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전설-4화 (4/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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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이론적으로만 꿈꿔왔던 직업

직업.

모든 RPG 게임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있을까?

태호의 박 터지는 고민이 시작된 이유이기도 했다.

태호에게는 남들에겐 없는 초인적인 능력들이 있었다. 일체감이, 100%라니. 100%라는 일체감이 주는 특혜는 그야말로 엄청날 것이다.

현실에서 자신의 몸을 컨트롤 하는 것처럼, 게임 내 캐릭터를 움직일 수 있다. 오차범위는 0%!

‘시팔, 회귀자 보너스라도 주는거야 뭐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정말 며칠 전 까지만 해도.

태호는 현실로 튀어나온 판타로스와 그 수하에 포진한 수많은 마족들과 싸우던 최후의 전사였다. 게임을 플레이하던 캐릭터와 한 몸이 된 채, 그야말로 매일 매일 피로 피를 씻는 하루의 연속이었다.

“......”

문득 양 손을 내려다 본다.

그렇다.

잘은 모르겠지만 지난 1년에 걸친, 그야말로 목숨을 건 항쟁들이 자신을 성장시켰다- 라는 가정을 세우면 제법 그럴 듯 했다. 긴장을 놓으면 언제 객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망가진 세계. 그 세계에서 생존해 나가는 하루 하루가 리얼포스의 캐릭터와 하나가된 자신의 일체감을 성장시킨다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실소가 나온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우선, 그건 그렇다 치자.

솔직히 그렇다 치자- 라는 말로 넘기기가 힘들었다. 허나 지금 당장은 고민해 봐야 나오는 것도 없었다. 우선 지금 당면한 현실에 최선을 다 해야 했다.

직업 선정에 있어, 태호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해 고르고 고른 클래스 하나를 떠올렸다.

흑마법사.

히든피스 중 꽤나 늦게 발견된 직업군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쉬운 히든피스였기에 그만큼 많은 유저들의 연구를 거쳤으며,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었다.

그 한 마디가 다음과 같다.

‘입리얼포스로 달성할 수 있는 최강의 만능캐릭터.’

한마디로, 입으로 리얼포스를 한다면 설정할 수 있는 최대의 장비와 스킬을 밀어 넣어 완성시킬수 있는 만능캐릭터란 말이다.

말 그대로, 현실적으론 불가능하니 하는 소리다.

그 이유를 알아볼까?

우선 흑마법사에 대해 알아보자.

바로 지속적인 도트 대미지와 다양한 상태이상 기술, 그리고 방어 깎기와 시력상실 등 상당히 많은 디버프 기술을 가졌다는 점이 첫째다.

그 뿐인가?

자가 치유 능력과 다양한 자가 방어 기술, 그리고 일정 조건을 갖추면 강력한 한 방을 날릴 수도 있으며 광역기술은 물론이고 근접 격투에 대한 대비책까지 골고루 갖추고 있다.

이쯤 되면 사기 캐릭터가 아닐까? 란 생각조차 들 정도. 하지만 명백한 약점이 있었으니......

“뭘 해도 어중간하다는 점이지.”

다양하게 만능 수준의 역할을 하지만, 뭐 하나 특출난 점이 없다는 것이 단점이다.

대미지 약하고 방어 기술은 허술하며, 디버프들은 지속시간이 짧았다.

때문에, 만능 캐릭터가 되려면 어마어마한 조건이 필요했다.

당시의 유저들이 너도나도 토해냈던 꿈의 세팅을 나열하자면, 에픽 장비 12종과 에픽 스킬북 8개가 필요했다.

에픽 등급이란 대체 무엇인가?

리얼포스에 존재하는 10단계의 아이템 등급 중, 가장 높고 입수 난이도가 높은 아이템들을 말했다.

1단계가 최하급이고 10단계가 최상급이라고 한다면, 10단계보다 위에 에픽이 있다.

물론 간혹 에픽 아이템들 중 터무니없이 입수난이도가 쉬운 녀석들도 존재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녀석들은 녹록지 않았다.

랭킹1위였던 태호가 10년을 리얼포스에 바쳐 수집한 에픽 아이템이 고작15개였으니, 말 다 한 셈이다. 그만큼 입수를 위한 사전 정보도 구하기 어렵고, 입수 과정도 허들이 높았다.

그런 에픽 장비 12종과 스킬북8개가 있어야 완성이니 총 20개의 에픽 아이템이 있어야 한다. 그야말로 꿈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꿈이 아니다.

태호는 흑마법사를 완성시키기 위한 아이템과 스킬북 목록을 모조리 꿰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무수히 많은 유저들이 연구하였고 그 결과를 도출해 냈을 때 해당 아이템들은 이미 리얼포스의 유명인사들 저마다의 손에 들려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유명인사들은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이미 입수한 에픽등급 아이템의 수집정보를 공유하곤 했다. 그 정보를 공유하는 것 만으로도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선지자의 해골, 그리고 데스나이트의 심장.’

