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307화 (307/350)

307화 요정계 정벌 (3)

처음 PK를 시작하던 ‘매그넘03’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는 공식적으로 태성 라인의 유저들을 향해 몇 번이고 밝혀왔다.

태성의 길드 마크를 떼버리면 절대 공격하지 않겠다고.

그건 놈들을 향한 내 무자비한 공격의 원칙이자 자비였고,

태성을 해체하기 위해 세운 장기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이래야만 견디다 못해서, 조금씩 태성 라인에서 빠져나오는 유저들도 생길 테니까.’

저마다 길드는 달라도 똑같은 마크를 달고 있는 태성 라인.

방금 전까지 싸우던 사이라도 그 마크가 사라진다면, 칼같이 공격하지 않아 숨통을 틔워주었고…….

근래 들어서는 그 효과가 조금씩 발휘되고 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저, 정말? 그게 정말인 거야? 약속 지키는 거지?”

“…….”

한데 그게 일도양단.

이놈한테까지 영향을 미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냥 한번 말해본 거였는데…… 이걸 덥석 받는다고?’

잠시 어이없어 말문이 막힌 사이, 녀석의 머리 위에서 정말 길드 마크가 사라진 것이다.

“됐다. 이제 난 괜찮은 거지? 탈퇴하면 치지 않기로, 분명히 니 입으로 말했다?”

“어? 어 어…… 그러네. 너…… 진짜로 죽기 싫었나 보구나?”

“새끼, 그래도 약속은 지키네. 길드원들한테도 제대로 말해 놔! 탈퇴했으니까 나 치지 말라고!”

이 자식에겐 부끄러움이란 감정이 없는 걸까?

하긴 그 많은 길드원들 앞에서 몇 번이나 처참히 당했으니, 내세울 존심 같은 건 일찌감치 사라졌는지도 몰랐다.

‘금방 재가입하겠지만…… 그래도 길드창에 탈퇴 로그가 기록됐을 테니 그거면 됐다. 태성의 전 길드원들이 그걸 봤다면!’

일도양단이 잠시나마 살기 위해 탈퇴했단 사실이 알려진다면, 길드의 사기가 곤두박질칠 건 뻔한 사실.

그걸 생각해보면 나름 손해는 아니었기에 놈이 순순히 뒤로 물러나도록 놔주었다.

그렇게 잠시 시간을 허비한 사이.

잔당들은 제각각 안으로 더 파고들었지만, 당당이의 테네시 단검은 몹들의 미세한 틈을 뚫고 정확히 적중하고 있었다.

덕분에 로그아웃을 시도하지 못하는 놈들을 추격해, 하나씩 차근차근 죽여버렸다.

“수고하셨어요, 드로 형!”

“길동이는 접속 안 했나? 여기선 안 보이네?”

그렇게 마지막 남은 놈마저 마을로 보내버리자, 어느새 내 뒤에 다가온 당당이가 말을 건네왔다.

“아쉽지만 다리우스도 없었잖아요? 그래도 이 정도만 해도 대박이네요. 이로써 태성의 어지간한 네임드들은 한 번씩은 다 잡아본 것 같은데요?”

“그러게. 아무튼 여긴 좀 위험하니까 일단 본대와 합류하자.”

“네!”

실로키네의 지속 공격과 당당이의 정밀한 원거리 공격으로 마계 몹들 사이로 도주한 놈들은 한 명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은 끝없이 밀려오는 마계 군단병들의 진영 속.

추격을 성공적으로 마친 우리는 서둘러 페어리 군단과 전투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곳까지 후퇴했다.

그러자 축빙 형님이 우릴 반겨주며 상황을 간략히 전달해 주었다.

“다 잡았어?”

“네, 불쌍이 한 명만 살려주고 전부 다요. 여기도 얼추 정리됐네요?”

“불쌍이? 아무튼 네가 타이탄을 다 부셔주고 갔잖아? 여긴 페어리들도 함께 공격하거나 마계 몹을 막아주니까 크게 어려울 건 없더라.”

그런 우리에게 다가오는 현중이와 라챤이.

“지환아, 우리의 완벽한 승리인 거냐?”

“그렇지. 놈들은 전멸했는데 우린 한 명도 죽지 않았으니까. 고생했다 현중아.”

