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화 월드 보스 레이드 (5)
“뭐, 뭐라고? 정말?”
“그래, 이 자식아! 형님이 진짜로 띄웠다고! 타연 최초로 디바…….”
“잠깐! 조용 조용!”
신나서 소리치는 현중이.
하지만 이곳엔 우리를 지켜보는 다른 유저들도 있었기에 서둘러 입을 막았다.
그리곤 함께 주성으로 복귀한 뒤 차근차근 물어보았다.
“정말로 그 잠깐 사이에 질렀다고?”
“속고만 살았냐? 왜 이렇게 못 믿어?”
“아니, 그게 얼마짜리인데…… 어떤 미친놈이 그걸 진짜로 질러!”
“형이 옛날에도 말했지. 넌 신검 주웠을 때 팔 생각부터 들었을지 몰라도…… 형은 쓰고 봤을 거라고.”
“야이 자식아, 누가 직접 쓰는 것 가지고 뭐라고 해? 그걸 강화했다니까 뭐라 하는 거지!”
“이놈 이놈,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 너 타연 몇 달만 하고 접을 거야?”
“갑자기 또 뭔 헛소리야? 내가 접긴 왜 접어? 이 갓겜은 서비스 종료될 때까지 뼈를 묻고 충성해야지.”
“형도 그러니깐 강화한 거야. 몇 년간 이 검 계속 쓰다 보면 끝까지 0강화로 놔둘 것 같아? 어차피 나중에 가면 누가 됐든 강화는 하게 돼 있어.”
“……뭐?”
“그러니까 애초에 처음부터 강화시켜 놓는 게 가장 이득인 거야. 날리면 아예 써보지도 않았으니 덜 아쉽고, 뜨면 나중에 떴을 검을 몇 년 앞당겨 사용하게 되는 거지.”
궤변도 이런 궤변이 없었다.
하지만 묘한 설득력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라챤이한테 세뇌를 단단히 당했구나? 아무튼 마신검도 가호 3번 다 써서 겨우 만든 1강화인데 쌩으로 만들었다니……. 이득을 엄청 보기는 했네. 무려 +1 용살검이라니! 확실히 0강화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1강화짜리가 됐다니까 넘겨준 게 좀 아쉬워지는데?”
“너 지금 뭔 소리 하고 있냐, 1강화라니?”
“응? 강화 성공했다며. 그럼 당연히 1강화잖아. 뭐야, 너 설마……?”
“이게 형님을 뭐로 보고. 그래, 이 자식아. 형이 띄운 건 1이 아니라 2강화 용살검이야!”
의기양양한 얼굴로 내게 교환을 거는 현중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락을 누르자, 교환창에 떡하니 올라왔다.
서버 내 단 한 자루밖에 없는 ’샤크 투 메르타스‘라는 이름 앞에, +2란 숫자가 붙어있는 용살검이!
“끼야야야호! 형은 네가 언젠가 사고 한 번 제대로 칠 줄 알았다! 근데 그게 오늘일 줄이야!”
“하하하핫! 보았느냐, 이 형님의 개쩌는 위엄을! 방금 말했잖아, 처음 쓸 때부터 강화는 종결짓고 시작한다고! 분명 네가 +2 강화 정도는 돼야 한다고 먼저 날 부추긴 거다?”
“미친 새끼! 미친 새끼! 완전 제대로 미친 새끼! 진짜 복 터졌네 터졌어! 크하하핫!”
나는 항상 재수가 없던 놈이라 그런지, 언제나 강화와 뽑기에 소극적이었다.
누구나 흔히 뽑는 몬테나 주머니마저도 노가다로 모아서 골드로 팔았던 게 나니까, 말 다 한 셈.
하지만 현중이 놈은 달랐다.
어쩌다 뽑기 거리가 생기면 그 즉시 뽑고, 꽝이 나오면 쿨하게 잊어버리는…….
아쉬울 게 없이 살아와서 그런지, 전형적으로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한데 녀석의 그런 성격이 오늘 제대로 한 건 저질렀다.
