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화 예행연습 (1)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저보고…… 배신자라고요?”
“제대로 들으셨네요. 다른 분들이 애써 만든 이 마스터피스 게임에 똥을 뿌리고 계신 분. 그 사람이 바로 테오시스 님 아니신가요?”
“호호! 언제는 배혁진 이사님을 보고 그렇게 말씀하시더니…… 이제는 저예요? 산드로 님은 참 편하게 사시네요. 그렇게 제멋대로 대상을 바꿔가며 의심하고, 쉽사리 단정 짓고 사시니 말이죠.”
코웃음 치는 테오시스.
하지만 설령 내가 잘못짚었다 해도 지금 이 말을 꺼낸 것이 후회되진 않았다.
‘비록 타초경사의 우가 될진 몰라도…….’
만약 그녀가 범인이 아니라면 감정만 상하고 말 테지만.
정말 배후에 있던 태성의 조력자가 맞다면, 이 말을 들은 이상 더는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될 테니까.
“처음엔 저도 이오네스 님으로 생각했었죠. 테오시스 님이야 당당이가 말한 것처럼 개발 후반부에나 참여했을뿐더러, 그럴 분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지옥불 형님이나 저와도 안면이 있고요.”
“그래서요?”
“하지만 점점 드러나는 정황을 살펴보니까 외려 테오시스 님이 더 의심 가더라고요? 등잔 밑이 어두웠다는 걸 깨달았다고나 할까요?”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어디 계속해 보세요.”
로만 전자 측으로부터 들은 말은 접어두고라도.
그녀의 행적은 무언가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다.
원래 대중 앞에 가장 많이 나서던 그녀는 나와의 접촉 이후로 모습을 드러내질 않았고.
그와 동시에 활발하던 개입도 뚝 끊기듯 사라졌다.
“당신의 행적이 줄어든 이유…… 그건 줄곧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이오네스 님이 전면에 나온 것과 관련이 있죠?”
“이사님이 뭘 어쨌길래 그러시는 거죠?”
“방금 전에도 말씀하셨잖아요. 오늘도 이오네스 님이 나서서 본인은 접속 안 했다고요. 쭉 개발에만 몰두하던 이오네스 님이 젠티스 님의 빈자리를 메우려 접속이 잦아지자, 테오시스 님의 활동 범위가 좁아진 거 맞죠? 그래서 다리우스가 죽도록 놔둔 것이기도 하고요.”
아직 모으고 있는 ‘정황 증거’를 말할 때는 아니었다.
이건 ‘그’를 옭아맬 수 있는 최후의 수단.
본인 스스로 자백하지 않는 이상 최후의 최후까지 비밀로 하며 증거들을 보험으로 쌓아둬야만 했다.
하지만 하나 정도는 푸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갑자기 다리우스 님 얘기가 나오는 것도 그렇고요. 오히려 그 말씀대로라면 신검과 마신검을 둘 다 가지고 있어야 하는 유저는 산드로 님이 아니라 다리우스 님 아닐까요? 저 같은 운영자의 도움이 있었다면?”
“맞아요. 그래서인지 다리우스 놈도 죽기 전에 흥미로운 소리를 외치더라고요. 뭐라고 하신 지 기억하세요?”
“자꾸 이러실 겁니까? 기억이라니요! 전 그때 당시 타연 밖에 있었습니다!”
“뭐 계속 그렇게 우기시면 할 수 없고요. 아무튼 간에 놈은 죽기 직전 이렇게 외쳤습니다. 투 뮤탄! 어서 이놈을 막아! 나를 지키라고! 라고요.”
“…….”
“웃기는 일이죠? 통합 랭킹 2위나 되는 유저가 바보도 아니고, 한낱 보스 몹에게 도움을 요청하다니요? 하도 어처구니없던 일이라서 제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니까요?”
그리고 확실히 효과가 있었는지, 그녀의 표정은 변함없었지만 태도는 그렇지 못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워낙 급박한 상황이었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
“그런데 말이죠. 이렇게 생각해보면 또 이해가 되거든요? 그게 몬스터에게 한 게 아니라 사람한테 했던 말이었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요.”
“그래서 지금…… 그 몬스터한테 운영자가 빙의라도 하고 있었다는 말인가요?”
더없이 건조한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말투는 이제 베일 듯 차갑기 그지없었다.
“아니죠. 그랬다면 다리우스가 죽었겠어요? 오히려 제가 죽었겠죠!”
“산드로 님! 적당히 하시죠? 지금 절 놀리고 계신 겁니까!”
“아직도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 못 하시겠어요? 다리우스는 ‘조력’을 요청하는 도움을 외쳤고, 그에 투 뮤탄은 응답하지 못했죠. 그게 왜일까를 묻는 거잖아요. 도대체 왜? 저나 여기 계신 카이저 형님을 죽이려 몇 번이나 빙의했던 ‘그’가, 결정적인 순간에는 왜 행동하지 못했을까요?”
