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305화 (305/350)

305화 요정계 정벌 (1)

“저, 저보고 황제가 되라고요?”

“그래. 제국의 황제가 된다는 것. 그건 대륙 절반에 가까운 영토와 제국 10군단의 주인이 된다는 걸 의미하지.”

“그러니까 형님 말씀은, 다리우스가 자기 길드원들에게 무제한 척살을 선포한 것처럼 황제가 되어 NPC들에게 태성 라인에게 척살 지시를 내리란 뜻이에요?”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런 권한이 주어지는지도 지금으로선 알 수 없지.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정확히 알고 있다.”

“어떤 거요?”

“전쟁 선포. 다른 것 다 필요 없이, 이것만 해도 태성 라인의 중심인 티에스 국은 멸망할 수밖에 없다. 대륙 절반에 가까운 제국의 영토에 접근도 할 수 없게 될 뿐만 아니라, 제국 10개 군단의 병사들이 차례로 침공하게 될 테니까!”

나도 제국 영토에 들어갈 때면 특별히 더 조심하거나 카이저 형님의 도움을 종종 받아야 했다.

이것도 고레벨 은신과 대도 부츠, 훼라리 등을 가졌기에 가능한 일.

어느덧 타연 톱 수준에 이른 우리 길드원들에게도, 제국의 영토를 돌아다니는 건 여전히 목숨을 걸어야 할 위험한 일이었다.

그리고 한 차례 겪어 봤던 제국군의 공격.

수만 명이 넘는 병력뿐만 아니라 타이탄까지 몰려왔던 NPC 군단의 침공은, 단일 세력으로 막기엔 피해막심일 수밖에 없었다.

‘하긴 일개 유저가 제국을 적으로 돌린 채 타연을 계속할 수 있을까? 영웅의 전당, 생명의 숲, 하늘 산맥 등의 신규 필드들은 앞으로도 제국 영토나 인근에서 나오게 될 텐데? 어쩌면 황제가 되는 것이…… 가장 간단하면서 확실하게 태성을 해체하는 방법일지도?’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무식한 방법을 쓰고 있었다.

다리우스를 비롯한 태성의 수장들을 수차례 죽이고, 무한 필드전과 캐슬 테러 등을 끝없이 진행하면 놈들이 하나둘씩 포기할 거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놈들의 이런 극단적인 반응을 보니, 너무 단순하고 순진한 생각이었다.

우리를 상대하기 힘들자 오히려 약한 흑풍단과 일반 유저들을 대상으로 PK하는 행패.

이런 놈들을 우리 대신 잡아줄 ‘대행자’가 생기게 된다면?

그것도 대륙 전역에서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명령을 수행하는?

“못 버티겠네요. 절대로 못 버틸 거예요. 소수 길드라면 모를까, 놈들 같은 거대 세력일수록 제국과의 전쟁은 길드 해체급 재앙이 될 겁니다!”

“그래 맞다. 그리고 마침 너도 퀘스트를 받았다고 했지? 연계 퀘스트 끝에 얻은 나완 달리, 국가를 건국해서 받게 된!”

유저가 황제가 된다는 말은 얼핏 황당무계하게 들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 형님이나 내게는 그게 가능하다는 증거가 존재하고 있었다.

클리어되지 않아…… 아니, 클리어할 수 없어 줄곧 퀘스트창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불가능한 임무가!

[황제 도전: 특별 퀘스트]

* 클리어 난이도: SS

* 가이라 제국의 황제를 물리쳐 새로운 제국 황제에 도전하십시오.

* 퀘스트 클리어 조건: 황제 살해

* 퀘스트 클리어 보상: 황제 등극

이 설명을 보기 위해선 최소 7신기의 주인이 되거나, ‘국왕’ 자격이 필요한 초희귀 퀘스트.

또한 그렇기에 앞으로 1, 2년간은 나와 상관없을 거라고 애써 외면하고 있던 걸 말씀하셨다.

“물론 아직 갖고 있긴 하지만…… 깰 수 있을까요? 그것도 지금 시점에서요?”

“충분히 클리어할 수 있을 거다. 스토리를 고려해보면 이것부터 깨는 게 제대로 된 순서거든.”

“네? ……어째서요?”

“저번에 내가 말한 적 있지? 사실은 현 황제가 이 땅에 마왕을 재림의 속셈을 가진 악역이라고.”

“네, 그러셨죠.”

“근래 메인 퀘스트에 집중하면서 그 이유를 정확히 알게 됐다. 천 년 전, 초대황제 제논이 세계수를 파괴하며 받게 된 신의 저주 때문이었지. 현 황제까지 이어진 그 저주에 미쳐버린 거야.”

중간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동료들을 배신하고 세계수를 파괴해 오명을 뒤집어쓴 제논.

물론 역사에는 빛나는 12영웅의 업적과 초대황제로서의 눈부신 치적만이 기록됐지만, 나를 비롯한 유저들은 스토리 진행을 통해 이 복잡한 비사에 관해 알게 됐다.