타연 역사에 길이 남을, 2연속 디바인 무기 강화 성공이라는 가슴 벌렁이는 업적을!
“이건 일단 비밀로 하자. 용살검으로도 불안했는데 +2강화라는 사실까지 알려진다면, 넌 모든 타연 유저들의 제1 타겟이 될 거야. 길드원들한테는 먼저 말하려고 했는데 이것도 비밀로 해야겠어.”
“응? 아까 길드 채팅창에 말했던 거는?”
“대충 둘러댈게. 어차피 미스틱 드래곤을 잡는 과정에서 길드원들도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니까.”
“크아! 막상 2강화를 만들어 놓으니까 이제야 좀 실감 나는구나. 왠지 떨리는데? 내가 이걸 들고 필드에 나가야 한다는 게.”
“레벤다스도 있던 놈이 뭘……. 그래도 앞으론 더 조심해야 하긴 할 거야. 아무리 그밟이 있다곤 해도, 타이탄 쿨타임이 차 있지 않으면 웬만하면 나다니지 말고.”
“그래야겠지. 일단은 지옥불 형님께 말씀드려서 루비 반지부터 하나 더 구해봐야겠다. 기존에 주셨던 것까지 합쳐서 쌍반지를 차고 이 검을 사용하면, 피 닳을 일이 없겠어.”
“특히 드래곤 상대로는 추뎀이 엄청날 테니 피 관리 문제는 완전히 해결됐네? 가뜩이나 피통도 최강인 자식이 피흡마저 쩔게 될 테니…… 이 정도면 드래곤의 완벽한 천적이 탄생한 것 같은데?”
“사람들의 내 탱킹을 보고 경악해 할 모습이 눈에 선하구나! 크하하하!”
용살검을 비롯한 수많은 득템들이 길드원 덕분이라고 생각한 것처럼.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걸, 오롯이 내가 잘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많은 유저들과의 만남, 그리고 도움.
그 인연들이 없었더라면 진작 어느 순간 죽어서 신검을 드랍해버리고, 거창했던 나의 꿈은 허무하게 사그라졌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과 연결해준, 따지고 보면 타연에서의 내 첫 인연이자 가장 고마운 조력자.
현중이는 내게 온 행운들을 함께 나눠 가질 자격이 충분했다.
“네가 생각한 드래곤 레이드의 마지막 대비가, 어쩌다 보니 메인이 돼버렸지? 어디 한번 뜨기만 해봐. 첫 공격부터 죽는 순간까지, 이 축굴 님 원탱으로 끝내줄 테니까.”
자신만만해 하는 현중이의 모습.
템도 템이지만 탱커로서의 실력 또한 항상 인정해온 바였기에 믿음직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마지막으로 한 가지 당부를 하는 걸 잊지 않았다.
“야, 어쨌든 이번 건은 좋게 끝나서 봐주는데…… 다시 한번만 더 그 검에 장난질하면 진짜로 가만 안 둔다? 농담 아니고 그대로 인연 끝인 줄 알아?”
“하하! 걱정하지 마라! 아무렴 내가 여기다 더 강화석 바르려고? 내가 아무리 깡이 세다 해도 그건 못하지! 이대로 타연 접을 때까지 무기는 졸업이다! 졸업!”
+2 용살검을 손에 넣으며 이젠 정말 우리 길드의 메인 탱커를 떠나 타연의 최강자 중 한 명이 된 현중이.
그렇게 수호 기사라는 직업처럼 우리 길드의 든든한 수호자가 된 친우의 성장을 축하하며 만반의 준비를 끝마쳤다.
이제 남은 건 하나, 미스틱 드래곤이 쳐들어오는 일만 남았다.
우리 아베르 성으로!
* * *
-초토화된 티에스 국의 지웰 성! 정말 미스틱 드래곤은 칭호 그대로 재앙의 화신?
-봉인을 푼 유력 용의자 산드로. 하지만 그는 여전히 묵묵부답 중!
