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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344화 (344/350)

344화 저마다의 꿈 (3)

“뭐야, 드로야?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 건데?”

“저, 저도 모르겠어요! 이게 무슨……!”

이라리움으로부터 들려온 당혹스러운 목소리.

하나 당황스럽기는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틀림없이 범인을 특정지을 수 있는 비장의 한 수라고 생각했는데…… 내 부름에 둘 다 나타나다니?

여러 상황과 변수를 가정하고 준비했지만, 이런 경우는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산드로 님? 대체 저희를 왜 호출했느냐고 물었습니다만? 그것도 한 명도 아닌 둘을 동시에 부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뭐라 답할 수도 없을 만큼 놀란 상태였지만, 계속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 사이 이라리움의 체력이 10% 수준까지 떨어졌기 때문.

나는 황제를 향한 공격을 재개하며 소리쳤다.

“두 분, 모두 이 황제를 자세히 살펴봐 주세요! 이건 절대 몬스터의 움직임이 아닙니다! 운영자만 갖고 있다는 빙의 스킬이든 버그든 간에, 누군가가 레이드에 불법적으로 개입했다고요!”

워낙 한정된 극비 정보라 간과하고 있었다.

빙의라는 마법, 혹은 스킬이 운영자만 사용할 수 있는 거라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방적으로 테오시스를 통해서 알게 된 정보.

사실은 그보다 다수가 사용할 수 있었다면, 나로선 알 도리가 없었고.

어쩌면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이중 함정을 파놓은 건지도 몰랐다.

“이 정도면 확인하셨죠? 그러면 얼른 황제를 멈추든 재우든 해서 진정시켜봐요! 이러다가 저희 파티원들 전부 죽습니다!”

여전히 공격 중인 나를 무시한 채 이라리움 공격에만 매진하는 황제.

흡사 몬스터같이 행동하고 있지만 패턴은 비정상적이었기에, 둘 중 누구라도 조치를 취해 줄 것으로 생각했다.

“…….”

“이오네스 님? 테오시스 님?”

하지만 초조하기만 한 나의 바람과 달리, 냉정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만 돌아올 뿐이었다.

“여전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혹시 피해망상 같은 걸 앓고 계십니까?”

“네?”

여전히 직설적인 말투의 이오네스.

“산드로 님.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빙의 스킬은 정확히 3명의 운영자에게만 쓸 수 있답니다. 한데 젠티스 님은 절대 접속하실 수 없는 상황이고…… 나머지인 저희 둘이 이렇게 지켜보고 있는데 누가 저 황제 안에 빙의했단 말씀이세요?”

“뭐라…… 고요?”

그리고 어이없다는 듯 되묻는 테오시스.

반전의 반전.

연속된 누적 데미지에 도무지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지만.

‘정신 차려 강지환! 이대로 넋 놨다간 다 죽는다!’

그래도 어떻게든 정신줄을 붙잡아야만 했다.

어찌됐건 전 길드원들이 목숨을 건 채 여기까지 들어왔고.

난 그들을 이곳에 이끈 장본인이자 책임자였으니까!

“아냐, 지금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보라면 한 번만이라도 좀 제대로 봐 보세요! 저게 진짜 황제가 맞는지, 당신들이 직접 만들었으니까 알아볼 수 있을 거 아니에요!”

기대했던 운영자들의 대처나 도움은 없었지만, 나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씨앙! 뭐가 됐건 간에 일단 끝까지 잡아본다!’

비정상적인 플레이 패턴.

그렇더라도 본질만큼은 바뀔 수 없다.

즉 다시 말해, 황제 안에 누군가 들어가 레이드 난이도가 급증했더라도 ‘황제’ 본연의 스펙이 달라지는 건 아니었고.

공격을 받으면 피가 닳고 마는, 시스템의 영향 하에 놓인 ‘몬스터’란 사실은 변할 수 없었다!

[태세 전환!]

[난도질!]

