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336화 (336/350)

336화 최고의 업적 (3)

아쉬워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욕심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애써 떠올리지 않고 지내고 있었다.

괜히 이 업적을 얻고자 신의 선물 뽑기에 집착했다간, 되려 모든 걸 망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검과 마신검.

7신기 중 무려 2개나 한 몸에 지닌 나지만, 이것만큼은 나와 인연이 없을 거라고 단정 짓고 있었다.

바로 이 ‘7신기의 해방자’ 업적을!

“이제 정말 완벽해졌네. 더는 황제 도전을 미룰 핑계가 없을 정도로.”

테크트리를 바꾸면서 타연 최고의 공격력을 손에 넣게 되었다.

거기다 마신검까지 얻게 되면서 더는 바랄 게 없을 만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공격력에서만큼은 ‘끝’을 봐버렸다.

하지만 그 대신에 잃은 건 방어력.

절대 죽지 않을 것만 같았던 마나 쉴드를 버린 것을 아쉬워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물론 그 선택이 아니었다면, 지금과 같이 태성을 몰아세우고 끝내 마신검 또한 먹지는 못했을 테지만 말이다.

하나 오늘 나는 그 아쉬움을 달래줄 두 가지를 갖추게 되었다.

속성 내성을 위해 노력하다 얻게 된 최고의 제작 방어구, 명장의 드래곤 스케일 세트.

그리고 생존력을 급격히 상승시켜줄, 방어 한정으로는 다시 없을 최고의 업적까지.

이런 데도 황제를 죽일 수 없다면…… 그건 잡으라고 만들어둔 게 아니었다.

내가 아니라면 그 어떤 유저도 잡을 수 없을 테니까!

[축복받은파볼: 드로야, 너 맞지? 방금 7신기를 등장시킨 사람이!]

[축복받은얼굴: 저놈 맞아요. 좀 전에 카이저 형님께 들었어요. 곧 있으면 전체 알림 하나가 뜰 거라고요. 뭔 소린가 했는데 이거였네요.]

[산드로: 하하! 저 맞습니다. 다들 오래 기다리셨죠?]

[당근당근단검: 오, 말씀하시는 거 보니 드디어 시작인가 보네요?]

[산드로: 맞다 당당아. 여러분, 이제 준비를 시작하겠습니다.]

[축복받은얼굴: 황제를 잡을 준비를?]

[산드로: 그래. 그리고 우리 프리덤 국이 제국이 될 준비도!]

* * *

“캬! 업적 창이 진짜 화려해졌구나!”

업적창을 열어 마치 컬렉션을 감상하듯 그동안 내가 얻은 업적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았다.

창을 수놓고 있는 많은 업적들.

나보다 많이 가진 유저가 있을진 몰라도, 나처럼 질 좋은 업적들만 가진 유저는 없을 거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업적: 드래곤 처단자(S)]

* 드래곤 레이드에서 가장 큰 공훈을 세운 사람에게 수여되는 업적입니다. (모든 능력치 +40)

* 업적 효과로 드래곤 계열 몬스터에게 더욱 강력한 피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모든 종류의 데미지 +30%)

* 드래곤 학살의 베테랑에게 주어지는 업적입니다.(공격력 +5%)

이번에 현중이가 얻게 된 ‘드래곤 학살자’가 업그레이드된 업적.

투 메르타스를 몇 차례 죽이는 동안 그대로였지만, 이번에 미스틱 드래곤을 죽이면서 처단자로 바뀌었고.

원래도 S급이었던 만큼 내가 가진 업적들 중에서도 수위를 다툴 정도로 뛰어난 효과를 갖게 됐다.

“한때는 업적이 너무 없어서 업적 사냥까지 다녔었는데…….”

이제는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많아졌다.

역시나 업그레이드 된 킹 슬레이어와 만인살, 그리고 새로 얻은 7신기의 해방자나 바다의 지배자, 건국왕 등등…….

거의 장비 한 개와 맞먹는 효과를 자랑하는 S급 업적만도 10개가 넘었다.

