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299화 (299/350)

299화 더티 플레이 (1)

“아 뭐야 이 새끼. 폼이란 똥폼은 다 잡고 왔네! 뭐? 스페셜 팀? 혼자 다 해놓고는 지 입으로 고작 한 명? 인마, 차라리 그냥 너 잘났다고 말해! 자꾸 저딴 식으로 말하니까 안티가 안 늘고 배겨?”

“왜 그래? 공중파에서 언급 한번 해주니까 감동 먹었냐? 정작 당사자인 나보다 지가 더 쑥스러워하네?”

“뭐, 뭔 헛소리야! 아무튼 니가 좀 컸다고 멋진 척도 하고 싶어 안달이 났구나. 잘못 보면 시상식 대상 소감이라도 한 줄 알았겠다.”

아무리 게임 속 아바타라 해도, 내가 내 인터뷰 모습을 보는 건 어색했다.

더군다나 현실에서는 하지 못할 저런 낯부끄러운 말을 태연하게 하는 모습은 더더욱.

“그냥 난 느낀 그대로를 말한 거야. 정말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것을 이루게 된 게…… 전부 길드원들 덕분이라는 생각만 들었거든.”

하지만 그 대답만큼은 가식이나 위선, 혹은 흔히 하던 이미지 관리용 멘트가 아니었다.

그냥 문자 그대로 내 진심을 말한 것뿐이었다.

“고맙다 지환아…….”

“……네?”

한데 조용히 시청하던 한 사람, 축빙 형님이 갑자기 물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를 보고 있다 보면 내가 세인트의 길마로 한참 부족했었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동시에 너와 함께 길드를 만든 것이, 내가 타연을 하면서 했던 일 중에 가장 잘한 일이란 생각도 들고.”

“갑자기 왜 그러세요, 형님.”

“처음 세인트를 해체할 때만 해도, 난 그게 리더로서 옳은 선택인 줄 알았어. 길드원들이 고통받지 않고 피해 보지 않도록, 최대한 피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했거든.”

“태규 형……. 그게 맞았잖아요. 안 그러면 다들 더 힘들고 고생만 했을 텐데요.”

그런 형님의 모습에 곁에 있던 현중이도 장난기를 지우며 말했다.

“물론 그렇긴 하지. 근데 현중아. 난 그간 지환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혼자 곰곰이 생각해 봤다. 과연 우리 세인트도 끝까지 싸워봤다면 어땠을지. 지환이 말대로 정말 한 팀이고 가족 같은 사이라면…… 고생만 하다 접더라도 함께 싸워보는 게 맞지 않았을까? 하고 말야.”

“…….”

“불가능에 도전하고 다 함께 승리했어. 그리고 그걸 만인 앞에서 우리의 공로로 돌려줬지. 이 꿈만 같은 일이 현실로 이뤄지다니……. 이런 자리에서 말하기 우스울진 몰라도 꼭 말하고 싶다. 고맙다, 지환아. 내게 이런 성취감과 감격을 느끼게 해줘서!”

차라리 현중이처럼 구는 게 낫지.

이제는 친형과도 같은 축빙 형님이 이렇게 나오니 몸 둘 바를 몰랐다.

하지만 진심은 통하는 법.

오늘 하루가 형님의 인생에서, 정말 얼마나 잊지 못할 날이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에이, 이런 날 이런 분위기에서 술 한 잔 정돈 어쩔 수 없겠네요. 형님, 새벽에 게임하실 거 아니시죠? 저희 입만이라도 좀 축여요!”

칙!

언제 냉장고에서 꺼냈는지 대답도 전에 캔맥주를 따며 건네는 현중이.

그렇게 세 남자만의 조촐한 술자리는 방송을 안주 삼아 이어졌다.

『그게 바로 산드로 님께서 수많은 활약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군요! 스킬 레벨이 올라가는 옵션이라니요! 혹시 처음 공개하시는 건가요?』

『네, 공식적으로는 최초입니다.』

잠시 놓친 사이에 TV 속 인터뷰는 어느새 다음 주제로 넘어가 있었다.

