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330화 (330/350)

330화 무적 버닝스타 (6)

지금껏 봐온 그 어떤 최상급 마법도 이 암흑 마법보다 강력해 보이지 않았다.

또한 지금껏 타연에 등장했던 모든 스킬들을 통틀어 봐도, 이렇게나 넓은 범위와 긴 캐스팅을 필요로 한 경우는 없었다.

월드 보스 칼 데드라가 죽기 직전 사용한 ‘몰살’의 용언 마법은,

그렇게 시전되기도 전부터 모든 이를 공포로 몰아넣을 만큼 위협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결국 마법은 마법이었다.

휘우우우웅.

외형 변경 덕에 평범하기만 한 서클릿.

내 이마에서 특유의 이펙트가 빛나자,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결과가 펼쳐졌다.

거센 돌풍 소리와 함께 암흑구가 서클릿 안으로 빨려 들어간 것.

어찌나 크고 강력한 마법이었는지, 지금껏 휙 하고 짧게 끝났던 다른 마법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긴 흡수가 이어졌고.

어느 순간, 무서운 포스를 뿜어댔던 암흑구는 언제 있었냐는 듯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뭐, 뭐지? 뭔 일이 벌어진 거지?”

“마법 흡수? 산드로 님이 뭐 그런 단어를 외쳤던 것 같은데?”

내가 해놓고도 정말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절대 마법, 혹은 궁극 마법이란 표현으로도 모자라 보일 강력한 공격이, 고작 템 하나에 귀속된 스킬에 씻은 듯 사라졌다는 게 다소 황당할 정도로.

하지만 원래 어느 게임 내에서나 ‘시스템’과 ‘상성’이란 이런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 어떤 강력한 무기나 마법 공격이라 할지라도 회피하거나 저항해버리면 데미지는 제로.

하필이면 타연에 단 하나밖에 없는 카운터 템이 마침 내게 있었고.

그걸 찰나라고 표현해도 될 만한 정확한 타이밍에 딱 맞춰 사용했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됐기에 이 같은 놀라운 결과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어쩌면 게임 역사상 길이 기억되고 회자될 뻔한…….

무려 3만 명이 넘는 유저들의 집단 참사 사건은 이렇게 기적적으로 벌어지지 않았다.

“와아! 뭐가 됐든지 간에 살았다!”

“죽여 죽여! 저 빌어먹을 용 새끼!”

“죽으려면 곱게 죽지, 감히 자폭을 쓰려 했겠다? 저 트롤 드래곤은 내 손으로 막타 친다!”

순간 죽음의 문턱에 다녀온 탓인지 어안이 벙벙했던 유저들.

잠시 상황 파악할 시간이 끝나자 분노가 치밀었는지, 전부 닥돌 모드로 빙의해 칼 데드라를 향해 달려들었다.

위험하단 생각보다는 녀석의 어이없었던 마지막 스킬이 너무 괘씸하게만 느껴진 모양이었다.

[지옥불: 잘했다, 드로야. 이제 정말 마지막이니 전부 붙으세요!]

하지만 정말 그런 의도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겠지만, 그렇지 않은 유저들도 있었다.

업적을 위해, 혹은 재미를 위해 얼떨결에 참여한 불특정 일반 유저들.

그들이 죽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이르게 되자 딴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몇만 명이 힘을 합쳐 레이드했는데도, 마지막까지 엄청난 위용을 선보였던 칼 데드라.

그런 놈이 죽게 되면 드랍할, 엄청난 템들에 대한 욕심이!

“산드로가 별거냐! 제2의 산드로는 바로 나다!”

“겜생 최고의 득템 찬스야!”

“설령 캐삭하더라도 먹고 죽는 게 나을걸!”

타타타탓!

무척이나 흥분됐는지 요란스럽게 떠들며 달려드는 일반 유저들.

심지어 흑풍단과 피닉스 라인의 일부 유저들까지 칼 데드라를 향해 앞을 다퉈 달려들었다.

바로 ‘먹자’를 하기 위해서!

퍼퍼퍼펑! 챙! 챙!

그런 그들이 뭘 하든 상관 없단 듯이, 나를 포함한 우리 길드 전원은 여전히 최선을 다해 놈의 마지막 체력을 깎아나갔다.

