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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303화 (303/350)

303화 타개책 (1)

‘넌 정말 포기를 모르는 놈이구나……. 이쯤 됐으면 그냥 포기하고 접는 편이 낫지 않아? 지금껏 쌓아온 명성을 다 내팽개칠 만큼, 도저히 패배는 인정할 수 없는 거냐고?’

태성 길드, 그리고 태성 라인의 이미지가 좋지 않다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게임에서 직접 마주하는 유저들에 한정된 얘기였다.

직접 부딪힐 일 없는 근 90%에 이르는 절대다수의 유저들에게는, 태성이 그저 대기업의 이미지가 덧대어진 타연 최강의 길드로만 여겨졌다.

그리고 그건 어디까지나, 태성의 방침이 그만큼 엄격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적이거나 적으로 판정될 잠재 유저들에게는 한없이 잔혹했지만, 일반 유저들에겐 그렇지 않았다.

통제 사냥터가 많았어도 고레벨 사냥터에 한정되었고, 척살 또한 자체적으로 ‘척살권’이라는 걸 만들어 무분별하게 남발하진 않았다.

당연히 그 모든 이유는 다리우스가 만든 길드의 이름.

현실 속 본인 가문인 ‘태성 그룹’을 의식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지금 놈이 쓴 글은?

마계 진영에 택하면서 지금까지 씌워져 있던 굴레라도 벗어버린 듯, 이 결정이 ‘태성’이란 이름에 미칠 영향은 조금도 생각지 않은 것 같았다.

실제로 수천 개나 달린 댓글을 읽어보니, 최신 글에는 벌써 상황을 파악한 유저의 글도 올라오고 있었다.

-저 시스템이라는 거, 바로 밝혀졌어요. 태성 라인은 앞으로 ‘마왕군’ 소속이 된답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마왕군이라니? 천계만 열렸지 마계는 구경도 못했는데 무슨?

└└이미 태성 라인 유저들에게 조치 내려졌대요. 다리우스가 주는 마왕군 포섭 퀘스트라나? 그걸 통해서 마계 쪽에 협력하는 인간군이 됐다고요.

-이 공지글 진짭니다. 방금 공틈에 태성 라인 유저들 떼거지로 몰려와 PK하는 중이에요. 죽은 유저만 해도 벌써 수백 명은 될걸요!

└태성 라인이 진짜 제대로 미쳤구나? 엄밀히 따지면 흑풍단은 피닉스 라인도 아닌데 왜 선공한다는 거야?

└└심지어 난 망토도 안 차고 있는 유저 치는 것도 봄. 한 번이라도 공성 참여한 사람은 아이디 전부 공유하고 있나 봐요!

흑풍단과 같은 특수한 세력이 만들어진 건, 사실 기존에 놈들이 보여줬던 그런 방침들의 영향이 컸다.

단순 재미로 공성전에 일회성으로 참여한 풀뿌리 유저들.

대부분 길드도 없는 그들을 설마 태성 놈들이 기억하고 괴롭힐 리는 없을 거란 확신이 있었으니까.

한데 작금의 다리우스는 이제 눈에 아무것도 뵈는 게 없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페리엘의 망토에 이어 마신검마저 잃어버렸다 해도, 놈이 시작한 이런 공격은 시간이 지날수록 만인의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다리우스 솔킬이고 뭐고, 이대론 안 되겠다. 놔두면 피해가 너무 심해지겠어! 여기에 올 것 같지도 않고!’

어쨌든 그건 놈의 사정이었고, 중요한 건 이미 나 때문에 일반 유저들에게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자초지종과 상황을 파악한 나는 곧바로 타연에 재접속했다.

지금 상황에서 다리우스나 잡겠다고 기다릴 순 없는 일.

다행히 이동석의 대기 시간인 4시간은 진작에 지난 터라, 바로 중간계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산드로: 글 읽고 왔습니다. 이 자식들 전략을 바꿨어요. 라인 간 전투 외에도 흑풍단을 무차별 PK 하겠다는 거로요!]

[축복받은얼굴: 근데 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야? 서로 전쟁 상태가 되지 않으면 페널티가 심하잖아. 뜬금없이 마왕군이 됐다는 건 또 뭐고?]

