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310화 (310/350)

310화 운영자들 (3)

“정말 의외로군요. 제가 한 짓 때문에 당연히 저를 욕하고 탓할 줄 알았는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건 거죠.”

“어쨌든 그렇게 생각해주셨다면 저야말로입니다. 게임을 개발하는 입장에서는…… 사실 산드로 님 같은 유저 분은 참 곤혹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몇 년을 하루도 쉬지 않고 피땀 흘려 만든 게임을, 가장 열심히 즐겨주시는 분이시니까요.”

그런 그에게도 내 ‘진심’이 전해진 걸까?

슬쩍 턱을 들어 드러내 보인 그의 얼굴에는 묘한 감동이 번져있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다시 한번 더 확신할 수 있었다.

‘이오네스는…… 진짜 아니구나!’

그가 떠나기 직전 내가 느닷없이 이런 말을 꺼낸 건, 개발자에게 내 평소 생각과 고마움을 전달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였지만.

한편으로는 이같이 독대할 기회가 거의 없는 이오네스를 불시에 한 번 떠볼 목적이 컸다.

뜬금없는 타이밍에 생각지 못한 말을 듣게 되면, 솔직한 반응이 나올 확률이 높았으니까.

물론 이런 내가 너무 약아빠진 것 같긴 했지만 그렇더라도 놓칠 수 없었다.

그가 정말 나를 공격하고 사사건건 방해해왔던…… ‘그’ 운영자가 맞는지 확인해볼 기회를!

“아무쪼록 항상 자신의 위치를 명심하며 파급력을 생각하는 플레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네. 앞으로도 타연을 더욱 재밌게 만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게 그는 나타났을 때와 같이 스르륵 유령처럼 사라졌다.

“진짜 말은 뻔지르르하게 하네요. 저 사기꾼 자식이!”

그리고 동시에 당당이가 내 곁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워워, 보이지만 않을 뿐 아직 여기 남아계실지도 몰라. 우리로선 알 방법이 없으니까 말조심하자.”

“마음껏 들으라 해요! 지 욕하는데도 숨어만 있는 거면, 지도 켕기는 게 있단 뜻이겠죠!”

멀쩡하던 아버지가 물러나고 그 후임으로 나선 배혁진 이사가 항상 탐탁지 않았던 듯.

당당이는 그를 향한 적의를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나 또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모든 일의 원흉이 이오네스일 거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근데 실제로 만나보고 나니…… 이오네스는 그럴 사람이 아니야.’

물론 철저한 연기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이 참여한 타연을 누구보다 사랑하며 선임인 젠티스를 존중하던 모습.

그는 현실 속 거대 기업과 그 후계자에 빌붙어 자신의 안위만을 쫓는…… 상상 속 ‘그’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부류의 사람이었다.

“드로야, 무슨 생각이었던 거냐? 평소 너답지 않던데…… 긴장했던 거야? 테오시스한테는 뭐라도 악착같이 얻어내려던 녀석이 이오네스한테는 왜 오냐오냐한 건데?”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이 이상했던 모양인지, 축빙 형님도 이오네스가 떠나고 나서야 속마음을 털어놓으셨다.

“죄송합니다 형님. 어차피 얻어 낼 게 없다면 대화라도 길게 나눠보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 다들 고생하셨는데 길마로서 얻어내야 할 보상을 못 받아냈네요.”

“확인? 무슨 확인? 그리고 얻어낼 게 없었다고?”

“네. 아무리 우겨봤자 그가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없거든요. 확실히 문제가 있는 사냥법이기도 했고요.”

천계 이테른 지역에 진입했을 당시, 나는 우리 앞에 나타난 테오시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기를 쓰고 피 터지게 경쟁한 끝에 획득한 우리의 ‘권리’를 방해하지 말라고.

오늘 또한 이오네스에게 이렇게 우길 만했지만, 그럴 수 없던 중대한 이유가 존재했다.

바로 사람들의 비난과 원성.

매일 자정 적나라하게 게시되는 순위와 레벨을 통해 우리의 행적은 간접적으로 노출된다.

한데 하위권 랭커들조차 하루 1레벨업이 힘든 지금 시점에, 필요 경험치가 더 많은 상위권이 매일 3, 4개씩 레벨업을 하고 있다?

단 하루 단발성이라면 모를까, 이틀 이상 이어진다면 전부 들고 일어날 대사건이었다.

거기다 현재는 대규모 무차별 PK가 발생 중인 혼란의 시기였으니 더욱더 구설수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운영자 중 한 명이 결국 우리 앞에 나타날 거라 예상하고 있었고, 그전까진 밤을 새워서라도 사냥을 지속할 생각이었다.

