 님이거든요! 반갑습니다, 산드로 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버닝 스타의 길드 마스터, 산드로입니다.』

어느덧 찾아온 저녁 9시.

잠시 접속을 끊고 나와 TV 앞에 앉았다.

그리고 여느 때와 같이, 함께 사는 현중이와 축빙 형님과 함께 오늘 한 인터뷰를 시청했다.

“뭐야, 왜 저렇게 목소리 깔고 무게 잡았어? 그리고 잡으려면 프리덤 국의 국왕이라고 말하든가. 고작 길마가 뭐야?”

“뭐가 어때서 그래? 난 항상 저 소개가 제일 맘에 드는데.”

장소는 생명의 숲에 있는 거대 나무들로 이루어진 신규 인던.

역시나 잎사귀 사이로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아름다운 장소였다.

『최근 저나 저희 길드에 대한 비난과 원성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를 빌려 몇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 인터뷰에 응하게 됐습니다.』

『잠시만요, 산드로 님. 갑작스럽게 성사된 인터뷰라 다소 두서없는 질문일지도 모르겠는데요. 먼저 정확히 확인하고 넘어갈 뉴스가 있어 그것부터 여쭙겠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오늘 있었던 티에스 국과 프리덤 국의 전쟁 종료 소식. 혹시 실수로 발생한 일이 아니라, 두 분 중 한 분이 전투 중에 사망하신 게 맞습니까?』

시청률을 의식한 듯, 인터뷰는 초반부터 강한 질문으로 시작됐다.

『거기에 대한 답은 말보다 직접 보여드리는 편이 낫겠군요.』

그리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착검 중이던 양 검을 동시에 빼 들어 보여줬다.

뚜렷이 대비되는 검고 흰 두 개의 검신.

신검 룬 페이토나와 마신검 룬 제스베라를.

『이럴 수가! 소문이 정말 진짜였군요! 다리우스 님의 마신검이 산드로 님의 손에 들려있다니!』

『오늘 저희는 유저분들의 눈이 없는 곳에서 처절한 사투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이번에도 저희는 다리우스를 이기고 이 마신검까지 획득하게 됐습니다!』

벌써 2번이나 패배한 길드 간 전쟁.

그리고 놈들의 수장이 죽은 것도 모자라 주 무기마저 빼앗긴 지금.

이렇게 방송을 통해 그 사실이 온 천하에 공표된다면, 태성 라인의 사기는 무참히 꺾여버릴 수밖에 없었다.

오늘의 인터뷰로 얻을 수 있는 첫 번째 소득인 셈이었다.

『그간 산드로 님을 수식하는 단어는 많이도 있었죠. 게임 역사상 최고의 행운아, 아재들의 대통령, 흑풍단주, 일인 군단 등등. 하지만 역시나 처음 생겼던 이 단어 만한 것이 없겠군요. 바로 스페셜 원! 7신기 중 2개를 한 몸에 지닌 유저가 탄생했다니, 이보다 더 적합한 수식어가 있을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네?』

『비록 혼자서 이 두 검을 착용하게 됐지만, 이 결과를 제가 잘나 이룬 것이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간 저를 도와주신 피닉스 라인의 동맹분들과 흑풍단 여러분…… 그리고 우리 버닝스타의 동료들. 만약 그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이 값진 승리는 절대로 없었을 겁니다.』

오늘만 하더라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아낌없는 도움을 받았는지 모른다.

난 그 고마운 마음을 담아 김석용 아재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 ‘스페셜 원’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제게 어울리는 수식어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굳이 원하신다면 이렇게 불리고 싶네요.』

『어떻게 말씀이십니까?』

『‘스페셜 팀’이라고요. 그리고 산드로는…… 그 팀의 멤버 중 한 명에 불과할 뿐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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