[산드로: 나도 오늘 막 알아낸 건데.... 7신기를 가진 유저는 마왕군 제안을 받는 퀘스트를 얻을 수 있어. 근데 하필이면 국왕인 유저가 포섭되면 부하들을 늘릴 수 있었던 모양이고. 그걸 활용한 듯싶은데... 정확한 건 아니고 일단은 전부 내 추측이다.]

[당근당근단검: 유저가 마계 진영을 택할 수 있다니.... 역시 타연은 갓겜이라니까! 그럼 반대로 천계 진영에 들어가는 법도 있겠네요?]

[산드로: 그럴 수도 있겠지. 뭐 일단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다리우스는 이 진영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 포섭 인원수에 제한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유저를 죽여도 머더러가 되지 않는 이유는 이건 거 같아. 여러분, 일단 전 실제 현장을 살펴보게 공틈에 가보겠습니다!]

[축복받은무빙: 그래, 우리도 모여서 필드 전역을 좀 둘러볼게!]

난데없는 이 상황에 답답해할 길드원들을 위해, 나는 간략하게 설명해준 뒤 공틈으로 향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흑풍단 유저들이 가장 많이 모이고 사냥하는 곳은 시공의 틈새.

한데 도착한 공틈의 호라이즌 마을은 여느 때와는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이게 무슨……?’

항상 인파가 넘쳐나던 마을 광장이 오늘따라 유난히 한산했던 것.

아무리 천계나 수중왕국 같은 대체 사냥터가 늘어났고, 최근 내가 이곳에 올 일이 없었더라도 몰라볼 수 없었다.

댓글에서 읽었던 대로 아주 잠시 만에, 폭풍과도 같은 ‘학살’이 이곳을 훑고 지나갔다는 것을.

나는 얼른 훼라리를 소환해 주변을 돌아보았다.

‘없다……. 없어!’

공틈의 특성상 높게 날 수 없어 멀리까지 훑어보지 못하지만, 확실히 사냥 중인 유저들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마을 근처라서 더욱 그런 느낌이라 빠른 속도로 멀리까지 나아가자, 처음으로 조우할 수 있었다.

태성의 길드 마크를 단 채로 사냥 중이던 유저들을 뒤치기하는 무리를.

“이건 정… 방… 다! …로를 …해랏!”

특이하게도 무언가를 계속 외치며 공격 중인 놈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황당한 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이건 정당방위다! 산드로를 탓해라!”

‘이 자식들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동쪽에서 뺨 맞고 서쪽에다 화풀이하는 것도 아니고…….

흑풍단들을 죽이면서 하는 소리가 고작 이따위 헛소리라고?

그것도 흑풍단이 맞는지 확실해 보이지도 않는 유저들을 대상으로?

“이건 정당방위다! 산드로를 탓해라!”

“그게 무슨 개소리세요?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한테 저를 탓하라뇨?”

“헉!”

얼마나 PK에 열중하고 있었는지, 놈들은 내가 하늘에서 뛰어내려 눈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힐끗 살펴본바, 다들 한두 명 죽여본 솜씨가 아닌지 유저 간 전투의 기본 이상은 되는 움직임이었다.

'차고 있는 장비도 분명 고레벨 수준!'

랭커나 랭커급에 이르는 '진짜' 정예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레벨업에 열중하고 있다.

하나 그들이 아니더라도 태성에는 300레벨 후반대에 이른 고수들이 이렇게나 많이 득실대고 있었다.

또한 그보다 무서운 건 방금 내려진 명령을 일사불란하게 따르고 있는 지금 같은 모습.

충성심 때문인지 충분히 주어질 보상 때문인지는 몰라도…… 다리우스가 만든 태성 길드의 조직력만큼은 확실히 인정해줄 수밖에 없었다.

“주옥됐다! 모두 흩어져!”

그리고 그 조직력은 도망에서도 빛이 났다.

방금 전까지도 공격하던 걸 멈추고,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망설임 없이 흩어진 것이다.

[라이트닝 배리어!]

[태세 전환!]

[재빠른 몸놀림!]

하지만 그것도 공격력이 약했던 예전에나 통할 수법.

테크트리 전환 후 손에 넣은 막강한 공격력이 마신검을 통해 또 한 번 급증한 지금.