『헉, 그렇군요? 정보 공개는 손해이실 수도 있는데 이렇게 속 시원히 밝혀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예측하고 계신 걸 확인해 드린 것에 불과한걸요. 또한 마신검에도 동일한 옵션이 붙어 있어 제 모든 스킬의 평균 레벨은 상당히 높은 상태입니다.』

『스킬 포인트 하나를 찍을 때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는 저를 비롯한 타연 유저들 입장에선, 정말이지 부럽기 짝이 없는 발언이시군요.』

『자랑은 아니고요. 그만큼 무기를 포함한 디바인급 장비들이 대단하다는 걸 알려드리고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네? 그게 어떤 의미신지……?』

『저같이 평범했던 유저도 오늘 같은 업적을 세우고 이렇게 인터뷰를 하게 될 만큼, 모든 디바인급 템은 대단한 위력을 갖고 있단 걸 공유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유저분들에게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절망’인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누구나 행운만 따른다면 닿을 수 있는 ‘희망’의 상징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번 내용들은 나름 이미지 개선을 노리고 했던 발언들이었다.

『어쩐지 지금 하시는 말씀들은, 최근의 평판을 의식하신 것 같군요.』

『역시 아나운서님이시네요. 맞습니다. 사실 전 제가 유저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됐단 걸 알게 된 후 상당히 당황했습니다. 저희 길드원의 길드 이적 문제, 저희 라인만의 신의 가호 버프 독점, 잇단 새로운 필드 보스의 퍼스트 킬 독식까지……. 이번 일로 그간 간과하고 있었던 것들을 많이 반성하게 되었죠.』

『어떤 반성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제가 레벨도 낮고 솔플만 하던 시절, 랭커와 상위 길드들을 손가락질했던 행동들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요.』

『……듣다 보니 산드로 님의 의중이 궁금할 수밖에 없는데요. 그럼 혹시 심경의 변화로 앞으로 행보에 어떤 변화가 있으실 거란 의미로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가령 신의 가호를 공유하는 방도를 마련한다든지요.』

『안 그래도 그에 관한 말씀도 드리고 싶었습니다. 사실 신의 가호는……』

이런 말 몇 마디로 나에 대한 불만과 질투들이 사그라들 거라곤 생각지 않았다.

그럼에도 계속 독점할 수 있었던 몇몇 정보들과 노하우를 과감히 공개했다.

또한 평소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던 말들도 거침없이 말했다.

지금 내가 이룬 것들은 노력하고 최선을 다한 만큼 쟁취한 것이고, 또한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있는 게임이 타연이라고.

그러니 불평불만은 나 같은 유저 말고, 다리우스 같이 출발선부터 달랐던 놈에게나 하라고!

『……전쟁이 일단락됐다지만, 아무래도 최근 있었던 다리우스 님의 커뮤니티 게시글만큼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겠는데요. 최근 그분 때문에 버닝 스타 길드를 비난하는 유저 분들도 많이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리우스 님의 주장대로, 현재 산드로 님의 길드에 계신 특정 길드원이 태성 길드에 있는 동안 고급 정보들을 빼돌린 게 사실입니까?』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이 또한 다리우스의 뻔뻔한 거짓말이었죠. 빼돌린 정보들이 많다고요? 대체 그게 무언지 단 한 개라도 공개해 보시죠? 제 행적은 줄곧 노출돼 있었으니 특정 이득을 취한 순간이 있었다면 티가 안 났을 리 없습니다. 근데 이렇게 말해도 태성 측에서 밝히지 못한다면? 현명하신 타연의 유저분들이시라면, 누가 거짓을 말하고 있는지 충분히 판가름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막 오늘 인터뷰를 하게 된 주요 내용이 나오는 순간, 공교롭게도 당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지환 오빠 말 잘하시는데요? 이런 재미난 걸 자기들끼리만 보기 있어요?”

