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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 (2)
우우욱! 우욱!
여기 저기의 설인들이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감싸쥐었다.
‘소문대로군.’
문제가 있다면, 그 대미지에 있었다.
설인 한 마리가 체력의 바닥을 드러내려면 대략 중독을 10회 정도 맞아야 했다.
시간으로 치면 100초.
물론, 안전한 장소에서 중독을 돌릴 수 있으며 다수에게 쓸 수 있으니 그 장점이 있었다. 단점으로 꼽히는 대미지는 이미 감수하고 있다.
우어- 우어-
중독을 모조리 돌리고, 마력이 차오르길 기다렸다 다시 중독을 돌린다.
그 사이, 하나 둘 머리 위에 해골 표시를 띄웠다. 눈에 띄게 기력이 쇠한 놈들이 보였다.
머리 위에 해골 표시가 띄워진다는 것은, 체력이 바닥까지 내려갔다는 소리다.
중독은 체력을 깎지만, 사망에 이르게 하지는 못한다. 때문에, 해골을 띄운 녀석들 말고 아직 쌩쌩한 다른 녀석들에게 다시 중독을 돌리는 것이다.
그렇게 한참의 중독 작업이 끝났다.
[기본 흑마법사 스킬]
[등급 : 1급]
[스킬명 : 중독][숙련도 : 15]
[쿨타임 : 1초][소모마력 5]
그간 숙련도는 15 상승했다.
‘나쁘지 않아.’
숙련도 자체는 금세 오르는 편이다. 스킬 난사가 쉬운 것도 있고, 에픽 아이템의 힘이 더해졌으니까.
이제 나무 아래에 서성이는 설인들은 죄다 머리에 해골 표시를 띄운 상태였다.
태호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지팡이를 만지작거리다, 무딘 철검을 빼들었다.
저 상태에서는, 패죽여야 한다. 공격 마법이 더 있다면 몰라도, 지금은 일단 패죽이는게 상책이다.
팟!
나뭇가지 아래에서 뛰어내린 태호는 무딘 철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후우웅!
빠바박!
뛰어내리며 휘두른 철검에 설인 한 놈의 머리가 정통으로 맞았다.
놈이 눈을 까뒤집었다. 애시당초 남은 체력이 1이니, 맨주먹으로도 한 방이면 죽을 것이다.
땅에 내려선 태호를 향해, 사방의 설인들이 공격을 가해 왔다. 태호는 가볍게 뒤로 물러섰다. 한없이 느린 공격이 눈에 들어왔다.
좌우로 날아드는 주먹을, 허리 살짝 숙이며 회피한 뒤 녀석들의 미간에 검을 푹푹 꽂아 마무리했다. 그리고 정면의 설인에게 검을 찔러 넣었다.
푹!
이내 땅을 가볍게 차며 앞으로 몸을 날렸다.
빡!
어깨로 달려드는 설인의 명치를 가격한 뒤, 왼 주먹으로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검은 오른쪽의 설인을 가볍게 벤다. 태호는 땅을 차며 빙글, 회전하며 왼쪽의 설인과 다가오는 또 다른 설인의 목숨줄을 끊었다.
푹! 푹! 푹!
적어도 1레벨이 할 플레이는 아니었다.
일반인이라면 스텟의 힘을 빌어야 가능할 정교한 플레이가 서슴없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정작 태호는 무덤덤했다.
‘익숙해.’
확실히, 검 류가 전투에는 익숙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애초에 일체감이 100%인 몸이다.
한 방에 한 놈씩!
[레벨 업.]
[레벨 업.]
신출귀몰하게 서른 마리가 넘는 설인들이 모조리 쓰러졌을 때, 레벨이 2 상승했다.
레벨 2.
리얼 포스의 만렙은 999. 레벨을 올리는 난이도 자체가 그렇게 어려운 게임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곳의 설인들은 기본적으로 높은 방어도와 무리지어 다니는 특성상, 사냥이 용이하지 못 한 맹점이 있다.
그런 의미로,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안전하게 대량의 몬스터를 몰이해서 스킬 숙련도를 동시에 올리며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깨를 으쓱인 태호가 사방의 설인들이 떨군 전리품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설인의 가죽을 획득했습니다.]
[설인의 발톱을 획득했습니다.]
설인들은 발톱, 가죽을 비롯한 영 쓸모 없는 재료들을 떨군다. 하지만, 발톱은 가공 후에 무기류로 재탄생되며 가죽은 방한복을 만드는 재료가 된다.
즉, 이것들은 알바롱의 NPC들이 틈만 나면 내어 주는 반복 퀘스트의 재료였다.
반복 퀘스트는 각자 무한 반복이 가능한데, 일정 레벨을 지나면 유의미하지 못 한 경험치를 받기에 10레벨~25레벨의 레벨업 구간에 사용하면 효율이 아주 좋다.