“죽어! 죽어! 이 비겁한 자식아!”

푸푸푸푹!

[암흑 기운으로 인해 906의 반사 피해를 입었습니다.]

[암흑 기운으로 인해 1,022의 반사 피해를 입었습니다.]

……………………

나는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검을 휘둘렀고.

그에 맞춰 반사 피해 로그 기록들도 쉴 새 없이 올라갔다.

피흡이라곤 비록 몇 프로 되지 않는 루비 반지가 전부였지만, 막강한 공격력으로 인해 HP는 전부 문제없이 충당되었다.

『결국 나를 여기까…… 크흑?』

그러던 와중, 갑자기 황제가 말을 내뱉다 더듬었다.

급격히 줄어들던 녀석의 체력이 막 50% 이하로 떨어지는 순간 나온 소리였다.

‘방금 뭐지?’

그리고 다음 순간, 녀석의 외형이 다시 한번 변하기 시작했다.

다음 페이즈로 변환된 모양.

전신을 뒤덮고 있던 검은 글자들은 번져 온몸이 시커멓게 물들었고, 이마에선 두 개의 뿔이 솟아났다.

쿠구궁!

“뭐, 뭐야? 갑자기 땅이 왜!”

그리고 들려온 축빙 형님의 다급한 목소리.

돌연 바닥이 돌연 요란하기 흔들려 중심을 잡기 힘들었고, 심지어 이라리움은 꽈당하고 넘어지기까지 했다.

놈이 변신하는 도중 마법이라도 쓴 건가?

싶은 순간, 나는 이 사단의 원인을 눈치채게 됐다.

“설마 천상궁이…… 지금 떠오르고 있는 거야?”

침소에 있는 창문과 그 밖으로 보이던 풍경들.

녹음이 우거졌던 바깥이었는데, 창밖으로 나뭇가지 하나 보이지 않게 변한 것이다.

그리고 이 변화는 나와 축빙 형님만 당혹시킨 게 아니었다.

“……응?”

이 자리에 함께 있던 두 운영자 중 한 명이, 뭔가 이상하다는 듯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군요. 아무리 황제의 어그로 패턴이 랜덤 타겟이더라도…… 저렇게 공격을 피하는 모션은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천상궁이 부유하는 페이즈로 돌입할 땐, 황제에게 준비된 멘트가 있었을 텐데요?”

“드디어 알아보시네요! 뭔가 이상하죠, 이오네스 님!”

늘 끝까지 최선을 다하려는 내 노력이 빛을 본 걸까?

거침없이 이루어진 내 공격에 황제의 피가 급속도로 줄어들자, 어느 순간 놈은 조금씩 회피 동작을 취해버린 것.

아직 체력도 많았으니 계속 황제인 척 연기했다면 당분간은 문제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 안에 들어가 있는 게 ‘유저’였기에 어색함이 드러나고 말았다.

놈은 빙의에 익숙하지 않은 듯 마치 몬스터인 것처럼 연기하는 게 어설펐을뿐더러, 내게 집중 공격을 받게 되자 반사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고레벨이면 고레벨일수록 수년간 플레이하면서 다져지게 된, 자신을 향한 공격에 대한 회피 본능이 무심코 발현된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쐐기를 박듯, 황제의 피를 50% 구간 밑까지 떨어뜨린 것이 기적을 일으켰다.

황제 안에 들어가 있는 게 유저였기에, 페이즈 환경 변화와는 별개로 준비된 멘트를 도중에 캔슬시킨 것이다.

“슬립!”

“이사님!”

그리고 마침내, 불같던 황제의 공격이 멈췄다.

이오네스가 줄곧 망토 안에 감춰져 있던 손을 들어 황제를 향해 마법을 사용한 것.

역시나 세계관 내 신이나 다름없는 운영자답게, 놈을 순식간에 잠재워버리는 데 성공했다.

“애리 이사님……. 제게 왜 소리치신 거죠?”