괜히 지금 딴생각을 했다가는 칼 데드라가 또다시 뭔 짓을 벌일지 몰랐으니 말이다.

그런 우리의 뜻을 아는지, 흑풍단과 라인의 전 원딜러들 또한 강력한 스킬들을 쏟아내며 마지막 폭딜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그 결과.

『한낱 미물들에게 내가! 크아아악!』

전 필드가 떠나갈 듯 엄청난 절규가 울려 퍼졌다.

미스틱 드래곤 칼 데드라.

마침내 놈이 거대한 몸체만큼이나 크고 긴 비명 소리로, 모든 이들에게 자신의 최후를 알린 것이다.

[테론 대륙의 오랜 수호자 ‘재앙의 화신 칼 데드라’가 최초로 토벌되었습니다.]

[업적 ‘용사의 자격’을 획득했습니다.]

[업적 ‘재앙을 막은 영웅’을 획득했습니다.]

[업적 ‘드래곤 학살자’가 ‘드래곤 처단자’로 진화했습니다.]

……………………

당연하다는 듯 가장 먼저 떠오른 전체 알림.

그 밑으로도, 여러 메시지들이 연달아 주르륵 떠올랐다.

하지만 당장은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올 때가 아니었다.

바로 이 역대급 난이도를 보여준 칼 데드라가 이제 막 템을 드랍하려 들었으니까!

“얼른 떨궈라!”

메시지가 뜬 것과 별개로 아직 죽는 과정이 연출 중이던 칼 데드라.

몰려든 유저들이 어느새 그 주위를 두텁게 감싼 채 놈이 쓰러지기만을 기다렸지만…….

특별했던 보스 몹이있던 만큼 드랍 방법 또한 처음 보는 방식이었다.

여느 보스들과 같이 제자리에 후드득 쏟아낼 것으로 예상한 드랍 템들이, 마치 폭죽처럼 펑 하고 터지면서 전 방향을 향해 산개해버린 것이다.

“저게 뭐야!”

“어, 어디 가냐! 내 템들아!”

당황하다 못해 굳어버린 유저들.

다들 고개를 돌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템들의 궤적을 쫓았지만, 야속하게도 날아간 템이 되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수없이 많은 유저들의 참여를 강제했던 월드 보스였던 만큼, 드랍 방식 또한 그에 걸맞은 보상 체계로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다.

“바리케이드 쪽에 떨어졌다!”

“뭐야! 이 앞에도 드랍 됐는데?!”

“일단 되든 말든 루팅부터 해봐!”

하지만 그렇다고 가장 큰 공헌도를 세운 유저들을 위한 보상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놈의 시체가 사라진 곳에도 템들이 수북하게 드랍 돼 있었던 것.

죽자 사자 달려온 먹자들만 수백 명이 넘었지만, 먹자 방지를 위한 10초간의 루팅 금지 시스템을 뚫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흑풍단과 피닉스 라인 소속의 먹자들은 공격대 일원이었는지 한두 개씩 획득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대부분은 현중이를 비롯한 우리 멤버들의 품속으로 사라졌다.

“대박이다!”

“아싸! 인생 역전이다!”

“내 거야, 내 거!”

“뱉어, 이 자식아!”

“이 자식이 먹었다! 다들 공격해!”

이번 레이드의 시작이자 끝이나 다름없는 나.

그리고 욕심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였지만…….

템을 줍기보단 그저 그 과정들을 전부 찬찬히 지켜보았다.

미스틱 드래곤 칼 데드라를 잡기 위해 모였던 흑풍단과 피닉스, 그리고 일반 유저들.

놈의 사정 거리만큼의 지역에 고르게 떨어진 드랍템들 주위로 유저들이 몰려들었고.

템을 주운 자와 줍지 못한 자들로 인해 곳곳에서 크고 작은 소란이 발생했다.

심지어 방해하러 찾아왔던 태성 라인의 잔당들까지 합세해 PK도 발생했다.

‘정말 타연답구나. 이래야 타연이지!’

언뜻 미간이 찌푸려질 수도 있는 광경이었지만, 내게는 흥겨운 축제의 한 장면같이 여겨졌다.

