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화 황제 도전 (4)
“여기까지는 무사히 들어왔네요.”
“확실히 드로 형님 말씀대로 몽환적인 곳이네요. 땅 위를 부유하는 궁전이라니…… 과연 제국의 황제가 거처하는 곳답다고나 할까요?”
지상으로부터 2, 3미터 떠 있는 천상궁으로 향하는 다리를 건너며 다들 말문이 트였다.
천상궁만의 이 독특하면서 특별한 풍경에 절로 감탄성이 나온 것이다.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에요. 곧 마차가 멈추고 문을 나서게 되는 순간부터는, 단 한 순간도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 이미 몇십 번이나 당부했지만…… 다들 레이드가 끝나는 순간까지 명심, 또 명심하길 바란다.”
워낙 소수만 들어온 터라, 한 명 한 명이 소중했다.
다른 필드에선 만약 레이드 초반에 죽어버린다 해도 부활해서 금세 복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천상궁 안에서는 죽어버리면 말 그대로 끝.
전투가 끝날 때까지 절대 개별적으로 합류할 방법 따윈 없었다.
또한 일부러 새벽 시간대를 노렸고 동맹들도 비밀리에 최정예 멤버들만 불렀지만, 곧 있으면 우리가 황제를 쳤다는 소식이 퍼지게 될 것이다.
물론 그렇더라도 천상궁까지 진입할 수 있는 유저는 없겠지만, 둘러싸는 데는 전혀 지장 없었고.
그러니 최악의 경우, 우리는 도망치고 싶어도 퇴로를 보장받지 못할 수도 있었다.
즉, 마차 밖에 발을 내딛는 순간 시작될 전투는 무조건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지금껏 해왔던 그 어떤 레이드보다 위험한 전투였다.
물론 그런 만큼이나, 그에 대한 보상 또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지만 말이다.
“그럼, 저희 셋부터 나가보겠습니다.”
“잘 부탁한다. 조심하고! ”
“네.”
이윽고 멈춰선 마차.
이동하는 동안 다들 마음의 준비는 충분히 한 듯했기에 주저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먼저 척후병인 3명이 먼저 마차 문 앞에 섰다.
바로 우리 길드의 도둑 삼인방인 나와 당당이, 그리고 무살 형님이었다.
[은신!]
[은신!]
[은신!]
동시에 반투명한 은신 상태로 전환된 우리 셋.
이미 은신이 통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확인한 뒤지만, 혹시 몰라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고.
[당근당근단검: 5성 은신도 이상 없네요.]
다행히 둘 또한 천상궁 정문을 지키는 두 타이탄 문지기들에게 감지되지 않았다.
레이드 초반 계획에서 나름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시작이 좋았다.
[산드로: 좋았어! 다만 1성 은신 망토들은 걸릴 위험이 존재하니까, 계획대로 저희 셋만 안으로 진입하겠습니다. 카이저 형님! 부탁합니다!]
[카이저: 그래. 드디어 여기까지 왔군. 다들 건투를...!]
그렇게 우리 셋의 안전을 확인한 카이저 형님이 마차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로얄 나이츠들이 지키는 정문 앞에 다가가 외쳤다.
“문을 열어라. 폐하를 뵙겠다!”
전과 다름없이 조용히 열린 문 안으로 텅 비어있는 궁전의 모습이 드러났다.
여전히 휘황찬란하면서 높디높은 층고를 자랑하는 거대한 중앙 홀.
그러나 이 안에는, 목표인 황제를 제외하더라도 개개인의 무력이 무려 필드 보스급에 이르는 괴물들이 20명이나 도사리고 있었다.
바로 제국 최고의 정예이자 황제의 호위인 크림슨 나이트들.
물론 그런 놈들이라도 예행연습을 통해 알아낸 몇 가지 공략 포인트들이 있었으니…….
첫째는 그들이 다른 보스급들과 달리 몸집이 작다는 점.
즉, 인간형 소형 몬스터란 사실이었다.