“근데 이 자식들 원래 이렇게 허접했었나? 그동안 괜히 쫄았던 거 아냐? 어제도 보스 몹만 아니었으면 아무도 죽을 일 없었을 텐데!

“놈들이 약한 게 아니라 그만큼 우리가 강해진 거야. 이렇게 다 함께 모여 있다 보니 시너지 효과도 장난 아니고 말야. 안 그래 라챤아?”

“맞아요! 거기다 저희한테는 신의 가호 3중첩까지 있으니까 지는 게 더 이상하죠!”

탱딜힐의 조화가 완벽하게 이루어진 10인 파티.

한 명 한 명의 실력과 장비, 그리고 테크트리는 감히 단언하건대 각 직업군 최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처음엔 불가능할 것만 같았는데…… 결국엔 해냈구나.’

전원 랭커로 이루어진 길드.

그리고 모두가 타이탄을 한 대씩 갖출 정도로 레벨만큼이나 장비도 독보적인 길드.

처음 버닝 스타를 만들면서 꿈꿨던 목표를 어느새 초과 달성한 상태라는 게 새삼 고무적으로 느껴졌다.

“다시 오려나요?”

“못 오지 않을까? 놈들도 생각이 있다면 아마 얼씬도 못 할 거 같은데?”

“하긴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해버렸으니…….”

여전히 서로 형식적으로 싸우고 있는 페어리와 마계 군단 몹들.

그 광경을 바라보며 라챤이와 대화하는 도중, 현중이가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말했다.

“제발 좀 또 오라 그래! 이번에 형이 활약하는 거 제대로 봤지? 다가가기만 해도 기겁을 하며 흩어지던 놈들의 모습을?”

“네가 겁난 게 아니라 우리 딜러들이 워낙 아파서 그런 거였지.”

“뭐가 됐건 간에! 확실히 네 말대로 체력에 몰빵하길 잘했어. 타이탄 없이도 적 한복판에서 깽판 부릴 수 있으니까, 이렇게 속 시원할 수가 없다! 어차피 스턴이랑 넉백만 걸어주면 팀원들이 알아서 죽여주니까 딜도 아쉽지 않고!”

확실히 현중이는 의상 탓인지는 몰라도 전장에서의 존재감이 훨씬 더 뚜렷해졌다.

이번 전투만 해도 타이탄이 20대나 소환됐는데, 녀석은 레벤다스 없이도 타이탄들의 공세에 조금도 쫄지 않았다.

비록 축빙 형님의 영혼 연결과 힐링이 있었다곤 하지만,

역시나 고대 스킬북으로 익힌 ‘그림자 밟기’로 적의 타겟팅을 분산시킨 것이 큰 역할을 했다.

“앞으론 이곳도 태성 놈들은 통제하겠습니다. 그리고 여긴 아직 천계나 수중왕국처럼 대중한테 개방할 필요도 없는 필드니까, 저희가 좀 독식할까요?”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이젠 천계도 고레벨 유저들이 늘어나서 점점 레벨업 속도가 줄어들고 있었는데!”

전직과 이중 직업을 마친 유저가 늘어나면서, 현재 각종 고레벨 사냥터는 전부 인산인해인 상태였다.

하루빨리 400레벨을 찍으려는 유저들로 인해 유례없는 레벨업 열풍이 분 것이다.

물론 그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 오늘 있었던 다리우스의 선포였지만.

‘계속 잠복하다 놈이 나타나면, 무조건 한 번 더 잡을 자신이 있었는데!’

그 기회를 포기한 게 아쉽다면 아쉬웠지만…….

길드원들이 한바탕 스트레스 해소도 하고 놈들의 독점 사냥터도 조금이라도 빨리 빼앗게 됐으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네. 그럼 당분간 저희는, 태성이 양도해준 이곳에서 사냥하도록 하겠습니다. 밖에서는 괜히 불필요한 전투에 휩쓸릴 수밖에 없어 제대로 레벨업하지 못할 테니까요.”

“괜찮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태성 라인한테 억울하게 죽어가는 유저들이 있을 텐데……. 정작 당사자나 다름없는 우리가 나서지 않고 레벨업만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여론이 악화될 거야.”

“축빙 형님. 제가 아까 말했던 거 기억하시죠? 놈들과의 싸움은 직접 칼을 맞대고 싸워서는 절대로 끝나지 않을 거란 걸요.”

