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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308화 (308/350)

308화 운영자들 (1)

다시금 이 땅에 소환된 검은 회오리바람.

10초간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어마어마한 인력(引力)은 마치 블랙홀과 같았고.

“크르륵!”

“그륵!”

들판을 가로질러 온 수백 마리의 고르곤 무리는, 소용돌이에 휩쓸린 듯 전부 볼텍스를 중심으로 한데 뭉쳐졌다.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길드원들과 반대 방향인 그 한복판으로 혼자 뛰어들었다.

“드로야! 뭐해!”

“야! 가지마! 위험해!”

만류하는 축빙 형님과 현중이.

하지만 설명할 시간도 없을뿐더러 직접 보여주는 편이 더 나았다.

[심판의 전진!]

[영광의 검!]

쾅! 쾅!

평소 아무리 많이 맞춰도 수십 마리가 한계였던 두 개의 광역 스킬.

이 스킬들이 뭉칠 대로 뭉친 몬스터들을 향해 사용되니, 최소 그 10배는 되는 몹들이 범위 안에 들어왔다.

[고르곤으로부터 1,882의 물리 피해를 입었습니다.]

[고르곤으로부터 1,998의 물리 피해를 입었습니다.]

……………………

쾅! 쾅! 쾅! 쾅!

하지만 나도 멀쩡한 건 아니었다.

넉백에서 회복된 고르곤들이 거센 뿔을 부딪쳐오며 공격해온 것.

노스랜드의 네임드 보스인 고르곤 쿨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고 약했지만, 레벨이 레벨인지라 제법 아팠다.

어쨌든 그래도 제법 버틸 만은 했다.

놈들은 여전히 볼텍스의 공격에 휩쓸려 제대로 공격도 못 할뿐더러, 지속 데미지에도 맞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난 아랑곳하지 않고 루이투스의 긴 리치를 활용해 놈들에게 멀티 히트를 계속해서 먹였다.

[산드로: 보고만 있지 말고 광역 스킬 좀 함께 날려줘요!]

[축복받은얼굴: 저거저거 또 미친 짓 시도하고 있네?]

[축복받은파볼: 현중이 넌 잔소리 좀 그만해! 드로야, 이 누나가 도와줄게!]

퍼펑! 펑! 펑!

축볼 누님과 라챤이의 원거리 광역 공격도 조금씩 적중되던 어느 순간, 갑자기 손에 걸리던 고르곤들의 감촉이 사라졌다.

체력이 다들 엇비슷했기에 사정거리 안에 있던 몹들이 삭제되듯 동시에 죽어버린 것이었다.

‘대, 대박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 내 레벨은 426.

거기다 10명 전부 파티 상태라 획득 경험치를 공유하는 상태인데도 무려 1% 가까이 올랐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에 수북하게 드랍된 각종 부산물들.

단 10초 만에 잡아낸 것이라곤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단번에 수많은 몹들을 잡아버렸다.

[산드로: 현중아! 드레이크 좀 다시 더 쳐봐!]

[축복받은얼굴: 어? 어어!]

홀로된 군단장은 드레이크의 피가 어느 정도 닳자 부하 몹들을 불러들였다.

공중 패턴에서 지상 패턴으로 바뀌자, 다음 페이즈로 돌입해 고르곤들을 불러들인 것.

하지만 도망치던 와중에 혹시 몰라 다시 블랙 드레이크를 공격해봤더니 놈은 고르곤들을 재차 불러들였다.

‘예상대로 드레이크의 체력이…… 부하 몹 소환의 트리거였던 거야!’

후퇴한답시고 놔둔 드레이크의 체력이 자연 회복되었고, 그 상태에서 재차 공격당해 일정 이하로 떨어지자 군단장이 스킬을 또 사용했던 것.

그 두 번째 외침으로 달려온 고르곤들이 어느새 또 코앞까지 다가왔다.

“볼텍스!”

그래서 재차 시전한 죽음의 바람.

딱 영광의 검의 쿨타임과 적당히 들어맞는 타이밍인지라, 나는 다시 한번 그 안으로 뛰어들어 멀티 히트 공격을 날려댔다.

[당근당근단검: 와.... 필드전에 이은 보스 몹 레이드. 그 와중에 갑자기 몰이 사냥으로 변경이라니....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정신없네요.]

[무적살라딘: 근데 그게 또 제대로 먹히고 있잖아? 정말 기가 막힌다 막혀!]

[축복받은얼굴: 하여간 저 자식 꼼수 하나만큼은 타연 탑이 맞다니까요!]

[축복받은파볼: 말릴 땐 언제고ㅋㅋㅋ]

즉흥적으로 떠오른 몹 몰이가 제법 안정적이고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대개 보스 몹은 피가 가득 차 있는 초반이 가장 약하다.

