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342화 (342/350)

342화 저마다의 꿈 (1)

[연우: 저게 황제구나.....]

[산드로: 마족화로 변하면 걷잡을 수 없이 강해지는 놈입니다. 일단 한꺼번에 몰려나오지 않는다는 게 확인됐으니, 다들 조심히 내려가 주세요.]

처음 어그로가 끌려서 튀어나온 놈들 외에, 다른 크림슨 나이트들은 문 안쪽에 멀뚱히 서 있었다.

아마도 침소 안 지역이 일종의 ‘보스룸’ 판정을 받고 있는 모양.

그렇게 가만히 있는 놈들을 앞에 두고 침소 안을 자세히 살펴봤다.

고수들에겐 간혹 지형지물이 도움이 될 때도 많았고, 무엇보다 주변 환경을 정확히 파악해두는 편이 동선 실수를 줄이는 비결이기도 했으니까.

‘그렇더라도 조금은 이상한데……? 분명 저번엔 카이저 형님이 들어서니, 바로 뭐라고 말하며 반응했던 것 같은데.’

한데 우려였을까?

조금 늦긴 했지만 놈들이 익숙한 멘트를 말했다.

“신분과 목적을 밝혀라!”

이 모양 이 꼴이 된 상황에서도 변함없는 멘트.

카이저 형님과 라푼젤이 1층에서 함께 전투한 건 모른다는 듯 정말 NPC다운 반응이었다.

“……그럼 시작하지. 아이스 배리어! 체인 라이트닝!”

그리고 마침내 전부 다 내려간 것을 확인한 형님이 포문을 열었다.

아직 황제와 제법 떨어진 방문 근처, 도열하듯 서 있는 크림슨 나이트들을 향해 광역 마법을 날리는 것으로!

“암살 시도다!”

“폐하를 지켜라!”

“적을 즉각 사살하라!”

공격에 적중되자마자 순식간에 차징을 사용해 달려드는 크림슨 무리들.

하지만 형님은 이미 마법을 쏘자마자 방문 밖으로 나선 뒤였고.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냐! 너도 조심해라!”

나와 스치듯 교차하며 1층으로 내려가는 형님과 짧게 파이팅을 나눴다.

황제 레이드의 첫 관문은 크림슨 나이트들의 처리 여부.

원래 계획은 1층으로 최대한 끌어낼 수 있을 만큼 잡은 뒤, 결국 더는 못하게 되는 수준이 되면 타이탄들을 총동원해 침소에서 잡는 것이었다.

하지만 크림슨 나이트와 황제를 분리하게 되면, 비록 시간은 좀 더 걸릴지 몰라도 공략 난이도가 쉬워진다는 것을 새로이 알게 되었고.

그래서 우리가 수정한 전략은, 조금 전 방식과 비슷한 투 팀 동시 레이드였다.

‘이미 이 천상궁 안에 있는 크림슨은 절반 가까이 잡아 버렸으니까…… 분명 이 방법이 더 안전한 레이드가 될거야. 악령화가 된 크림슨 나이트는 하나하나가 황제와 맞먹을 만큼 아팠으니까!’

방금 전의 전투를 통해 놈들의 수준을 정확히 파악해낼 수 있었다.

놈들이 타이탄 모드로 변신하면 수는 많아도 생각보단 버틸 만하다는 것을.

그래서 침소에는 황제가 잔류하도록 잡아둘 소수만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1층에서 크림슨 나이트들을 처리하기로 했다.

우리 길드원은 비록 소수긴 해도 전원 타이탄을 갖고 있었기에, 각각 시간을 끌면서 크림슨을 한 놈씩 차근차근 잡아낼 작전을 세운 것이다.

물론 초반이 가장 위험하고 버티기 힘들 테니 나나 당당이에 필적할 만한 사람이 크림슨 처리팀에 필요했고.

따라서 로드급을 가진 카이저 형님이 선 어그로를 끌 수밖에 없었다.

“현중아!”

“그래!”

순식간에 황제만 남겨진 넓은 침소 안.

내 지시에 따라 현중이가 먼저 들어가자, 비로소 황제가 들어본 적 있는 멘트를 내뱉었다.

“오랜만의 암살자로군……. 그 하찮은 목숨은 곧 헛되이 사라지겠지만……!”