“물론 그 말엔 동의한다만…….”

“아무리 죽여도…… 그리고 아무리 아량을 베풀어도 놈들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놈들의 수장인 다리우스부터가 그런 놈이니까요. 저것 보세요. 살려줬더니 귀환은커녕 저러고 있잖아요.”

그리고 대화 중 내가 손을 들어 가리킨 곳.

거기선 조금 전 살려 보냈던 일도양단이 페가수스를 탄 채 이곳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야 이 개자식아! 너네 아직 전부 다 타이탄 쿨타임 중이지? 산드로 놈은 못 죽여도 딴 놈들은 죽었다고 복창해라! 이놈이 얼마나 빠르고 강력한지 한 번 맛 좀 봐라!”

이곳의 보스 몹인 블랙 드레이크를 탄 괴수 군단장을 이끈 채로!

“보셨죠? 저런 놈들과의 싸움을 끝내려면 하루빨리 제가 그 퀘스트를 깨는 수밖에 없어요. 어차피 먹을 욕이라면 그냥 제가 다 먹을게요. 그 사이에 저희는 격차를 벌리고 그 퀘스트 도전에 준비하는 데만 집중하기로 해요!”

“아, 알겠다 드로야. 알겠으니까 저것부터 좀 어떻게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여기선 안전지대가 멀잖아?”

“맞아요, 드로 형님! 어떻게 할까요? 튀어요, 잡아요?”

“걱정들 마세요. 어차피 태성 놈들 쓸어버리면 잡으려던 놈이 빨리 나타난 것뿐이니까요. 일단 먼저 땅으로 끌어 내릴게요!”

차근차근 말했지만, 상황은 여유롭지 못했다.

비행 몬스터답게 금방 우리 머리 위까지 날아온 군단장.

녀석으로부터 이미 한 차례 겪어본 무자비한 화살 세례가 날아왔다.

“훼라리 소환.”

하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고 하늘로 솟구친 후, 녀석이 탄 블랙 드레이크 위로 점프했다.

그리곤 외쳤다.

“루이투스 소환!”

어제 있었던 수중 왕성 전투에서 유일하게 소환하지 못했던 타이탄.

덕분에 내 루이투스의 소환 쿨타임은 지금 이 순간 완료된 상태였다.

번쩍!

마법진과 함께 공중을 수놓은 빛무리.

그와 함께 제르몬의 블랙 드레이크 등 위에 타이탄이 소환됐고.

“키에엑-!”

블랙 드레이크는 훼라리와 비슷한 울음소리를 내며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지상으로 추락했다.

‘투 메르타스도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던 타이탄을, 고작 드레이크가 버틸 리 없지!’

타이탄의 무게를 버틸 수 있었다면 진작 훼라리에 루이투스를 태우고 다녔을 터.

역시나 내 예상대로였다.

“뭐, 뭐야! 타이탄이 남아 있었어?”

이 뜻밖의 상황에 당황해하는 일도양단.

아무리 보스 몹이 급해도, 살려줬더니 뒤통수 친 놈을 순순히 보내줄 순 없었다.

“라챤아 뭐하냐!”

“지금 쏩니다, 형님!”

피피피픽!

내 외침과 동시에 쏘아진 라챤이의 연사 공격.

그 화살들은 일도양단이 탄 페가수스에 고스란히 적중됐고.

몇 대 맞자마자 곧바로 역소환되어 녀석 또한 제르몬 곁으로 나란히 추락했다.

쿵.

[심판의 전진!]

“커헉!”

추락 여파로 군단장이 블랙 드레이크와 분리된 것을 확인했기에, 나는 곧바로 일도양단에게 달려가 넉백부터 먹였다.

“자, 잠깐만! 탈퇴했으니까 살려 준다며!”

“이 상황에도 그런 말이 나오냐? 그러게 다시 오기는 왜 와, 여기를!”

쾅! 쾅!

하지만 말과 다르게 몇 대 친 다음, 나머지 후속 딜은 그밟으로 다가온 현중이에게 양보했다.

괜히 더 쳤다가 루이투스의 검에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혹시 떨어질지 모를 템 드랍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퍼펑! 쾅! 쾅!

그렇게 현중이가 건 스턴 내내 길드 전원에게 일점사당한 일도양단.

