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화 예행연습 (4)
‘뭐, 뭐지?’
갑자기 쑥 차오른 체력.
순간 라푼젤이 당부도 잊고 힐을 준 건가 착각할 정도로, 물약 따위로는 절대 채울 수 없는 많은 피가 회복되었다.
하지만 크림슨 나이트는 눈앞의 발렌 한 명이 아니었고, 공격 또한 그 한 번으로 끝날 리 없었다.
연달아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들.
그에 나는 반사적으로 검을 마구잡이로 휘둘러 막으려 들었고.
[암 속성 스킬 공격을 흡수하여 7,995의 체력을 회복했습니다.]
[암 속성 스킬 공격을 흡수하여 8,112의 체력을 회복했습니다.]
……………………
원래라면 패링 시스템이 적용되지 않기에 당했을 공격들이 오히려 내 체력을 계속 채워주었다.
‘그렇구나! 룬 제스베라에 붙어있는 그 옵션 때문이야!’
마신검을 착용한 후 잡았던 마계 몹은 속성 마법 및 스킬을 사용하지 않는 소형 고르곤들뿐.
그래서 이 같은 경험은 이제 막 처음 겪어봐서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이 상황의 원인을 단박에 파악해낼 수 있었다.
* 암 속성 마법 및 스킬을 검으로 가드 성공 시, 데미지 흡수 및 체력 회복으로 치환
그동안 사용할 일이 통 없어 없는 셈 치고 지내왔던 룬 제스베라의 옵션.
의도한 바는 전혀 아니었지만…… 얼떨결에 휘두른 왼손의 마신검에 놈들의 스킬 공격이 가드 되었고.
그게 흡수되어 데미지는커녕 오히려 체력을 회복시켜준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어쩌면 이거……?’
한 손엔 놈들의 마법과 스킬을 무효화할 수 있는 마신검.
그리고 다른 한 손엔 속성의 우위로 막대한 추가 데미지를 줄 수 있는 신검을 착용 중인 상태.
따라서 이 쌍 신검을 한 몸에 지닌 나는…… 타연에 두 번 다시 나오기 힘든 마계 몹들의 천적인 게 아닐까?
(카이저: 어때? 버틸 만해? 건물 곳곳에서 10명이 더 몰려와서 총 20명이 됐다. 대답할 필요는 없으니까 참고해!)
어느덧 나머지 크림슨 나이트들까지 몰려와, 침소 안에는 총 스무 명이라는 무지막지한 숫자로 가득 찼다.
흡사 타임 어택 퀘스트 시절 제국군 훈련소에서 혼자 분투하던 때와 비슷한 상황.
하지만 그때 상대했던 몹은 하찮고도 하찮은 제국의 하급병이었다면…….
지금 눈앞에 있는 놈들은 크기만 작을 뿐, 하나하나가 천사장급에 버금가는 강력한 네임드라는 게 차이점이었다.
[집중 회피!]
하지만 녀석들이 전부 다 나이트, 즉 ‘기사’라는 점은 정말 다행이었다.
마나 쉴드를 버리고 회피 테크를 선택한 이래로, 가장 적합한 상대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귀신 발걸음!]
타탓! 탓! 탓!
모두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대부분 근거리 공격 타입인 크림슨 나이트들.
덕분에 놈들은 내가 지그재그로 빠르게 움직이자 금세 한 덩이로 뭉쳐진 채 나를 쫓는 모양새가 되었다.
마치 몹 몰이를 하듯, 놈들이 나를 쫓는 방향으로 이쁘게 모아진 것이다.
[암 속성 스킬 공격을 흡수하여 8,005의 체력을 회복했습니다.]
[암 속성 스킬 공격을 흡수하여 9,172의 체력을 회복했습니다.]
……………………
물론 그렇다고 이 보스급 수준의 크림슨 나이트들이 단순한 근접 공격 타입의 몹은 아니었다.
계속해서 내게 검은 기운과 다크 블레이드를 날려댔으나 족족 흡수해서 전혀 의미 없었을 뿐.
아니, 오히려 내 체력이 조금이라도 닳을까 풀로 채워주는 어처구니없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뭐예요 오빠! 지금 위험한 거 맞아요?”
“하하! 나도 모르겠다!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된 거지? 도무지 피가 닳을 생각을 안 하는데?”
그 황당한 모습에 어느덧 방구석 쪽으로 피신해있는 라푼젤이 큰소리로 말을 건네왔다.
한껏 긴장하고 온 곳이었는데 이런 상황이 연출되자, 그녀도 나처럼 어이없는 모양이었다.
