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화 대성공 (1)
『무적 버닝스타! 정말 가슴을 울리는 말 같은데요. 어제 저녁 있었던 미스틱 드래곤 레이드 이후로 유저분들 사이에서, 특히 커뮤니티를 중점으로 이런 구호가 도배되고 있단 소식이 사실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양민아 앵커. 최근 들불처럼 일었던 버닝스타 길드에 대한 비난들이, 어제 레이드를 기점으로 언제 그랬냔 듯이 씻은 듯 사라진 상태입니다. 몇몇 극성 팬들의 찬양이야 늘 있었던 일이지만, 이번은 그런 수준이 아닌 것 같군요.』
『김석용 아나운서님, 대체 산드로 님과 버닝스타가 어떤 플레이를 했길래 이렇게 평가가 급변하게 된 거죠? 특별하긴 했지만 그래도 레이드 한번 했을 뿐인 것 같은데요.』
『그 레이드가 보통 특별한 게 아니었던 이유가 큽니다. 정말 레이드 장면을 촬영 및 공유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번만큼 아쉬웠던 때가 없었는데요. 그만큼 어제 레이드에 직접 참여하고 관전하셨던 유저분들은, 두고두고 자랑할만한 경험을 하셨다고 감히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무적 버닝스타 구호가 벌써 방송에 나올 정도로 유명해진 거야? 하루 새?”
“크흐흠! 뭐지? 방송에까지 나오는 걸 보니 정말 그런가 본데?”
주말 오전.
늦게까지 레이드 뒷정리 및 회포를 풀다 아침 해가 뜰 때쯤에야 잠을 청한 우리들은, 정오가 다돼서야 뒤늦게 일어났다.
그리고 일단 밥부터 챙겨 먹기 위해 켠 TV에서는 놀랍게도 어제의 전투에 관한 생방송이 진행 중이었다.
아무래도 근래 보기 드문 대형 사건이었던 만큼 긴급 방송이 편성된 모양이었다.
“게임 속에서야 원래 조금씩 오버하는 게 미덕이기도 하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이렇게 현실에서 저 구호를 듣고 있자니 조금 오그라들긴 하네.”
“오그라들긴 뭐가 오그라들어? 난 우리 길드 수식어로 저 멘트가 딱 마음에 드는구만! 솔직히 우리 길드 전원이 얼마나 잘해줬냐? 이 형님의 완벽한 탱킹을 시작으로 마지막에 있었던 네 마법 흡수까지,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플레이였잖아!”
차순위와 비교하자면 차이가 최소 서너 배는 날 정도로 압도적인 탱킹력을 자랑한 현중이.
서버 내 하나밖에 없는 본 드래곤에 탄 타연 최고 수준의 힐러와 원딜러 조합.
타연 최초로 성 방어 시스템의 진가를 밝혀내 활약한 핑크래빗과 태성의 방해를 막아낸 PK 전담 산드로 팀까지.
타 길드에 한 명 있을까 말까한 에이스들로만 구성된 길드라, 비록 수는 적을지라도 정말 ‘무적’이란 단어만큼 잘 어울리는 수식어도 없는 건 사실이었다.
“뭐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는 덕 본 사람이 많아서가 아닐까?”
듣기에 쑥스러웠는지 태규 형님이 다른 의견을 꺼냈다.
“덕이요? 템이 많이 뿌려지긴 했지만, 그래도 주운 사람은 많아봤자 백 명도 안 될 텐데요?”
“현중아, 그곳에 먹자만 있었던 건 아니었잖아? 한 대라도 공격을 맞춘 유저는 전부 용자를 받은 거 잊었어? 딜 좀 제법 넣은 사람들은 재영까지 해서 두 개나 받았고. 솔직히 그 정도면 10 레벨업 이상의 효과를 봤을 텐데, 호의적으로 바뀔 만도 하지.”
모든 참가자들이 받은 업적, ‘용사의 자격’.