물론 크기가 작다는 건 장점이 될 수도 있었지만, 대부분 대형인 필드 보스와 달리 인간형에게만 써먹을 수 있는 색다른 전략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놈들이 위치한 장소의 특수성이었다.
일단 놈들은 죄다 황제의 침소, 즉 2층을 지키고 있다는 걸 앞선 침투로 알아냈다.
그게 뭐가 중요하겠냐마는, 이렇게 은신을 통해 궁전 안에 먼저 들어올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잠입한 우리 셋의 직업은 도둑.
비록 다른 직업들처럼 스턴이나 넉백을 유도하는 즉발 CC기는 없을지언정, 다수에게 광범위한 피해를 안겨줄 수 있는 희귀 CC기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산드로: 설치할게요! 일단 무조건 로얄 나이츠들부터 정리한 다음, 크림슨들을 처리하는 거 잊지 마세요!]
[축복받은파볼: 응!]
[연우: 맡겨만 주세요, 오빠!]
당당이와 무살 형님, 둘을 각각 적당한 장소에 위치시킨 뒤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앞에 섰다.
그리고 모두의 응답이 올라오자마자 제자리에 웅크리며 스킬을 시전했다.
[덫 설치!]
띠링!
[덫 설치(연막)가 완료되었습니다.]
모션과 동시에 은신이 풀리며 어그로 감지음이 울렸고.
곧바로 활짝 열린 정문 쪽에서 두 대의 로얄 나이츠들이 진입하며 큰소리로 외쳤다.
“침입자다!”
“정체를 밝혀라!”
하지만 나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타이탄들이 달려오는 정문 쪽으로 다가갔다.
10성 덫 설치의 쿨타임은 단 5초.
캐스팅 시간은 2초로 동일했지만, 막대한 범위와 지속 시간을 자랑하는 ‘10성 연막’을 이 정도 텀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축복을…… 굳이 묵히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덫 설치!]
콰앙!
[로얄나이츠의 공격을 회피했습니다.]
[로얄나이츠로부터 2,882의 물리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윽고 다가온 로얄 나이츠의 검이 내게 휘둘러졌지만, 피하지 않고 맞아주며 점찍어 둔 자리로 묵묵히 이동했다.
그리고 덫을 설치하기 위해 웅크리는 순간, 계단 위 2층에서 갑자기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확인할 것도 없이 황제의 침소를 지키던 크림슨 나이트들이었다.
“폐하를 지켜라!”
“적을 즉각 사살하라!”
모습을 드러낸 놈들의 수는 다섯.
침소를 지키는 인원 중 절반만 튀어나온 모양이었다.
가벼운 걸음으로 날 듯이 2층 계단을 내려온 그들.
하지만 1층 바닥을 밟는 순간!
펑!
내가 설치한 덫이 터지며 자욱한 연막이 피어올랐다.
[덫 설치(연막)가 완료되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설치하던 두 번째 연막도 완성되었고.
나는 주저 없이 설치된 덫을 내 발로 직접 밟았다.
펑! 퍼펑!
그와 동시에 무살 형님과 당당이가 설치한 연막 덫도 타이밍에 맞춰 함께 터졌다.
“다 죽어랏!”
“어디 NPC 주제에 타이탄을 타고 있어!”
순식간에 모든 곳이 연막으로 뒤덮인 천상궁 1층.
그 모습에 정문 밖에서 대기 중이던 우리 길드원들이 한꺼번에 뛰쳐 들어왔다.
피아 식별은커녕 코앞에 누가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짙은 연막.
하지만 이 안에서도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있었으니…….
그건 숨길 수 없는 덩치와 매스감 때문에, 어느 정도 형체가 느껴지는 타이탄들이었다.
“파이어 블래스터!”
“난도질!”
“데스 나이트 소환!”
그렇게 로얄 나이츠들을 향해 각자 최고의 스킬들이 시전되며 공격이 집중됐고.
그에 적중당하는 놈들도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장검을 이리저리 휘둘렀지만!
[그림자 밟기!]
