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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여신
빛무리가 지상에 강림한 것은 처음 보는 일은 아니었다.
리얼포스의 세계에는 다양한 신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저마다 선하고 악함의 차이를 가지고 있는데, 개중 행운의 여신은 정확한 중립의 입장이었다.
빛무리는 서서히 한 여자의 모습으로 바뀌어 간다. 이내,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 한 복장을 한 여자가 입을 열었다.
[별일이네.]
입을 움찔거리긴 하였으나, 분명히 말소리가 머릿속으로 울려 퍼졌다. 태호는 가만히 그녀를 보았다.
과거.
그녀를 처음 불러낸 것은, 유럽의 한 유저였다. 그는 하루 하루 하급 재료를 캐서 반복퀘스트를 통해 재료 상자를 까는 소위 ‘광부’ 였다.
광부란 일종의 은어로서, 매일매일 노가다(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재화를 축적하는 행위를 일컫는 은어)를 해 생계를 유지해 나가는 전형적인 생계형 게이머를 말한다.
우연치 않게 그녀를 불러낸 유저는, 그녀와 만나게 된 계기를 상세히 자신의 개인 SNS에 올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곳에서 말 실수를 했고 행운의 여신은 아무런 보상 없이 그를 떠나게 된다.
그 후 행운의 여신이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은, 리얼포스가 약 2년 쯤 운영된 후의 일이었다.
아무튼.
이제부턴 신경 써서 대화를 해야 했다.
[나를 불러낸 것은 네놈이냐?]
“예.”
태호는 고개를 까닥이며 대답했다. 말실수 부분에 대해선 이미 수집된 결과가 존재했다.
[그래. 뭘 원하니? 나는 행운을 관장하는 티케란다.]
그녀는 말을 빙빙 돌려 하는 것을 싫어한다. 또한, 그녀에게 재화를 달라는 부탁은 통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굽실거리는 것도 싫어하는데, 도박에는 만인이 평등하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여신이라는 말 또한 병적으로 싫어한다. 그러니까 네 가지만 조심하면 된다.
태호는 가볍게 입을 열었다.
“운이 좋아지고 싶군요.”
[그래?]
“네.”
[흐음...... 그 외에 부탁하고 싶은 건 없고?]
태호는 빤히 그녀를 쳐다보았다.
하나 하나 꼼꼼히 관찰해 본다. 태호의 머릿속에는 아직, 자신을 회귀시킨 여자의 모습이 생생했다. 시곗바늘 같기도 하고, 바람개비 같기도 하던 반투명한 문양도 떠올랐다.
정면의 티케에게는 주사위 문양이 반투명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자신을 회귀시킨 여자는 신 중의 하나일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딱히 재화엔 별 관심이 없어서요.”
태호의 말에 흥미를 가진 듯 티케가 반문했다.
[왜?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도 있나?]
“그보다 더 큰 목표가 있으니까. 운이면 됩니다.”
티케는 흥미로운 얼굴로 태호를 뜯어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알았다. 지금의 나는 화신체이기에, 이 지상에 잠깐 강림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네게 나의 권능 중 아주 작은 부분을 나누어 줄 수는 있단다.]
티케의 손이 태호를 가리켰다. 지이잉- 하며 샛노란 빛이 심장부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나를 소환하는 의식을 치렀으니 앞으로는 대륙을 지켜보도록 하마.]
티케가 그 말을 마치고 사라지려던 순간이었다. 태호는 혹시나 싶어 재차 입을 열었다.
“혹시.”
[응?]
“하나 여쭤만 보겠습니다.”
티케가 팔짱을 꼈다.
[해 봐.]
“하얀 색의 신 같은 종류인데, 시곗바늘 같기도 하고 바람개비 같기도 한 문양을 지녔습니다. 아십니까?”
다소 건방진 듯 한 말투였지만, 이런 말투를 그녀는 선호한다. 티케는 곰곰이 턱을 괸 채 생각했다.
[흐응...... 전혀 모르겠네.]
어쩐지 맥이 탁 풀렸다.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샤아악!
이내 그녀는 나타났던 것의 역순으로 사라져 갔다. 어느새 사방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태호는 그제야 눈 앞에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았다.
[위업 : 행운의 여신]
[행운의 여신을 강림시켜, 매일 단 한 번. 리얼포스의 대지에 특별한 시간 동안 행운의 축복을 내립니다.]
[보상 : 패시브 스킬 ‘행운’을 획득했습니다.]
행운.
노림수가 그대로 통했다.