“어? 여, 연우야. 뭐야, 언제 들어왔어?”

“방금이요. 현중 오빠가 문 열어주시는 것도 몰랐어요?”

TV 시청에 열중이던 사이, 어느새 다른 층에 사는 연우와 연석이, 그리고 서진 누나까지 전부 우리 집에 방문한 것이었다.

“다리우스 킬에도 하지 않겠다던 파티를…… 여기 세 분끼리만 찐하게 하고 계셨네요?”

“이게 뭐 찐한 거야? 그냥 같이 사는 김에 입이나 조금 축인 거지.”

“그러지 말고 우리도 좀 끼워 줘요. 오늘은 그래도 되는 날이잖아요. 안 그래요, 지환 오빠?”

“어? 어, 그래. 같은 동에 살아도 이렇게 모이는 날은 드무니까 오늘은 다 같이 한잔해요. 다만 다른 길드원들 두고 저희끼리만 자축하기는 미안하니까 간단히만요.”

“그려, 진짜 축배는 태성 길드가 해체되는 그날, 동맹 전부를 모아서 성대하게 하자고!”

“다들 오늘 너무 고생들 많았어요!”

갑자기 이루어졌던 인터뷰답게, 방송은 길어질 때쯤 끝나버렸다.

하지만 하나같이 태성의 사기를 꺾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었고, 하고픈 말도 속 시원히 했다.

또한 방송 직후 유저들의 반응을 살펴보니, 다행히 다소 부정적이던 반응들도 제법 희석된 느낌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화기애애하게 조금 더 대화를 나누다가, 이내 내일의 스케줄을 위해 자리를 파했다.

* * *

새벽 3시 40분.

유저들의 접속이 가장 뜸해지는 시간, 나는 간만에 평소보다 일찍 로그인했다.

이유는 하나.

무슨 일이든 최대한 은밀하게 진행하려면 이 시간대가 최적이기 때문이었다.

(카이저: 들어 왔구나.)

(나: 어? 형님, 벌써 들어와 계셨어요?)

서늘한 아베르 성의 공기를 들이쉬기도 전에 카이저 형님으로부터 귓속말이 들어왔다.

약속 시각보다 20분 일찍 들어온 건데, 기다리시는 줄 알았다면 진작 들어올 걸 그랬다.

(카이저: 그냥 삘 받아서 간만에 푼젤이와 밤샜다. 아무튼 쌩쌩하니까 상관없어. 지금 바로 갈 거지?)

(나: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그럼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카이저: 그래. 대충 준비는 끝내놓았으니 금방 도착하마.)

지옥불 형님이 전해들은 정보를 토대로 추측해낸 장소.

하필 그곳은 제국 한복판에 있던 터라, 수배 중인 나로서는 쉽게 갈 수 없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이히히힝!

공간이동술사를 통해 제국 경비병이 없는 곳을 들러 도착한 장소.

거기엔 적대적인 제국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이동수단, 군단장급만이 차출할 수 있는 팔두마차가 세워져 있었다.

그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가자 카이저 형님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왔구나 드로야!”

“얼마 만이에요 형님. 그간 별일 없으셨죠? 푼젤이도 안녕? 잘 지냈지?”

“별일은 너한테 있었으면서 우리한테 묻고 있구나. 어디 형한테도 한 번 보여줘라. 그 쌍 신검의 실물을!”

그리고 최근 전직 및 퀘스트로 한창 바빴던 이 두 사람을 위해, 손수 착검한 신검들도 빼 들어 보여드렸다.

“와, 진짜 대박이에요. 양손에 나란히 7신기라니……! 드로 오빠는 욕심쟁잇!”

“크흠. 내 룬 페이서가 초라해 보이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는걸?”

“신창이 초라하다니, 어딜요! 아무튼 두 분 모두 피곤하실 텐데 이렇게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낮에도 부르지 그랬냐 드로야. 지금처럼 얼마든지 발 벗고 나섰을 텐데.”