“지금 뭐하시는 거세요? 유저의 플레이에 직접 간섭하다니…… 이건 약관에 어긋난 일일뿐더러, 그분의 유지에도 어긋나는 짓입니다!”

“유지라니…… 아직 돌아가시지도 않은 분을 두고 말이 너무 심하군요. 그리고 당신 또한 느끼지 못했을 리 없는데, 왜 그러십니까? 황제의 움직임과 행동……. 미세하고 미묘하긴 하지만, 우리가 수없이 수정하고 지켜봐 온 알고리즘과 상당 부분 어긋났다는 것을요.”

“…….”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서 있는 테오시스.

잠시 조용히 황제와 이오네스, 그리고 나를 번갈아 보던 그녀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되지만은 않기를 빌었는데……. 정말 산드로 당신은 언제나 그랬듯, 제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군요.”

“……네?”

“일이 이렇게 됐으니…… 이젠 최악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단 말이에요. 이사님에게 들키게 된 이상, 더는 돌이킬 수 없게 됐으니까요.”

“성애리! 지금 대체 무슨 말을……!”

뭔가 사람이 바뀌기라도 한 듯 돌변한 그녀.

그 심상찮은 모습에 이오네스가 다가갔으나, 갑자기 그 자리에서 동상처럼 굳어버렸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가기로 한듯한 모습.

그리곤 잠시 후 홀연히 사라졌다.

미처 하던 말을 끝마치지도 못한 채 이곳에 언제 나타났었냐는 듯 흔적도 없이!

“이오네스 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테오시스 님?”

“…….”

그리고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녀.

돌아가는 상황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해 그녀를 향해 물었지만, 그녀는 엉뚱한 말로 답할 뿐이었다.

“참 빠르시네요. 연락을 주자마자 1분도 안 돼서 손을 쓰다니…….”

“……네?”

“하지만 이런 짓을 벌인 이상, 우리에겐 변명할 여지조차 없다는 것도 잘 알고 하신 일이죠?”

“대체 그게 무슨…….”

계속 뜻 모를 소리를 해대는 테오시스.

그녀에게 재차 되물었지만, 놀랍게도 내게 말을 하던 것이 아니었다.

『상관없다. 어차피 오늘 이후로, 더 이상 내게 타연에 대한 미련 따위는 털끝만큼도 남지 않을 테니까.』

“역시 당신답네요. 이제는 그 성격에 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나 배려가 없는 줄은 미처 몰랐어요. 아! 연기가 그렇게나 형편없는 지도요.”

『크큭! 하긴 당신의 연기력 하나만큼은 감탄스러울 지경이었지. 인정한다, 테오시스. 아니, 성애리 이사!』

이오네스가 건 슬립 마법에서 풀려난 황제가 갑자기 말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너무도 놀란 나머지, 순간 입도 뻥긋하지 못한 채 듣고만 있었다.

이들의 대화 내용으로 보아 이 황제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은…….

“박태후!!”

다름 아닌 나의 대적자, 다리우스였기 때문이었다.

『이제야 눈치챈 건가? 정말 내 연기가 들키지만 않았다면 끝까지 몰랐을 수도 있겠는데?』

“지금 농담이 나오나요? 얼른 처리나 하시죠. 이럴 시간 없으니까.”

『어차피 궁전도 떠오르고 있고 페이즈 변환도 이뤄졌는데 시간이 없긴 왜 없어? 전부 까발려진 마당인데 당신도 그놈의 착한 척은 이제 그만하지? 왜, 유저 앞에서 그 알량한 가면이 벗겨지니 창피하나? 그것도 아는 사람 앞이라서?』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둘을 보며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지만.

나는 어떻게든 마음을 가다듬고 침착하게 귓속말부터 보냈다.

(나: 형님, 이 틈에 내려가셔서 길드원들을 도우면서 이 사실도 알려 주세요.)

(축복받은무빙: 어? 어어... 알겠다. 최대한 빨리 정리하고 합류하마!)