레이드 시작과 동시에 전멸시킬 정도로 강한 공격을 퍼붓는 보스 몹은, 개발자가 제정신이 아닌 이상 만들 리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름의 꼼수를 사용해서 블랙 드레이크를 어렵사리 지상에 떨어뜨려야 할 첫 페이즈를 생략해버렸다.

그래서 원래는 다음 페이즈에서 불러야 할 부하 몹을 군단장이 비교적 약한 상태에서 소환시키게 되었고, 그 메카니즘마저도 바로 알아차렸다.

[산드로: 이것만 잡고 뒤로 빠질게요! 곧 루이투스 소환이 풀리니까 결계 앞으로 이동하죠. 거기서 안전하게 재시도해봐요!]

[축복받은무빙: 그래, 알겠다!]

군단장이 크리스탈 캐슬의 푸른 장막 바로 앞까지 따라온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했던바.

몰랐다면 모를까 그걸 알고 있는 이상, 위험하게 먼 곳에서 레이드 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레이드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군단장의 고르곤 소환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

그건 현존하는 타연 최고의 몹몰이 사냥이 무한으로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걸 의미했으니까.

‘만약 된다면 심연의 구슬과는 비교도 할 수 없어……. 원거리 몹만 빼놓고 고르곤만 부를 수 있다니!’

어느 게임이나 가장 빠른 레벨업을 보장하고 막대한 이득을 보장하는 건 ‘몹 몰이’ 사냥이다.

손수 하나씩 하나씩 죽이는 대신, 몹들을 모아 광역 스킬로 한꺼번에 잡는 방법.

당연히 타연에도 이 방법을 선호하는 유저들은 많았지만, 태생적으로 힘든 이유가 하나 있었다.

바로 원거리 공격 몹이 없는 필드 사냥터에 한정된다는 점.

화살이나 독침, 원거리 마법 등을 사용하는 몬스터가 껴있다면 성립 자체가 불가능한 사냥법이었고.

이 때문에 고레벨 사냥터로 갈수록 몹 몰이 사냥이 가능한 필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데 이 보스 몹은 근거리 몹만 골라서 불러줬고, 그마저도 회피 테크에 최적화된 물리 공격 타입이었다.

“쿠르륵!”

두 번째 도착한 고르곤 무리 또한 금세 전멸했고.

이놈들까지 정리하고 나니 루이투스의 체력도 바닥이었지만 무엇보다 볼텍스를 시전할 마나가 부족했다.

아무리 신의 가호로 마나 회복 속도가 높은 상태여도, 한 번 사용에 MP 2만이라는 이 말도 안 되는 소모량을 커버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여하튼 그렇게 우리는 크리스탈 캐슬로 후퇴했고.

군단장은 여전히 블랙 드레이크와 분리된 채 뒤따라왔다.

[산드로: 곧 루이투스 소환이 풀릴 거예요. 일단 결계에 도착하면 거기서 다시 시도해 볼게요!]

[연우: 오빠! 그럼 이 군단장은 레이드 안 할 거예요?]

[산드로: 잡긴 잡을 건데, 이게 언제까지 통할지 확인 좀 해보고 재도전하려고. 계속 통하면 제대로 폭업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축복받은얼굴: 진짜 그럴지도 모르겠는데? 방금 딱 2탕만 했는데도 경험치가 3%나 올랐어!]

[축복받은파볼: 마자마자! 이렇게 군단장을 이용해서 무한 몹 몰이가 가능하면, 퍼스트 킬이고 뭐고가 중요한 게 아니야!]

[대탐험시대: 어차피 저희가 아니면 이 보스 몹을 잡을 사람도 없기도 하고요!]

그렇게 도착한 결계 앞.

군단장은 현중이와 축빙 형님이 탱킹을 맡았고, 블랙 드레이크는 대탐이와 기파랑이 서브 탱킹을 맡았다.

나머지는 베테랑답게 일일이 지시하지 않아도 각자 최적의 포지션에 자리를 잡았다.

[산드로: 드레이크 공격이요!]

그리고 원딜러들이 드레이크를 공격하자, 역시나 군단장이 방금과 같은 패턴을 반복했다.

『군단의 마수들이여, 적들을 무참히 짓밟아라!』

“오, 이번엔 제법 먼 곳에서 달려오는데?”

“어쨌든 정말 먹히네요? 거리가 멀어져서 오지 않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게 통한 이상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

나는 길드원들에게 주의 사항을 알려준 후, 고르곤이 달려오는 방향으로 걸어나갔다.

[산드로: 보스 몹 피가 너무 깎이지 않게 최소한의 공격으로 어그로 유지만 해 주세요. 그리고 드레이크는 1분 간격으로 회복과 공격을 번갈아 주고요!]

[라스트챤스: 1분이요? 1분마다 몹 몰이를 하면 너무 빡세지 않을까요?]

[산드로: 사실 1분도 길어! 위험하면 결계 안으로 튀면 되니까 일단 한 번 해보자!]

