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319화 (319/350)

319화 미스틱 드래곤 (3)

‘설마 이 자식한테서 귓속말이 올 줄이야.’

가능성은 가장 낮지만, 그 대신 제보 신뢰도만큼은 제일 높을 거라 예상했던 부류.

사실 10억이라는 거금은 지금 우리와 적대 관계에 놓여있는, 태성 라인의 유저를 노리고 책정한 면이 컸다.

이 정도 돈은 되어야, 배신을 택하는 사람이 나와도 하등 이상할 것 같지 않았으니까.

한데 그게 설마…….

이 자식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홍길동: 많이 놀라셨죠? 그동안은 정말 죄송했습니다. 이렇게 귓말 드리는 게 면목 없고 염치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저한테도 기회가 있는 건가 한번 확인해 보고 싶어서요.)

(나: 뭐 누구든 따질 입장은 아니지만..... 설마 뒤통수 치거나 사기 치려고 귓말한 건 아니지? 겪어봤다시피 나한테는 함정이니 훼이크니 같은 거 안 통하는 거 알 거 아냐?)

(홍길동: 절 뭐로 보시구 그러세요..... 이래봬도 공과 사는 철저히 구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제가 그딴 짓이나 할 놈으로 보이세요?)

‘이 자식이 뭔 소릴 하고 있는 거야? 당연하잖아? 백 번 그러고도 남을 놈이!’

어이없는 내가 한동안 답장을 보내지 않자 홍길동은 재차 말을 걸어왔다.

(홍길동: 뭐.... 우리 간에 서로 악감정이나 앙금 같은 게 남아있을 수 있지만.... 설마 그 때문에 전 해당 안 된다거나 그런 건 아닌 거겠죠? 드로 님, 따지고 보면 제가 당했던 게 훨씬 더 많잖아요? 장담하는데 계속 기다려봤자, 미스틱 드래곤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금방 안 나타날 겁니다!)

지금도 내 인벤토리 창에는 한 번씩 스위칭용으로 써먹는 아이템이 하나 자리 잡고 있다.

바로 홍길동이 드랍한 테네시의 바람 단검.

내게 온 뒤부터 거의 봉인되다시피 한 이 템은 여전히 랭커 근딜러들에게 메인 무기로 손꼽히고 있었다.

근접 딜러들을 원거리 딜러들 못지않게 바꿔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수요가 넘치고 있는 것이다.

한데 놈은 그걸 내게 빼앗기고도 존댓말을 꼬박꼬박 써오고 있었다.

함정일지라도 이 정도라면, 정성이 갸륵해 한번 속아주고 싶을 정도로.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제보를 받은 이상 일단 만나는 봐야 했다.

태성의 간부이자 도둑 랭커이기도 한 홍길동은, 미스틱 드래곤의 행방을 충분히 알 법한 위치에 있는 유저였기 때문이다.

(나: 만약 제보가 정말 사실로 밝혀진다면..... 당연히 무조건 드립니다. 알다시피 제가 한 입으로 두말하는 유저는 또 아니잖아요? 어디 계십니까? 당장 만나서 잠시만 감정을 덮고, 함께 확인해보시죠!)

* * *

“이쪽으로 가는 게 맞아요? 아무리 봐도 뜬금없는 곳 같아 보이는데…….”

“맞아요. 그리고 되도록 외창은 자제해 달라니까요? 하고픈 말이 있으면 귓속말로 좀요.”

“뭐, 주변엔 유저라고는 한 명도 없다니까 자꾸 그러시네…….”

“그래도요……. 보안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잖아요?”

이름 모를 봉우리.

깎아지는 듯한 바위 계곡이 즐비한 이곳은 하늘 산맥에 새로 오픈된 지역이었다.

직접 걸어서 이동한 지도 벌써 한참.

워낙 험준한 산세인 곳이라 몬스터도 보이지 않아, 유저들을 마주친 지도 오래됐다.

하지만 한사코 신중하길 원하는 홍길동 탓에, 우리는 둘 다 은신 상태로 묵묵히 발걸음만 옮기고 있었다.

-그러니까 미스틱 드래곤의 레어는 따로 있는 건 아니다……?

