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335화 (335/350)

335화 최고의 업적 (2)

“그래요. 받아요, 드로 오빠. 몰랐다면 모를까…… 오빠가 저희를 이렇게나 챙겨주는데 어떻게 그냥 받아요? 이 정도는 돼야 계산이 맞을 것 같아요.”

“계산이라니? 난 정말 순수하게 그동안 감사 표시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서…….”

“어허,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결국 나와 우리 푼수는 길드원으로 안 받겠다는 소린가?”

“아, 아니요! 그건 아니고요. 그럼 알겠습니다! 업적만 얻고 템은 바로 돌려드릴게요!”

아무리 디바인 장비 3피스라 해도, 엄밀히 따지면 7신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물론 무척 고되고 힘든 과정을 겪어야만 구할 수 있는 재료템들이 필요했지만, 결국 뭐가 됐건 간에 계속 생산이 가능한 제작템.

그와 달리 완성템, 특히 7신기는 세계관 최고의 무기이자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말 그대로 어나더 레벨의 템이었으니까.

“그것도 안 돼. 방금 말했잖아, 제값을 치르겠다고. 형이 디바인 갑옷 세트를 고작 그 정도 헐값으로 후려칠 것 같아? 업적은 물론 템도 온전히 네가 가져가 처리해라. 단, 우리 라푼수한테 주겠다 해도 절대 안 받을 테니까 그리 알고.”

“네? 어떻게 그래요. 오직 7명밖에 얻지 못하는 업적만으로도 값은 충분한데요.”

“아니다. 사실 너도 없는 업적을 우리 푼수가 얻는 건…… 좀 과분한 면이 있었어.”

“자기야, 뭐라고요? 주글래용? 자꾸 그러면 앞으로 진짜 힐 안 줄 거예용?”

“하핫! 미안 미안. 아무튼 그게 아니더라도 우리가 7신기를 갖기엔 양심에 찔리던 참이었다. 나야 정당한 노력으로 업적과 신창을 얻은 거지만, 이번 미스틱 드래곤에서 우리가 한 역할과 비중은 너무 작았으니까.”

“그건 울 자기 말이 맞아요. 수많은 라인분들과 흑풍단 사람들, 그리고 오빠네 길드원 분들이 얼마나 애쓰셨는지 다 봤는데…… 제가 뭐라고 이걸 내 걸로 쓸 수 있겠어요? 아마 모르긴 몰라도 평생 욕 얻어먹으면서 게임해야 할걸요? 그러니 이건 오빠가 갖는 게 맞아요. 미스틱 드래곤의 봉인을 해제하고 아베르 성에서의 레이드를 기획한 사람은…… 전부 오빠잖아요!”

누구도 가치를 몰랐다곤 하지만, 사실 형님이 지팡이를 분배받은 이유는 사람들의 배려 덕분이었다.

원체 퀘스트 위주의 플레이를 즐기는 분이란 걸 모두가 잘 알기에, 칼 데드라가 드랍한 유일한 퀘스트 템을 자연스럽게 카이저 형님의 몫으로 양보한 것.

그러니 형님이 방금 꿀꺽이니 양심이니 하는 소리를 했지만, 결국에는 내게 연락을 주셨을 확률이 높았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계속 거절하는 것도 형님께 실례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 두 가지 조건을 수락하기로 하죠. 그럼 지금부터 형님과 푼젤이는…….”

“그래. 지금 이 순간부터 나도 버닝스타의 일원이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한다, 우리 길마 동생아!”

“꺄아! 드디어 우리도 파티 플레이 좀 제대로 할 수 있겠네요! 잘 부탁드려요, 길마 오빠!”

그렇게 기나긴 구애 끝에, 마침내 가장 영입하고 싶었던 두 사람이 우리 길드로 합류하게 되었다.

* * *

당장이라도 두 사람을 가입 받고 싶었지만…….

사소한 문제로 인해 당분간은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 관계에 있는 유저는 길드원이 될 수 없습니다.]

