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화 무적 버닝스타 (1)
내 말이 끝나자 주성 곳곳에서 페가수스들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먼저 출발한 현중이의 다크썬더를 따라 공중을 수놓았다.
하늘 높이 떠 있는 미스틱 드래곤을 향해서.
“우리도 가자!”
“네, 형님!”
“오랜만의 쇼타임이네요!”
그리고 나 또한 소환한 훼라리에 당당이와 라챤이를 태우고는 박차올라, 그들과 달리 내성 마을로 활공해 날아갔다.
우리의 역할은 언제 어디서 난입할지 모를 태성의 뒤치기를 최대한 방지하는 것.
특히나 주성에 빽빽하게 모여있는, 아카시아의 지휘하에 있는 2천여 명의 흑풍단원들을 보호하는 일은 무척 중요한 일이었다.
만약 그들 한복판에 타이탄이 몇 대만 난입해도 감당하기 힘든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
대부분이 원딜러로만 이루어져 있어 데미지 딜링 역할로는 최고였지만, 반대급부로 타이탄 부대의 육탄 공격엔 훨씬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덜컥!
먼저 출발한 현중이가 어그로 범위에 들어왔는지, 줄곧 선회하던 드래곤이 제자리에 멈췄다.
[축복받은얼굴: 절 봤습니다. 브레스 발사 10초 전!]
[지옥불: 축굴이가 시선 끄는 동안, 별동대는 최대한 신속히 접근합니다. 피스메이커, 화랑, 그리고 넥스트는 작전대로 드래곤은 신경 쓰지 말고 산드로 엄호에만 집중하고요!]
“네!”
“넵!”
피닉스 라인에 속한 각 길드 수뇌부들로 구성된 공격대.
현재 내가 들어와 있는 채팅창은 지옥불 형님의 오더와 중요 메시지 외엔 엄금이었다.
그래서 복명복창도 평소와 달리 채팅 대신 직접 소리를 질러 대답했다.
“받아랏!”
미스틱 드래곤을 향한 역사적인 첫 공격.
그건 전적으로 현중이의 몫이었고, 다들 모르고 있겠지만 용살검을 든 녀석은 그야말로 최고의 적격자 그 자체였다.
-이젠 다들 아시고 당연한 얘기겠지만…… 녀석을 땅으로 추락시키는 것이 최우선 사항입니다.
공중 비행 보스 몹을 몇 차례 상대하며 깨달은 점이 있다.
그런 타입의 몹은 무조건 땅으로 끌어 내려야 한다는 것.
자유롭게 비행하도록 놔둔다면 공격하기도 힘들뿐더러 방어도 훨씬 더 까다로웠다.
한데 지상으로 떨어뜨리기만 한다면 기동력은 물론 공격 패턴과 각도까지 제한할 수 있어, 난이도가 삽시간에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다.
따라서 오늘 레이드 또한 드래곤을 낙하시킨 후부터가 진정한 시작이었고.
길게 끌 것 없이 다소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어떻게든 초장에 추락시키기로 계획 세웠다.
『여전히 대륙을 해하는 미물들아. 다시금 내가 너희에게 징벌을 선사하마!』
귓가에 웅웅대는 소리와 함께 놈이 깊게 숨을 들이마시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개시된 놈의 공격.
시작은 역시나 고유 스킬인 애쉬드 브레스의 시전이었다.
[지옥불: 첫 브레스 공격입니다! 최대한 빨리 캔슬!]
올라오던 페가수스들과 지상을 향해 쏟아진 죽음의 산성 공격.
하지만 그건 다시 말해, 놈의 머리 위 공간은 브레스의 피해 범위가 아니란 뜻이기도 했다.
“크아악!”
사방을 뒤덮은 브레스에, 공중 한복판에서 녹아 없어지듯 산화하는 페가수스들이 보였다.
대규모로 올라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예상됐던 피해였지만, 그 희생을 발판삼아 놈의 머리 위까지 무사히 솟구친 유저들도 적지 않았다.
[지옥불: 지금이다! 모두 소환!]
본 드래곤을 탄 우리 버닝스타와 피닉스의 정예들이 그러했다.
그리고 무릇 현시점에서의 정예라 함은, 최소한 랭커급 혹은 타이탄을 보유한 라이더들을 일컫는 단어였다.
“리버스 나이츠 소환!”
“프리덤 나이츠 소환!”
번쩍번쩍!
이제는 멀어진 하늘 위, 자욱한 애쉬드 브레스 너머로 보이는 불빛들의 향연을 바라보며 나는 양손에 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내성 마을 상공의 안전지대 바로 앞까지 도착하자마자, 큰소리로 외쳤다.
“태성 라인분들! 안전지대 밖으로 조금만 나와도 바로 공격할 테니, 죽는 게 싫다면 그 안에 꼼짝 마십시오!”
브레스는 내성을 주로, 그리고 먼저 직격한다.
따라서 아직 외성 마을은 무사했지만, 행여나 휩쓸려 죽을까 봐 밖에 나와 있던 태성 유저는 한 놈도 없었다.
