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300화 (300/350)

300화 더티 플레이 (2)

한때 칠흑 마탑은 칠흑 마도사의 로브 세트를 얻을 수 있어 수많은 마법사들로 붐볐던 장소.

하지만 다소 외진 곳에 위치한 터라 지금은 굳이 은신을 쓸 필요도 없이 한적했다.

<칠흑의 마탑주 세레나 마임 후작>

게다가 더욱더 찾을 일 없는 마탑주가 위치한 꼭대기 층.

이곳에 제국의 마탑주답게 후작 귀족 위(位)를 가진 대마법사 세레나가 있었다.

다른 칠탑 마법사들처럼 검지만 고급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로브.

덕분에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가 더욱 도드라져 무척이나 특별한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젊어 보이지만 설정상 할머니나 다름없었지? 아무튼 느낌이지만 뷔잔드보다 더 강해 보이는데?’

딱히 와볼 일이 없어 처음 만나보는 NPC.

원래라면 제국의 귀족이기에 진작 공격해와야 마땅했지만, 역시나 다른 마법사들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난 그렇게 중앙에 서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칠흑의 마탑주, 세레나 님이시…….”

“그대 ‘칠흑’을 쥔 새 시대의 영웅이여. 그대는 7신기의 주인이 의미하는 바에 관해 알고 있나요?”

원래 게임마다 퀘스트를 받는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타연은 ‘키워드(keyword)’ 시스템을 차용하고 있었다.

NPC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최소한의 느낌만큼은 주고 싶었다고 밝힌 기획 의도.

따라서 이 키워드 시스템에는 기본적으로 한가지 맹점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그건 사소한 퀘스트를 하나 받으려 해도 특정 키워드만큼은 반드시 언급해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 이 마신검 ‘룬 제스베라’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하지만 세레나는 내가 미처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대화를 걸어왔다.

NPC가 키워드도 없이 특정 반응을 먼저 보인 것.

그건 내가 소유한 마신검이 어떤 퀘스트의 퀘템으로 작동 중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였다.

“중간계에 다시금 ‘칠흑’이 나타났다는 건 많은 것을 상징하지요. 또한 그 칠흑의 주인에게는 막대한 사명도 함께 주어졌고요. 그대는 그 사명을 마땅히 따를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죄송합니다만…… 무지한 제게 가르침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칠흑이 다시 새로운 주인을 선택하는 날이 도래하면…… 세계는 처음 맞이하는 하얀 어둠과 직면하게 되리라…….”

“그게 무슨 말인지……?”

“칠흑 마탑주에게만 전해져 내려오는 경고이자 계시입니다.……. 안타깝게도 그 ‘예언’은 내 대에 이르러 이루어지는 모양이군요.”

뭔가 떡하니 시네마틱 영상이 나올법한 타이밍이었는데 그러지는 않았다.

여하튼 뜻 모를 말 하나하나에 뭔가 범상치 않은 내용이 담겨 있는 것 같아, 그녀가 하는 말을 차분히 들어보았다.

“얼마 전 세계수가 회복된 이후, 중간계의 마나는 급속도로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분명 인간을 비롯한 많은 생명들이 반기고 환영할 일이지만…… 옛 지식을 전하며 세계의 진리를 탐구하는 우리 같은 자들, 특히 탑의 주인쯤 되면 모를 수가 없지요.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을!”

“대체 어째서 그렇단 말씀이신 건가요?”

그저 정해진 대사를 읊는 것이기에 그녀의 말은 가만 놔둬도 이어진다.

하지만 어느새 대화에 몰입한 나는 이렇게 재촉하며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초대 탑주셨던 실비아 님은 신마 전쟁의 12영웅 중 한 명. 그분께서는 초대 황제이신 제논 님의 숭고한 희생에 감명받아 이곳에 칠흑의 마탑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그분의 의지만큼은 이어질 수 있도록……. 후대 마탑주들에게 한 가지 사명을 남기셨습니다. 신마전쟁 이후 모습을 감춘 ‘광명’이나 ‘칠흑’과 같은 7신기가, 다시 중간계에 나타날 때를 경계하고 대비할 것을요.”

“…….”

“칠흑을 쥔 그대는 중간계의 운명을 좌우할 영웅. 저로선 ‘그’ 존재들을 견제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태이기에 부탁드립니다. 근래 들어 마계의 공세가 극심해진 요정계로 가보실 수 있겠습니까? 그곳에서 사악한 존재들의 동태를 살핀 다음 제게 알려주십시오. 이 땅에 천 년 전 신마전쟁이 재현되는 것 또한 반드시 막아야만 합니다!”

띠링!

[퀘스트 ‘어둠의 위협’을 획득했습니다.]