그리고 천년이 넘도록 자손에게 이어져 온 신의 저주.

그로 인해 고결했던 영웅의 희생은 결국 당대에 물거품이 돼버리는 게 타연의 메인 스토리였다.

“스토리의 진행 순서는 현 황제의 마왕 소환 시도와 유저들이 그걸 막는 과정이 우선이다. 아마 당연히 저지되겠지만, 반쯤 열리게 된 마계의 포탈로 인해 마왕군들이 넘어오는 게 차후 스토리였을 테고.”

“그렇다면 유저가 마계 진영을 택할 수 있던 것도 그즈음으로 설계됐겠네요.”

“그렇지. 7신기를 가진 소수만 특별히 먼저 가능했지만, 애초에 지금도 단 3자루밖에 풀리지 않았으니 게임에 영향을 끼칠 수 없는 극소수에 불과했을 거다. 아마 신의 선물만 없었다면 단 한 명에 불과했을 테지.”

그리고 하필이면 그 몇 명 중에 국왕 유저가 껴있던 게 이 사달이 발생한 원인이었고 말이다.

“어쨌든 형님 말씀은…… 현 황제에 도전하는 시점이 생각보다 이를 수도 있단 말씀이신 거죠?”

“그래. 나보다 황제와 관련된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유저는 없다. 그런 내가 판단하기론 황제를 죽이는 건 근시일에 가능해 보인다. 투 메르타스를 떠올려보면 절대 죽이지 못할 시점이라고 여겼을 때 극소수로 도전해 잡아냈지. 그때와 비교해보면 대상만 다를 뿐, 성공확률은 비슷할 거다.”

“…….”

그 정도라면 내 예상보다는 훨씬 더 높은 수준.

실패한다면 타격이 크겠지만, 성공한다면 모든 문제가 한순간에 해결된다.

무엇보다 공공연하게 황제의 꿈을 내비쳐왔던 다리우스에게, 완벽한 패배를 안겨줄 수 있었다.

“또한 한참 뒤에 깰 퀘스트였다면 지금 주어졌을 리가 없다. 물론 2.0 과정 중에는 다른 굵직굵직한 보스 몹들도 몇 개 더 있는 것 같다만.”

“성을 두고 공성전을 벌이던 게 1.0의 주된 콘텐츠였다면, 2.0에서는 국가 간 전쟁이 주였는지도 모르죠. 그 준비 단계로 유저들이 국가도 건국할 수 있었던 거고, 제국이란 거대 국가도 존재했던 것이고요.

“그것도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있겠구나. 어떻냐? 아직도 황제가 된다는 게 불가능하게만 느껴지냐?”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이러면 간단해졌다.

개전을 선포하고 본격적으로 필드전을 벌였다.

그리고 다리우스 네가 만들어둔 함정에 스스로 들어가 오히려 널 죽여버렸지.

그러자 패배를 인정하기는커녕, 죄 없는 유저들을 PK하면서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겠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네 생각처럼은 되지 않을 거다.

“해보겠습니다, 형님. 이번에도 도와주실 거죠……?”

“당연하지. 이참에 함께 깨버리지 않았다가는, 황제 암살 퀘스트를 깨키 위해선 널 죽여야 할 수도 있으니까! 하하하!”

“엇? 그게 그렇게 되려나요? 하핫!”

“후훗. 물론 그편이…… 훨씬 더 어려운 난이도일 것 같고 말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정상에 서 있는 지옥불 형님과 카이저 형님.

이 두 형님과의 인연이 참 다행이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어떤 어려움과 곤경이 닥친다 해도…….

우리 길드원과 이 두 형님만 있다면, 얼마든지 헤쳐나갈 자신이 샘솟았으니까.

* * *

“그러니까 갑옷 세트를 만들려면 이 재료들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신 거죠?”

“맞아유. 유저 최초로 디바인 장비를 맹그나 싶었는디…… 역시 안 되겠구먼유.”

이리저리 정신없이 돌아가는 상황에도 놓칠 수 없는 게 있었다.

어제 투 뮤탄에게서 얻은 재료로 제작을 의뢰한 테디베어의 연락 같은 경우가 그러했다.

“못 만들다뇨? 왜요? 만들 수 있으니까 도안도 있는 거 아니에요?”

“잉? 나머지 재료를 듣고서두 그런 말이 나오는 겨?”

“그러니깐요. 그게 왜 문제란 거세요? 구하면 그만이잖아요.”

하루 새 달켄과 로낙쏜의 클랜 마스터들을 오고 가며 힘겹게 도안 퀘스트를 달성했다는 테디베어.

핑크래빗을 통해 전해 받은 돈만 해도 무려 50만 골드가 필요했다는 레시피엔 다른 난관이 도사리고 있었다.

갑옷 상의와 하의, 어깨 견갑, 디바인 갑옷 3종 세트답게 엄청난 재료템들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용의 비늘과 가죽은 쬐금만 있어두 되지만, 성룡의 뼈? 요것이 너무 많이 필요하잖여. 요놈은 투 메르타스한테서 드랍되는 거랑 다른 거 같은디, 카오스 스톤인가 하는 건 또 무시고? 이걸 워째? 못 맹그는 게 맞지 않어유?”