덕분에 외성 마을 안전지대 공중은 피스메이커와 화랑, 넥스트 등의 길드원들이 탄 페가수스들과 태성이 한데 뒤엉켜있었고.
이 또한 놈들이 함부로 나오지 못하도록 세운 우리의 대비책 중 하나였다.
“뭔 헛소리냐! 지금 우리 병력들이 계속 넘어오고 있는 거 안 보여? 허세 작렬이네!”
“어차피 레이드는 이제 막 시작이다! 놈의 도발에 넘어가지 말고 차분히 더 기다려!”
“맞아! 오더가 내려올 때까지 한 걸음도 나가지 말아!”
흡사 도시를 보호하는 푸른 결계처럼, 마을 상공 안전지대 범위를 빼곡하게 메운 페가수스들.
덕분에 멀리서 보면 하얀 반구(半球)처럼 마을을 둘러싼 놈들은, 일사불란하게 대기하며 이제 막 시작된 드래곤과의 전투를 관전했다.
[지옥불: 타이탄 소환 및 어택!]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여기저기에서 조금의 소란과 함께 탄성이 터져 나왔다.
공중에서 소환된 십여 기의 타이탄들이 칼 데드라의 몸통 위에 올라탔기 때문이었다.
등 위는 물론 머리와 날개, 꼬리 등에 매달린 타이탄과 발버둥 치는 드래곤의 모습.
결국 녀석은 타이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서서히 추락했다.
[지옥불: 드래곤 폴 완료!]
콰앙!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
그와 동시에 재앙의 화신은 내성과 외성 마을 중간 필드에 떨어졌다.
놈의 몸 전부를 뒤덮었을 정도로, 다소 과하다 느껴질 만큼 많은 타이탄들이 매달렸기에 벌어진 결과였다.
‘나이스! 정확히 목표 지점에 떨어졌다! 다들 역시!’
브레스를 채 1/10도 쓰지 못하도록 만든 빠른 캔슬.
그리고 원하던 위치로의 낙하까지.
공중에서의 컨트롤과 타이밍 잡기가 상당히 어려웠을 텐데도, 실력은 물론 특유의 단합력까지 돋보인 플레이였다.
어쨌든 놈이 지상에 내려온 이상.
진정한 의미에서의 초대규모 레이드는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지옥불: 흑풍단들, 이제 공격 개시하세요!]
각 길드장들과 간부들에게 하달된 형님의 공격 지시.
그러자 마치 공성전을 방불케 하듯, 성벽 위를 꽉 채운 흑풍단들이 일제히 원거리 공격을 쏟아냈다.
-드로 님, 이번 미스틱 드래곤 레이드에 반대와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우리가 공성전도 아닌 레이드 따위에 참여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공성이야 시공 포탈과 세금 혜택이 있으니 힘을 보태주실 이유가 있었지만…… 이번 레이드는 저도 명분이 부족하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싫다는 사람들까지 억지로 권유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를 욕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듯이 흑풍단원 중에도 생각이 다른 유저들이 있겠죠. 애초에 흑풍단은 저희 라인에 속하지 않은 느슨한 협력 관계였으니까요.
-그래도 고레벨들이 제법 많이 참여는 할 것 같아요. 보나 마나 기막힌 업적을 줄 테고, 이번이 아니라면 언제 또 획득할지 모르니까요.
수십 개로 이루어진 흑풍단 길드들의 대표격인 아카시아와 아기코끼리.
그들과 나눴던 대화 내용처럼 지금 모인 흑풍단은 원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크게 상관없었다.
쪽수보다는 미스틱 드래곤에게 공격이 박힐 만큼 레벨이 높은지, 그게 더 관건이었기 때문.
우리가 도전하는 레이드가 레이드인 만큼, 다행히 이 자리에 참석한 흑풍단원들의 레벨은 평균적으로 높은 수준이었다.
쿵, 쿵, 쿵, 쿵!
함께 추락한 타이탄들은 전부 외성 마을을 향해 벽을 두르듯, 황급히 드래곤의 후방으로 몰렸다.
그래서 칼 데드라는 내성에서 퍼부어진 원거리 공격에 고스란히 노출됐고.
슈슈슛! 콰과광!
칼 데드라의 온몸에는 원거리 공격들이 박히며 수없이 많은 피격 효과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한복판.
특유의 맷집을 자랑하며 공격 중인 타이탄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무언가가 있었다.
“으라차차!”
특유의 코스튬은 물론 기묘한 기합 소리로 모두를 주목시키는 존재.
오늘의 메인 탱커인 현중이었다.
녀석은 블랙 드레이크에 탑승한 채 장우산을 휘두르고 있었는데…….
흡사 참새가 독수리를 공격하는 모양새였지만, 칼 데드라는 의외로 계속 공격을 허용하고 있었다.
놈이 거듭 검은 마법을 쏘아냈지만 버텨내자 앞발까지 휘둘러 댔지만, 끄떡없었다.