검이 연막을 가르며 살짝 드러난 모습에, 내게 타겟 포착의 빌미만 제공할 뿐이었다.
‘역시 타연 최고의 CC기는 도둑의 연막 덫이야!’
태생적인 취약점들 때문에 일반 유저들은 잘 사용하지 않는 연막 덫.
일단 설치 캐스팅 시간 동안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뿐더러, 어렵게 터뜨리더라도 일부 스킬과 마법 등에 쉽게 흩어지는 등 효과가 좋지 않았다.
그나마 5성급이 되면 조금 쓸만해 지는데, 몇몇 특별한 경우에나 쓰이는 덫 설치에 그 정도 스킬 포인트를 투자하는 유저는 드물었다.
누구도 도둑에게 딜링 대신 CC기를 더 기대하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뭐든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효용도는 달라지는 법.
나에겐 모두가 쓰레기라 불렀던 마나 쉴드를 타연 최고의 스킬로 바꾼 전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 연막 덫 또한 10성까지 만들게 되면 얼마나 미친 효과를 보여주는지, 최초로 달성해 충분히 활약해본 경험이 있었다.
그런 내가 판단하기에, 이곳 천상궁은 덫 설치가 가진 몇몇 약점들이 사라지는 특수한 전장이었다.
이렇게 마법사들도 없는 ‘밀폐’된 전장에서, 주로 시야에 의존하는 ‘인간’형 몹들만 존재하고 있다?
죽이는 건 무리더라도, 일정 시간 동안 행동을 제약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스킬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그것이 오늘 레이드에서 첫 시작을 연막 덫으로 선택한 이유였다.
[태세 전환!]
[난도질!]
잠깐의 시간 동안, 나는 길드원들이 공격 중인 어느 로얄 나이츠의 등 위에 타올라 쉴 새 없이 공격을 먹였다.
[치명 공격이 터졌습니다.]
[‘필중’ 효과로 상대방의 방어력을 무시하는 데미지를 입힙니다.]
번쩍! 번쩍!
연속해서 올라오는 전투 로그 메시지들과 신검의 추가 마법 공격 이펙트.
각종 스킬과 장비들로 무장한 나는, 일반 평타 공격만 먹이더라도 여느 스킬 연사 못지않은 효과들이 연달아 발동됐다.
또한 그 공격들은, 각종 업적들에 붙은 대형 몬스터나 타이탄에 대한 추가 데미지가 곱산 되어 막대한 피해를 안겨줬다.
“조금씩 흩어진다! 드로가 치는 놈은 놔두고 다른 걸 치자!”
그 사이 어느덧 연막이 조금씩 옅어지며 타이탄의 상체가 살짝 드러났다.
그리고 옆에 있던 또 다른 로얄 나이츠의 상황도 눈에 들어왔다.
퍼퍽! 퍽! 푹! 푹!
나와 마찬가지로 그림자 밟기로 각각 뒤통수와 등에 매달려 공격 중인 당당이와 무살 형님.
그런 그들 외에도 타이탄의 어깨 위에 누군가가 한 명 더 서 있었는데…….
“크하하핫! 간만의 프리딜 찬스! 이 타이탄은 내 손으로 터뜨려버린다!”
그건 바로 현중이었다.
녀석은 이 긴박하고 위험한 전장과 어울리지 않게, 무척이나 즐거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어휴, 저 자식. 내가 저러라고 그림자 밟기를 배우라고 했던 게 아닌데!’
빠르게 움직이는 거대한 강철 거인.
타이탄의 사각인 후방 상체 공격을 먹이기에 도둑만큼 적격인 직업도 없었다.
타 직업들은 대부분 정면과 후방이든 타이탄의 하체 부근만 공격할 수 있는 것과 달리, 도둑의 이동기를 사용하면 등 뒤로 점멸하듯 올라탈 수 있었으니까.
현중이 녀석도 마찬가지로 그밟을 사용해 올라탄 듯싶었는데.