놈 또한 전직을 마친 최상위 랭커 중 한 명이었지만, 이 폭격을 버틸 수는 없었다.

“절대 용서 안……!”

“또 그 소리네.”

결국 다른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잿빛 먼지로 사라진 일도양단.

“오, 대박! 요놈 정수 떨궜는데? 역시 버닝스타의 히든 서포터, 일도양단답구나!”

“하핫! 그래요? 고놈 참 그냥 조용히 돌아갔으면 아쉬울 뻔했네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지만 전투는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챙! 챙!

어느덧 지상에 떨어진 제르몬이 활 대신 대형 도끼를 꺼내 들어 내게 휘두르고 있었던 것.

피한다고 피하고 있었지만, 워낙 빠른 공격 속도에 절반 정도는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자, 그럼 바로 군단장 레이드를 트라이해볼게요. 다들 제가 어그로 잡는 동안 진형부터 세팅해 주세요! 그리고 현중아!”

“어?”

“다시 날아오를 수도 있으니까, 우선은 네 탱킹으로 블랙 드레이크부터 잡아 버려!”

“아하! 옥케이!”

이미 우리에겐 시공의 틈새에서 전대 괴수 군단장을 레이드 해본 경험이 있었다.

그걸 토대로 이놈의 패턴을 예상해보면, 이놈 또한 부하 몹 소환 패턴을 보일 것이 100%였다.

그렇기에 다른 소환물들이 나타나기 전에, 눈앞에 보이는 귀찮은 블랙 드레이크부터 정리하는 것이 순서였다.

그렇게 길드원들이 드레이크를 막 공격해 드레이크의 피가 줄어드는 도중!

『군단의 마수들이여, 적들을 무참히 짓밟아라!』

돌연 녀석이 큰소리로 외쳤다.

쿠구구궁!

그리곤 줄곧 페어리와의 전투 삼매경에 빠져있던 마계 몹들, 그중 특히 고르곤들이 마치 들소 떼처럼 우르르 몰려왔다.

“모두 피해! 소 떼 러쉬다!”

생각해보니 제르몬은 부하 몹을 소환할 필요가 없었다.

주변에 널려있는 몹들이 전부 마계 군단병이었기 때문.

놈은 프로스트 울프와 같이, 전투 중 주변의 몬스터들을 집결시키는 스킬을 시전했고.

가뜩이나 강한 보스 몹이 수백 마리의 부하 몹까지 부르는 모습에 순간적으로 기가 막혔다.

‘이러면 극악의 레이드 난이도잖아! 가만…… 달려오는 건 고르곤뿐인가? 원거리 몹은 하나도 없고?’

하지만 그런 스킬에 아무런 페널티가 없다면 절대 잡을 수 없는 놈을 만들어 뒀단 소리나 다름없었고.

아니나 다를까 몰려오는 몹들의 이속이 제법 빠르긴 했어도, 전부 다 근접 공격 타입의 무지성 괴수들뿐이었다.

“잠시만요! 다들 도망가기 전에 드레이크 좀 다시 쳐보세요!”

“응? 왜요?”

“일단 시키는 대로 해봐, 라챤아! 당당아!”

“넵!”

피픽! 픽!

내 오더에 뒷걸음으로 도망치면서도 공격을 날린 라챤이와 당당이.

그에 드레이크가 적중되어 피가 계속 닳자, 어느 순간 제르몬이 다시금 소리쳤다.

『군단의 마수들이여, 적들을 무참히 짓밟아라!』

그에 또다시 들판 너머에서 고르곤 무리들이 일으키는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아직 처음 불러들인 고르곤들이 도착하기도 전인데 말이다.

“히익! 미쳤다! 빨리 도시로 돌아가자!”

“이러다 죽겠어요! 빨리 튀튀튀!”

그 압도적인 물량에 다들 기겁했지만, 내게는 조금 다르게 보였다.

‘역시 드레이크가 부하 몹 소환의 원인이었어! 이거 잘만 이용하면…… 혹시?’

어차피 위험하면 결계가 보호하는 도시로 빠지면 그만.

마침 루이투스에 타 있는 상태였으니 시험해볼 절호의 타이밍이기도 했다.

그에 나는 하늘에 떠 있는 실로키네에게 명령했다.

“볼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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