[세레나로부터 ‘요정계 이동석’을 건네받았습니다.]

[어둠의 위협: 연계 퀘스트]

* 클리어 난이도: A

* 중간계에 앞서 요정계를 침략 중인 마계의 존재들을 직접 마주하라

* 퀘스트 클리어 조건: 마왕군 사령관과의 접촉

* 퀘스트 클리어 보상: ?

‘요정계라고?’

페어리퀸을 통해 ‘인던’ 형식으로 잠시 맛만 봤던 필드, 요정계.

갑자기 이곳이 튀어나올지는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듣자마자 그동안 왜 우리가 다리우스의 흔적조차 찾지 못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하여간 신규 필드는 기가 막히게도 잘 찾아내는 놈이구나.”

시공의 틈새 때도 느꼈지만, 확실히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태성 길드의 정보력과 저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의 예상대로 마계의 침공이 가시화됐다는 걸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

많은 정보와 함께 퀘템까지 건네준 세레나.

할 일을 끝마쳤는지 더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조용히 퀘스트를 받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놈들도 바보는 아닌 이상 대비 정도는 하고 있겠지?’

지금까지의 패턴을 고려해볼 때, 요정계처럼 차원이 다른 공간에서는 귀환 주문서가 먹히지 않을 확률이 99%였다.

따라서 이번 건은 다리우스를 한 번 더 외통수에서 마주할 기회나 마찬가지였다.

<요정계 이동석(퀘스트 아이템)>

* 요정계로 이동할 수 있는 좌표가 새겨진 세인트 스톤입니다.

* 사용 시 지정된 좌표로 이동하는 포탈이 생성됩니다.

하지만 퀘템의 설명을 살펴본바 큰 기대를 하긴 힘들었다.

포탈이라면 인원 수 제한이 있을진 몰라도 다수의 이동이 가능한 방식.

더군다나 이렇게 지정 좌표로만 이동된다면, 포탈을 여는 그 즉시 놈들이 알아챌 거라고 간주하는 편이 맞았다.

정말 소심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조심스러운 다리우스 놈이라면, 포탈 좌표가 있는 곳에 부하 한 명 정도는 상주시켜놨을 테니까.

(카이저: 드로야, 어떻게 됐어? 그곳이 맞았어?)

(나: 아, 형님! 죄송해요. 말씀드린다는 걸 깜빡하고 있었네요. 잘 끝났습니다. 퀘스트도 받았고 놈과 태성 정예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대충 알아냈어요.)

(카이저: 오, 그래? 그곳이 어딘데?)

(나: 요정계였습니다. 근데 좀 이상하긴 하네요. 제가 받은 건 마계 몹들을 상대해달라는 퀘스트거든요. 근데 놈들은 현재 마계와 한편인 것 같았잖아요? 그럼 요정계에서 지금 뭘 하고 있다는 거죠....?)

(카이저: 재미난 얘기구나. 뭐가 됐건 그곳에 직접 가보면 알 게 되겠지. 근데 들어보니 거기엔 혼자만 갈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어때? 형도 좀 따라가 보면 안 될까? 은신이 없어서 안 되려나?)

평소엔 연락도 뜸한 편이면서 득달같이 귓속말을 건네온 카이저 형님.

하긴 랭킹이나 공성전 따위에는 전혀 관심도 없지만, 퀘스트 만큼엔 사족을 못 쓰는 스타일이라 그럴 만도 했다.

(나: 어차피 공틈과 달리 요정계는 정해진 장소로만 이동 가능해서 기습은 힘들 것 같아요. 그러니 괜찮을 것 같은데요? 그냥 함께 가시겠)

하지만 그 순간, 어떤 생각 하나가 내 머릿속을 번뜩 스쳐 갔다.

‘근데 지금 받은 퀘스트의 발동 조건이 정말 마신검이 맞았나? 대화 내용을 보면 세계수가 회복된 후에 방문하는 게 필수 조건이었던 건 맞는 것 같은데.... 꼭 마신검이 있어야만 요정계에 갈 수 있었다는 건 뭔가 이상한데?’

세레나는 마신검을 칠흑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이 칠흑의 마탑이 마신검 전용 퀘스트가 있는 곳이라 의심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분명 칠흑 말고도 ‘광명’도 함께 언급했다.

그러니 어쩌면 요정계로 가는 퀘스트는 마신검만 받을 수 있던 건 아닐 수도 있었다.

만약 퀘스트의 발동 조건이 마신검이 아닌 ‘7신기’ 그 자체였다면?

(카이저: ? 왜 말을 하다 말지?)

(나: 형님! 함께 시험해 볼 일이 생겼습니다. 지금 시간 되시죠?)

