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전설-6화 (6/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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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일 뿐이다.

피유우우우-

한참 동안 움직이던 북극성이 이내 조금씩 빛을 잃기 시작한다. 달리던 태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체력 스텟이 1이라 그런지 스태미너가 딸리네.’

스태미너는 달리기나 격한 움직임에 있어 중요한 요소다. 체력 스텟과 동시에 올라가는지라, 달리기에는 한계가 명확했다. 천천히 느려지는 걸음을 느끼며, 멈춰 섰다.

그리고 눈더미 속에 푹 파묻혔다.

‘여기서 이대로 쭉 나아가면 될 것 같고.’

잠시 쉰 뒤,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달리고, 쉬고의 반복이었다.

쌔애애애앵-

칼바람이 무시무시하게 불어닥친다. 아직 올스텟 1의 1레벨 초보자의 진입을 거부하기라도 하듯, 점점 더 칼바람이 심하게 불어닥치고 있었다.

까득!

태호는 따끈열매를 하나 더 먹어 치웠다. 바람을 뚫고, 다시금 전진 전진.

그렇게 따끈열매를 서른 개 정도 먹어 치울 무렵. 그제야 산의 정상에 올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휴......”

돌아 보니, 새카만 어둠이 내려앉은 설산 위에 시뻘건 눈동자들만 헤아릴 수 없이 일렁이고 있었다. 설인들이 그야말로 떼거지로 몰려와, 이 건방진 침입자에게 매운 맛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모양이다.

태호는 슬쩍 정상 저 편을 쳐다보았다.

이 쪽에는 깎아지는 듯 한 절벽이 있다. 이 곳에서 떨어져 내리면, 추측컨대 첫 번째 에픽 아이템과 조우할 수 있을 것이다.

“후.”

심호흡을 해 본다.

일체감이 100%란 소리는, 이 곳에서 느끼는 감각을 정말 고스란히 체감할 수 있다는 말. 정신적 충격 역시 마찬가지다. 절벽에서 떨어져 낙사한다고, 정말 낙사를 하진 않을 터. 하지만 그 철렁이는 감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망설임 없이 뛰어 내렸다.

싸아아아악!

귓가를 스치는 칼바람 소리가 요란했다. 온 몸이 중력의 힘을 고스란히 받아, 저 아래로 쏜살같이 추락해 갔다.

“으-”

발 끝과 등골이 오싹오싹한 감각이 느껴져 눈을 질끈 감던 그 때.

두우우웅!

바닥에서 올라오는 부드러운 기운이, 몸을 받쳐 주는 감각을 받았다.

“......!”

눈을 뜨자, 깎아지는 절벽 중간. 툭 튀어나온 한 평 크기의 공간에  동굴이 보였다.

동굴에서는 역풍이 불고 있어, 추락하는 이를 안전히 받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태호의 입가에 서서히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맞았어.’

기억이 맞았다는 감격이, 그리고 그 동안 준비해 왔던 히든피스들이 온전히 ‘있던 그 자리에’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태호는 천천히 몸을 추스르며 일 평 가까운 좁은 땅에 발을 딛었다.

그 땅 앞에는 절벽을 파서 만든 듯 한 동굴이 있었다. 천천히, 그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사납게 부는 듯 했으나, 역풍은 천천히 사그라들며 온전히 동굴 내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눈 앞에는 해골이 죽어 있다. 초라하게 쓰러진 해골은, 검 한 자루를 꼭 쥐고 있었다. 태호는 천천히 걸어가,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12년 전, 오늘이 떠올랐다.

난생 처음 얻는 ‘특별함’ 에 감격했던 그날이 생생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감각이었다. 내가, 내가 특별한 무언가를 얻는 것 말이다.

따지고 보면, 단 한 번도 특별한 적 없는 세상이었다. 세상은 언제나 각박했고, 살아가기가 힘이 들었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자신과는 해당사항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항상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무채색.

그것이, 12년 전의 태호였다. 꿈도, 야망도. 돈 앞에서 허망해지는 삶. 그래서 무채색으로 살아가던 태호에게, ‘특별함’을 선사해 주었던 첫 에픽 아이템이 눈 앞에 다시금 일렁이고 있었다.

