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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348화 (348/350)

348화 득템왕 (2)

쾅! 쾅!

연이어 터지는 폭음.

광역 마법의 잔재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와 아지랑이들.

극도로 혼란스러운 전장이었지만, 내 눈은 오직 황제의 움직임만 쫓았고.

온갖 자버프들이 단 1초도 낭비되지 않도록 최고의 공격력을 유지하며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너 이 새끼 다리우스! 가만히 안 둔다!”

[라푼젤이 사망했습니다.]

놈의 학살을 멈추지는 못했다.

내 각오와 외침이 무색하게도, 압도적인 녀석의 공격력을 버틸 수 있는 유저가 없었기 때문.

각각 최대한 끝자락으로 흩어져 있었지만, 한 명 한 명 집요하게 노리는 녀석의 공격을 뿌리칠 순 없었다.

『말로만, 카이저?』

AI였다면 어떻게든 시간을 끌 방법이라도 있었겠지만, 놈은 자신이 가진 강점을 잘 알고 있었고.

아이스 배리어를 활용해 막아서던 카이저 형님을 뿌리치고는, 라푼젤을 죽여버렸다.

하지만 만족을 모르는 녀석은 곧바로 축빙 형님을 향해 이동했고.

“드로 형님! 꼭 해낼 거라고 믿습니다!”

[라스트챤스가 사망했습니다.]

그건 훼이크였는지 곁에 있던 라챤이가 놈의 단일 타겟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끝까지 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 채.

“그만 좀 해, 이 자식아!”

멈추지 않는 황제의 폭주.

그리고 그 뒤에 딱 달라붙어 공격하는 나.

그러나 마지막 페이즈로 접어들며 뻥튀기된 공격력만큼 방어력도 상승했는지.

벌써 셋이나 죽는 동안 쉬지 않고 공격했는데, 놈의 체력을 고작 5%밖에 깎아내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룬 카투나 덕분에 파티원 대부분의 반사 데미지를 커버하던 축빙 형님까지 죽게 된다면?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지만, 나의 각오와 달리 레이드는 실패로 끝나버릴 확률이 높았다.

“형님! 제게 영혼 연결을 걸어요!”

“어? 그래!”

그래서 임기응변으로 형님과 데미지를 공유할 방도를 마련했고.

대탐이 또한 형님께 자신의 부츠를 넘기면서 비행하도록 도왔지만.

[대탐험시대가 사망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대신 죽어버리고 말았다.

『정말 귀찮기 짝이 없는 놈들이구나! 그리 악착같이 버텨봤자 이길 수 있을 것 같냐!』

“왜? 다시 입 터는 걸 보니 후달리나 보지?”

『나한테 눈이 돌아서 주변을 살펴보는 걸 잊어버렸구나. 독 안에 든 쥐 꼴인 줄도 모르고!』

갑작스러운 녀석의 말에 주변을 둘러봤다.

벽과 천정이 날아가 온통 푸른 하늘밖에 보이지 않는 풍경.

하나 아직까지 천상궁을 감싸고 있는 결계 밖에 무언가가 점점이 다가오는 것이 흐릿하게 보였다.

“……설마 그리폰?”

『크하핫! 이제야 눈치챘구나! 멍청한 새끼! 천상궁이 괜히 떠오른 줄 아냐!』

그것들의 정체는 수백 마리가 넘는 제국의 그리폰 라이더들이었다.

마족이 되긴 했어도 어찌 됐건 황제는 황제.

마지막 페이즈에는 제국 황제의 위엄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규모 부하 몹 소환 패턴이 남아 있었다.

“이럴 수가…….”

“진짜 답도 없는 보스였구나…….”

전의를 상실케 하는 광경.

치열하게 치고받던 전장이 이 사실에 정적에 빠져버렸다.

『생각이 바뀌었다. 7신기를 가진 놈들은 최후에 죽여주지. 서로 템을 주워주는 짓은 절대 하지 못하게!』

그리고 축빙 형님을 공격하던 녀석은 타겟을 바꿨다.