어차피 연막이 지속되는 동안 탱커는 필요 없었으니까 크게 상관은 없어 보였다.
[연우: 안 되겠어요! 저 먼저 타이탄 소환할게요!]
번쩍!
한데 사실은 그렇지만도 않았다.
갑자기 연우로부터 다급한 메시지가 올라오는가 싶더니, 곧바로 특유의 소환 이펙트와 함께 거대한 사각 방패를 든 타이탄이 소환됐다.
[연우: 죄송해요! 갑자기 네다섯 명이 저를 공격해서 소환할 수밖에 없었어요!]
[산드로: 괜찮아! 어차피 타이탄들을 거의 다 잡아서, 곧 소환할 타이밍이었어!]
성공적으로 터진 연막이라고 약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시야가 안보이더라도 공격을 못 하는 건 아니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시야가 트이게 된다.
연우는 그렇게 흩어지는 연막 사이로 크림슨 나이트들에게 가장 먼저 눈에 띠인 것.
어쩌면 체력과 방어력이 강한 연우가 첫 번째 타겟이어서 천만다행이었던 건지도 몰랐다.
그렇게 연우를 다독이며 다시 공격에 전념하려는 도중.
번쩍! 번쩍! 버버번쩍!
화려한 빛무리와 함께 거대한 마법진들이 하얀 대리석 바닥을 뒤덮었고.
곧 다섯 기의 거대한 타이탄이 불쑥 하고 한꺼번에 솟아올랐다.
<로얄 나이츠>
전부 같은 이름의 붉은 망토를 두른 타이탄들.
지금도 내가 올라타 공격하고 있는 놈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축복받은무빙: 뭐야! 크림슨 나이트들은 전부 다 타이탄 라이더들이었어?]
[연우: 뭐, 뭐에요? 설마 제가 타이탄을 소환해서 그런 건가?]
[산드로: 현중아, 당당아! 어서 타이탄으로 막아 줘! 시간 없다!]
잠시 크림슨 나이트의 발을 묶은 사이 두 타이탄부터 처리하려고 했는데, 놈들 전부가 타이탄으로 변할 수 있었다니?
어차피 전부 타이탄이 됐다면 더 이상 연막은 의미가 없다.
서둘러 타이탄 전투 체계로 전환하는 것이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
번쩍, 번쩍!
내 지시로 바로 타이탄을 소환한 현중이와 당당이는 바로 연우의 곁으로 이동해 삼각 대형을 이루었다.
<에르카다> <레벤다스> <로우리엘>
순식간에 새로 소환된 로얄 나이츠들을 막아선 5대 3의 구조.
비록 수는 달리더라도 전원 나이트급인데다 컨트롤이 좋은 셋이라 잠시 막아서기엔 충분했다.
또한 전부 하루 전 타이탄 강화까지 마친 터라, 더욱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그렇게 그들의 디펜스를 믿으며, 나와 남은 길드원들은 계속 상대하던 로얄 나이츠 2기를 향해 맹렬한 공격을 쏟아부었고.
슈우우우우.
마침내 둘은 거의 동시에 역소환되었다.
“돼, 됐다! 빨리 지원을……!”
“아니요! 다들 뭉치세요!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사라진 타이탄들 때문에 순간 다들 처리한 것으로 착각했지만, 나만은 모두가 방심하지 않도록 주의를 환기시켰다.
새로 합류한 크림슨 나이트들이 소환한 타이탄의 이름은 로얄 나이츠.
그렇다면 이미 소환된 상태였던 로얄 나이츠에서 튀어나올 놈들의 정체는…….
<크림슨 나이트>
역시나 제국 최강의 병력인 이놈들일 테니까!
“전원, 이 둘부터 먼저 처리하고 타이탄들을 잡겠습니다! 어쩌면 이 상태가 타이탄일 때보다 더 강할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한 명을 처치하려면 타이탄 모드까지 이중 처리해야만 하는 크림슨 나이트.
역시 황제 레이드는, 시작부터 우리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망할 놈의 난이도를 갖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