“드로야, 방심하지 말고 황제를 조심해라! 녀석의 모습이 변하고 있다!”
하지만 이건 잠시 벌어진 해프닝일 뿐.
황제를 상대하는 일이 결코 이리 쉽게 풀릴 리도, 또한 간단히 해결될 놈들도 아니었다.
『7신기를 이어받은 12영웅의 후계자인가? 그렇다면 차후 방해물로 성장하기 전에, 오늘 이 자리에서 숨통을 끊어놓아 주마!』
방문한 암살자가 다른 무엇도 아닌 7신기를 착용 중인 유저라 그런 건지…….
아직 황제의 손끝 하나 건드려보지 못했는데, 놈은 은근한 협박과 함께 다음 페이즈로 진화했다.
그리고는 검은 기운이 놈의 전신을 온통 뒤덮었다.
<마족이 된 황제 제피르 3세>
어디선가 본듯한 모습.
바로 데스라 사막의 유적 도시에서 마주했던, 레벤다스의 마지막 페이즈와 사뭇 비슷한 모습이었다.
‘고위 마족과 동화된 외형……. 그러면 그때 레벤다스가 사용했던 검은 기운과 공격 방식은 비슷하겠구나!’
확실히 위협적인 모습.
황제 자체는 별 볼 일 없었지만, 보아하니 그냥 고위 마족이라고 간주해도 상관없을 수준이었다.
마왕은 타연의 최종 보스급이기에, 마주하기까지는 아직 수많은 과정과 시간이 남아있을 터.
마계의 고위 마족만 하더라도 현재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고스펙 몬스터임이 틀림없었다.
그런 생각이 스치는 동안, 황제가 본격적으로 공격을 시작했다.
『서로를 증오하거라!』
첫 공격은 동료끼리 서로를 공격하게 만드는 정신 공격 마법!
동시에 내게도 로그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상태 이상 ‘혼란’에 저항합니다.]
하지만 내 디바인 투구에 붙어있는 옵션, 정신계 공격 마법 저항 100%를 뚫을 순 없었고.
황제의 대규모 상태 이상 마법은 그대로 아무런 피해도 없이 허무하게 무시되었다.
피피픽!
하지만 황제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검은 기운을 내뻗으며 공격해왔다.
“큭!”
[제피르 3세로부터 15,192의 마법 피해를 입었습니다.]
[제피르 3세로부터 14,277의 마법 피해를 입었습니다.]
……………………
도무지 마신검으로 가드하기 힘든 궤적으로 날라오는 마법 공격들.
그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맞아줄 수밖에 없었다.
‘이건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어! 그러면서도 데미지가 너무 강하잖아! 내 방어력이나 마방이 몇인데 피가 이 정도나 빠지는 건데!’
정말 나니깐 망정이지, 다른 유저였다면 2방을 버틸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을 무지막지한 공격이었다.
현재 나는 타연 속 최고 레벨일 뿐만 아니라 업적이나 장비 또한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갖춰진 상태.
무엇보다 신검과 마신검을 착용한 덕에 스킬들 또한 전부 10성이라는 말도 안 되는 수치를 달성해 두었다.
그런데도 이 정도 데미지가 들어온다는 건…….
확실히 악마와 동화된 눈앞의 상대, ‘암흑 황제’의 스펙이 얼마나 강력한지 대충 감이 잡혔다.
“드로야! 더 버틸 수 있겠어? 확인할 건 대충 확인한 거 같으니까 이제 슬슬 빼도록 하지?”
“네, 형님! 마지막으로 녀석의 체력만 좀 가늠해보고 바로 빠질게요!”
하지만 그렇더라도 나의 목표는 조만간 이놈을 잡아내는 것.
몇 대만이라도 공격해서 네임바가 깎이는 정도를 확인해 보는 건, 오늘 이곳에 온 목적 중 하나였다.
[태세 전환!]
[난도질!]
[귀신 발걸음!]
그래서 난 자버프를 걸어 최대한 강력한 공격 모드로 전환한 뒤, 황제에게 다가가 검을 휘둘렀다.
퍼퍽! 퍽! 번쩍!
최강의 근접 데미지 딜러 도둑답게, 미칠 듯 빠른 속도로 휘둘러진 평타 공격.
그에 신검에 내장된 빛 공격 마법이 연달아 터지며 놈의 네임바의 체력이 깎이는 게 눈에 들어왔고…….
[암흑 기운으로 인해 10,522의 반사 피해를 입었습니다.]
[암흑 기운으로 인해 11,154의 반사 피해를 입었습니다.]
……………………
갑자기 내 눈앞에 피해 로그창이 주르륵 떠오르더니, 눈앞 시야가 돌연 새빨간 망토로 뒤덮여버렸다.