경험상 A급 2, 3개보다 S급 한 개가 더 낫다는 걸 떠올려보면, 정말 말도 안 되게 많은 수를 보유하게 된 셈.

그 외 자잘하게 얻은 업적들도 많아져서 이제 업적 개수는 50개에 육박했다.

“내가 가진 업적이 고작 2개였을 때…… 다리우스 자식은 50개도 넘게 갖고 있다고 그랬었지?”

그때는 정말 다리우스가 말도 안 되게 많은 업적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어느 순간 내가 놈과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것도 오히려 놈보다 좋은 업적들로만 꽉꽉 채워서!

“뭔 혼잣말을 그렇게 하고 있어?”

“어? 오셨어요?”

그렇게 획득한 업적 이름들을 찬찬히 살펴보다 보니, 그동안 내가 노력한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기분 좋은 성취감.

하지만 동시에 묘한 기분도 들고 있었는데, 마침 그때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도착했다.

바로 축빙 형님이었다.

“한 차례 큰 고비를 넘겼더니 또 생각이 많아졌나 봐? 쓸데없는 감상을 하는 걸 보니. 방금 황제에 도전할 테니 준비하라고 말하던 드로는 어디 갔어?”

“그래 보여요? 하긴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브레이크가 고장 난 듯 폭주해오다가 잠깐 멈춰선 느낌이에요. 이번에 칼 데드라 뿐만 아니라 다리우스도 함께 죽여서 그런가……? 세 번째라 그런지 생각보다 통쾌하지는 않았거든요.”

“벌써 약했던 시절의 기억은 다 잊어버린 거야? 기를 쓰고 앞서나가려 했던 이유가 뭐였는데. 전부 랭커들만 계속 독식한다고 욕했던 ‘선점’ 효과를 누리려고 그랬던 거잖아. 바라던 대로 랭커가 되고 랭킹 1위가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예전 다리우스의 포지션이 된 거지.”

그래서 형님께 잠시 지금의 기분을 설명해 드렸더니 진지하게 조언해 주셨다.

“그렇긴 하지만…… 제가 다리우스의 몫을 뺏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원래 신검 자체도 놈이 뽑았던 거잖아요. 제가 놈의 위치까지 성장하는 동안, 놈은 계속해서 제가 사냥터든 퀘스트든 아이템이든 빼앗기기만 해서 추락만 했잖아요? 당시엔 그게 참 통쾌했었는데…… 지금은 왠지 복잡한 마음도 드네요. 제가 없었다면 놈은 여전히 이곳 타연에서 최고의 자리에 있었을 텐데.”

“하핫! 우리 동생이 진짜 변하긴 변했구나. 역시 자리가 바뀌면 사람도 바뀌는 건가? 그 독기 가득하던 드로는 어디 가고, 지금 이런 소리나 하고 있다니. 드로…… 아니, 지환아, 너 설마 지금 다 끝났다고 착각하는 거 아니지?”

“아니에요, 그런 거. 그냥 이제 남은 건 황제 레이드뿐이잖아요? 놈을 죽이면 제가 황제가 된다는 생각에 생각이 복잡해졌나 봐요.”

나도 갑자기 왜 이런 생각이 들고 이런 소리를 형님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아직도 놈을 용서하지 못한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업적창을 보면서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니, 그동안 난 다리우스와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던 놈.

녀석과 처음 마주친 건 하필이면 녀석이 모든 성과를 쟁취하고 공표하며 최고가 되던, 대관식 날이었다.

빛나고 영예로운 랭킹 1위라는 자리와 최고의 아이템들.

녀석이 가진 수많은 동료와 부하, 그리고 한 나라의 국왕이란 명예까지.

반면 그때의 나는 보잘것없는 레벨과 템을 가진, 한낱 솔플 유저였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 당시 놈의 모습과 거의 정확히 일치하는 모습이 되었다.

랭킹 1위, 타연 최고의 아이템과 업적들, 많은 동료와 조력자들, 그리고 성주이자 국왕이란 감투까지.