-네, 맞아요. 언급된 적이 있으니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현재 놈은 봉인된 상탭니다. 특정 미션 퀘스트를 전부 깨고 나면 놈의 봉인이 풀리는 거죠. 그러면 전설에 기록됐던 것처럼, 대륙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온갖 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어요. 예상컨대 투 메르타스보다 적어도 두 세배는 더 셀걸요?

-한 곳에 머무는 게 아니라 전역을 돌아다닌다고요? 그건 예상외의 패턴인데…… 확실히 성룡은 급이 다르다 이건가? 그거 확실한 정보예요?

-퀘스트 내용을 보면 그런 걸 암시하고 있더라고요. 아무튼 그래서 다리우스 형도 굳이 봉인을 깨지 않았어요. 지금 저희에게 중요한 건 사냥터지, 이런 잡지도 못할 보스 몹은 아니었으니까요. 뭐 사실 형의 속마음은…… 지금 깨워봤자 버닝스타한테 뺏기기만 할 거라고 생각한 것 같지만요.

-흐음……. 그럼 바로 알려줘 보세요. 혼자 가봐서 봉인인가가 풀리는 게 확인되면 바로 돈 드릴게요.

-에이, 그럴 수야 있나요? 알려줬다가 다른 사람 제보로 찾았다고 딴소리하면 어쩌려고요? 제가 괜히 이 아이디로 직접 연락드린 줄 아세요? 미스틱 드래곤까지 손수 안내해 드릴게요. 그래야 두말하지 못할 테니까요. 뭐, 물론 산드로 님이 그러실 분은 아니겠지만?

정말 내가 알던 홍길동이 맞나 싶을 정도로 친절히 설명해준 홍길동.

한적한 마을 여관에서 비밀리에 만난 놈은, 내게 연락하게 된 자초지종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었다.

최근 각종 신규 사냥터, 특히 고레벨들이 레벨업할 만한 필드들에 접근조차 못 하게 된 태성.

그 탓에 레벨이 높은 수뇌부는 반강제적으로 신규 사냥터 발견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워낙 방대한 맵을 자랑하는 타연이라 해도, 페가수스가 풀린 탓에 미발견 신규 사냥터를 찾아내기란 힘든 일이었다.

그건 아무리 새롭게 부분 오픈된 ‘하늘 산맥’ 지역이라고 해도 마찬가지.

따라서 놈들은 숨겨져 있는 인던을 발견하는 것과, 새로운 필드와 이어질 고레벨 퀘스트 클리어 등에 집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인해, 홍길동은 내게 제보 연락을 주게 되었다고 말했다.

(홍길동: 근데 골드는 정말 바로 넘겨주시는 거 맞는 거죠?)

(나: 그렇다고 몇 번을 말해요. 제가 창고에서 천만 골드 꺼내 와서 직접 교환창으로 보여드렸잖아요. 미스틱 드래곤의 실물만 확인되면 그 즉시 넘겨 드릴게요.)

(홍길동: 저로서도 리스크를 감수하고 벌이는 짓이라서요. 물론 산드로님이 그럴 분은 아니신 걸 잘 알지만, 그래도 저희가 또 신뢰할만한 사이는 아니잖아요?ㅎㅎ)

(나: 제가 그런 걸 따지는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만나주기는커녕 귓말 차단도 해제 안 했을 겁니다. 테네시 단검 건도 있고.... 뭐 이번에 겸사겸사 값을 지불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생각보다는 골드도 제법 풍족한 편이거든요^^)

은신 상태로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걷고 있는 홍길동.

그러는 한편 돈 떼먹힐 걱정을 하는 놈의 뒷모습에서 왠지 모를 애처로움이 느껴졌다.

-이번에 군주님…… 아니, 다리우스 형한테 실망도 많이 하고 좀 섭섭했어요. 제가 무기 복구하는 데 단 1골드도 보태주지 않더라고요? 그러니 이렇게라도 혼자 알아서 만회해야죠. 어차피 그 정도 돈이 걸렸다면 제보가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데…… 남 주긴 아깝잖아요?