“이런!”

[무적살라딘이 사망했습니다.]

먼저 광역 힐을 받으면서 간간이 딜을 넣고 있던 무살 형님을 공격해 죽였고.

“오빠! 끝까지 포기하지 마세……!”

[연우로부터 블러드 웨폰을 부여받았습니다.]

[연우가 사망했습니다.]

그 직후 마법을 연발로 쏘아내 근처에 있던 연우 또한 죽여버렸다.

끝까지 내게 버프를 넣어주고는 잿빛 먼지로 변한 그녀.

그 모습에 분이나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하필이면 마지막에 부하 소환 패턴이 남았을 줄이야! 처음부터 크림슨 나이트들이 보호하고 있어서 생각도 못 했어!’

으드득!

하지만 나는 이를 악문 채 놈을 향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연우가 걸어준 버프를 헛되이 낭비할 수 없었기 때문에.

“폐하를 지켜라!”

“폐하를 지켜라!”

하지만 결국, 그리폰 라이더들이 하나둘씩 결계 안으로 진입했다.

바닥만 남아있는 천상궁이었던 터라 전장에 난입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이렇게 끝나는 건가…….”

허탈함에 단검을 든 손을 떨구며 읊조리는 당당이.

이 절망적인 광경은 타연 최고의 유저마저도 전의를 상실케 했다.

한데 그 순간.

비현실적인 일이 벌어졌다.

아니, 기적이 일어났다.

슈우우우-

어디선가 바람을 가르는 파공성이 들리는가 싶더니.

쿵!

하늘에서 결계를 뚫고 무언가가 우리가 서 있는 바닥으로 굉음을 내며 착지했다.

그리고 쿵, 쿵, 쿠쿵!

뒤따라 수십 개의 거대한 쇠덩이들이 마치 운석이 떨어지는 것처럼 천상궁을 뒤흔들었다.

그 정체는 불사조 모양의 길드 마크를 단 타이탄들.

바로 피닉스의 지원군들이었다.

[지옥불: 몇 명 죽은 걸 봤다만.... 시간 맞춰 온 거 맞지?]

[산드로: 형님!]

채팅창을 통해 전장의 상황은 계속 공유하고 있었고, 그래서 테오시스의 로그아웃도 지옥불 형님이 도운 것이긴 했지만.

마지막 페이즈에 접어들면서 급박해진 터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진행됐던 천상궁의 부유.

그 모습을 황궁에서 대기 중이던 지옥불 형님이 못 보셨을 리 없고, 한 치도 망설이지 않고 과감한 결단을 내리신 모양이었다.

죽든 살든 간에, 전 병력을 이끌고 우리가 전투 중인 천상궁을 향해 진격하기로!

[지옥불: 제국군은 우리가 철저히 막으마! 너희는 어서 황제를 처리해!]

[카이저: 역시 지옥불 님, 완벽한 타이밍이었습니다! 드로야, 이제 시간이 됐다. 놈과의 기나긴 전투를 완전히 끝내버릴!]

[산드로: 네, 형님들!]

로파티엘, 드래곤 나이츠, 리버스 나이츠, 그리고 프리덤 나이츠.

피닉스 길드 외에도 피스메이커, 화랑, 넥스트, 최강흑풍단 등등 라인 내 모든 타이탄들이 빠짐없이 총집결했고.

그들은 황제를 가운데 두고 빙 두르듯 포위했다.

그리고 안이 아닌 밖을 바라보며, 계속 난입하는 제국의 그리폰들이 한 기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고.

덕분에 황제와 우리는, 마치 벽이 타이탄들로 이루어진 원형 경기장 안에 갇힌 모양새가 되었다.

그런 피닉스 군의 참전에 잠시 화색을 띠던 다리우스는 말을 잃었다.