레벨 차이로 보정까지 받을 그들 중에, 내 공세를 버텨낼 수 있는 유저는 없었다.

“다들 괜찮으세요?”

“고, 고맙습니다! 덕분에 살았네요.”

포획으로 마지막 한 명까지 빠짐없이 잡아낸 나는 놈들이 공격 중이던 원딜러들에게 다가갔다.

몇 명이었는지 모르지만 남아 있는 유저들은 고작 셋뿐.

차고 있는 장비로 보아 최소한 십인 파티 정도는 됐어야만 이곳에서 사냥이 가능했을 유저들이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지……. 태성 길드원들이 우릴 왜 공격했는지 혹시 아세요? 저놈들이 산드로 님을 탓하라고 외친 건 뭐였는지도요?”

“먼저 한 가지만 여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 혹시 흑풍단원이세요? 아니면 저희 공성전에 참여한 적이 있으세요?”

“네, 저는 흑풍단 맞아요. 근데 여기 두 분은 아니에요. 그냥 원딜팟에 끼고 싶어서 오셨던 분들이세요.”

어찌나 빨리 행동에 옮긴 건지, 이들은 아직 다리우스가 쓴 글의 존재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놈들은 흑풍단이고 뭐고 간에 그저 내 이름만 팔면서 무차별 PK를 벌이고 있었다.

‘후환이 없을 만한…… 무 길드 유저들은 그냥 쳐버린 게 분명해.’

나는 차분히 놈들의 행동을 파악하면서, 살아남은 이들에게 자초지종을 간략하게 전해주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저희는 흑풍단과는 아무런 관련 없는데…… 그럼 왜 선공한 거죠?”

“죄송하지만 저도 확인 중입니다. 일단은 다들 위험하니까 바로 마을로 돌아가 귀환부터 하세요. 저는 공격당하는 분들이 더 안 계신지 찾아보겠습니다. 그럼 이만!”

처음 만난 PK 파티만 해도 이 꼴이었으니, 현재 타연 전역에서 이루어지는 태성 라인의 횡포가 어떨지 충분히 짐작됐다.

두 번째 파티, 그리고 세 번째 파티.

이번엔 구해낸 이들과 대화할 시간도 아끼며 빠르게 태성 라인을 잡아냈지만.

내가 공틈에 나타난 소식이 금세 퍼졌는지, 더는 다른 놈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산드로: 다들 상황이 어떠세요? 제가 확인한 바론, 놈들은 흑풍단을 핑계로 일반 유저도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중입니다. 저 때문에 공격받는 거라고 외치면서요.]

[무적살라딘: 내가 본 것도 마찬가지야. 뜬금없이 네 이름만 주야장천 외치면서 공격 중이더라. 그 입은 내 암살검으로 바로 찢어 줬지만!]

[연우: 오빠, 저도 만났어요! 자신들은 정당방위라면서 오빠를 탓하라던데요? 막 이렇게만 말하면서 저레벨들을 죽이고 있더라고요.]

[산드로: 저레벨들도 죽였다고? 그게 진짜야?]

[연우: 네. 물론 사냥터는 제법 고레벨 지역이긴 했지만, 차림을 보면 채집하러 온 저레벨이 분명했어요! 그리고 도둑이든 기사든 따지지 않고, 원딜러 말고도 아무나 막 죽이더라고요!]

레벨 차이가 심하면 공격 자체가 안 박히기 때문에, 흑풍단원을 모집할 때 장비는 보지 않아도 레벨만큼은 철저하게 체크했다.

그러니 흑풍단원 중에 저레벨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단정 지어도 과언이 아니었다.

또한 흑풍단은 대부분 원딜러로만 구성됐다는 걸 모르는 사람도 없었다.

[산드로: 아무리 봐도 흑풍단은 핑계거리예요. 그냥 놈들은 모든 유저들을 죽이려는 것 같습니다. 그저 저희에 대한 화풀이와 언플을 위해서요!]

[축복받은얼굴: 뭐라고?]

아무리 혼자 캐슬 테러를 하고 많은 태성 놈들을 잡아낸다 해도, 우리로선 한계가 있었다.

그러니 상황을 파악한 지금, 당장 찾아갈 곳이 있었다.