내가 신검을 줍던 때의 기억이 오버랩되어, 그들 하나하나의 흥분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먹자들이 달려들었을 때, 실로키네를 소환해 볼텍스를 사용했더라면 그들의 접근을 철저히 봉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짓을 한다면 내가 다리우스 패거리와 다를 게 무엇이겠는가?

그들의 도움을 ‘이용’하기 위해 참전을 유도했다면, 그에 대한 ‘보상’ 또한 지급해야 하는 것이 맞다.

이런 생각에 나는 칼 데드라가 드랍한 템들을 독점하려 들지 않았고.

그 덕분에 지금 이곳에서는 상당히 많은 유저들이 인생 역전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바로 예전 신검을 줍던 시절의 ‘나’처럼!

[축복받은얼굴: 드랍 템 수거 완료!]

[대탐험시대: 저도 뒤쫓아 날아가서 두 개 수거했습니다!]

[당근당근단검: 템이 정말 많이도 나왔어요. 제각기 날아간 것만 해도 100개는 넘겠더라고요!]

[기파랑: 아무리 퍼킬이라도 보스급 10마리는 잡은 것만큼 나온 것 같네요. 근데 저희가 주운 건 대부분 완성템이던데, 날아간 건 전부 재료템 같던데요?]

[축복받은무빙: 참여한 인원이 워낙 많아 추후 분배 문제는 어떻게 하나 걱정이었는데... 오히려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니 뒷말이 나올 걱정도 없겠다.]

워낙 필드 곳곳으로 드랍 템들이 퍼졌기에, 우리 길드 및 피닉스 라인이 회수한 템은 절반도 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소위 말하는 가장 ‘알짜’ 드랍 템들은 제법 회수한 듯싶었다.

“다들 수고했어요. 오늘 또 저희가 타연에 전설을 하나 더 만들었네요.”

“왔냐? 어때? 이제 인정해야겠지? 타연의 최강자는 미스틱 드래곤도 죽이지 못한 신성 기사, 이 축굴 님이란 사실을!”

“하핫! 그래, 이번만큼은 인정하마. 오늘 진짜 멋졌다. 아마 두고두고 회자될 만큼 대박이었어!”

그렇게 갑작스럽고 요란했던 템 분배가 끝나 흥분이 잦아들자, 본 드래곤 인근에 모여있는 우리 길드원들 곁으로 다가갔다.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듯 의기양양한 태도의 현중이.

정말 녀석이 없었더라면 오늘 레이드는 성립될 수 없었기에, 처음이자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칭찬을 진심을 담아 건넸다.

“드로 형님이야말로 대박이에요! 다리우스를 쳐 잡은 것도 모자라서 마지막 마법 흡수까지! 진짜 마지막에 흡수하는 걸 보고, 역시 평생의 형님으로 모시기로 다시 한번 다짐했습니다.”

“라챤아, 한 번 형님 했으면 평생 형님이지, 그럼 네 말은 잘하다 실수 한 번 하면 더 이상 형님이 아니란 소리냐?”

“헤헤, 그건 아니고요. 아무튼 정말 장난 아니었어요! 제가 우리 길드의 멤버 중 하나란 사실이 오늘만큼 가슴 벅찬 적이 없었다니깐요? 다들 안 그래요?”

녀석의 호들갑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길드원들.

다들 한 시간 넘게 1초도 방심할 수 없었던 레이드를 힘들게 완수한 뒤였지만, 피로는커녕 활력이 넘치는 모습들이었다.

그들이 라챤이의 말에 화답하듯 각자 레이드를 치르면서 느꼈던 소회를 차례로 털어놨다.

“그래. 마치 오늘은 우리가, 타연이란 게임의 주인공 같은 느낌이 물씬 들더라.”

“가장 강력한 보스 몹. 그리고 가장 강한 유저 세력. 그 둘을 동시에 상대하면서도 실패할 것 같지가 않았어. 그리고 보다시피 정말 우리가 둘 다 이겨내 성공했고. 정말 우리 길드가 너무나 자랑스럽다!”

“드로 오빠와 축굴 오빠뿐만 아니라, 모두들 너무 수고 많으셨어요. 정말 단 한 분이라도 안 계셨다면, 오늘 레이드는 실패하고 말았을 거예요! 진짜 우리 버닝스타는 타연 최고의 길드인 것 같아요!”