이유는 현재 제국과 우리 프리덤 국은 전쟁 관계에 놓여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래서 군단장을 맡고 있는 카이저 형님과 자작인 라푼젤이 직위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시스템상 가입 요청조차 받을 수 없었다.

-뭐, 길드원이 아니더라도 파티를 할 수 없는 건 아니니까 상관없다. 어차피 제국은 곧 있으면 너한테 먹힐 테니까. 그때까지 형이 제국에서 직위를 이용할 수 있는 부분은 전부 다 써먹어 주마.

물론 형님의 도움이 아니라면 황제가 있는 천상궁에 갈 수 없는 문제도 있었고.

정작 당사자인 형님 또한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기에 가입은 조금 미루기로 했다.

하나 이 기쁜 소식은 곧바로 전 길드원들에게 공유했다.

-드디어 두 분이 우리 길드로 오시는구나! 우리 버닝스타가 한층 더 버닝스타다워졌다!

-야호! 언제 가입하시나 했다!

그리고 당연한 일이겠지만, 모두는 이 두 사람을 격하게 반겨주었다.

원래라면 추천인이라도 가입 시에 만장일치의 동의 절차를 거쳐야만 했지만.

원년 멤버처럼 느껴질 만큼 우리 길드원들과 친밀한 두 사람이었기에 다들 조금도 개의치 않아 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이로써 황제를 서둘러 잡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군요. 저희가 하루빨리 길드에 가입하려면요!

그렇게 짧았던 환영 인사가 끝난 뒤 퀘템까지 건네받고 헤어지자.

형님 몰래 라푼젤로부터 귓속말이 들어왔다.

(라푼젤: 드로 오빠. 아까 울 오빠랑 제가 웃었던 거 있잖아요.)

(나: 어? 아, 내가 가입 제안드렸을 때? 맞네, 그때 왜 웃은 거야? 그것도 둘이 동시에?)

(라푼젤: 울 오빠가 퀘템의 정체를 확인하고, 쓸지 말지 고민했다고 했죠? 사실 그때 울 오빠가 저한테 이렇게 말했어요. 드로한테 이걸 주면서 가입 좀 받아달라고 말하면 가오가 상하려나? 아마 그러겠지? 라고요.)

(나: 뭐? 형님이 정말?)

(라푼젤: 최근 들어, 그리고 이번 레이드를 겪으면서, 역시 버닝스타와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나 봐요. 이 길드라면 다시 한번 인연을 믿어볼 만하다나요? 물론 황제와 싸울 일도 남아 있으니 제대로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컸던 것 같고요. 어때요, 감동이죠?)

여기까지 듣게 되자 아무리 무던한 나라도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무슨 복이 있어서 이런 사람들을 만나게 된 건지…….’

카이저 형님은 게임 속 인연에 실망해서 변했다고 말했지만, 나는 정반대였다.

원래 늘 혼자서만 게임하다가 하나둘씩 인연들을 만나게 되면서, 감사와 겸손함을 배우고 변하게 됐다.

즉, 나는 나 혼자 잘해서 이 자리에 왔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았다.

여러 인연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성과였고, 그렇기에 형님과는 반대로 점차 나는 게임 속 ‘템’보다는 ‘사람’한테 더 욕심을 부리게 됐다.

“어쩌면 내가 타연을 하면서 세운 최고의 업적은…… 우리 버닝스타 길드를 창설한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시나 그게 정답이었던 걸까?

템보다는 사람한테 더 투자한 결과, 오히려 나는 이처럼 귀중한 템을 사람으로부터 얻게 되었다.

<빛을 잃은 지팡이(퀘스트 아이템)>

*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평범한 나무 지팡이입니다.

* 표면에 알 수 없는 표식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그저 아무런 장식품 하나 없이 긴 나무로 이루어진 지팡이 하나.

나 또한 미스틱 드래곤의 부산물을 전부 살펴봤기에 특별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던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형님은 이 템을 건네받고 바로 알아차리셨다.