놈을 타도하고자 노력하다 보니 쟁취한 것들이지만, 이쯤 되니 갑자기 내가 놈의 모든 것을 빼앗은 ‘도둑’ 같다는 생각이 든 것.

물론 복수란 원래 그런 것이고 바라지마다 않던 일이었지만, 그 대단해 보였던 다리우스가 소인배마냥 굴다 비참하게 죽은 모습이 어딘가 마음에 걸렸다.

“우리 지환이, 지금 심경이 복잡한가 보구나? 형이 알아맞혀 볼까? 지금 네가 이룩한 것들과 자리가 온전히 네 것 같이 느껴지지 않아서 그런 거지? 그러니까 빼앗은 것 같다거나 갑자기 미안한 것 같다거나 하는 죄책감이 드는 거고.”

“온전히 제 것 같지가 않다라……. 맞아요, 약간 그런 마음인 것 같아요. 복수라는 미명 아래 너무 탐욕스럽고 이기적으로만 군 건 아닌가란 생각이 드네요. 그냥 좋은 사람들을 만난 덕에 일이 술술 풀린 것 같은 기분도 들고요.”

“하지만 그런 건 절대 아니다. 넌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은 거야. 지환이 네가 사회 경험이 적어서 그런 걸 수도 있는데, 세상은 원래 그런 거…… 그래, 말하자면 디바인 템 같은 거다.”

“네? 세상이 디바인 템이라고요? 갑자기 무슨……?”

“무언가 갖고 싶은 게 있거나 어떤 자리가 있다면, 이미 그걸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쟁취해내야 해. 그게 매출이든 승진이든 순위든 말야. 세상은 모두 한정된 무언가를 가지고 여럿이서 경쟁하는 구조로 이뤄져 있지. 다리우스의 것을 뺏은 것 같아 마음이 복잡하다고? 그럼 이렇게 한번 생각해 봐. 네가 이룬 것들도 결국엔 누군가가 쟁취해서 빼앗아 갈 거라고.”

“…….”

“그러면 마음이 좀 편해지지 않겠어? 완전 욕심쟁이가 아닌 이상, 너도 그렇게 이룩한 거니까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잖아?”

모든 건 디바인 템과 마찬가지라…….

한정된 무언가를 가지고 서로가 뺏고 빼앗기는 게 인생이란 놈이라…….

형님의 조언을 듣다 보니 어쩐지 마음 한 켠이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맞네요. 제가 갑자기 감상에 젖어버렸나 봐요. 너무 오르기만 하다 보니 벌써부터 내려갈 게 걱정됐나? 형님 말씀대로 쓸데없는 생각이었네요. 세상일이란 게 늘 득템만 할 수는 없고 실템할 때도 있는 건데 말이죠.”

“녀석……. 하긴 형이 네 입장은 아니니 주제넘은 충고였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네가 서 있는 그 자리는 막중한 부담감과 책임감이 뒤따르는 자리인데 말이지.”

“아니에요. 형님 말씀이 다 맞는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제대로 말씀드린 적이 없는 것 같네요. 저희 길드에 형님이 계시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정말 고맙습니다, 형님.”

현중이가 십 년간 몸담았던 세인트 길드의 길마.

태규 형님은 우리 버닝스타의 창립 멤버로, 늘 이렇게 곁에서 우리 길드가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셨다.

“뭐냐, 지금. 사나이끼리 고백하는 것도 아니고 왜 그래? 아무튼 무슨 일로 불렀어? 지금 하던 고민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형만 따로 귓말로 부른 이유가 뭐야? 할 말 있으면 나중에 집안에서 해도 될 텐데, 굳이 타연 안에서.”

“현실에서는 못하고 타연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까요. 자, 이거 한 번 봐보시겠어요?”

그리고 나는 인벤토리에서 신장을 꺼내 착용했다.