태호는 멍하니 해골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이 녀석을 얻고 나서부터, 태호의 삶은 유채색이 되었다. 그는 특별함을 얻었다.

리얼 포스는, 태호에겐 새로운 삶이자 새로운 기회의 세상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말이다.

태호는 망설임 없이 손을 뻗었다.

목표는 검이 아니다.

저 검은 일종의 함정 장치였다. 손 대게 되면 강제적으로 설산의 입구로 이동해 버린다. 다시금 이 곳으로 찾아 오는 개고생을 사서 하고 싶진 않았다.

달칵!

태호가 잡은 것은 검을 쥐고 있던 해골의 손이었다. 해골의 검지 손가락에, 작은 반지 하나가 끼워져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빼낸 태호가 정보창을 띄웠다.

[등급 : 에픽]

[종류 : 장신구]

[이름 : 고대 왕국의 증표]

[고대 이름 모를 왕국의 계승자만이 소지할 수 있다는 증표. 대격변이 일어나 천지가 뒤틀리기 이전, 고대 시대의 문명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천지가 깨어지고, 모든 것이 뒤집히던 대격변 시기 이전을 고대라고 부르죠. 고대에는 여섯 왕국이 존재했다고 해요. 그 시대의 마도기술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했다죠? 불, 물, 바람, 땅, 빛, 어둠. 여러 속성의 힘을 이런 작은 악세서리에 담을 수 있을 정도로요. -초보 학자, 카실론]

[옵션 : 스킬 연마의 효율이 증가합니다.]

[세트 옵션이 존재합니다.*비활성화*]

이 아이템은 두 가지의 추가 세트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나머지의 입수 난이도는 그야말로 상상 초월이다. 세트를 모조리 갖추게 되면, ‘칼날바람’ 이라는 특수효과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대로도 충분히 엄청난 물건이었다.

스킬 연마란, 전직 후 얻게 되는 스킬들의 숙련도를 올리는 작업을 말한다. 0단계부터 1000단계까지 존재하는 숙련도는, 스킬 성능을 상승시키는 일등 공신이었지만 일정 단계부터는 경악스러운 노가다를 자랑하는 컨텐츠였다.

태호는, 과거 이 반지의 효과를 정말 알뜰하게 잘 사용했었다. 체감상 효율이 약 2배 가까이 나는 편이니까.

태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 반지를 자신의 왼손 검지 손가락에 끼웠다.

팟!

동시에, 눈 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위업 달성]

[리얼 포스 최초의 에픽 아이템 소유!]

익숙한 메시지였다.

[위업 : 최초의 발견자]

[직업, ‘에픽 콜렉터’ 의 전직이 가능합니다.]

이 역시 익숙하다.

태호의 눈 앞에 메시지가 재차 떠올랐다.

[에픽 콜렉터로서의 전직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전직하시겠습니까?]

에픽 콜렉터.

퍽 익숙한 이름이었다.

이 직업을 다시금 선택하게 돼도, 누구보다 잘 할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론 안 된다.

태호는 그것으론 안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거절.”

[거절되었습니다.]

[‘위업’ 습득을 거절하였습니다.]

어쩐지 피식 웃음이 나온다.

변화.

지난 12년간 플레이해 온 리얼 포스가 아니다. 지금부터의 게임은, 그 동안의 양상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전개로 이어질 것이다.

태호는 이어, 해골이 쥐고 있던 검의 손잡이를 쥐었다.

화르르륵!

사방이 일렁거리더니, 팟! 하는 소리와 함께 공간이동이 시전되었다.

함정을 역이용 한 탈출이었다.

쌔애애애앵-

어느새, 태호는 설산의 입구에 서 있었다. 손에 쥐고 있던 검은 빛을 잃고, 천천히 바스라져 내렸다.

하늘은 시커멓지만, 쏟아내릴 정도로 찬란한 별들이 그 위를 수놓고 있었다.

두근

두근

두근

가슴이 벅차 오를 정도로 뛰었다. 한 켠으론 불안함이 밀려왔으나, 이제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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