결계 밖의 동태를 살펴보니 태성의 병력들도 뒤따라 날아온 듯싶었는데, 공중전을 치르느라 제대로 접근조차 못 하고 있었다.

‘저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얼핏 봐도 수천 기가 넘어가는 페가수스들의 향연.

언제 나타났는지도 모르는 사이, 라인 내 모든 라이더들이 우리를 지키기 위해 천상궁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이 버러지 같은 놈들……. 벌레들답게 많이도 모였구나!』

“그 분야의 최고봉이 원래 너희 태성 아니었냐?”

살아남은 동료들은 전부 타이탄 곁으로 몸을 숨겼다.

타이탄들이란 방벽이 생긴 터라, 살아남은 당당이와 축빙 형님은 이제 내게 안전하게 버프를 넣어줄 수 있었고.

덕분에 타이탄들이 만들어준 경기장 안에 남겨진 건 녀석과 나 단둘뿐이었다.

『또 기고만장해져서 잘도 지껄이는군! 어차피 너만 죽이고 나면 전부 허수아비나 마찬가지지. 마지막까지 남겨두려 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조금 일찍 죽여주마!』

“바라던 바다!”

이제 녀석의 남은 체력은 15% 남짓.

많은 건 아니었찌만 방어력까지 높아진 걸 감안하면 승패를 장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질 순 없었다.

이미 많은 동료들이 희생을 치르고 죽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이른 시간에 접속해 나와 다리우스의 승부를 위해 싸우고 있었다.

내가 황제가 되어야만 지금껏 자행됐던 태성의 횡포를 막을 수 있었다.

건방지게도 내 앞에서 꿈을 운운했던 녀석에게 통한의 복수를 안겨주고 싶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놈을 이겨야만 하는 이유는 끝도 없이 떠올랐다.

그래서 난 절대 질 수 없었다.

휘휙! 휙! 휙!

암흑 마법은 자제한 채 최대한 양손을 휘두르는 근접 공격들.

속도도 빨라지고 커진 몸체만큼 리치도 길어져 피하기가 만만치 않자, 난 새로 얻은 스킬을 사용했다.

[그림자 지대!]

그러자 그림자 밟기의 쿨타임이 1초로 줄어들었고.

난 놈의 공격을 그밟으로 피하는 한편 계속해서 후방 공격을 먹였다.

『뭐냐, 이 스킬은!』

타연에 처음 등장하는 스킬인지라 녀석은 당연히 크게 당황했고.

나는 그 틈에 착용 중이던 반지를 교체했다.

‘이걸 차는 건 오랜만이네.’

축빙 형님의 힐링과 블러드 웨폰 버프만으로 체력 관리가 되고 있어서, 마나 흡수를 위해 간만에 +5 사파이어 반지를 꺼내 착용한 것.

그 직후 나는 양 손목을 부딪쳐 단테리오의 팔찌를 발동시켰다.

[스킬 가속 상태가 되어 60초 동안 모든 스킬의 사용 대기시간이 10%로 줄어듭니다.]

“이제 마지막 1분 안에 이 자식을 잡아보겠습니다!”

아무리 많은 동료들이 왔다 한들, 이곳은 제국 황궁의 한복판.

시간을 끌면 끌수록, 어떻게 될지 몰랐고 불리했다.

그래서 난 전력을 다해 몰아붙이는 걸 선택했고.

[그림자 지대!]

일단 10배로 빠르게 차오르는 쿨타임을 활용해, 놈의 주변에 그림자 지대를 끊임없이 생성했다.

픽! 픽! 픽! 픽!

1초마다 이루어지는 그림자 밟기는 놈의 근접 공격을 무용케 했고.

그에 맞춰서 시점 변화 또한 정신없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어지러움을 느끼지 못했다.

『다아아 크으으 니이스으으……』

전신의 아드레날린이 전부 뿜어져 나온 듯, 오랜만에 시간이 느려진 것만 같은 상태에 빠져있었기 때문.