“그레이터 힐!”
“블러드 웨폰!”
인근에 떠 있는 본 드래곤으로부터 힐과 쉴드 마법이 쉴 새 없이 시전되어 방어를 도왔고.
기파랑 또한 피흡 효과를 극대화하는 버프를 걸어주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녀석에겐 빛의 방패 스킬이 있고 쌍 루비 반지도 차고 있었기에, 어쩌면 드래곤의 평타 공격 정도는 현중이 혼자 힘만으로도 버텨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정말 내가 괴물을 만들어 냈다니까.’
그런 녀석의 든든한 탱킹에 안심이 든 순간, 곁에 있던 당당이가 경고를 해왔다.
“형님, 저기 보세요! 저놈들 슬슬 기어 나옵니다!”
“어? 알았어!”
계속해서 쌓여만 가던 태성의 병력들이 마침내 안전지대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
한 명 두 명, 눈치 보며 나오는가 싶더니 금세 밀물 듯이 쏟아져 나온 유저들.
나는 그곳을 향해 훼라리를 이동시키며 소리쳤다.
“피닉스 여러분, 무조건 이동만 못 하게 붙잡아만 주세요! 죽이는 건 전부 제가 하겠습니다!”
선봉으로 나온 태성 유저들의 아이디가 낯설지 않았다.
근 한 달간 이어진 천계 통제와 캐슬 테러, 그리고 수중왕국과 요정계 정벌.
한 번 죽는다고 끝이 아닌 게임의 특성상, 대부분 한 번 이상 내 검 아래 먼지가 되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신검만 있을 때도 난, 혼자서 깽판치듯 놈들을 ‘학살’해버렸다.
한데 지금은 내게 마신검까지 들려진 상태.
따라서 적들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그 한복판으로 뛰어드는 게 조금도 겁나지 않았다.
[태세 전환!]
[그림자 밟기!]
“으헉!”
쏟아져 나오는 페가수스 라이더 중 하나의 뒤로 이동한 뒤, 곧바로 양손의 검을 동시에 찔러 넣었다.
유저가 아닌 타고 있는 페가수스에게.
“이히힝!”
그리고 곧바로 도움닫기를 해 옆을 향해 점프하는 순간, 공격한 페가수스는 가냘픈 울음소리와 함께 빛으로 사라졌다.
동시에 낙하하는 라이더.
갈아탄 페가수스에게도 마찬가지로 검을 쑤셔 넣자, 이번에도 단번에 역소환됐다.
“저 자식 뭐야! 어떻게 한 방에!”
“조심해! 붙으면 바로 낙사다!”
어느덧 테크트리를 변경할 당시보다 스펙이 상당히 상승됐다.
그뿐만 아니라 태세 전환을 비롯한 여러 자버프들도 10성에 이르렀다.
따라서 두 신검을 찬 나의 현재 공격력은, 당하는 입장에서는 비상식적인 수준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다들 빨리 벗어나! 산드로한테서만 멀어지면 돼!”
“오늘 목표는 승리가 아니라 레이드 방해잖아! 무시하고 흑풍단부터 쳐!”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진 않았다.
놈들의 발을 붙잡는 우리 피닉스 측 페가수스의 숫자가 적지 않았을뿐더러, 운 좋게 벗어난 유저들에게는 잔혹한 원거리 공격이 날아가 박혔기 때문이었다.
“어딜 빠져나가려고!”
“파워 샷!”
바로 훼라리에 타고 있는 당당이와 라챤이가 날린 활과 단검들.
나와 달리 페가수스를 여러 번 맞춰야만 역소환되었지만, 컨트롤이라면 타연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둘이었기에 단 한 대도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안전지대 밖으로 나오는 족족 낙사하는 유저들의 모습에 아군 적군 가릴 것 없이 전부 기겁해 했지만.
그래도 물량하면 역시나 태성.
아무리 우리가 순식간에 수십, 수백 명을 마을로 돌려보냈다 한들 놈들의 수는 그보다 훨씬 더 많았고 하늘은 넓었다.
“키에엑!”
지금 싸우고 있는 안전지대 인근 위.
우리보다 몇백 미터는 더 높은 비행 한계에서 귀에 익은 울음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웬일로 오늘은 처음부터 적극적이구나!”
정체는 현중이가 탄 것과 똑같은 블랙 드레이크.
그 위에 다리우스가 탄 채로 수십 기의 그리폰 부대를 이끌며 주성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말하자면 밑의 페가수스 떼거지는 시선을 돌리기 위해 소모한 희생양인 셈.
워낙 높이 떠 있어 지상은 물론 페가수스 라이더들의 원거리 공격도 닿지 않았다.
거기다 외성 마을과 주성 간의 거리도 짧았기에 놈들은 흑풍단의 머리 위까지 금세 도달했다.
그리고 곧, 각자 타고 있던 그리폰에서 수십 명의 인원이 뛰어내리며 소리쳤다.
“레이드는 실패다! 티에스 나이츠 소환!”
“티에스 나이츠 소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