아무리 랭커라 할지라도 테네시 단검 같은 초희귀 레전더리 무기를 드랍한 건 제법 타격이 컸을 것이다.

특히 최근 당당이로 인해 쌍 단검의 활용도가 알려진 이후, 테네시 단검은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오른 상태였다.

그러니 갈수록 돈벌이가 없어진 태성 라인의 간부 입장에서는 이번 제보비가 꿀같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역시 돈을 많이 걸었던 게 주효했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돈이라더니.

어려울 뻔한 일이 쉽게 해결될 것 같자, 조금 많이 건 것 같이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아깝지는 않았다.

확실히 돈값을 하는 건지, 내 눈앞에 신기한 풍경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마치 칼로 자른 듯 매끈한 표면으로 이루어진 석벽.

홍길동의 뒤를 따라 험준한 계곡을 한참을 걸은 끝에 당도한 곳엔, 다소 이질적이고 인위적인 느낌 암석이 나타났다.

크고 작은 골짜기 틈새에 껴있는 곳이라 공중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고, 설사 걸어서 이곳에 도착했더라도 조금 특이하다고만 생각하고 지나쳤을 곳.

거대한 암석으로 이루어진 이곳에 도착하자, 홍길동은 인벤토리에서 스크롤을 꺼내 들었다.

“빛이 거짓된 모습을 비추리라!”

그리고 시동어를 외치며 퀘템인듯한 스크롤을 펼치자 빛이 뿜어져 나왔고.

그 빛에 닿은 석벽은 마치 지우개로 지운 듯 어두운 흑벽으로 변해버렸다.

‘오, 뭐야? 진짜인가 본데?’

이 같은 과정을 지켜보고도 함정으로 의심할 만큼 멍청하진 않았다.

거대한 흑벽을 만들어낸 홍길동은 내게로 몸을 돌렸고, 그의 손에는 사라진 스크롤 대신 다른 아이템이 들려있었다.

“어라, 그건……?”

“역시 바로 알아보시네요? 맞아요. 세인트 스톤입니다.”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해서 안심됐는지 다시 입으로 말하는 홍길동.

그의 손에는 무언가 따스하고 성스러운듯한 빛을 띠고 있는 돌이 쥐어져 있었다.

“세계수가 회복된 후에 주어진 몇몇 퀘스트들. 그중 에시드 후작령에 전해지는 미스틱 드래곤의 전설과 연관된 퀘스트는…… 제국의 귀족밖에 받지 못하는 퀘스트였죠. 저희는 그걸 라인 산하에 있는 엠케이 길드로부터 공유받았고, 이렇게 퀘스트를 거의 깨기 직전까지 달성해 뒀습니다.”

“요정계도 선점하고 수중왕국도 간 사이에 이것마저도 했다니…… 역시 태성이라고나 할까요? 꽤나 바빴겠네요.”

“뭐 저희는 그곳에서 레벨업하느라 바쁘진 않았어요. 퀘스트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 전담팀이 따로 있거든요. 그 결과물만 공유받으면 효율적이죠.”

확실히 쪽수가 많은 길드다 보니 게임하는 방법과 사고방식이 우리와는 많이 달랐다.

노력 없이 쉽게 얻어서 그런 건가?

그 결과물을 이렇게 쉽게 넘기는 것도, 어쩌면 그런 이유에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무튼 현재는 퀘스트를 다 깨둬서, 세인트 스톤만 이 석벽에 박아넣으면 완료되는 거로 알고 있어요. 마지막 달성 재료가 이 스톤이라고 하던데…… 알다시피 이건 돈만 있으면 아무나 구할 수 있는 돌이잖아요? 그러니 미스틱 드래곤이 나타나도 누가 오픈한 건지는 모르겠죠.”

“그렇겠네요. 만약 다리우스가 이곳에 감시자만 박아두지 않았더라면, 저희의 거래를 아무도 알 수 없었을 거예요.”

“방금 뭐라고요? 감시자……?”

내 대답에 고개를 돌려 황급히 주변을 훑어보는 홍길동.

그리고 곧, 녀석의 얼굴이 사색이 된 것처럼 굳어버렸다.