쉬운 달성 조건에도 불구하고 B등급이나 되는 이 업적 때문에, 벌써부터 레이드에 불참한 유저들은 무척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결국 우리가 레이드에 성공하게 되면서, 수만 명이 넘는 유저들이 올 스탯을 10이나 올려주는 좋은 업적을 거저 얻게 되었으니까.
제법 명중률이 높았던 고레벨의 일반 유저들은 ‘재앙을 막은 영웅’까지 받았으니,
단 1시간 투자한 것 치고는 말도 안 되게 좋은 보상을 받은 셈이기는 했다.
“어쨌든 빨리 잡아내서 다행이다. 칼 데드라의 침공이 장기화됐다면 정말 안티들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을 텐데……. 오히려 이번 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게 됐으니 전화위복이 됐어.”
“보상도 보상이지만, 공개적으로 다리우스를 패퇴시킨 것. 그리고 전반적으로 태성과 다른 모습을 많이 보여준 부분도 좋았던 것 같아요. 같은 월드 보스란 적을 대상으로 함께 싸운 것도, 묘한 전우애 비슷한 걸 만들어 준 것 같고요.”
“맞아, 그 점들도 무시 못 할 것 같다. 형이 커뮤니티 좀 자세히 살펴봤는데, 우리를 향한 시선이 아주 긍정적이야. 방송도 보다시피 마찬가지고. 태성 때문에 피해 보던 유저들에게 라인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둘 다 나쁜 놈들이었다는 이미지였다면…… 이제는 태성만 욕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압도적이야.”
“그 정도예요? 형님?”
“응. 그래도 모처럼 월드 보스란 게 나타나 전 유저들이 힘을 합쳐 대항하는데, 그렇게 대놓고 뒤치기하고 스틸하려고 들었던 건, 도저히 쉴드가 안 되는 모양이더라고.”
“실제로 라인에서 탈퇴하는 유저들도 좀 늘었다는 것 같던데요? 아직 쉬쉬하는 것 같지만, 라챤이 말로는 밤새 제법 큰 중형급 길드가 두 곳이나 빠져나갔대요.”
“그게 사실이라면 드디어 변화가 시작됐나 보구나. 게임을 접거나 탈퇴하는 개인 유저들은 제법 있었어도 길드 단위가 빠져나간 건 아마 이번이 처음이지? 확실히 다리우스가 어제 사람들 앞에서 죽은 영향이 큰 모양이네.”
“명분도 하나 없는 그냥 규모만 큰 뒤치기였는데…… 타이탄 드랍 전략이 완전히 실패한 것도 모자라 도주하다 죽는 모습만 보여줬으니까요. 지 길드원들 밟아가며 도망친 못난 놈을, 그래도 부하들은 살려보겠다고 그렇게나 애썼는데……. 결국엔 보란 듯이 죽었잖아요? 누가 그런 놈을 진심으로 따를 수 있겠어요? 마음이 떠날 수밖에요.”
누군가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일이라고 말했다.
고작 너 따위가, 혹은 그깟 조그만 친목 모임 같은 길드 따위가…… 타연에서 가장 강력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태성 길드를 무너뜨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아니었다.
뭐든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법.
누군가는 허무맹랑하다고, 헛수고가 될 게 뻔하다고, 결국엔 큰 손해만 볼 거라고 했던 도전은 이제 조금씩 그 결실이 나오고 있었다.
이제 남은 건 기세가 오르고 있을 때 쐐기를 박아버리는 것.
탈퇴 러쉬를 가속화시켜 자연스럽게 해체까지 이르게 만들려면, 역시 우리가 목표로 한 황제 도전만 한 게 없었다.
그를 위해 미스틱 드래곤의 봉인까지 해제하고 어렵게 잡아낸 것이니만큼, 이제 망설일 것도 없었다.
“시간이 다 된 것 같으니 이만 들어가 볼까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네? 그래, 얼른 들어가 보자. 다른 사람은 몰라도 현중이와 드로, 너희 두 사람은 강하게 어필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늦진 말아야지.”