그중 가장 핵심 아이템은 두 개다.

선지자의 해골은 사악한 악마 리치의 생명이 담긴 라이프 베슬을 뜻했다. 이것이 깨어지면 리치의 생명도 끝난다. 그 에픽 아이템을 얻으려면, 리치와 생명을 담보로 건 계약을 해야 했다.

옵션으로 모든 마법의 성능이 일정 시간 동안 2배로 강력해진다. 강력한 패널티를 머금고 있지만.

데스나이트의 심장은, 심연의 미궁을 지배하는 데스나이트를 처치하고 얻을 수 있는 전리품이었다. 옵션은, 생명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며 체력 재생률이 대폭 오른다.

그 외에도 다양한 에픽 아이템과 스킬들이 부실한 흑마법사의 기본을 서포트해준다.

이런 저런 조합을 해 보았을 때, 에픽 아이템들로 둘둘 말아서 만들어낸 흑마법사는 상상초월의 위력을 발휘할 것이란 결론이 나온 것이다.

다행히 그 정보들은 이미 머릿속에 있다.

운 좋게도, 극초반에 '방법' 만 안다면 금세 구할 수 있는 아이템도 한두 종 있었다. 그 방법이라는 것이 밝혀지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렸을 뿐.

이런 저런 머리를 굴리며, 태호는 계획을 천천히 메모해 나갔다. 꼼꼼히 계획하며, 변수를 계산했다.

그중 가장 큰 변수.

‘일체감이 100%야.’

일체감이 100%란 소리는, 더욱 자유롭고 스텟이 가져오는 힘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는 말과도 같다.

같은 스텟 1도 일체감 30%와 100%가 느끼는 차이는 천지차이!

마법사의 마법 연사나,상대에게 마법을 적중시키는 능력, 접근해 온 상대에게 대처하는 능력이 대폭 상승할 터다.

특히 흑마법사는 스킬의 쿨타임이 짧다. 허나 스킬의 쿨타임이 짧다고 해서 누구나 그 쿨타임을 온전히 소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체감이 낮은 마법사들은 행동에 제약이 있기에 쿨타임이 1초여도 1초당 난사를 할 수가 없다. 허나, 태호는 다르다.

온전히 소화가 가능하다. 100%의 영역이었다.

‘오버 밸런스지.’

한 마디로 오버 밸런스.

완성형 흑마법사에, 100%의 일체감이 더해진다면?

평범한 게임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캐릭터의 탄생이다.

하지만 앞서 닥쳐 올 세상에 오버 밸런스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말이 안 된다면, 향후 다가올 미래가 더욱 말이 안 된다.

태호의 계획대로라면 말도 안 되는 만능 캐릭터가 탄생할 것이다.

기존에 사용하던 직업명칭은 ‘에픽콜렉터’.

쌍검을 사용하며, 소지한 에픽 아이템들의 개수에 따른 추가 대미지를 가진 히든 피스 직업. 방어력이 걸레짝이며, 단 1개 개체에게 가하는 대미지는 상상초월.

완벽한 근접 대미지 딜러다. 출중한 근접 공격기, 그리고 파밍(아이템을 모으는 행위) 정도에 따라 훨씬 더 큰 성장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태호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익숙한 직업.

하지만, 이제 와서는 선택하기 힘들어진 직업이기도 하다. 판타로스 전을 헤쳐 나가기엔, 이 녀석이 가진 장점 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했다.

놈에게 닿기 전에, 무수히 많은 마물 군단을 헤쳐 나가야 한다.

즉.

최종 보스를 상대하기 위해선, 동료들과 함께 최전선에서 싸울 수 있는 만능형 캐릭터가 돼야 했다. 소위 몸빵, 딜링, 광역, 힐링, 지속딜링이 모두 충족돼야 한다.

모두가 이론적으로만 꿈꾸는 사기 캐릭터!

목표는, 바로 그것이다.

“......”

태호는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전생에서는 이룰 수 없었던 것을 이룰 수 있다.

그 감각이 제법 짜릿하다.

하지만 한켠으론 아릿한 불안함이 공존했다.

놈.

판타로스와의 전투에서 과연 그 정도로 판도를 뒤집을 수 있을까?

* * *

시간이 바람처럼 흘러갔다.

어느새, 리얼 포스의 오픈이 임박했다.

오후 7시 30분.

리얼 포스는, 오픈 초기에는 정말 지극히 소수의 유저만이 플레이하던 게임.

태호가 몸을 풀었다.

두둑, 두둑-

이번엔.

절대로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이 삶을 다시 얻게 되었으니, 그들을 개죽음으로 몰지 않으리라. 부족하다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메꾸어 내리라.

사랑하는 동료들과, 사람들을 구해 내리라.

과거에는 놈의 털 끝에조차 닿지 못 했지만, 이번엔 다르리라.

12년의 시간을 돌아왔다!

그 시간을 다시 살게 되었으니, 다시 사는 나는 10년 뒤 등장할 그 놈을.