‘그가 나타난 건 뜻밖의 소득이었지만…….’

그 결과 바라왔던 이오네스와의 만남이 비로서 성사됐다.

줄곧 베일에 싸여있는 것과 한 번이라도 직접 만나 어떤 사람인지 파악해보는 건 천지 차이.

나는 이 만남을 통해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하는 소득을 얻게 되었다.

처음엔 의심조차 하지 못했던 사람.

몰래 나를 공격하고 여러 업데이트를 통해 나의 성장을 방해했던 인물은…… 역시나 ‘테오시스’였다는 사실을!

“일단 오늘은 다들 수고 많으셨어요! 제가 부족한 탓에 얻어낸 건 없지만.”

“무슨 소리야? 생각해보니 운영자가 유저한테 템을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젠 우리가 경험치 버프 같은 걸 받을 수 있는 레벨도 아니었잖아? 수고했다, 드로야. 그래도 네 몹 몰이 아이디어 덕분에 폭렙업했으니까 됐어!”

“다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당분간은 천계 말고 이곳에서의 사냥도 좋을 것 같아요. 태성 놈들이 얼씬도 못 하게 감시도 할 겸요.”

“그래, 그러자. 아무튼 그럼 이만 나가본다! 넘넘 피곤해서리, 흐흐.”

부족한 나를 격려해주는 축빙 형님과 현중이.

그렇게 길고 긴 하루를 끝마치고, 다들 로그아웃했다.

하지만 아직 나의 하루는 끝나지 않았기에 접속을 끊는 대신 도시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어디 계세요? 카이저 형님!”

“여기다 여기! 이 집이야!”

우리가 미친 듯이 사냥에 몰두하는 동안.

요정계를 찾아온 다른 유저들이 있었다.

다름 아닌 타연 최고의 듀오, 카이저 형님과 라푼젤.

목소리가 들려온 페어리의 고택(古宅)으로 들어가자, 한 NPC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형님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왔구나. 사냥은 다 끝난 거냐?”

“몹 몰이요? 강제로 끝나버렸어요. 이오네스가 찾아왔거든요. 형님은 퀘스트 잘 하고 계셨어요?”

“나도 막 하나 끝마쳤다. 근데 이오네스라고? 배혁진이 직접?”

내 의외의 대답에 놀란 형님은, 방금 있었던 짧은 만남에 관해 자세히 묻기도 하시며 전해 들었다.

“그러니까…… 이번 일을 통해 넌 확실히 테오시스로 굳혀졌다 이거지?”

“네. 개발자와 헤비 게이머 간의 말로는 표현 못 할 교감이 있었다고나 할까요? 직접 만나보니 그가 아니란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겠더라고요.”

“에이, 오빠! 그게 뭐예요. 교감이라뇨?”

“남녀 사이에만 그런 게 있는 게 아니야. 진짜는 서로를 알아본다고 하잖아? 딱 봐도 알 수 있겠더라고. 이 사람은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타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그런 사람이 그따위 짓을 했을 리 없지.”

“드로야. 네가 아직 잘 모르나 본데…… 너무 사랑하다 보면 오히려 그게 집착이나 잘못된 애정으로 변질될 수도 있는 법이다. 물론 이오네스가 그 케이스란 뜻은 아니지만.”

“하하, 그래요? 아무튼 그렇게 끝없이 의심만 하다 보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을 테니, 저 나름대로 신중히 판단해 보겠습니다.”

“그러지 말고 드로야.”

“예, 형님.”

“이렇게 된 이상 테오시스도 한 번 만나봐라. 지금 당장.”

“네에?”

생각지 못한 의견을 제시하는 카이저 형님.

그에 놀라 되묻자, 형님은 의외의 말로 화답했다.

“지금과 같이 불편한 사이가 되기 전에, 넌 분명 테오시스에게 이오네스를 의심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했지?”

“네. 로낙쏜의 클랜 마스터들이 죽고는 부활하지 않아서, 지옥불 형님을 통해 불렀던 적이 있어요.”

“그럼 지금 네게도 그 피리인가 하는 게 있으니 한 번 불러봐라. 그래서 솔직히 말해 봐. 그때와 달리 지금의 난, 당신을 의심하는 중이라고.”

“네? 갑자기요?”

“그래. 형이 보기엔 넌 지금 너무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 같다. 물론 나도 당한 적이 있어 악감정이 없는 건 아닌데…… 결국 운영자도 사람이잖아? 일이 이렇게 꼬이고 복잡해진 이상, 만나서 직접 대화를 나눠보면 의외로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도 있다.”