“상황이 급하게 전개돼서 미처 연락드릴 새가 없었네요.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여튼 고생했다. 이제는 정말 처음 봤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 거물이 되어버렸구나. 대견하다.”

의자에 마주 앉아 날 바라보는 두 사람의 표정은, 마치 금의환향한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님과 같이 흡족해 보였다.

심지어 라푼젤은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간만에 만나 서로 안부를 묻고 정보도 교환하는 사이.

열심히 달리던 팔두마차는 서서히 속력을 줄이더니 멈춰 섰다.

카이저 형님이 지정한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었다.

“혹시나 한 번 더 둘러봤는데, 여기서부터는 경비가 삼엄하진 않다. 앞서 말했던 대로 혼자서도 도착할 수 있을 거야.”

“감사합니다. 형님. 두 분도 함께 가면 좋겠지만, 아시다시피 다른 유저들 눈에 띄어서 좋을 게 없어서요. 물론 기껏 갔더니 꽝일 수도 있고요.”

“뭐 일인 군단쯤 되시는 몸이니 혼자가 편하기도 하겠지. 나 같은 별 볼 일 없는 마창사 정도야 도움이나 되겠어?”

“헉, 형님 무슨 말씀을…….”

“후훗! 농담이다 농담!”

생전 장난도 안 치시던 분이 이제는 편하게 대하는 모습에, 어쩐지 기분이 좋아졌다.

아무튼 우리는 그렇게 숲속 한복판에서 헤어졌고, 나는 홀로 10성 은신을 시전해 산기슭을 올랐다.

그렇게 20여 분을 전력으로 달린 결과.

나는 하늘 산맥으로부터 흘러나온 한 산봉우리 위에 세워진 탑에 도달할 수 있었다.

바로 제국에 속해 있는 세 개의 마탑 중 하나, ‘칠흑 마탑’이었다.

‘과연 여기가 맞으려나? 히든캬드가 말해준 다리우스가 자주 나타난 동선. 그리고 칠흑 마탑이 갖고 있는 상징성. 마지막으로 최근 스토리의 급진전 이후로 탑내 NPC가 늘어났다는 정보까지……. 이곳이 맞을 확률이 80% 이상이긴 한데.’

어제 오후, 카이저 형님과 곧바로 확인해볼 수도 있었지만 이 야심한 새벽까지 끝끝내 기다린 이유.

그건 모든 정보를 종합해볼 때 다리우스는 이곳에서 마신검과 연관된 퀘스트를 얻었을 확률이 농후했기 때문이었다.

그 퀘스트가 뭔지는 모르지만, 태성 유저들 몰래 깨버리는 데 성공한다면 한 번 더 놈들을 소탕할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으니까!

‘천계도, 수중왕국도 아니라면 여기밖에 더 있겠어? 랭킹 2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냥터가?’

랭커일수록 가장 최근에 공개되는 고레벨 지역에서의 사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한데 놈을 비롯한 태성의 정예들은, 천계에서의 전투 이후 그런 사냥터에서 단 한 번도 만나 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숨겨진 인던 혹은 신규 필드 사냥터의 발견, 둘 중 하나가 분명했다.

전자라면 어쩔 수 없지만 만약 후자라면?

정예랍시고 부하들이 당하든 말든 지들만 편히 사냥했던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만들어 줄 작정이었다.

저벅저벅.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이 인적 드문 곳에 위치한 마탑 안으로 조심스럽게 입장했다.

“호오…… 날 보고도 공격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옥불 형님의 추측이 맞다는 걸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마탑 1층에 보이는 NPC들은 내게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원래라면 제국의 수배자인 탓에 어그로가 끌렸어도 진작 끌렸어야 정상이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이제는 99%로 늘어난 확신과 함께, 나는 계단 대신 벽을 달려 단숨에 탑의 정상에 올랐고.

지혜의 마탑주 뷔잔드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칠흑의 마탑주를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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