우선, 태호는 다시 사방을 둘러보았다.
다시 이 놈들을 모아 올 시간이다.
.
.
.
.
.
.
설인들의 공세가 수십 차례 이어졌다. 태호는 천천히, 하지만 끈덕지게 중독으로 놈들의 체력을 1로 만든 뒤 패잡아 나가기를 반복했다.
[스킬 : 중독의 숙련도가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한동안 숙련도와 레벨이 올랐다는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확실히, 숙련도가 상승하는 수치가 잦았다.
어느새 중독의 숙련도는 100.
1000이 맥시멈 수치인 것을 보았을 때, 100이란 수치를 달성하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허나, 문제는 100단위마다 치솟는 요구치였다.
지금부터는 여태까지의 2배의 노력치를 요구한다.
자.
숙련도 100의 중독은-
45!
45!
45!
40이었던 전의 대미지보다 5가 상승했다. 1등급 무기로 이 정도니, 제대로 된 장비를 갖추었을 땐 제법 볼 만 한 수준으로 상승할 터다.
레벨은 어느새 10.
1레벨 몬스터인 보통 ‘설인’ 들을 상대로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구간은 맥시멈 20이다. 당연히 레벨차이가 10 이상 나기 시작하면 획득 가능한 경험치량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그리고 20차이가 나면, 더 이상 경험치를 얻을 수 없다.
굳이 사냥터를 옮기지 않는 이유는, 지금의 상태론 더 고등 몬스터를 잡는 것이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흑마법사로서 배운 스킬이 기본적인 대미지가 약하기에, 낮은 등급의 녀석들을 빠르게 잡아 죽이며 숙련도 작업을 하는 것이 이득이란 결론을 내렸다. 설인들은 특성 상 한 놈만 툭 치고 도망쳐도 우루루 몰려 오니까.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스킬 : 폭사]
새로운 스킬을 받을 시간이었다.
리얼 포스의 시스템은 레벨 10단위로 스킬을 받는다.
10단위로 기존 마법의 강화판을 받거나, 응용기술을 받는 이치였다.
아, 무직 상태로 레벨을 계속 올리면 어떻게 되느냐고?
그건 약 5년 뒤, 1억 팔로워를 자랑하며 중국의 인터넷 스타로 급부상한 ‘샤오’ 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샤오는 무직 상태로 500레벨을 달성한 근성의 사내로서, 무직으로 500레벨을 달성했을 때 등장하는 히든피스인 ‘히어로’ 가 되었다.
한 방이 매우 강력한 체술계 딜러로서 변모한 것이다. 물론, 무직 상태로 500을 달성하는 또라이가 거의 없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아무튼.
폭사를 살펴보자.
[기본 흑마법사 스킬]
[등급 : 1급]
[스킬명 : 폭사][숙련도 : 0]
[쿨타임 : 5초][소모마력 5]
[상대에게 폭사를 일으켜 대미지를 준다. 가해진 상태이상의 개수만큼의 추가 대미지를 가한다. 폭사가 가해진 상대에게 흑마법사가 가한 상태이상이 모조리 해제된다.]
‘이거로군.’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흑마법사가 지닌 ‘제한적 폭딜’ 능력의 첫 걸음, 폭사였다.
가한 상태이상의 개수만큼 추가 대미지를 주는 것. 지금이야 가진 상태이상 스킬이 단 두 개 뿐이지만, 이는 향후 점점 늘어나게 될 테니 남은 것은 묵묵한 레벨 업 뿐이다.
사실은, 원래 리얼 포스는 퀘스트 중심의 보상 경험치를 위주로 한 레벨업이 효율적이고 빠른 것이 사실이었다.
지금의 태호가 닥치고 사냥, 일명 닥사를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첫째.
‘히든 피스를 하나 얻어야 하니까.’
처치한 몬스터가 1000단위를 넘어가면, ‘학살자’ 라는 히든피스 칭호를 얻을 수 있었다. 올 스텟을 올려주는 준수한 칭호로서, 장시간동안 유용하게 쓸 수 있을 터다.
둘째.
경쟁이 없으면, 반복 퀘스트를 몰아서 클리어하고 그 전까지 닥사가 낫다.
경쟁자가 전혀 없는 현재의 시간적 이득 때문이다.
그렇게 지겨운 반복 사냥이 이어졌다.
중독. 사냥. 중독. 사냥.
지루하고도 끈기가 필요한 작업이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태호는 묵묵히 그 과정을 견뎌 나갔다.
그리고.
[레벨이 올랐습니다.]
중독의 숙련도가 140을 달성할 무렵, 20레벨을 달성할 수 있었다. 공략에 따르면, 레벨링이 훨씬 수월해지는 구간인 20을 달성한 것이다.