* * *

“……제가 알아낸 건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흐음. 이거 참 생각지도 못한 골칫덩이가 생겨버렸구나. 7신기, 혹은 마신검에 그런 퀘스트가 있었고 또 다리우스가 그걸 토대로 이런 식으로 막무가내 전략을 펼치게 되다니…….”

동시다발적으로 활동하는 대규모 병력을 상대할 수 있는 건 같은 대규모 병력뿐.

나는 피닉스 라인의 수장인 지옥불 형님을 찾아와 대책을 강구했다.

“일단 우리 라인의 모든 동맹들에게 태성 라인의 PK를 막으란 지시는 내려놓았다. 근데 문제는…… 그게 별로 소용없을 것 같다는 거지.”

“네? 저희 쪽이 인원수가 딸려서 그런가요?”

“그런 건 아니다. 갑자기 오늘부터 놈들의 전투 기조가 확연히 바뀌었거든. 보고받기론 우리 측이 발견해서 다가가면 맞붙기보다는 무조건 도망친다고 하더구나. 그러면서 한편으론 일반 유저들에 대한 PK는 멈추지 않는 거지.”

맞상대는 피하면서 철저히 일반 유저들만 죽이겠단 놈들의 속셈.

야비하다고 해야 할지 지독하다고 해야 할지.

이런 놈들의 전투 방식은 피해는 최소화하면서 효과는 최대한으로 보고 있었다.

벌써부터 이번 일로 죽은 유저들의 원성이 자자할 정도로!

“아무리 죽여도 머더러가 되지 않으니 손해 볼 일이 없으니까요. 운 나쁘게 저희한테 걸려 죽더라도, 유저들을 죽이면서 먹는 드랍 템이 더 많을 거예요. 어째서 일루전은 이런 시스템을 만들어 뒀던 거죠? 이 같은 피해가 발생할지 예상 못 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 같은데요?”

“그러게 말이다. 이거 참 첫 단추가 잘못 채워졌더니 그 부작용이 계속되고 있다고나 할까…….”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형님?”

“신검과 마신검이 너무 일찍 모습을 드러낸 여파가 이번에도 미친 것 같아 하는 소리다. 우리라면 몰라도 일반 유저들은 아직 마계 침공의 낌새도 느끼지 못한 상황인데, 갑자기 마계 진영에 속한 유저들이 대규모로 나타나다니? 이건 누가 봐도 완전히 전후 관계가 잘못된 것 같지 않아?”

“어라? 듣고 보니 그렇네요?”

“돌이켜보면 내가 마신검을 뽑자마자 운영자가 찾아왔던 것도 참 이상한 일이긴 했지. 여러 이유를 대긴 했어도 생각해보면 그저 둘러댄 핑계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또 한 번 예리한 직감을 발휘하는 지옥불 형님.

확실히 나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번 일을 분석하고 계셨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수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아무리 다리우스가 궁지에 몰렸다 해도 그런 선택을 주저 없이 한 게 이상해. 그리고 곧바로 수중왕국에 함정을 파뒀던 것이나, 이번 대규모 공세를 갑자기 결정한 것도…….”

“겉보기와 달리 소심한 그 자식이 벌인 짓치고는 대담한 작전들이었죠? 우리가 너무 선전해서 할 수 있는 게 많지도 않았을 텐데, 하는 것마다 아다리도 딱딱 잘 맞았고요.”

“그래, 그게 바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운신의 폭이 없는 상황이라 이대로는 말려 죽으며 몰락할 일만 남았었는데…… 제법 잘 버티며 대항하고 있잖아? 나는 이게 단순히 놈의 근성 때문에 벌어진 일 같지가 않구나.”

“그러면요? ……설마?”

최근 들어 어디서도 존재감을 느끼지 못했던 인물.

그래서 완전히 손을 뗀 게 아닌가란 생각도 슬그머니 들던 사람.

형님은 어쩌면 내게 가장 힘든 고비가 될지도 모를 그 존재를 오랜만에 리마인드해 주었다.

“그래. 다리우스는 어디선가 제대로 된 코칭을 받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것도 아직 구현되지 않은 비밀 정보들을 훤히 꿰뚫고 있어, 가장 적절한 선택만 골라낼 수 있는 누군가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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