“…….”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네가 의심하고 있단 사실만 밝혀도 함부로 행동할 순 없게 될 거야. 물론 네가 이만큼 커서 그런지, 지금도 별 반응을 보이고 있진 않지만.”

형님의 말을 듣다 보니 그럴싸하게 느껴졌다.

‘그’의 행적이 줄어든 건 어떤 제약이 생겨서일 수도 있지만, ‘내’가 너무 강해지고 유명해진 이유도 분명 한몫했을 것이다.

처음 내가 구상했던 것처럼 타연 톱의 자리에 오르고 나니, 오프라인에서든 온라인에서든 나를 건드리기엔 리스크가 너무 커진 것.

하지만 그 말을 돌려 말하면, 나로서는 단 한 번의 개입만으로도 막심한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만나보니 의외로 생각이 금방 정리됐던 이오네스.

그러니 형님의 말과 같이, 지금 테오시스와의 대화를 나눠본다면 어떤 의외의 성과를 기대할 수도 있지 않을까?

“좋아요. 어차피 나름의 대책도 세워뒀으니 지금 의중을 밝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아무리 수습을 잘해봤자, 사건이 터지고 난 후보다는 예방이 백번 나은 법이니까요.”

“대책?”

“네, 그런 게 있어요. 저 나름대로 ‘그’를 특정 지을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놨거든요. 아무튼 그럼 바로 불러 볼게요.”

난 인벤토리 창에 고이 모셔두고 있던, 늘 구경만 해왔던 템을 터치해보았다.

[신묘한 피리를 사용하시겠습니까?]

[YES]

지옥불 형님이 쓰는 걸 지켜만 봤지 직접 사용하기는 이번이 처음.

그때와 마찬가지로 피리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분명 사용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났지만…… 이곳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어때? 사용한 거 맞아?”

“맞아요. 아무래도 시간이 시간인 만큼 로그아웃해 있나 본데요? 근데 분명 이 템은 현실에도 연락이 간다고 들었는…….”

“절 부르셨습니까, 산드로 님?”

그렇게 형님과 대화하던 도중, 누군가가 우리 사이로 쑥 하고 나타났다.

중성적인 외모의 보랏빛 커트 머리.

몇 번이나 마주한 적 있어 낯이 익은 테오시스였다.

“오셨어요, 테오시스 님.”

“카이저 님과 라푼젤 님도 함께 계셨군요. 어떤 일 때문에 이 새벽에 연락하셨나요, 산드로 님?”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건네는 테오시스.

일전 천계 이테른 지역 진입 자제를 요청하기 위해 나타난 이후로 오랜만이었는데, 그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예전엔 뭔가 엉뚱하면서도 친근한 태도였다면, 지금은 차가우면서도 지극히 사무적인 모습이었다.

“사실 방금 전에 이오네스 님과 만났습니다. 저희가 시도한 몹 몰이 사냥을 막으시려고 직접 찾아오셨거든요.”

“알고 있답니다. 관련 사항을 먼저 보고 받았는데 이오네스 님이 직접 만나 뵙겠다 하여, 저는 접속하지 않았죠. 설마 그 일 때문에 부르신 건가요?”

“그러셨군요. 몹 몰이 때문은 아니고…… 이오네스 님을 뵙고 나니 뭔가 좀 명쾌해진 것 같아서요. 그래서 테오시스 님을 만나 뵙고 말씀 좀 나누고 싶었습니다. 혹시 짧게나마 대화하실 수 있을까요?”

“제가 신묘한 피리를 드린 건 이런 용도로 쓰시라고 드렸던 게 아니랍니다. 이런 식의 사적인 접촉과 대화는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발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운영자로서 해서는 안 되는 행위이고요. 별일 아니신 것 같으니 그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리고는 냉정하게 몸을 돌리는 테오시스.

역시나 그녀는 지금 내게 선명한 적의(敵意)를 내비치고 있었다.

“사적인 감정이나 운영자가 해선 안 되는 행위라고요? 본인은 그런 걸 죄다 해놓고는…… 저는 왜 하면 안 된다는 말씀이시죠?”

하지만 그 적의 또한 천계에서 내가 먼저 내비쳤었고.

그를 더욱 분명히 밝히기 위한 것이, 지금 내가 그녀를 불러들인 이유였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고 계신 거죠? 설마 제게 한 소리는 아니죠?”

“맞습니다. 운영자님. 아니, 이렇게 부르는 게 맞으려나요? 태성과 붙어먹은…… 타이탄 연대기의 ‘배신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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