검은 석벽의 꼭대기에서 이곳을 빼꼼히 내려다보고 있는, 한 유저의 얼굴이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홍길동 장로! 당신이 길드를 배신을 하다니……!”

태성의 길드 마크를 단 유저는 홍길동과 눈이 마주치자 큰소리로 외쳤다.

“뭐야, 언제부터 거기 있던 거야. 산드로 당신! 왜 아무 소리도 안 했어! 분명히 제사장의 머리 장식을 차고 있어서 무한 간파 상태라며! 이거 계약 위반이야!”

“무슨 말씀을 그리 섭하게 해요? 계약 위반이라니? 간파로 은신을 볼 수 있고 누가 있으면 알려주기로 한 것도 맞는데…… 시야에 안 보이게 숨어 있었던 걸 어떻게 알려줘요?”

“이익!”

내 대꾸에 할 말을 잃은 홍길동.

물론 그럴싸하게 들리는 말이었지만 실은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바위 위에 누구 한 명 엄폐해 있는데요? 레벨이 높아 보이진 않아요. 이곳을 감시하는 사람인가 본데요?

-어? 그래? 흠…… 하긴 다리우스가 여길 가만 놔둘 놈이 아니긴 하지. 뭐, 라인에 사람도 넘쳐날 테니까. 아무튼 고맙다, 당당아.

애초에 적과 함께 인적이 드문 하늘 산맥을 탐험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것도 나와 씻을 수 없는 원한을 가진 홍길동이라면 더더욱!

수중왕국에서 함정을 파고 기다렸던 것이 불과 며칠 전.

이번 또한 함정이 아니란 보장도 없었기에, 나는 곧바로 당당이와 무살 형님께 연락해서 내 뒤를 쫓아와 주기를 부탁했다.

홍길동은 전형적인 딜러형 도둑이라 간파를 전혀 찍지 않은 상태.

따라서 당당이와 무살 형님은 은신으로 내 주위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호위하며, 수상한 기색은 없는지 샅샅이 뒤지면서 뒤따라왔다.

그래서 나와 홍길동은 볼 수 없던 석벽 위 누군가의 존재도…….

나는 이곳에 도착하자마자부터 숙지하고 있었다.

‘제보야 고맙다만…… 너한테 굳이 이걸 알려 줄 의무까진 없잖아?’

이번 제보 건을 진행하며 합의한 거래 누설 금지 조건.

그 과정에서 나는 놈과의 거래를 절대 말하지 않기로 맹세했지만, 녀석이 직접 스스로 걸려버리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아 몰라! 이렇게 된 이상 일단 깨울 테니까, 드래곤 확인되면 골드나 바로 넘겨요!”

“아무렴요.”

쿵!

내 대답을 듣자마자 검은 석벽에 주먹을 내리꽂는 홍길동.

그렇게 손에 쥔 세인트 스톤과 검은 석벽이 맞닿자, 석벽엔 지름 30미터는 넘을 듯한 거대한 원형의 마법진이 생성됐다.

마친 검은 칠판에 저절로 새겨지는 흰 글씨처럼, 마법진 안에 떠오르는 룬 문자들.

찰나 만에 석벽 마법진 안은 빛나는 흰 글자들로 빼곡히 채워졌다.

그리고 더 이상 글자가 생기지 않을 때쯤, 마법진 안에서 야수 같이 그르렁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그윽한 마나의 향기는 세계수인가……? 오랜만이로군…… 테론 대륙을 다시 찾는 건!』

날카로운 발톱이 박혀있는, 도마뱀을 닮은 거대한 앞발이 마법진 밖의 땅을 가장 먼저 내디뎠고.

곧이어 짙은 콧김을 내뿜고 있는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스피커에서 울리는 듯 웅웅대는 목소리와 함께 조금씩 흑벽 안에서 빠져나오는 몸.

금세 이곳에 전신을 드러낸 녀석은, 마치 먹물에 빠졌다 나온 듯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인 드래곤이었다.

<재앙의 화신 칼 데드라>

그리고 마침내 드러난 녀석의 네임바.

미스틱 드래곤의 이름이 정확히 새겨져 있는 걸 보니 내가 찾아 헤매던 놈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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