[체력이 일정 수준 이하로 감소하여 ‘천사장의 보살핌’ 효과가 발동됩니다.]
임의 발동도 가능하지만, HP가 10% 이하로 떨어지면 자동 발동되는 페리엘 망토의 스킬.
바로 천사장의 보살핌 스킬이 발동되어, 망토 자체가 둥근 구체의 보호막으로 변한 것이었다.
‘뭐야 갑자기! 피가 왜 이렇게!’
공격하는 동안, 놈의 체력을 가늠해보는 데 정신 팔려 순간적으로 체크하지 못했다.
내 공격 데미지에 비례해서 내게도 반사 데미지가 들어왔다는 사실을.
설마 마법 타입으로 보이는 암흑 황제에게 이런 스킬이 있을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것.
하마터면 내 공격에 내가 당해서, 황당하게 죽어버릴 뻔했던 순간이었다.
퍼퍽! 펑! 펑!
하지만 당장 안심할 상황도 아니었다.
이 망토로 만들어진 보호벽은 일정 누적 데미지에 도달하면 풀리게 된다.
그러면 나는 이 10%라는 보잘것없는 체력을 가진 채로 암흑 황제와 수많은 크림슨 나이트들을 뚫고 도망쳐야만 했다.
그마저도 암흑 스킬 공격들을 마신검으로 죄다 디펜스하는 데 성공한다는 가정하에서!
잠시 주어진 고민의 시간.
이 급박한 상황에 생존본능을 발휘했던 걸까?
순간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에 나는 급히 망토 밖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푼젤아! 쉴드가 풀리면 오빠가 바로 뛰어오를 거거든? 그러면 나한테 신번 좀 날려줘!”
“네? 무슨 소리예요 오빠? 오빠를 공격하라고요?”
“설명할 시간 없어! 절대 힐은 주지 말고 무조건 신번이다! 알겠지? 풀 차징 신번!”
그 말과 동시에 난 얼마 남지 않는 천사장의 보살핌을 해제해버렸다.
그리고는 곧바로 머리 위를 향해 귀신 발걸음을 사용했다.
“신성 번개!”
그렇게 몹들 한가운데서 홀로 떠오른 나는, 원거리 공격하기 좋은 표적이 되어 주었고. 라푼젤은 내 부탁대로 고위 사제로 전직하며 얻은 강력한 공격 스킬을 날려 보냈다.
슈욱!
빠른 속도로 날아온 뇌전 모양의 빛무리.
난 그 공격 스킬을 향해 오른손에 든 신검을 휘둘렀고.
[빛 속성 마법 공격을 흡수하여 15,220의 체력을 회복했습니다.]
마신검의 경우와 반대로 이번엔, 빛 속성 마법이 내 체력을 순식간에 회복시켜주었다.
물론 그래 봤자 아직 반피도 되지 못한 수준이지만, 스치면 죽을 듯한 체력은 면할 정도는 되었고.
칭!
다소 안심하게 된 나는 곧바로 단테리오의 팔찌를 발동시켰다.
[스킬 가속 상태가 되어 60초 동안 모든 스킬의 사용 대기시간이 10%로 줄어듭니다.]
그리고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크림슨 나이트를 향해 그림자 밟기를 사용했다.
피슛! 탓! 탓!
그리고 놈의 후방에 도착하자마자 연달아 귀신 발걸음을 사용했고.
비록 단거리 이동에 불과했지만 쿨타임이 짧다는 장점 덕분에, 스킬 가속 상태에서는 거의 딜레이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기동력을 발휘해 침소 밖, 계단, 천상궁의 정문을 순식간에 지나쳤고.
금세 푸른 장막까지 도달한 나는, 놈들이 따라올세라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빠져나왔다.
“훼라리 소환!”
그리고는 곧장 훼라리를 소환해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아직 안심하긴 일러!’
띠링! 띠링! 띠링!
확실히 장막 밖은 안과는 전혀 다른 세상.
역시나 나오자마자 온갖 제국군들에게 포착되어 어그로 감지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그리고 나를 향해 제국의 그리폰 라이더를 비롯해, 수많은 마법사들 또한 플라이 마법으로 날아왔다.
[몬스터 라이딩!]
하지만 내게는 아직 스킬 가속 효과가 30초 넘게 남아있는 상태.
그렇게 연달아 3번의 몬스터 라이딩을 사용하자 아무도 우릴 쫓아올 수 없었고.
그 결과, 훼라리와 나는 제국군의 추적을 뿌리치고 무사히 황궁 밖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