제자리서 일어나 서서히 휘장을 걷으며 모습을 드러낸 황제.

그런 녀석의 등 뒤에서, 검은 연기가 조금씩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도발의 살기!”

그러거나 말거나 놈을 향해 달려들며 어그로 스킬을 사용하는 현중이.

아직 황제의 어그로 패턴을 모르는 우리로선, 탱커인 현중이가 선공해보는 게 정석 플레이였고.

역시나 첫 접근이자 스킬까지 사용한 현중이에게 황제의 시선이 쏠렸다.

“하나 그런 시도가…… 내게 통할 듯싶으냐?”

마침내 시작된 황제의 맨손 공격.

현중이는 놈이 휘젓는 손을 최대한 피하면서, 공격보다는 도발 스킬을 통한 어그로 쌓기에 전념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현중이를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딱 30초만 더 지켜본 다음 진입할게!”

“옥케이!”

2층에 남은 황제 팀은 단 3명.

먼저 진입한 현중이와 뒤따른 축빙 형님, 그리고 나뿐이었다.

1층에선 각자 타이탄을 번갈아 소환하며 시간을 끄는 한편 딜러 역할을 해줄 사람들이 필요했기에, 이미 레벤다스를 사용한 현중이가 남았다.

그리고 힐러 한 명은 꼭 필요했기에 타연 최강의 사제인 축빙 형님도 남았다.

물론 공격해볼 엄두도 내기 힘든 패시브를 가진 놈인지라, 많고 적음이 별 의미가 없기는 했다.

‘그래도 첫 트라이라서…… 되도록 함께였다면 더 안정적이겠지만!’

하지만 우려했던 대로 황제는 최고 난이도 보스답게 쉽지 않은 놈이었다.

잠시 지켜본 결과, 안타깝게도 놈이 랜덤 타겟팅 몹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7신기를 이어받은 12영웅의 후계자인가? 그렇다면 차후 방해물로 성장하기 전에, 오늘 이 자리에서 숨통을 끊어놓아 주마!』

갑자기 돌변한 황제의 목소리.

지난번엔 내 공격과 동시에 변신했는데 이번은 내가 아니었다.

현중이가 아닌 룬 카투나를 착용 중인 축빙 형님에게 어그로가 끌리면서 놈의 마족화가 촉발된 것.

놈과 제법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었는데 벌어진 일이었다.

“마족화다! 현중아, 어서 거리 벌려!”

“이미 움직이고 계신다!”

황제의 전신은 곧 검은 기운에 완전히 뒤덮였고, 온몸 곳곳에 근육과 굵은 핏줄이 돋아났다.

신장도 2미터는 넘게 커져 버린 악귀 같은 모습에, 나는 느긋하게 패턴을 파악할 생각은 버리고 바로 침소로 진입했다.

이미 수차례 경고했던 대로 마족이 된 ‘암흑 황제’가 사용할 첫 스킬은 바로 광역 공격.

그것도 CC기였기 때문이다.

『서로를 증오하거라!』

[상태 이상 ‘혼란’에 저항합니다.]

나야 어차피 혼란 공격에 이뮨이었으니 상관없었다.

하지만 축빙 형님과 현중이 또한 피해는 전무했다.

유저가 혼란에 걸리면 근처 동료를 향해 평타 공격을 날리는데, 둘 다 곧장 반대 방향으로 거리를 벌렸기에 지속시간 동안 서로 아무 공격도 못한 것이다.

‘이래서 딱 3명만 남은 것이기도 하지!’

물론 크림슨 나이트 십여 명을 상대하는 것 또한 힘든 일이라 전원을 내려보낸 것도 있지만.

그래도 황제의 이 혼란 마법을 염두에 둔 부분이 가장 컸다.

이렇게 소수의 파티라면, 저 까다로운 CC기를 완전히 무력화시킬 수 있었으니까.

여하튼 놈은 도발 스킬을 쓰던 현중이 대신, 축빙 형님에게 어그로가 끌려 변신하게 되었고.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탱킹을 억지로 바꿀 차례였다.

암흑 기운으로 무장한 황제의 공격과 방어 스킬은, 나를 제외한 누구도 도무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이젠 내가 어그로 잡을게!”

“그래!”