-미스틱 드래곤의 등장은 시기상조였나? 폭주를 막을 방법이 존재할지 의문!
-최초의 월드 보스 레이드의 영광은 과연 언제쯤 누구에게로?
미스틱 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낸 지도 4일째.
그사이 놈은 타연에서 가장 유명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날마다 유저들의 성을 습격한 놈의 행적은 뉴스에 대서특필되었고, 유저들의 관심 또한 나날이 높아졌다.
실물로 미스틱 드래곤을 본 유저들이, 하나 같이 그 판타지적인 광경에 감탄을 금치 못했기 때문이다.
-그 거대한 용이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다니는데…… 진짜 말로는 표현 못 해. 너희도 꼭 직접 가서 봐라!
-무조건 브레스 쏘는 거까진 구경해야 함! 한 방에 내성은 물론 외성 건물들까지 날아가는 모습이, 정말 장관도 그런 장관이 없음!
-괜히 미스틱 드래곤이라고 불렸던 게 아니야. 진짜 한 번만 실물로 봐봐. 난 정말 타연은 죽을 때까지 접지 못할 듯.
등등.
첫 등장 당시 죽었던 유저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칼 데드라의 위용에 반해, 등장을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물론 그놈을 잡을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하는 유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딱 관상용으로 만들어진 이벤트 성 보스 몹 정도.
그만큼 놈의 모습과 위력은, 현 수준의 유저들이 보기에도 경외적일 정도로 막강해 보였다.
“곧 8시네요. 형님.”
“그래. 매일 기다리는 것도 일이라서, 오늘은 꼭 우리 성에 찾아와야 할 텐데…….”
번스타인 성을 시작으로 습격당한 성만 벌써 3곳.
지옥불 형님의 예상 그대로, 놈은 정확히 매일 저녁 20시에 유저가 점령 중인 성에 나타나 초토화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이대로라면 성주들은 근 한 달의 한 번꼴로 놈에게 습격당하는 걸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
하지만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놈의 요란했던 침공 이벤트는, 우리 아베르 성을 찾아오는 순간 끝이 날 운명이었으니까.
“그러지 않을까요? 사실 저희 성이 4번째란 것도 이상한 거 아니에요? 우리 성에 상주하고 방문하는 유저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세금과 시공 포탈 때문에 많기는 하다만…… 아무래도 영토 자체가 작아서 그런 거 아닐까? 뭐, 오늘은 흑풍단도 역대급으로 많이 몰려와 있으니까 확률이 더 높아졌기를 비는 수밖에……. 이 많은 사람들이 계속 시간 낭비할 순 없잖아.”
주성 건물의 옥상.
멀리 외성 마을까지 내려다보이는 난간에 서서, 옆에 있는 라챤이와 대화를 나눴다.
실은 이곳엔 녀석뿐만 아니라 전 길드원들과 동맹들이 빠짐없이 참석해, 비장한 각오로 8시가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5분 남았습니다! 각자 장비와 소모품 세팅 확인해 주세요!”
“이제 3분 남았습니다! 다들 맡은 역할 한 번만 더 시뮬레이션 해주세요!”
“이제 1분입니다! 각자 펫들 소환해 주세요!”
언제나 레이드가 시작되기 직전은 긴장된다.
그게 퍼스트 킬에 도전하는 어려운 레이드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한데 오늘 이루어질 도전 대상은 무려 타연에 최초로 등장한 ‘월드 보스’.
무엇보다 신경 쓸 존재가 하나 더 있었기에 무척 험난한 전투가 예상됐다.
물론 놈이 이곳에 나타났을 때를 가정한 일이지만…….
“떴다! 떴어요!”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성 여기저기에서 같은 내용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에 반사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느샌가 검은 용이 나타나 거대한 날개와 꼬리를 휘날리며 성 상공을 부유하고 있었다.
[산드로: 드디어 놈이 저희 성에 왔네요. 다들 브리핑 때 말씀드렸던 것 명심하시고 이제 각자 버프 걸어 주세요. 잠시 후, 제 선창과 함께 동시에 날아오르겠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놈은 첫 등장 시에 유저들이 도망칠 시간이라도 주는지 내성과 외성 상공을 크게 선회하며 시간을 끈다.