<룬 카투나(디바인, 두 손 무기)>

* 공격력: 460

* 마법 공격력: 2560

* 모든 능력치 +60

* 지력 +150, 마력 +150

* 최대 HP +5000, 최대 MP +15000

* 초당 HP 및 MP 회복 +255

* 불 속성 몬스터에게 마법 데미지 +5120

* 마법 발동 시 10% 확률로 반경 10미터 안의 아군에게 ‘생명의 물’ 스킬 시전

* 모든 회복 스킬의 사용 대기시간 감소 50%

* 모든 보유 스킬 레벨 +1

* 타이탄 ‘이라리움(!)’ 소환 가능: 현재 봉인 상태(!)

* 이 아이템은 신의 가호를 받고 있어, 강화에 실패하더라도 가호가 다 하기 전까지는 파괴되지 않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가호 수치: 3)

* 이 아이템은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 이 아이템은 교환이나 판매가 불가능합니다.

* 물의 신 이리아의 신장이자, 대륙 7신기 중의 하나입니다.

* “세계수로 만들어지고 물의 축복이 담긴 이 스태프. 이 신기라면 그 지독한 암흑의 마수, 칼 데드라를 충분히 봉인시킬 수 있을 겁니다!” -신마전쟁의 12영웅, 헤인 로랑-

물의 신이 만든 것답게, 그리고 사제 전용 무기인 지팡이(staff)다운 옵션이 붙어있는 7신기.

물론 마법사 계열이라면 누구든 탐낼만한 옵션이었지만, 그래도 최고는 역시 회복 마법을 사용하는 ‘사제’가 착용하는 걸 따라올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 길드에서 사제라고는 앞으로 들어올 라푼젤을 제외하고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

“그게 바로 이번에 획득한 신장이란 거구나. 꽤 간지나는데?”

“그렇죠? 근데 아직도 눈치 못 채셨어요? 제가 왜 이것만 들고 있는지?”

“응? 그러고 보니 너…… 검들은 전부 창고에 맡기고 온 거냐?”

오자마자 진지한 대화를 나누느라 아직 내가 빈손이었다는 사실을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았던 형님.

한데 늘 착용하던 검과 망토도 없이 이곳에 서 있자, 뒤늦게 눈치채신 모양이었다.

내가 왜 형님을 불러냈는지.

“맞아요. 차고 있던 모든 디바인 템은 전부 창고에 맡기고 왔어요. 그래서 제가 가진 디바인 템은 오직 이 지팡이 하나뿐……. 그러니 만약 지금 제가 죽는다면 무조건 이놈을 떨구게 되겠죠?”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냐! 설마 그걸 나한테 주려고 죽겠다는 소리는 아니지?”

“그럼 교환도 안 되는 7신기를 어떻게 넘겨드려요? 죽어서 넘겨드릴 수밖에요.”

“안 돼! 좀 있으면 황제를 죽여야 할 놈이 경험치를 떨궈서 어쩌겠다는 거냐! 그리고 너, 10레벨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죽은 적이 없지 않아? 그런 기록을 지금 나 때문에 깨겠다는 거냐?”

“그런 기록 유지하면 누가 뭐라도 준대요? 그리고 형님 말고 이걸 쓸 수 있는 사람이 길드에 있기나 해요? 이걸 제가 계속 갖고 있을 필요도 없을뿐더러, 설사 이걸 쓸려고 해도 신검과 마신검만으로도 두 손이 모자라네요.”

“…….”

“받으세요, 형님. 방금 형님이 말씀하셨잖아요. 인생은 어쩌면 디바인 템 같은 거라고요. 그러면 당연히 형님 인생에도 디바인 템 하나 정도는 찾아오는 순간이 있는 거 아니겠어요? 지금이 바로 그때고요.”

할 말을 잃은 듯한 형님의 표정.

하지만 이내 무언가 결심을 굳힌 듯 힘 있는 말투로 대답하셨다.

“그래, 맞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형이 돼서 주저할 순 없지. 뜻대로 내가 가져갈게. 대신 하나만 맹세하마.”

“네, 말씀하세요.”

“오늘 내 앞에서 죽는 것이 네가 타연을 하는 동안의 마지막 죽음이 될 거라고. 절대, 그리고 무조건! 내가 널 죽게 놔두지 않으마. 그 7신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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