(카이저: 하하! 뭔가 또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나 보구나. 물론 되고말고. 너를 위해 친히 이 새벽까지 기다려 마부를 자처해 줬는데!)

(나: 잘됐네요. 그럼 당장 지금 대륙 전역의 마탑주들과 교황을 빠짐없이 만나 주세요. 형님은 텔로라의 신창이니까 그쪽부터 가보는 게 좋겠네요!)

(카이저: 응? 교황은 신창을 받고 타이탄 봉인을 풀 때 이미 숱하게 만나 봤는데?)

(나: 그래서 저희가 준비되어 있던 퀘스트들을 놓치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7신기를 너무 일찍 얻었던 탓에요!)

그렇게나 퀘스트에만 집중하는 카이저 형님보다 다리우스가 앞설 수 있었던 이유.

만약 지금 생각해낸 게 맞다면, 모든 것이 설명된다.

세력은 많아도 정작 사냥할 고레벨 사냥터가 마땅찮던 다리우스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기저기를 헤맸을 것이고.

우리를 피할 수 있는 제국 내 필드에는 마침 이곳 칠흑의 마탑이 존재하고 있었다.

‘각 7신기마다 특정 NPC를 만나게 되면 주어지는 퀘스트. 요정계 이동 특혜는 그렇게 설명하는 편이 맞을 거야.’

굳이 신의 선물이 아니더라도 카이저 형님은 퀘스트를 통한 스토리 진행으로 ‘신창’을 얻었다.

그 말인즉슨, 지금쯤이면 7신기를 위해 준비됐던 퀘스트가 나타나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타이밍이었다는 것이다.

(카이저: 대충 알겠다. 그럼 바로 달려 가보마.)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상황인지 전부 유추해낸 카이저 형님.

그와 동시에 나 또한 광명의 마탑이 있는 중립 국가 페이센 왕국으로 향했다.

* * *

(카이저: 드로야, 네 말대로였다! 에레미아를 찾아가자마자 퀘스트와 함께 이동석도 건네받았어!)

형님으로부터 들어온 귓속말.

그와 동시에 내게도 이동석 하나가 새롭게 주어졌다.

[데이얀으로부터 ‘요정계 이동석’을 건네받았습니다.]

“이럴 수가…… 설마가 진짜였다니?”

귀환한 다음 훼라리까지 꺼내 들어 황급히 도착한 광명의 마탑.

이곳에서 마주한 마탑주 데이얀은 예상했던 대로 특별한 반응을 보였다.

-광명을 품에 안은 자가 나타나다니……. 이 혼란하고 위급한 정세에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세레나와 비슷한 대사를 건넸던 것.

그것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내가 어떤 키워드를 꺼내기도 전에 먼저 말을 건네왔다.

<요정계 이동석(퀘스트 아이템)>

* 요정계로 이동할 수 있는 좌표가 새겨진 세인트 스톤입니다.

* 사용 시 지정된 좌표로 이동하는 포탈이 생성됩니다.

그리고 비슷한 내용의 히스토리를 들은 끝에 건네받은 이동석.

퀘스트 없이 건네받은 또 하나의 이동석은 기존 이동석의 설명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다른 이동석이었다.

왜냐면 겹쳐지지 않은 채 인벤토리의 한 칸을 따로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완전히 같은 템이었다면 당연히 겹쳐졌겠지? 근데 그렇지 않다는 건 좌표가 달라서 구별된다는 뜻 아니겠어? 만약 바라던 대로 좌표가 다른 곳에 포탈이 열린다면…… 놈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몰래 잠입할 수 있어!’

하루 사이에 다리우스를 두 번이나 킬할 지도 모른다니?

물론 놈이 오늘 타연에 접속하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접속하더라도 요정계에 올지 안 올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뭐가 됐건 놈들은 아직 입구가 하나만 있는 줄 알고 있을 터.

그러니 만약 마주칠 수만 있다면…… 나는 무조건 무방비 상태에 놓여있는 놈을 기습할 수 있었다.

(나: 형님, 방금 저도 하나 새로 얻었거든요? 죄송한데 형님이 얻은 이동석은 잠시만 봉인해 주시겠어요?)

(카이저: 응? 함께 간다고 하지 않았어?)

(나: 죄송합니다, 생각이 바뀌었어요. 만약 넘어갔는데 다리우스가 없으면, 혼자서 계속 은신으로 죽쳐보려고요.)

(카이저: 오호라. 우리에게 다른 이동석이 있다는 걸 잠시만 비밀로 하자 이거구나? 넌 이럴까 봐 나보고 에레미아를 찾아가 보라고 했던 거였고?)

(나: 네, 맞습니다. 대신 그렇게 오래는 안 걸릴 거예요. 그저 놈을 한 번만 더 죽일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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