그리고 형님은 곧바로 체력이 2, 3%도 남지 않은 이라리움을 역소환시킨 뒤 침소 방문을 나서 1층으로 내려갔다.

예상대로 다리우스나 테오시스는 그 모습을 보고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도망쳐봤자 어딜 갈 수 있다고 발악하는 건지……. 어차피 천상궁이 떠오른 이상 결계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데.』

“당신도 내 덕분에나 알고 있는 사실을, 그들이 지금 알 리 없잖아요.”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 하지? 자꾸 신경 거슬리게 굴면 당신의 접속도 끊어버리는 수가 있으니까. 내가 배혁진에게만 보내놨을 것 같아?』

“…….”

태성.

정확히 말하면 다리우스가 운영자 중 한 명의 도움을 받고 있을 거라고 늘 의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런 상황은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다리우스 또한 운영자와 마찬가지로 ‘빙의’를 사용할 수 있었다니?

애초에 이런 게 가능했다면 그동안 내게 당했을 리 없을 텐데?

“너 이 자식, 어떻게 그 안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거지? 그리고 이오네스의 접속은…… 강제로 끊어버린 거야?”

『그래. 단독 주택에 홀로 살고 있는 놈이라 그 집 한 채 전기를 끊어버리는 것 따윈 일도 아니거든. 물론 그 지시를 정확한 타이밍에 내리려면, 저기 서 있는 테오시스의 귓속말이 꼭 필요하긴 했지만.』

“실망입니다, 테오시스 님……. 그렇게나 자신은 아니라고 믿어달라시더니…… 결국 다리우스와 한통속이었군요?”

“…….”

“박태후 너도 참 문제다. 지금까지 그 어떤 구린 수작을 부렸든 간에 들키지는 않고 있었는데…… 이런 짓을 저질렀으니 사실상 끝난 거 아냐? 대체 어떻게 수습하려고 일을 이렇게 크게 벌인 건데?”

『크하핫! 상관없다. 어차피 이따위 게임은 오늘부로 접을 거니까. 하지만 접을 때 접더라도 곱게는 못 해주지. 네가 가져간 내 신검. 그리고 원래는 전부 내 것이 됐을 너희 길드원들의 디바인 템들! 그걸 이 자리에서 고스란히 토해내게 만들어 주마. 앞으로 너희가, 이 타연 안에서 다시는 설칠 수 없도록!』

크기가 근 3미터는 될 정도로 커져 버린 황제.

악마와도 같은 모습을 한 녀석의 입에서, 마찬가지로 더럽고 음습하기 짝이 없는 내용의 말이 줄줄 새어 나왔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

한편으론 녀석의 시궁창 같은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연민의 감정이 들기도 했다.

그 찬란한 빛의 기사와도 같던 다리우스가 이리 된 이유는, 따지고 보면 내 탓이 컸으니까.

“그렇게나 나를 죽이고 몰락시키고 싶었냐? 이런 짓을 벌여서라도?”

『그래! 그게 뭐 어쨌단 말이냐! 너도 나를 죽이고 나의 태성을 해체시키겠다고 공공연히 말해왔잖아! 너나 나나 방법만 다르지 똑같은 놈이지 않냐!』

“너 말야…… 예전엔 타연 속에서 황제가 되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인터뷰 때마다 분명히 그게 목표라고 종종 말했던 것 같은데?”

『……너 따위 때문에 포기한 지 오래다.』

“아니야. 딱 너다운 방법으로 그 꿈을 이루긴 했네. 항상 정정당당한 방법보다는 비겁한 수를 썼던 그 방식 그대로!”

『뭐라 지껄이고 있는 거냐?』

“지금 네 모습을 봐. 비록 악마 같은 모습이긴 해도 황제긴 ‘황제’잖아. 왜? 늘 온갖 편법으로 목표를 이루던 것에는 둔감하더니…… 꼴에 그 모습은 마음에 안 드나 봐? 그렇게 인정 못 하겠단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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