“그러니까 지금…… 만약 이오네스 님이라면 그랬을 리 없다는 뜻인 건가요?”
“역시 똑똑하시네요. 맞아요. 이오네스 님이 조력자였다면 왜 안 했겠어요? 님 말마따나 저를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고, 그곳에는 다른 일반 유저들의 눈도 없었는데.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본인은 접속도 안 했던 때라면, 더더욱 조심할 게 없는 상황이었는데 말이죠.”
“그거야 제가 당사자도 아닌데 어떻게 안단 말이에요!”
대화하면서 느끼는 건데 확실히 테오시스와 이오네스는 완전 다른 부류의 사람이었다.
냉철한 이오네스와 달리 테오시스는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은근히 몇 번의 말실수를 저질렀다.
‘말을 나누면 나눌수록 점점 의심이……. 정말로 테오시스가?’
몇 번을 돌이켜 생각해봤지만 천운이었단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수중 왕성 속 함정에서 결국 내가 마신검을 차지했던 것이.
분명 함정을 설치한 놈들은 완벽히 준비됐다고 여겼을 테니 시도했을 테고.
그런데도 나는 살아남을 자신이 있었기에 무작정 들어갔던 게 맞다.
하나 막상 닥쳐보니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문제가 있었다.
보스 몹 ‘투 뮤탄’의 존재와 강함.
미리 알았더라면 절대 들어가지 않았을 정도로 놈이 강력했다는 게 큰 변수였다.
만약 그 보스 몹 안으로 운영자가 빙의했다면…… 승부는 정반대로 났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빙의를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거라고 보는 편이 맞지 않을까요? 굳이 그 상황에서 다리우스의 간절한 요청을 들어주지 않을 이유는 없었거든요.”
하지만만 나는 살아남았고, 마신검 쟁탈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오네스와의 생각지 못한 만남 직후, 나는 그 이유에 대해 깨달을 수 있었다.
‘그곳에 이오네스와 테오시스, 둘 다 있었던 거야. 우리로선 인지할 수 없었지만 서로는 알 수 있었고…… 그래서 누구도 개입하지 못했던 거지!’
이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다리우스와 나의 결투는 타연의 미래를 뒤바꿀 수도 있는 대이벤트였던 만큼, 그곳에 운영자들이 함께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
그게 아니라면 계속 다리우스를 도와왔던 운영자가 그 중요한 순간에 가만있었을 리 없었다.
그러니 조금 전 테오시스가 말한, 당시 자신은 접속하지 않았다는 말은 ‘거짓’일 확률이 무척 높았다.
“듣다 보니 정말 망상이 대단하시군요. 이오네스 님의 비리를 의심할 때도 설마 했었는데 이젠 저를 대상으로……!”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더는 참을 수…… 네? 뭐라고요?”
“제 얘기 다 끝났다고요. 제가 테오시스 님을 불렀던 건 지금 드린 말씀이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이제 돌아가셔도 돼요.”
“이게 대체 무슨…….”
“막말로 증거는 하나도 없는, 제 일방적인 추측에 불과하잖아요? 그냥 이대로 돌아가셔서 제가 말했던 것들을 잘 곱씹어 보시고, 앞으로 주의만 좀 해주세요. 아참! 그리고 조금 전 이오네스 님이 제게 호루라기를 주셨거든요? 이젠 이오네스 님과도 언제든 대화할 수 있게 됐으니까 그 점도 숙지해 두시고요. 그럼…… 카이저 형님?”
하고픈 말을 다 쏟아낸 후 일방적으로 대화를 끝냈다.
그리고는 카이저 형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뒤로 물러섰다.
“테오시스 님. 갑자기 드로에게 이런 말을 들어서 기분이 나쁘실 수도 있습니다.”
“카이저 님. 대체 지금 제게 왜들 이러시는지 모르겠네요. 저는……!”
“그렇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금도요.”
“……뭐라고요?”
“저 또한 드로와 마찬가지로 ‘빙의’를 통해 죽을 뻔한 적이 있었죠. 그래서 기본적으로 운영자들에게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진 않습니다. 한데 지금의 드로는 어떨까요? 만약 한 번이라도 죽게 되면 어떤 피해를 받을 것 같습니까?”
“…….”
“아마 타연을 통 틀어 누구보다 큰 피해를 입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드로는, 모든 것을 총동원해서라도 범인 찾기를 절대 포기하지 않겠지요.”
차분한 형님의 말투와 달리, 그 내용은 가시가 돋칠 대로 돋쳐있었다.