지팡이에 새겨져 있는 문양이 바로 페어리들의 고유 표식이라는 것을.

그렇게 형님이 말씀하신 크리스탈 캐슬의 특수 NPC에 도착해 대화를 나누자, 나는 이 템과 관련된 퀘스트를 하나 받을 수 있었다.

[???의 정체: 일회성 퀘스트]

* 클리어 난이도: C

* 엘더 페어리 루에이아가 회복한 마법진과 별개로, 이 오래된 나무는 생기를 되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 퀘스트 클리어 조건: 시들어버린 나무의 소생

* 퀘스트 클리어 보상: ???의 복원

다소 난해한 내용의 퀘스트.

나무가 가공되어 지팡이가 됐다면 그 나무는 진작에 죽은 것일 텐데…… 소생시켜야 한다니?

하지만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확실히 형님이 여기까지 진행하자 고민했던 이유를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아이템의 이름이 ???라니?

누가 봐도 이 지팡이는 퀘스트를 위한 일회성 소모품이 아니라, 중요한 템이라는 뉘앙스를 팍팍 풍기고 있었다.

무릇 이름이 ???라는 것은 원래 이 지팡이에 고유 네임이 있다는 걸 뜻했고.

그건 높은 확률로 디바인 급 장비라는 것을 의미했으니까.

-퀘스트를 받게 되면 바로 생명의 숲에 있는 메치아실을 찾아 가봐라. 그녀는 하이 엘프니까 ‘오래된’ 것이란 힌트가 붙은 이 템의 정체를 알아볼 수도 있다.

그리고 친절하게 퀘스트 진행 방향까지 알려준 형님의 조언에 따라, 나는 요정계를 나와 엘프들의 마을인 생명의 숲으로 넘어왔다.

째잭, 짹! 짹!

아름다운 새소리가 반기는 건 여전했지만, 어느덧 생명의 숲은 많은 유저들로 붐비고 있었다.

아름답고 경이롭기로 유명한 세계수를 구경하러 온 관람객들.

그리고 신규 필드 사냥터와 인던을 찾아온 고레벨 유저들이 뒤엉켜, 여느 번화한 도시 못지않게 변한 것이다.

‘유저라곤 한 명도 없었던 곳인데…….’

처음 이곳을 발견하고 오픈한 사람만 알 수 있는 이 드라마틱한 변화.

오직 초고수만이 느낄 수 있는 묘한 기분을 만끽하며 나는 메치아실이 있는 거대한 나무에 올랐다.

<숲의 수호자 메치아실>

여전히 전과 한 치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서 있는 그녀.

인벤토리에서 지팡이를 꺼내 다가가자 그녀가 먼저 말을 건네왔다.

“그대가 들고 있는 나무에게서 익숙하면서도 그리운 향기가 나는군요. 잠시만 제가 살펴볼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죠.”

원래도 예의 발랐지만 무척이나 정중하게 부탁하는 메치아실.

제대로 찾아왔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잠시 그녀와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그녀의 몇몇 지시대로 행동하자.

“역시 이건 타락한 수호자 ‘칼 데드라’를 봉인하기 위해 쓰였던 ‘룬 카투나’가 맞군요! 워낙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된 터라, 순간 정확히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띠링! 띠링!

[퀘스트 ‘???의 정체’를 클리어했습니다.]

[연계 퀘스트 ‘룬 카투나의 복원’을 획득했습니다.]

퀘스트 완료와 더불어 연계 퀘스트가 떠올랐다.

그것도 더는 길고 복잡한 연계 퀘스트가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 담긴, ‘복원’이란 이름으로!

“이 지팡이는 미스틱 드래곤의 ‘봉인’을 위해 쓰인 ‘7신기’ 중 하나였군요?”

“그렇습니다. 신마전쟁이 끝난 후에도 중간계에 남아 종종 막심한 피해를 안겨주었던 칼 데드라. 그를 막기 위해 몇 남지 않았던 12영웅 중의 하나, 성녀 헤인 로랑이 홀로 그를 찾았고…… 결국 고귀한 희생 끝에 하늘 산맥 깊숙한 곳에 그를 봉인하는 데 성공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나름의 비사를 알려주는 메치아실.