하나 그건 도망이 아니라 대비할 시간이 될 수도 있는 법.
놈의 침공 소식이 알려지면 공간이동술사 덕분에, 타연 전역에 흩어져 있던 유저들이 순식간에 우리 아베르 성으로 몰려올 수 있었다.
물론 아군뿐만 아니라…… 원치 않는 적군까지도!
“자, 그럼! 먼저 앞장서 볼까!”
검은 드레이크 눈가에 가로 새겨진 두 줄의 흰 선.
그 위로 새하얀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타 있는 현중이 녀석이 탱킹을 위해 가장 먼저 날아올랐다.
‘여전히 녀석의 패션 철학을 이해하긴 어렵다만…… 그래도 블랙 드레이크가 생겨서 그런지, 이젠 좀 그럴싸해 보이긴 하네.’
오늘 녀석은 처음부터 끝까지 메인 탱커 역할을 맡을 몸.
당연히 온갖 공격이 집중될 것이기에 드레이크엔 정원을 2명이나 더 태울 수 있었지만 혼자만 타 있었고.
그 덕에 현중이는 오늘따라 유달리 더 도드라져 보였다.
“자, 어서 다들 제 본 드래곤에 타세요!”
그리고 남은 우리 길드원들.
당당이와 라챤이를 뺀 전원은, 기파랑이 소환한 본 드래곤에 하나둘씩 각자 자리를 잡으며 올라탔다.
펫이 되면 원래 크기보다 줄어드는 것과 달리, 본 드래곤은 괴수 군단장이 타고 다니던 블랙 드레이크 본연의 크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탑승 정원은 3명이 아니라 10명이 넘었고, 그 때문에 오늘 중요한 수송 수단 역할을 맡게 되었다.
종이 몸인 페가수스 따위로는, 놈의 브레스에 단 1초도 못 버티고 모두 낙하되고 말 테니까.
(나: 형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지옥불: 이런 막중한 책임을 형한테 맡기다니... 이해는 한다만 대신 조건이 있다.)
(나: 네? 조건이요?)
(지옥불: 혹여 형의 오더 때문에 실패했다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오늘 레이드는 무조건 성공시켜야 한다. 알겠지 드로야?)
(나: 하핫! 네, 알겠습니다, 형님!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느라 한시 바쁘게 뛰어다닌 나는, 정작 총지휘를 맡지는 않았다.
아니, 흑풍단은커녕 오늘 버닝스타의 소규모 지휘마저도 내가 아니라 각각 다른 사람이 맡았다.
이유는 하나.
레이드가 진행되는 내내, 나는 레이드는와 다른 한 가지 일을 병행하며 플레이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드로 형, 저기요!”
“봤다. 놈들도 8시만 기다리고 있었나? 저 많은 인원이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구나…….”
외성 마을 상공에 점점이 떠오르는 수천 개의 하얀 물체들.
각자 자신의 페가수스를 탄 채 안전지대 상공을 메우는 놈들 머리 위에는, 전부 태성의 길드 마크가 떠 있었다.
이렇게 공성전보다 큰 규모의 대규모 레이드가 벌어지는데…… 태성 라인이 구경만 하고 있을 리 만무.
놈들은 당연히 우리의 레이드를 전력을 다해 방해할 것이고, 사실상 나는 미스틱 드래곤보다 그걸 더 염두에 두고 이번 레이드를 준비했다.
‘단체로 꼬장 한 번 제대로 부려보시겠다? 그래, 마음껏 시도해봐라. 나 산드로 님을 앞에 두고 그게 가능하다면 말이지!’
상공의 칼 데드라를 바라보는 다른 이들과 달리, 나는 외성 마을 쪽을 바라보며 외쳤다.
어쩌면 타연 역사에 전설로 기록될지도 모를…… 치열한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함성을.
“전원, 드래곤을 향해 돌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