“그래서 제가 테오시스 님을 불러보시길 조언했습니다. 그런 불상사가 발생하기 전에, 이렇게 미리 만나서 대화라도 나눠보라고요. 어쩌다 보니 반협박처럼 됐지만…….”
“두 분은 이미 저를 범인으로 단정 짓고 계시군요.”
“아닙니다. 그저 두 분 중 한 분일 확률이 높다 보니 두 분 모두를 의심하고 있을 뿐인 거죠. 저희 입장에서는 조심해서 나쁠 게 없으니까요.”
“하지만 전 정말 아닙니다. 이건 정말…… 너무도 억울한 상황이네요…….”
마지막까지 부정하는 테오시스.
그 모습이 진실이건 아니건 이젠 상관없었다.
이로써 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그런데도 불행한 결과가 발생한다면 그건 결국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으니까.
“그렇게 억울하시다면 앞으로 자주 좀 접속해 주세요.”
“네?”
“그래서 혹여 다른 누군가가 빙의를 사용해 저희를 곤경에 빠뜨리게 되면, 직접 나서서 막아주세요. 그럼 범인도 잡고 누명도 풀 수 있으니, 좋지 않아요?”
“제가 계속 산드로 님만 쫓아다닐 만큼 한가한…….”
“방법을 제시해드렸는데도 못하겠다면 할 수 없고요. 그럼 할 말은 다 했으니 이만…… 가주시겠어요?”
부를 때와 같이 멋대로 축객령을 내뱉자 그녀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딱히 할 말이 없었는지 이내 이오네스처럼 스르륵 사라졌다.
그렇게 격한 논쟁이 오가던 곳이 조용해지자, 카이저 형님이 말을 건네왔다.
“수고했다, 드로야.”
“감사합니다, 형님. 처음엔 좀 실수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말씀대로 하니까 속은 참 후련하네요. 나름 확신도 갖게 됐고요.”
“그래. 준비도 안하고 불렀는데도 말을 잘하던데? 나도 네 얘기를 듣다 보니 확실히 테오시스가 수상하긴 하더구나.”
범인이 누군지 확신할 수 없다면, 적어도 남에게 휘둘리지 말고 스스로 판단하자.
그래야만 나중에 잘못되더라도 후회가 덜할 테니까.
다리우스를 쓰러뜨린 지금, 사실상 가장 큰 적으로 남게 된 ‘그’를 찾으며 내가 다짐한 각오였다.
“아무튼 이미 저질렀으니 어떻게 돼도 되겠죠! 형님, 여기선 뭐 새로운 정보라도 얻으신 거 있으세요? 확실히 신규 필드라 퀘스트가 제법 있었죠?”
“아직 메인 퀘스트와 연관된 건 발견하지 못했지만 자잘한 퀘스트들은 괜찮게 있더라. 역시 이곳은 조만간에 공개될 필드였던 것 같다.”
“맞아요, 오빠!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굳이 꽁꽁 감쳐둘 필요도 없으니까요!”
예상이 맞다면 마계의 침공은 곧 있으면 벌어진다.
따라서 이곳은 그 전초전이 벌어지고 있는 필드라 간주해도 무방했다.
그리고 지금껏 알아낸 바에 따르면 본격적인 침공의 방법은 분명…….
“중간계와 연관된 퀘스트는요? 특히 제국 황실과요!”
“마침 그와 관련된 듯한 퀘스트를 막 연계 퀘로 얻은 참이었다. 이 집에 있는 요 페어리 족 장로를 통해서 말이지.”
줄곧 형님과 라푼젤에 가려져 있던 작은 페어리.
고개를 내밀어 쳐다보자 제자리에서 두 쌍의 날개를 펄럭이며 날고 있는 아름다운 요정 NPC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엘더 페어리 솔데이아>
나는 조금 특별해 보이는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며 물었다.
“얘요? 얘가 뭘 줬는데요?”
“최근 이루어진 마계군의 침공 직전, 이곳 요정계를 찾아온 인간이 있었다고 알려줬다. 들어보니 그건 제국 황실의 친위대, 크림슨 나이트였고.”
“엇? 그게 정말이에요?”
“그래. 그것도 마계군이 나타난 방향이었다고 하니 확실한 거겠지.”
세계수가 회복된 지금, 마계의 침공은 천 년 전과 똑같이 마왕 소환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걸 지금 시도하고 있는 자는…… 분명 현 제국의 황제라고 똑똑히 들은 바 있었다.
“역시 당장 확인해봐야겠네요.”
“그래. 우리가 너무 일렀던 게 아닌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이곳에 떡하니 이런 퀘스트가 존재하고 있었던 걸 보면!”
황제 암살.
태성을 밀어버리기 위해서도 시급했지만, 타연의 스토리 또한 우리의 등을 떠밀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로…….
황제에 도전할 시기가 도래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