[라스트챤스: 넵!]

이제 루이투스에서 나왔기 때문에 마나 부족도 신경 쓸 이유가 없어졌다.

정령왕을 봉인한 반지 ‘태초의 약속’을 낀 한쪽은 뺄 수 없지만, 루비 반지를 낀 한쪽 손은 얼마든지 사파이어 반지와 스위칭할 수 있었으니까.

어느덧 다가온 대규모 물소 떼와 같은 고르곤들의 돌격.

“파랑아! 블러드!”

난 다시금 피흡 버프를 받으며 그 안으로 뛰어들며 외쳤다.

“사냥꾼의 춤! 볼텍스!”

* * *

“아고고 힘들어라. 대체 이거 언제까지 하는 거예요? 다들 안 졸려요?”

“활만 당기는 네가 힘들 게 뭐가 있어? 고생은 드로가 제일 많이 하고 있는데.”

귓가에 들려오는 라챤이의 투정과 축빙 형님의 다독임.

나머지는 기계적으로 움직이느라 둘의 대화에 낄 힘도 없는 듯싶었다.

“암만 그래도 이게 벌써 몇 시간째에요? 6시간은 넘은 거 같은데…… 맞아요?”

“아마 7시간쯤 됐을걸? 좀 전에 자정이 넘었잖아?”

“헉, 정말요?”

“하긴 반나절 넘게 1분도 안 쉬고 사냥만 했으니 힘들만도 하지. 그래도 좀만 더 힘내 보자. 이런 기회가 쉽게 찾아오는 게 아니잖아? 드로도 저렇게 열심히 하고 있고.”

“그것도 어느 정도껏 이죠. 누가 사냥을 이렇게 쉬지도 않고 해요? 몹들 리스폰 시간도 있는데!”

손가락만 까딱이면 됐던 기존의 게임과 달리, 가상현실은 직접 사물을 인식하고 몸을 움직여 사냥해야만 했다.

즉, 전투의 피로도 자체가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고강도였다.

게임사도 당연히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인던에서의 몹 배치나 필드 사냥터에서의 리젠률을 적당한 주기로 조절해 두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몹 몰이.

이건 어쩌면 ‘버그성’ 플레이로 인식될 만큼 잠시도 쉬지 않고 사냥하는 방식이었다.

몹들이 끝없이 몰려드는 심연의 구슬도 비슷한 방식이었지만, 요정계 전역에 깔리다시피 한 군단병들이 몰려드는 속도에는 턱없이 못 미쳤다.

물론 그 대가로…… 지금껏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미친듯한 폭레벨업이 가능했긴 하지만!

“조금만 더 해 봐요! 타이탄들이 전부 쿨타임이라서 한 번 멈추면 다시 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래도 신나지 않아요? 다들 레벨업을 두 번씩은 했으니까요!”

“와! 진짜 가장 빡센 사람이 저렇게 말하니까 멈추잔 말도 못 하겠고……. 진짜 저 정도 근성은 돼야 통랭 1위 하는 거구나!”

다들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지만, 그래도 내 파이팅에 꾸역꾸역 맞추며 따라와 주었다.

‘모두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한 시도 쉴 순 없어. 이런 레벨업 기회가 언제 다시 주어지겠어? 아무리 봐도 이건…… 패치될 수밖에 없어 보이는데!’

고르곤들 한복판에서 쉴 새 없이 검을 휘두르면서도, 내 머릿속은 조급함으로 가득했다.

길드원 전부가 미친 듯이 폭업하고 있는 몰이 사냥.

몇 시간 동안 해본 결과, 이건 다신 찾아올 수 없는 절호의 레벨업 찬스였다.

그리고 절대로 오래 지속될 리 없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이건 들키는 순간 끝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가능한 지금, 최대한 뽕을 뽑아야죠!”

이미 몇 번이나 다독인 말을 반복하며 사냥을 계속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예상치 못한 대꾸가 들려왔다.

“비정상적인 플레이라는 건 이미 인지하고 계시군요. 이런 사냥법이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해봤는데…… 정말 대단하시군요, 버닝스타 길드 여러분.”

“…….”

한순간 찾아온 정적.

아무도 없는 방향에서 들려온 소리에 다들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한참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듯 누군가가 자연스러운 포즈로 서 있었다.

고급스러운 재질의 후드를 눌러쓴 중년 남성.

반쯤 그늘진 탓에 얼굴은 하관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머리 위에 떠 있는 아이디만큼은 몰라볼 수 없었다.

<이오네스>

젠티스의 뒤를 이어 현 총괄 디렉터를 맡고 있는 배혁진 이사.

타연 속에선 처음 만나보는 또 다른 운영자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되도록 인 게임에서의 노출은 자제하는 편인데…… 인사드리죠. 타이탄 연대기의 개발자이자 운영자인 이오네스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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