“네, 형님.”
목표를 달성했으면 그에 따른 과실도 있어야 하는 법.
어제 우리 측이 획득한 100여 개가 넘는 엄청난 템은, 우선 전부 투명하게 목록화해서 각 길드들과 공유했다.
그리고 충분한 시간을 가진 후 공헌도에 따른 논공행상(論功行賞)과 분배를 하기로 결정하고 로그아웃했던 게 오늘 새벽이었다.
역대급 인원이 참여한 터라 일단 길드 단위로 나누기로 결정한 드랍 템들.
어차피 이미 드랍 목록은 충분히 확인했기에 따로 걱정되는 건 하나도 없었다.
내가 원했던 건 선호도가 떨어지는 재료템이었을 뿐만 아니라 물량도 많이 드랍되어서, 필요한 몫은 충분히 챙길 것 같았기 때문.
그저 템 욕심보다는 함께 고생한 모든 사람들을 다시 볼 생각에 기분 좋게 접속했다.
* * *
“그래서 저희 최강흑풍단 또한, 아무래도 골드로 균등분배하는 게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저희 길드는 가급적이면 템 양도가 아니라 골드로 개별분배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흑풍단 길드들은 결국 전부 같은 선택을 하셨네요. 한데 이러면 문제가 좀 되겠는데요?”
“네? 무슨 문제라는 말씀이시죠, 지옥불 님?”
“보상을 전부 골드로 정산해주길 원하는 길드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많습니다. 한데 판매해야 할 템이 한두 개가 아니니 당장 제값 받고 팔 수 있을지 의문이군요. 서둘러 분배해야 뒷말이 없을 텐데, 그러려면 역시 그냥 공헌도에 맞는 템을 전달해주고 길드 내에서 알아서 처리하시는 게 최선이지요.”
“그래도 잘 아시다시피 저희 같은 흑풍단 길드는 결속력이 너무 약하지 않습니까? 저도 명목상으로만 길마고 그저 그들의 대표하고 있을 뿐이지, 템을 함부로 넘겨받아 처분할 권리는 없습니다. 길드원들이 불안해하실 수도 있고요. 조금 고생하시겠지만 지옥불 님이 직접 분배해주신다면 다들 불만 없이 보상에 수긍할 겁니다. 조금만 더 수고해 주실 순 없으신가요?”
“저희 흑풍단99도 부탁드립니다.”
“저희 흑풍 22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요!”
아카시아를 비롯한 아기코끼리와 콩콩이 등등.
흑풍단의 길마들과 피닉스 라인의 길마들까지 포함한 총 50명이 우리 아베르 주성에 모였다.
그리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공헌도 평가에 따라 드랍 템을 길드마다 하나씩 하나씩 분배받았다.
먼저 12영웅인 막시무스의 무기이자 나이트급 타이탄을 소환할 수 있는 디바인 도끼 ‘모쿠스’.
그리고 3피스 전부 드랍된 디바인 방어구, ‘에이션트 드래곤의 마력 갑옷’ 세트는 전부 피닉스 길드의 몫으로 돌아갔다.
화랑, 피스메이커, 넥스트 등 피닉스 다음으로 공헌을 세운 길드들 또한 각각 레전더리 무기와 방어구들을 한 피스씩 분배받았고.
로만 전자 측 또한 레전더리 액세서리를 3개나 가져가는 등, 다들 큰 불만 없이 분배는 신속하게 진행됐다.
‘하긴 이건 좀 문제인데? 못 믿는 건 아니지만 흑풍단 길마들이 아무래도 길드 내에서 신뢰를 깊게 받고 있는 건 아니잖아. 대뜸 템을 넘겼는데 정말로 잠수해버리는 사람이 생기면 어떻게 해?’
하지만 믿을 만한 그들 길드와 달리, 흑풍단에 대한 분배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길마 자체가 그저 길드를 먼저 만들었기에 맡고 있었을 뿐.