“성룡이라…… 당장 구할 순 없겠지만 왠지 누굴 말하는 건지 알 것 같네요. 그리고 카오스 스톤은 마계에서만 나오는 특수 광물입니다.”

“……잉? 머시여? 둘 다 알고 있는 기여?”

“네. 들어는 봤어요. 둘 다 구하려면야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애초에 한 개도 구하기 힘든 디바인 장비.

아무리 제작이라도 그걸 3피스나 손쉽게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역시나 투 뮤탄은 재료의 일부분이었을 뿐, 디바인 장비를 제작하려면 필수 아이템들이 총 3개 필요했다.

그중 당장 성룡의 행방은 알 수 없었지만, 카오스 스톤은 어디서 구할 수 있을지 한군데 떠오르는 곳이 있었다.

“그닝께 구해는 줄 거다 이거지유?”

“네. 전부 구해오겠습니다. 그러니까 포기하지 마시고 나머지 준비는 전부 끝마쳐 놓고 계세요. 제가 가지고 오면 바로 뚝딱 만들 수 있게요.”

“할튼 간에 산드로 씨 당신은 잼는 사람이여. 알겄슈. 준비 다 해노코 있겠구먼유.”

황제에 도전하는 건 SS급 난이도.

당연히 그 전에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는 다 마쳐놓고 도전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선 레벨업과 아직 부족한 장비 보강이 필수.

성룡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역시나 걱정되진 않았다.

이름이 언급되고 투 뮤탄과 함께 재료 템의 목록에 들어있다는 것 자체가, 놈이 잡을만한 놈이란 증거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럼 바빠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뚜렷한 목적이 정해진 이상,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나는 그와의 짧은 만남을 끝으로, 전 길드원들 소집시켜 놓은 아베르 성으로 귀환했다.

* * *

“그럼 포탈을 열겠습니다?”

“네, 형님!”

라챤이의 우렁찬 응답에 나는 인벤토리 안에 들어있는 돌을 터치했다.

[요정계 이동석을 사용하시겠습니까?]

[YES]

그러자 아베르 성 한복판에 설치된 요정계로 향하는 푸른 포탈.

내 진입을 선두로 모든 길드원이 한 명도 빠짐없이 뒤따라 들어왔다.

“와! 뭐죠 여기?”

“대박인데? 진짜 멋지다!”

“어머, 저 성 좀 봐! 왜 저리 반짝거리고 이뻐?”

그리고 예상했던 반응 그대로, 다들 크리스탈 캐슬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기 바빴다.

“다들 충분히 구경하셨죠? 그럼 이만 출발하겠습니다?”

“가자가자! 어차피 앞으로 실컷 보게 될 풍경인데 나중에 자세히 보지 뭐. 일단 태성 놈들부터 잡자고!”

출발 전부터 한껏 달아오른 현중이.

녀석은 오늘 보인 놈들의 비상식적인 태도에 가장 열 받아 했던 사람 중 하나였다.

-완전 우리 세인트 길드원들 조질 때와 똑같이 구는구만? 스케일만 커졌지, 여전히 비열하고 야비한 새끼들이라니까?

잠시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오른 모양.

그러면서도 혹여 놈들이 놀라 도망칠 걸 염려해, 녀석은 흥분했지만 냉정한 발걸음으로 푸른 장막을 통과했다.

“저쪽이야. 그리로 쭉 가다 보면 마계 몹과 태성 놈들이 보이기 시작할 거다.”

“옥케이!”

그리고 우리 길드원들은 내 오더에 따라 한 몸과 같이 딱 달라붙어 들판을 가로질렀다.

어느덧 시간은 늦은 오후.

태성의 무차별 척살 공세 이후, 나는 다리우스 솔킬이 별 의미 없는 것 같아 놈을 잡는 걸 포기했다.

그리고 그 대신, 놈들의 정예들을 잡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곳 요정계마저 우리가 점령하게 되면 놈들의 정예가 레벨업할 만한 필드는 거의 없게 된다.

놈들의 성장을 방해하면서 정예들만 골라서 잡을 수 있는 기회.

그걸 노리고자, 우리는 단체로 이곳에 넘어왔다.

“잠시만요. 이제 이 언덕만 넘으면 놈들의 모습이 보일 겁니다.”

“그래? 그럼 우리 도둑 3인방이 은신으로 앞장설까?”

곧 있을 전투가 기대되는 듯 무살 형님이 살짝 설레는 말투로 물었다.

“아뇨.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그냥 다들 여기서 풀버프 때리고 동시에 습격하죠?”

“오! 좋아좋아! 그럼 내가 선두에 설게!”

곧바로 자버프와 영광의 오라를 돌리는 현중이.

그리고는 언덕 위에 올라 한창 전투 중인 태성 놈들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형님 왔다 이 개자식들아! 다들 여기서 방 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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