[기본 흑마법사 스킬]
[등급 : 2급]
[스킬명 : 소규모 범위 중독][숙련도X]
[쿨타임 : 10초][소모마력 10]
[좁은 범위의 적들에게 중독 상태이상을 건다. 중독의 성능과 숙련도는 기본스킬 ‘중독’ 의 것을 따른다.]
“후.”
그동안 죽어라 중독을 돌리고 패잡은 보람이 있었다. 광역 중독의 첫 등장이다.
어디-
태호가 손을 뻗으며 소규모 광역 중독을 사용했다.
샤라락!
약 5평 규모의 범위의 하늘에서 시커먼 중독 가루가 흩날렸다.
‘범위는 이 정도.’
설인이라면 대략 대여섯 마리가 들어갈 정도였다. 광역기술이라는 것에 비하면 약간은 초라할 테지만, 이 정도 범위에서 업그레이드 스킬이 점점 등장할 것이다.
어느새 시간은 오전 7시가 다 돼 간다.
게임을 시작한 후, 대략 11시간 가량을 쉼 없이 움직인 셈이었다. 이 쯤 되면, 돌아가도 될 것 같다.
오전 7시 7분 7초.
일명 777잭팟 포인트. 그 시점을 노려야 할 시간이니까.
* * *
777잭팟.
리얼 포스에 숨겨져 있는 시스템중 하나다.
오전 7시 7분 1초부터 7초 사이, 행운의 여신 티케가 아무도 모르게 이 세상을 내려다 본다는 것이다. 그 시간 동안, 일명 ‘갓챠’ 라 불리는 뽑기 시스템의 행운력이 대폭 상승한다는 말.
문제는, 이 티케라는 여신은 현재 시점.
즉, 오픈베타 첫 날인 오늘은 리얼포스 대륙에 대해 딱히 관심이 없다. 그녀는 지극히 수동적이라 누군가가 자신을 소환하는 의식을 거쳐야 지상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소환 의식 자체가 도박 행위에 있었다.
그 의식은, 7시 7분 7초에 시행되는 7번째 뽑기에 있다.
* * *
“설인의 가죽을 이렇게나 많이요?”
벌써 7번째 듣는 목소리에 태호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눈 앞의 금발 소녀는 기쁘다는 듯 양 손을 모아쥔 채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나 신경 써 주셔서 얼마나 기쁜 지 몰라요. 올해의 방한복은 질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퀘스트 완료]
[1급 퀘스트]
[반복 퀘스트]
[설인의 가죽 납품]
[잡화상인 낸시에게 설인의 가죽 10개를 납품하였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하급 방한복 세트(상,하의)를 획득했습니다.]
[20실버를 획득했습니다.]
인벤토리 창에는 어느새 하급 방한복들이 가득했다. 한동안 설인들을 잡아 족치던 태호가 드디어 반복 퀘스트들을 완료한 것이다.
총 10회에 걸친 설인의 가죽 납품으로 2레벨을 올렸고, 설인의 발톱을 제공하여 다시 2레벨을 올렸다.
마지막으로, 설인들이 떨군 털조각 등을 비롯해 잡다한 재료들을 건네준다.
[퀘스트 완료]
[1급 퀘스트]
[반복 퀘스트]
[설인의 털조각 등의 납품]
[잡화상인 낸시에게 설인의 털조각 등의 아이템을 10개를 납품하였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눈부신 설원의 재료 주머니를 획득했습니다.]
[20실버를 획득했습니다.]
이 반복 퀘스트는 25레벨 이상에게는 경험치나 보상도 주어지지 않는다. 딱 25까지 한정된 퀘스트였다.
‘딱 맞는군.’
머릿속으로 계산해 보고 계산기도 두드려 보긴 했었지만, 가진 재료와 딱 맞춰 반복 퀘스트가 끝나니 기분이 꽤 좋았다.
시간은 오전 7시 6분.
태호는 인벤토리 창에서,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눈부신 설원의 재료 주머니’를 꺼냈다.
각 지역마다 이런 재료 주머니를 주는데, 아이템을 제작하거나 포션 등을 제작하는 지역 고유의 재료들을 제공하고 있었다.
보통은 1급~5급 재료가 뜬다. 5급이 나오면 잘 나온 거고, 1급이 나오면 망한 건데 정말 아주 낮은 확률로 10급이나 에픽급 아이템이 뜨기도 했다.
7시 7분.
분이 바뀌자 마자 잽싸게 재료 주머니를 까기 시작했다.
[1급 재료, 눈부신 결정체]
[1급 재료, 월계수 잎]
[2급 재료, 설인의 날카로운 엄니]
당연하게도 낮은 등급의 재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다섯 개, 여섯 개 까지 주머니를 깐 태호가 씩 웃었다.
일곱 번째.
보통은 낮은 등급의 재료가 뜨지만 그 행위가 시간초를 딱 맞춰, 히든피스를 가동하는 공식에 최초로 부합하게 된다면-
화아아악!
행운의 여신을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