가입과 탈퇴, 창설과 해체가 쉽고 자유로운 흑풍단의 특성상, 한 사람에게 템을 넘기고 자율 분배를 맡기기엔 리스크가 너무 컸다.
결국 이 문제를 먼저 스스로 제기한 흑풍단의 길마들은 비싼 개별 템보다는, 한 명 한 명에게 직접 골드를 분배해주길 요청했고.
그에 이곳에 있는 각 길드에서 구매 의사를 물어보기에 이르렀지만.
“무기와 방어구, 그리고 악세까지……. 이미 분배가 완료된 완성템이라면 모를까, 아쉽게도 재료템은 아직 저희한테 필요가 없네요.”
“지금 거래소엔 어제 유저들이 운 좋게 획득한 재료템 매물이 상당히 많이 올라와 있어요. 그러니 당장은 제값 받고 팔 수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분배를 미루는 건 아니지 않나요? 나중에 나눠주겠다고 하면 불만이 이만저만 아닐 텐데요.”
“그렇다고 빠른 분배를 위해 헐값에 판매하는 것도 좋은 선택은 아니죠. 서두르다간 그 템들이 전부 태성 쪽으로 흘러 들어갈 수도 있고요.”
가치는 알겠지만 당장 쓸데가 없는 터라 처분이 쉽지 않은 재료템들.
여러 가지 문제점들로 인해 당장 해결할 방도가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아무래도 완성템의 인기가 높아서 생긴 문제 같네요. 흑풍단 분들께 분배할 골드를 마련하기 위해, 혹시 완성템을 양보해주실 길드는 혹시 없나요?”
그래서 끝내 지옥불 형님은 재분배까지 고려해 보았으나.
“…….”
밤새 원하던 템을 골라뒀다가 원하는 템을 겨우 손에 넣게 되었는데, 선뜻 양보할 길드는 없었다.
그 모습을 전부 지켜보고 있던 난, 결국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물었다.
“형님, 그 재료템들이요. 이제 몇 개 남아 있는 거예요?”
“응? 드로 넌, 이미 재료템으로 분배받아서 대신할 완성템이 없을 텐데?”
“아, 형님. 그게 아니라요. 아무도 살 사람이 없다면 그냥 제가 전부 사버리면 어떨까 싶어서요.”
“뭐? 지금 흑풍단 분들 몫으로 얼마나 드려야 하는지 몰라서 묻는 게 아니지? 워낙 참여 인원과 길드가 많은 곳이라 할 수 없이 재료 템으로 분배하기로 한 거지, 가치로만 따지면 드랍 템의 1/4이 넘어!”
“알아요, 형님. 그래서 그게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는 거예요.”
“성룡의 뼈만 24개, 비늘은 55장이다. 네가 분배받은 것보다 2배는 더 많이 남아 있는 상태지.”
확실히 한두 개를 드랍한 게 아니다 보니 비율 자체가 나쁘지 않았다.
비록 큰돈을 지출하게는 되겠지만 거의 남김없이 제작에 써버릴 수 있을 정도로.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간만에 투자 한 번 제대로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어쩌면 지금이 아니라면, 이렇게 디바인급 재료템을 저렴하고 대량으로 구할 기회가 다신 없을 수도 있었으니까.
“뼈는 보통 비늘의 2배 가치니까, 103개라고 치면…… 개당 20만 골드, 총 2천만 골드에 전부 구매하겠습니다. 이 정도 골드라면 너무 싸게 넘기는 것도 아닐뿐더러 2천 명이 나눠 갖기에도 충분하겠죠?”
“뭐? 20억 치나 되는 재료템을 전부 사겠다고? 너 혼자서?”
“네, 형님.”
이왕 제작하는 디바인 템.
한 세트 이상 만들 여력이 있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여분이 생긴다면 강화를 시도할 수 있을 테고.
강화 효과는 좋은 템에 할수록 더욱 극대화된다는 사실을, 현중이 녀석이 몸소 다시금 깨닫게 해줬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