무살 형님, 축빙 형님, 축볼 누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합류한 연우까지.

황제를 상대하기 위해 중간 단계로 생각했던 미스틱 드래곤이 상상 이상으로 강력하자, 내심 다들 어렵다고 생각했던 모양.

하지만 결국 우리의 승리로 끝이 나게 되자, 모두 감정이 복받쳐 오른 느낌이었다.

“맞습니다. 버닝스타가 아니었다면 미스틱 드래곤은 그 어떤 길드도 잡아낼 수 없었을 겁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대단한 플레이였습니다. 진심으로!”

그리고 명예 길드원이나 다름없는 카이저 형님과 라푼젤이 다가왔다.

여러모로 고마운 사람들.

다들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서로 방금 있었던 레이드에 대한 회포를 떠들썩하게 풀어냈다.

‘어라? 지옥불 형님은 어디 계시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문득 오늘 레이드를 총지휘했던 지옥불 형님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에 주변을 살펴보자, 어느새 피닉스 라인의 바리케이드가 있던 곳.

그 상공에 페가수스를 탄 채로 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파티엘을 레이드하고 얻었던 대지 모신의 수호 갑옷 세트.

천사장의 갑옷과 비슷한 화려한 외형과 로파티엘을 든 채 페가수스에 앉아있는 터라 마치 천계의 수호자와 같아 보이는 지옥불 형님.

그런 형님이 돌연 큰 소리로 지상에 있는 피닉스 라인과 흑풍단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곳에 모인 여러 동맹 분들, 오늘 레이드와 전투의 총지휘를 맡았던 피닉스의 지옥불입니다. 먼저 이곳에 모인 여러 유저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오늘 타연 역사에 길이 남을 위업에 동참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아직 다소 소란했던 장내가 일시에 조용해질 정도로, 형님의 존재감과 포스는 독보적이란 말로도 부족했다.

그런 형님이 전달하고픈 메시지가 있었는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오늘 저희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일 것만 같았던 미스틱 드래곤의 레이드를, 태성의 거센 방해에도 불구하고 해냈습니다. 그 결과 다리우스의 패배는 물론이고, 업적 및 각종 템들, 그리고 역시 우리가 최고라는 자긍심까지 값진 보상으로 쟁취해냈습니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여러분!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우리 피닉스 가족분들!”

“영원불멸! 피닉스!”

“영원불멸! 피닉스!”

형님의 연설은 그동안 태성 라인에 밀리고 당해왔던 피닉스 라인의 유저들의 울분을 단번에 날려버리기에 충분했고.

그에 라인 내 모든 유저들은 각자 자부심을 담아, 특유의 피닉스 구호를 연신 반복해 외쳤다.

“그리고 다들 직접 보셨다시피…… 오늘의 승리는 몇몇 뛰어난 영웅들의 활약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죽음을 무릅썼던 그들의 도전 정신,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메인 공략을 책임졌던 놀라운 단합력. 마지막으로 모두의 목숨을 구해주었던 기적 같은 플레이까지. 그들이 없었다면 결코 이번 레이드는 성공할 수 없었기에 찬사를 표합니다. 우리 라인에 주축인, 버닝스타 길드는 감히 무적의 길드라고!”

“무적! 버닝스타!”

“무적! 버닝스타!”

지옥불 형님의 말이 끝나자, 역시나 이번에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합창이 터져 나왔다.

마치 땅이 뒤흔드는 것 같이, 뻥 뚫린 필드가 떠나갈 듯 외치는 함성.

박자에 맞춰 반복되는 여섯 글자를 듣다 보니, 가슴이 터질 듯 진탕됐다.

‘그래, 지옥불 형님의 말이 맞아. 우리 길드는…… 이제 정말 무적이야!’

그렇게 벅찬 가슴을 부여잡고, 아무도 모르게 혼자 속으로 말했다.

나 산드로는 아직 부족한 게 한참 많은 일개 유저에 불과하지만…….

우리 버닝스타만큼은 그 누구와도 싸워 이길 수 있는, 타연 최고의 길드가 분명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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