뒷걸음질로 침소 밖으로 빠지는 현중이.

예상대로 보스룸 판정이 맞는 건지, 암흑 황제는 그에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가까이 온 나를 향해 대신 공격을 날려왔다.

[제피르 3세로부터 1,471의 마법 피해를 입었습니다.]

[제피르 3세로부터 1,226의 마법 피해를 입었습니다.]

……………………

역시나 무척 빠른 속도와 피하기 힘든 궤적으로 날아온 공격.

마치 쏜살같이 날아온 암흑 마법에 그대로 적중됐지만.

“하핫!”

순간 나는 새어 나오는 실소를 참아내지 못했다.

대략 1만 5천 정도 들어왔던 것 같은 예전의 공격이, 지금은 그 10% 이하 수준으로 급감했기 때문이었다.

‘진짜 디바인 갑옷 세트와 7신기의 해방자 업적, 그리고 속성 내성이 사기긴 개사기구나!’

온갖 S급 업적, 그리고 온몸을 디바인급으로 도배하다시피 한 장비들.

앞으로 나와 같은 캐릭이 또 나타나려면 몇 년이나 더 흘러야 할지 알 수 없는 수준이었다.

어쨌든 그 덕에 난 비록 암 속성 하나에 불과하지만, 현시점에서 내성 리미트 수치인 95%를 달성하게 되었고.

그건 이 마족이 된 황제에게만큼은 ‘밸런싱 파괴’급의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마족으로 변하면 뭐라도 될 줄 알았지? 널 잡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한 지는 모르고?”

그렇게 공격을 맞으면서 황제에게 다가가 검을 휘두르자, 역시나 눈에 익은 검은 기운이 튕겨 나와 반사 데미지를 입혔다.

[암흑 기운으로 인해 852의 반사 피해를 입었습니다.]

[암흑 기운으로 인해 994의 반사 피해를 입었습니다.]

……………………

이 또한 지난번 1만이 넘게 들어왔던 데미지와는 말도 안 될 정도로 감소된 수준.

갖은 고생을 하며 여러 난관들을 헤쳐온 보람이 물씬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이러면 뭐 힐을 할 필요도 없네.”

“그러게요. 저 자식 체력이 도통 줄어들질 않는데요? 계속 풀피 수준이잖아요!”

파티 상태라 내 체력 수치를 볼 수 있는 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열하게 전투했던 크림슨 나이트들보다, 오히려 진(眞) 보스인 황제의 데미지가 훨씬 더 약하게 들어오자 기가 찬 듯싶었다.

“그렇다고 방심하면 안 돼요! 전체 과정으로 치면 이제 막 시작이나 다름없으니까요!”

“그야 물론이지! 내가 동생들한테 얼마나 강조한 게 그건데, 설마 방심했겠어? 드로 너야말로 우리는 신경 쓰지 말고 황제에게만 집중해라. 갑자기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 놈이니까!”

“네, 형님!”

하지만 걱정과 달리 놈의 패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무리 현존하는 최강의 보스 몹이라 한들, 초반 페이즈만큼은 예행연습을 통해 충분히 준비해왔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필드 보스급인 부하 몹들을 곁에 두고 있었고, 막강한 암흑 마법과 반사 데미지를 입히는 무적이나 다름없는 패턴.

여기서 무언가가 더 추가된다면 그건 결코 ‘초반’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무난히 다음 페이즈인 75% 구간까지 체력을 깎아낼 수 있었다.

‘확실히 신검은 신검이네. 완전 상성 관계라 그런지 혼자 딜을 하는데도 팍팍 깎여 나가잖아!’

타연 최고의 공격력을 자랑하는 나지만, 그 외에도 상성이 크게 한몫하고 있었다.

마족들의 천적이나 다름없는 신검, ‘룬 페이토나’.

그리고 보정이 거의 적용되지 않을 정도로, 타연에서 가장 높은 랭킹 1위의 레벨.

그와 동시에 하필이면 이중 직업으로 ‘악마 사냥꾼’을 갖고 있는 나였기에, 여느 십수 명의 랭커와 견줄만한 데미지를 혼자서 넣고 있었다.

