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309화 (309/350)

309화 운영자들 (2)

“우, 운영자님?”

영혼 없이 반복 사냥만 계속하던 길드원들이 다들 기겁하듯 놀라자빠졌다.

워낙 만나보기 힘든 인물이기도 했지만, 마치 잘못을 저지르다 걸린 아이처럼 다들 뜨끔한 탓이었다.

“잠깐 중지! 다들 드레이크는 치지 마세요!”

이 상황에서 몹 몰이 사냥을 계속할 순 없는 법.

군단장은 현중이에게 맡긴 채 대화를 위해 이번 타임의 몹들에게 공격 스킬을 난사하자.

“굳이 멈추실 것도, 서두르실 것도 없습니다. 어차피 사냥은 끝났으니까요. 슬립!”

그런 우리를 바라보던 이오네스가 한 손을 들어 군단장에게 주문을 걸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제르몬은 돌연 상태 이상 ‘수면’ 상태에 빠져버려 공격을 덜컥 멈췄다.

“……지금 뭐 하시는 거죠?”

“이제 결계 안으로 들어가면 제르몬은 자연스럽게 타겟을 잃고 되돌아갈 겁니다. 자, 다들 들어가시겠습니까? 안에서 잠시 대화 좀 나누시죠.”

“뜬금없이 우리가 잡고 있던 보스 몹을 재우다니……. 저희는 그걸 허락한 적이 없는데요? 이건 엄연히 게임 플레이에 대한 개입 아닌가요?”

“설마 지금 레이드 중이셨다고 주장하시는 건 아니죠? 물론 지금 제 행동이 저희 회사에서 엄격히 금하고 있는 직접 개입은 맞습니다. 비록 기록엔 남겠지만, 직권상 정당한 사유라고 판단했을 뿐이지만요.”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침착하고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는 그.

표정을 볼 순 없었지만 드러난 입매를 보면 슬그머니 미소를 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말씀은 정중하신데…… 행동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무례하시네요.”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는 게 사람의 본성 아니겠습니까? 어쨌든 들어가시죠. 밤도 깊었는데 피차 무슨 고생입니까?”

그 말을 끝으로 푸른 장막 안으로 들어간 이오네스.

다들 그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내 따라 들어갔다.

“저 자식, 돌아갈 땐 드레이크에 올라타서 가네.”

푸른 장막 밖으로 군단장이 돌아가는 모습이 반투명하게 보였다.

인던 보스 몹이야 시동 걸어볼 때 많이 보는 광경이지만, 무려 필드 보스를 이렇게 ‘슬립’ 한 방으로 손쉽게 초기화하다니.

‘추기경을 잠재우던 테오시스와…… 능력은 동일한 건가?’

아무리 강해지고 타연 톱의 자리에 올랐다 해도, 운영자가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여전히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다들 랭커들이시니 짐작하셨을 텐데요. 이런 식의 플레이는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을요.”

그런 내 생각과 별개로.

도시 안에 들어온 그는 본론부터 꺼냈다.

“설마 그런 한가한 말씀이나 하시려고 나타나신 건 아니죠?”

“계속 접속하고 계셔서 잘 모르시나 본데, 이미 자정이 훌쩍 넘었습니다. 즉, 랭킹 게시판의 순위와 정보가 전부 경신됐다는 거죠.”

정신없이 사냥만 하는 와중에도 다들 랭커들인지라 인지하고 있었다.

하루 사이 2, 3레벨씩 오른 정보가 게시되면 유저들 사이에서 말이 안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심지어 태성의 흑풍단 척살이 시작된 날, 우리 버닝스타는 한가로이 폭레벨업만 한 게 알려진다면 비난이 쏟아질 수 있다는 것까지도.

하지만 그래서 무리한 것이기도 했다.

누가 봐도 이런 폭풍 레벨업이 오랜 시간 가능할 것 같진 않았으니까.

“어쨌든 덕분에 이 시간에 접속해보는 건 오랜만이군요. 테론 대륙만큼이나 요정계의 공기는 여전히 산뜻하기도 하고…….”

“…….”

냉정해 보였는데 생뚱맞게 감상적인 이 태도는 뭘까?

도저히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산드로 님. 그리고 버닝스타 여러분. 당신들이 벌였던 사냥 방법은 금지된 방법입니다. 따라서 이 순간 이후로 보스 몹을 이용한 몹 몰이 사냥은 허용할 수 없습니다.”

“금지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혹시 타연에 이런 방식으로 사냥해 본 유저를 들어보신 적 있습니까?”