1초가 마치 10초처럼 느리게 느껴지는 이상한 감각이었지만, 덕분에 나는 최적의 동선과 DPS를 뽑아낼 수 있었다!

[영혼 수확!]

[보유한 6개의 영혼을 방출시켜 10초 동안 공격력과 방어력이 18% 상승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녀석의 체력이 5% 미만으로 떨어지자.

아껴뒀던 마지막 자버프까지 남김없이 사용해 최선에 최선을 보탰다.

『다크니스 소울!』

한데 그 순간, 놈이 생각지 못한 마지막 반격을 날렸다.

죽기 직전에만 사용 가능한 스킬인지, 아니면 아껴두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처음 보는 마법을 사용한 것.

피사체 형태를 띤 것도 아닌지라 나는 마신검으로 흡수하지도 못한 채 그대로 맞아줄 수밖에 없었다.

[제피르 3세로부터 82,226의 마법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런 미친!’

암 속성 내성이 95%인 내가 이 정도라니?

한순간에 5천 이하로 쭉 떨어진 HP.

만약 영혼 수확을 쓰지 않았더라면 이 한 방에 죽어버렸을 엄청난 마법.

가히 ‘즉사 스킬’이라고 부를 만한 공격이었다.

[불사조의 심장을 복용하여 체력과 마력의 50%를 즉각 회복합니다.]

퍽!

그리고 너무 놀란 나머지 놈에게 근접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지만.

다행히 난 반사적으로 영단을 복용해 체력을 회복한 후였다.

『아니, 이것까지 버텨냈다고? 대체 넌……!』

“진짜 끝까지 방심 못 할 놈이네. 이제 그만 죽어라! 태세 전환! 난도질!”

하지만 최선을 다해 이번 레이드를 준비했던 것이 빛을 발했고.

『다크니스 소울!』

다시 한번 놈이 나를 향해 즉사 스킬을 시전했지만.

이번엔 침착하게 세리온의 숭고에 있는 마법 흡수를 사용해 무효화시켰다.

그러는 사이.

마침내 놈의 체력바에서 피가 보이지 않는 순간에 다다랐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결국 또 네게 패배한다니…….』

그렇게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다리우스로부터 회한의 한마디가 흘러나왔고.

“야 인마, 박태후? 죽을 때 죽더라도 말은 똑바로 해!”

『……?』

“넌 나한테 지는 게 아냐. 우리 버닝스타, 그리고 피닉스 라인한테 진 거지.”

난 그렇게 우리의 승리를 선언하며 놈에게 마지막 공격을 휘둘렀다.

『크윽!』

그리고 허물어지듯 쓰러진 황제의 거대한 몸체는.

마치 검은 불꽃처럼 타오르더니 천천히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위로 수많은 아이템들이 드랍됐지만.

<제국 황제의 왕관>

나는 그중 가장 눈에 띄는 한 아이템을 제일 먼저 주워들었다.

[마왕 재림을 꿈꾸던 현 제국의 황제, ‘제피르 3세’의 야욕이 저지되었습니다.]

[가이라 제국과 프리덤 국의 전쟁이 프리덤 국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퀘스트 ‘황제 도전’을 클리어했습니다.]

[업적 ‘황제 등극’을 획득했습니다.]

[업적 ‘세상을 구한 영웅’을 획득했습니다.]

……………………

띠링! 띠링! 띠링!

동시에 내 귓가로 미친 듯이 울리는 효과음들.

수많은 메시지들이 정신없이 올라왔고, 그 한 줄 한 줄 모두 평범한 내용 따윈 없었지만.

그걸 읽고 있을 새가 없었다.

“형님! 그리고 얘들아!”

“그래, 드로야!”

“네, 형!”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동료들이 내게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해냈다!”

그리고 난 그런 그들을 향해.

마침내 우리가 태성과의 긴 전투에서 승리했음을, 세상 가장 높은 곳에서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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