『7신기의 후계자여, 정녕 그 무기로 내게 끝까지 대항하고자 하느냐! 우리 일족이 천년의 저주에 시달렸던 이유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지언데!』

그리고 어느 순간, 고성을 내지른 황제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붉었던 안광은 마치 불꽃처럼 넘실댔고, 활활 피어오르던 마기는 되레 몸으로 흡수됐다.

그리곤 뜻 모를 검은 문자들이 마치 문신처럼 황제의 몸 위로 알알이 새겨졌다.

“자, 다음 페이즈입니다!”

짧았던 갈무리 과정이 끝난 후, 다시 고개를 든 황제.

녀석은 잠시 그 변신을 지켜보기 위해 거리를 벌린 내게 뭐라 읊조렸고.

이윽고 녀석의 두 손 가득 검은 마기가 생성되더니, 나를 향해 쏘아졌다.

『무참히 소멸되거라!』

마치 검은 매직 미사일같이 속사포로 날아오는 마기들.

얼핏 봐도 그완 비교할 수조차 없는 막대한 데미지가 느껴지는 공격들이었지만, 오히려 나는 반갑기 그지없었다.

이번 레이드를 준비하며 수도 없이 시뮬레이션해봤던 황제의 공격 방식들.

그중 이건 가장 베스트에 속하는 패턴이었기 때문이다.

“옳거니!”

휙! 휙휙!

전방을 향해 제자리에서 휘둘러지는 검.

이도류라 양손에 검을 들고 있었지만 오직 왼손에 든 마신검만이 허공을 갈랐고.

[암 속성 마법 공격을 흡수하여 24,556의 체력을 회복했습니다.]

[암 속성 마법 공격을 흡수하여 21,012의 체력을 회복했습니다.]

……………………

검신에 적중된 검은 마기들은 그대로 흡수되어 사라졌다.

피해는커녕 막대한 체력 회복 효과로 치환되어서!

“와! 조용하려고 했는데 이건 진짜 말을 안 할 수가 없네! 흡수되는 체력은 내성이 적용 안 된 수치잖아!”

“왜? 얼마나 차는데? 풀피라서 안 보여!”

“말도 마라. 2만도 넘게 차고 있다!”

“뭐어?”

그런 내 모습이 어찌나 여유로워 보였는지 현중이가 물어올 정도였고.

내 대답을 듣고는 까무러치듯 놀랐다.

풀 HP가 10만도 안 되는데 한방 한방에 이 정도 체력이 차고 있다니?

놈이 수십 개나 날려대는 마법 공격은, 오히려 내겐 최고의 힐링 스킬이 돼버렸다.

“우리가 괜히 겁먹었던 거 아니냐? 황제 레이드는 오히려 쉽게 끝날 수도 있는 거 아냐?”

“그랬으면 좋겠다만……. 아무튼 다시 공격 시작한다? 대충 이번 페이즈도 파악된 것 같으니!”

황제의 원거리 공격은 지난 페이즈와 달리 수도 많고 강력한 데미지를 지녔지만, 대신 속도가 조금 느렸다.

그래서 맞서 달려가면서도 쉽게 막아낼 수 있었고, 그렇게 녀석은 다시금 내게 공격 거리를 허용했다.

퍽! 퍼퍽!

몇몇 자버프만 건 공격임에도 녀석의 체력바가 빠르게 줄어드는 모습이 보였고.

황제는 새로운 광역 마법 등을 사용하며 공격해왔지만, 어차피 3명뿐인 데다 나머지는 침소 밖에 있을 정도로 거리를 벌리고 있었기에 별 피해는 주지 못했다.

오직 나만 녀석의 공격을 오롯이 감내해야 했는데…….

사용하는 마법이라곤 전부 암 속성이었기에 힐이 없어도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응?’

그러던 어느 순간.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신나게 공격하느라 뒤늦게 눈치챘는데, 황제의 공격이 어딘가 건성건성인 것처럼 느껴진 것.

정확히 나를 향해 휘둘러지던 공격이 허공을 가른다거나, 날아오던 타이밍에 마법이 시전되지 않았다.

그에 반사적으로 황제의 얼굴을 올려다보니, 놈의 눈은 내가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 뭐지? 이 자식?’

그 기괴한 모습에 놀란 내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

결국엔 공격마저 멈춘 황제가 나를 스치듯 지나쳐 이동했다.

침소 밖에서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축빙 형님과 현중이를 향해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