“저희가 최초일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버그 악용만 아니라면 자유도를 최대한 보장해 준다는 게 타연의 기본 컨셉이었고요!”

“물론 그 정책은 변함없습니다. 제가 함부로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왜 이러시는 거죠?”

“이건 당연히 당장 패치돼야 마땅한 문제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직접 찾아온 것입니다.”

공식적인 운영자는 단 세 명뿐이지만, 이건 직접 아바타로 활동하며 유저들에게 알려진 대표일 뿐.

그와 같은 권한이나 영향력은 발휘할 수 없지만, 실시간 모니터링을 하는 직원들은 당연히 그 외에도 많이 존재했다.

한데 이곳 요정계는 정말 극소수에게만 오픈된 공간이었기에 우리가 반나절 넘게 사냥하는 동안 들키지 않았다.

하나 결국 이렇게 된 이상 패치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걸 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올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미 고생해서 잘 세팅한 보스 몹까지 리셋시켜 놓고는 대체 무슨 말이에요? 어휴! 돌려 말하지 말고 속 시원히 좀 말해보세요!”

“맞습니다! 패치 대상도 아닌데 사냥을 금지한다니요? 지금 그 말은 게임 약관에 어긋난 발언 아닌가요? 어디, 소송전 한 번 벌여봐요?”

슬슬 이오네스의 화법에 화가 오르던 중이었는데, 나와 똑같은 생각이었는지 축빙 형님과 대탐이가 나서서 언성을 높였다.

“제가 수정할 수 없을 뿐, 이건 그분의 뜻에 어긋난 사냥법입니다. 그리고 가만 놔뒀을 시에도 다른 유저들과의 형평성에서 많은 문제점이 도출될 것도 너무도 뻔히 예상됩니다.”

“그분이라고요? 그분이 대체 누군데요?”

“타이탄 연대기의 아버지나 마찬가지이신, 젠티스 님입니다. 잠시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곳을 떠나 계시지만, 후임자로서 그분의 뜻과 어긋나는 타연이 되도록 놔둘 수는 없는 일이죠.”

순간 튀어나온 이름에 반사적으로 당당이를 돌아보니, 녀석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있었다.

테오시스와도 안면이 있었으니 분명 이오네스와도 아는 사이일 텐데, 서로 눈길조차 주지 않는 모습이 왠지 안쓰럽게 느껴졌다.

‘아직 아버지가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고 테오시스에 대한 말도 해주지 않았으니…… 여전히 이오네스를 의심하고 있겠지?’

사실 나도 둘 중 누가 태성의 뒤를 봐주고 다리우스와 연관된 운영자인지 확신하고 있진 않다.

최악의 경우 둘 모두가 적일 수도 있다고 가정하고 있는 상황.

그런데 이렇게 이오네스를 직접 대면할 기회가 생겨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왠지 대화하면 할수록 더욱 알 수 없어졌다.

우리를 저지하려고 나타난 것.

하지만 타연을 아끼고 선임 개발자를 존중하는 모습.

두 상반된 태도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도통 가늠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그 말은 저희가 타연을 망치고 있다는 의미인가요?”

“망치다뇨? 그런 의도로 말한 건 아닙니다. 다만 현재 두 세력 간 경쟁이 너무 치열해지다 보니 공략이 너무 빠르게 진행 중이라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빠른 레벨업 속도마저 가세한다면 유저 간 격차와 불평등을 심화시킬 게 분명하죠. 저에게는 그걸 막고 조율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게임에 개입해서라도 말이죠?”

지금 상황을 덧대어 직설적으로 물은 질문.

“다시 한번 강조드리지만 물론입니다. 주시자 젠티스 님과 달리, 타연에서의 제 이명은 ‘조율자’란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

“여하튼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다시는 이와 같은 사냥은 시도조차 하지 마십시오. 이번엔 저희 측 실수도 있어 서로 없던 일로 넘어가지만, 한번 말씀드렸는데도 반복하신다면 정말 치명적인 제재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암만 개발자에 운영자라도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왜 저희만 이런 제재를 받아야 하는 건데요? 태성이나 다른 유저들이 저희와 같은 방법을 따라 하면 어떻게 하려고요?”

“다른 유저들이 모방한다는 말씀이십니까?”

황급히 대들 듯 따지는 현중이에게 이오네스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단언하건대 그럴 순 없습니다. 이 또한 제 계산 하의 일이지만, 이런 사냥을 할 수 있는 길드는 버닝스타 단 한 곳뿐입니다. 만약 산드로 님이 없다면 버닝스타도 불가능할 테지요.”