기필코 놈을 쓰러뜨리리라.

태호는 입술을 앙 다문 채 결의를 다졌다.

.

.

.

.

.

.

고글을 뒤집어 쓰고 프로그램을 가동시켰다.

[REAL FORCE]

단촐한 글자가 눈 앞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화아아악!

곧, 정신이 빨려드는 것 같은 기분과 함께 전신의 감각이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리얼 포스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내 오프닝 동영상이 떠오를 차례.

초기 오프닝 동영상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게 박혀 있었다. 거대한 하얀 매가 되어 다양한 대륙 각지를 보여주는, 마치 영화의 프롤로그처럼 펼쳐질 터.

지이잉-

헌데.

어쩐지, 바뀌어 가는 사방의 환경이 퍽 익숙하다.

지이이이잉-

“헉!”

어느새.

태호는 초토화 된 서울에 서 있었다. 눈 앞 저 편에는, 거대한 판타로스가 서 있었다. 놈의 흐리멍텅한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콰아아아아아!

곧, 놈의 무지막지한 브레스가 쏟아져 나왔다. 자신을 덮친다. 젠장, 데자뷰냐!

헌데 그 순간.

태호의 눈 앞에는 하얀 빛무리가 응집돼 있었다. 빛무리는 브레스를 막아 내며, 사방을 점점 더 하얗게 만들어 가고 있었다.

“아......?”

그 빛 사이, 한 여자가 보였다. 여자는 점점 더 광채를 뿜어내며, 자신을 향해 다가왔다.

그녀의 두 눈에는 슬픔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태호에게 손을 뻗어 하늘 저 높이를 가리켰다.

쩌어억!

하늘이 갈라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또 다른 세상이 보였다.

현실!

태호가 살아가는 현실이었다. 모든 것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현실! 자동차며 사람이며 모두 뒤로 걷고 있었다. 문득. 태호는 자신의 몸이 그 곳으로 빨려 들어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래를 본다.

방금 전까지 판타로스를 조우하던 자신이 그 아래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슬픈 얼굴에 기묘한, 반투명한 문양 하나가 보였다. 바람개비 문양 같기도 하고, 시곗바늘 같기도 하다.

싸아악!

이내, 하얀 빛은 사라졌다. 그리고 태호의 캐릭터가 서 있던 그 부분에 브레스가 내리꽂혔다.

파시식!

“헉!”

동시에 사방의 모든 것이 일그러졌다. 두 눈을 깜빡이자, 어느새 현실감각이 돌아와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금 떠오르는 글자.

[플레이어 데이터를 확인 중입니다.]

[귀하의 기존 데이터가 존재합니다.]

“......!”

[데이터를 로드합니다.]

지지지직-

그리고, 눈 앞에 자신과 똑 닮은 아바타 한 체가 나타났다.

마치 거울을 보고 있는 것 같지만, 입고 있는 것들의 차이가 명확하다. 눈 앞의 아바타가 전신에 두르고 있는 장비들은 현금으로 계산하면 천문학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는 에픽 아이템들이었다.

[아이디 : 카이저]

[레벨 : 999]

[직업 : 에픽 콜렉터]

[상태 : 영구 사망]

[위업 : 최후의 생존자]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다.

조금 전, 눈 앞에서 죽어 버린 자신의 캐릭터였다. 아니, 바로 자신이었다.

손을 가져다 대니, 눈 앞에 정보가 떠올랐다.

“영구...... 사망?”

하지만 그 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최후의 생존자.

글자에 손을 가져다 대어 본다.

[위업 : 최후의 생존자.]

[‘멸망한 세계’ 의 최후 생존자에게 주어지는 위업. 이 위업을 달성한 플레이어가 다시 접속하였을 때, 영구 사망한 아바타의 스킬 하나를 전승받을 수 있습니다. 전승 스킬은 중복되지 않습니다.]

“......”

태호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방금.

그 장면은, 바로 자신의 최후였다. 그리고 하얀 빛 이후의 끊긴 기억이기도 했다. 분명히. 분명히 그러했다.

추측컨대, 태호를 회귀시킨 것은 정체불명의 여자였다. 그녀의 얼굴에 새겨진 문양이,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한데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당신은 누구?

태호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 상황은 시간을 회귀한 자신에게 주는 무언의 메시지 같기도 하다는 예감.

‘분명히 공략법이 존재할 거야.’

한 줄기 희망과 가능성이 생겼다.

놈이 존재한다면, 쓰러트릴 방법 역시 존재한다. 태호는 꽉 막혀 있는 듯 한 실마리가 풀리는 것을 느꼈다.

리얼포스가 세상을 멸망시킬 때 까지 유저가 탐사한 대륙은 고작 50%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50%에 답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찾아 낼 것이다.

이번엔 기필코 해 낼 테다.

가장 먼저!

미지에 감추어진 그 세계에서, 당신.

나는 당신을 찾아내고야 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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