이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수 있는 건 타연에서 이 지팡이를 얻은 단 한 사람밖에는 없다.

그 사실을 잘 알기에, 다시 한번 타연이 정말 세심한 배려와 높은 완성도로 만들어진 게임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럼 어디로 가야지 이 지팡이를 복원할 수 있겠습니까?”

“그 지팡이는 세계수가 아직 어린나무였을 시기에 떨어져 나온 가지로 만들어진 소중한 아티팩트입니다. 죽은 듯싶어 보이지만 결코 죽지 않는 생명의 증거. 가이아를 찾아가면 다시금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어 소생시켜줄 것입니다. 그리고 물의 신의 축복이 다시 깃들 수 있도록…….”

그녀가 말한 내용, 그리고 퀘스트 창의 복원 조건에는 한 가지 희귀한 재료템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바로 물의 신 ‘이리아’가 만든 7신기답게, 그녀의 힘이 담길 수 있는 물 속성의 그릇이.

하지만 정말 공교롭다고나 할지, 아니면 최근 신규 콘텐츠를 독식하다 싶었던 결과인지…….

나는 그걸 이미 갖고 있었다.

그래서 서둘러 창고로 가서 그녀가 알려준 복원 조건 중 하나를 꺼내 보았다.

<바다왕의 눈동자(디바인, 재료 아이템)>

“와, 이게 여기서 쓰이게 될 줄이야!”

꺼내놓고 보니, 그저 막대기에 불과한 지팡이의 헤드(head) 부분으로 더없이 적당해 보이는 모습.

왠지 퀘스트가 술술 풀리는 듯해 기분 좋은 걸음으로, 나는 나머지 조건을 달성하기 위해 세계수로 향했다.

그리고 여전히 한국에서 가장 큰 빌딩보다도 커 보이는 세계수의 중앙 부근까지 올라가 큰소리로 외쳤다.

“가이아! 이걸 한 번만 봐주겠어요? ‘룬 카투나’를 가지고 왔습니다.”

메아리치듯 큰 소리로 울린 내 목소리.

그에 조용하던 나무 표면에서 익숙한 모습의 정령이 쑤욱 튀어나왔다.

세계수가 다시금 푸르른 나무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존재, 가이아였다.

“응? 당신은 저의 은인 산드로? 오랜만이…… 어라? 당신의 손에 들려있는 건 설마 세계수의 ‘어린 가지’?”

“네, 맞습니다. 어린 가지로 만들어진 룬 카투나입니다. 혹시 빛을 잃은 이 지팡이에 ‘생명의 숨결’을 넣어주실 수 있을까요?”

“예전이었다면 힘들었겠지만, 세계수가 힘을 회복한 지금은 물론 가능해요! 제게 그 ‘어린 가지’와 ‘바다왕의 눈동자’를 건네주시겠어요?”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지시에 따라 지팡이를 건네줬고.

이윽고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푸른 빛이 지팡이로 옮겨간다 싶더니, 갑자기 메시지가 떠올랐다.

당연히 전체 알림창도.

[퀘스트 ‘룬 카투나의 복원’을 클리어했습니다.]

[물의 신 이리아의 신장 ‘룬 카투나’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다시 돌려받은 신장.

평범했던 나무 지팡이의 표면엔 희미하게 새겨졌던 문양들이 푸르게 빛나고 있었고.

지팡이의 머리 부근에는 바다왕의 남색 눈동자가 단단히 박혀 있었다.

완연한 스태프의 형태.

7신기란 이름에 걸맞은 화려하면서도 고급진 외형을 완전히 되찾은 모습이었다.

‘내가 정말로 이걸 얻게 될 줄이야……!’

하지만 내 눈에는, 오직 이 한 줄의 문장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업적 ‘7신기의 해방자’를 획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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