적의 원거리 공격을 뚫고 다가갈 훼라리.

군단장을 지상으로 추락시킨 루이투스.

그리고 가장 중요했던 실로키네의 볼텍스.

이 중 하나라도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고, 특히 실로키네의 존재가 그중 90%의 비중을 차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대가는요?”

“대가라니요?”

이렇게 답을 정하고 온 사람을 설득하기란 힘든 법.

그래서 난 차선책을 제시해봤다.

“저희가 어렵사리 발견한 사냥법을 금지하는 걸 말 한마디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신 건 아니시죠?”

“자꾸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지금 이 문제는 제 직권으로 3일간 접속 금지 제재를 내릴 수도 있는 중대 사항입니다. 어찌 보면 버그를 발견하고도 유저의 보고 의무를 무시한 채 악용한 것에 가까운 일입니까요!”

“버그가 아니라면서요. 그래서 패치도 못하고요. 그러니 협박보다는 당근을 주시죠? 그편이 나아 보이는데…….”

“그럴 순 없습니다. 이미 특권 계층이나 다름없는 당신들에게 또 다른 특혜를 준다는 건 타연을 망치는 일이나 다름없습니다. 뭐라 말해도 절 설득할 수는 없으니 제 경고나 똑똑히 유념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럼 이…….”

“잠시만요!”

“네, 말씀하시죠. 산드로 님.”

확실히 테오시스와는 다른 성격인 사람이었다.

꽤 긴 대화를 나눴지만 역시나 그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고, 할 말을 마친 그는 미련 없이 떠나려 들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더 욕심 부리는 건 포기한 채 그를 불러 세웠다.

“그럼 밸런스와 상관없는 걸 하나만 부탁드릴게요. 만약 이런 일이 또 발생했을 때, 그쪽 운영자들만 저희를 찾아올 수 있다는 건 좀 불공평하지 않아요? 그러니 저에게도 연락수단을 하나 주시죠.”

“연락수단 말씀이십니까? 어떤……?”

“신묘한 피리요. 부르면 바로 운영자와 연락할 수 있는 템이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신묘한 피리.

귓속말이나 편지 등, 연락할 방법이 전혀 없는 운영자를 부를 수 있는 특수 아이템.

지옥불 형님이 사용하자 곧바로 테오시스가 나타났던 걸 기억해보면, 운영자마다 고유의 피리가 있을 것으로 추측됐다.

“피리라면…… 테오시스의 것을 말하는 겁니까?”

“……대답해 드릴 수 없습니다.”

“말씀 안 하셔도 예상됩니다. 그걸 대체 몇 명에게나 줘서 유저들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는 건지……. 하여튼 틀린 말씀도 아니고 제게도 도움이 될 것 같으니 드리죠.”

그리고는 내게 다가와 한 특수 아이템을 건네주었다.

[신묘한 호루라기(노멀)를 획득했습니다.]

“불러도 소리는 나지 않겠지만 제게 연락이 됩니다. 오프라인 상태에서도 알 수 있는 핫라인 연락 템이죠. 이걸 드리는 대신, 지금과 같은 상황이 또 발생하게 되면 제게 바로 연락 주십시오. 이 템이 있는데도 이런 식의 악용 플레이를 한다면 더욱 가혹한 제재가 뒤따를 수도 있습니다. 역시나 제 직권하에!”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이런 말을 하는 이오네스에게서 어떤 ‘진심’이 느껴졌다.

그래서 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뜬금없는 말이겠지만…… 이런 게임을 만들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오네스 님.”

“네? 갑자기 무슨……?”

난 그의 물음에 고개를 돌려 주변을 훑어보며 말했다.

“늘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 게임 해왔습니다. 이곳 타이탄 연대기 속의 세상을요. 항상 이 감사함을 젠티스 님이나 이오네스 님 같은 개발자분께 직접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생겼네요.”

개발 막바지에 합류했다고 알려진 테오시스와 달리, 이오네스는 젠티스와 함께 이 타연을 만든 주축 중의 주축.

AI 세라자드를 만들어 최초의 가상현실을 구현한 것이 젠티스였다면,

타연 전반적인 게임 시스템이나 설정, 밸런스 등을 담당했던 건 이오네스로 알려졌다.

‘물론 여전히 속내를 감추고 있는 적일 가능성이 있지만…….’

그래서 내가 말한 감사의 인사는,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떠나서 언젠가 그를 만나게 되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왜냐면 타연은…….

자존감을 되찾고 소중한 사람을 만나게 해주었으며 내 삶을 뒤바꿔준, ‘인생 역전’의 게임이었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