이 행운을 얻은 유저는 장비 제작이나 뽑기, 레이드 및 사냥 등 ‘행운’ 이 미칠 수 있는 요소에서 남들보다 더 좋은 운을 가져다 주는 패시브 스킬이었다.
물론 운이라는 것이 소위 복불복이라는 것과 동일하기에, 무조건 좋은 패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방이 터질 확률을 높여 준다는 점에서 무조건 챙겨 가고 싶었다.
‘좋아.’
이걸로 됐다.
태호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혹시나 싶어 알바롱의 외곽지, 인적 없는 설원에서 불러낸 것이 주효했다. 요란하게 등장하니 혹시라도 유저가 발견하게 된다면 귀찮아 질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태호는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다시 마을로 돌아갔다.
* * *
인벤토리 창 한켠에는 발톱 등을 납품하여 얻은 보상품인 단검이 가득 쌓여 있었다.
1골드는 100실버다.
세 가지의 반복 퀘스트를 각 10번씩 수행하였기에 현재 가진 돈은 6골드였다.
태호가 가볍게 혀를 찼다.
‘인건비도 안나오는군.’
현재 5골드는 약 2만원에 거래된다.
한두달 버티면, 리얼포스엔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한다. 그 뒤론 골드 시세가 기하급수적으로 뛴다. 리얼 포스로 생계 유지가 가능해지는 것도 그 시점부터다.
[아이디 : 카이저]
[레벨 : 25]
[직업 : 흑마법사]
[성향 : 중립][속성 : 어둠]
[생명력 : 255][마력 : 242]
[공격력 : 5][마법 공격력 : 13]
[방어력 : 5][마법 방어력: 13]
[스텟 : 힘5, 민첩5, 체력5, 지능13]
[업보 : 20]
[특이사항 : 모든 정령들의 적대를 받는 중.]
[*위업- 최후의 생존자]
레벨1당 스텟포인트는 1. 24개의 포인트는 각각 12를 지능에, 나머지에 4씩 고루 분배했다.
초기의 리얼 포스에서는 올 스탯 몰빵 캐릭터가 유행을 탔었다. 확실히, 나름의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한 부분에선 강력했으니까.
허나, 향후 올 스텟에 고르게 분배하되 메인 스텟에 비중을 두는 쪽이 월등하다는 게 밝혀졌다.
마우스 클릭으로 캐릭터를 움직이는 Pc RPG 게임을 생각하면 큰 오산이니까.
민첩은 움직임과 속도, 기본 적중률의 보정 역할을 한다.
힘은 당연히 물리적인 대미지와 직결돼 있고, 체력은 스태미나 수치와 생명력 수치에 영향을 준다. 지능은 마법과 연관이 있으니 태호는 주력 스텟으로 중점을 두는 것이다.
가상현실이기에, 일체감만으로 때울 수 없는 부분은 당연히 스텟과 아이템으로 채워야 한다.
일체감이 높다면, 스텟의 효과를 더욱 크게 느낀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유독 마법사류의 직업군에서는 올 지능 캐릭터가 한 가닥으로 자리를 잡기는 했다.
바로, 광역 누커의 등장 때문이었다.
그냥 지능에 몰빵을 하고, 아이템이나 스킬도 그쪽 강화로 싹 몰아 줘 버린다.
공격에 그야말로 올인을 한 뒤 파티나 길드원의 뒤에 숨어 광역기로 사방을 다져 버리는 식이었다.
실제로 ‘니힐럼’ 이라는 유럽 길드가 불마법사의 광역누커 세팅을 기반으로 유니크 급 던전 ‘살라딘의 황폐한 사원’ 레이드를 클리어했을 때, 전 세계적으로 불마법사 열풍이 불기도 했었으니까.
남자는 한 방!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 뭐 이런 느낌이었을라나.
당시의 레이드는 중계 채널이 102개에 달했고, 토털 시청자수는 대략 전세계 5억명에 달했다. 니힐럼은 어마어마한 광고수익과 중계 수수료, 그리고 인지도를 얻었다.
니힐럼은 그 후 전문PK조직인 ‘어세신즈’ 에 작살이 나는데, 어세신이 파고들어 광역누커의 대가리를 따 버리면 팀의 화력이 사라지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신규 레이드를 한다고 유료 채널을 계약할 때 마다 어세신즈에게 개작살이 나 버리니 성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다. 결국 전면전을 선포하고, 유럽의 다섯 개 길드가 합심해 어세신즈 척살 전쟁을 펼치게 됐다.
문제는 그 악명 높은 어세신즈가 한국 출신 사이코들의 집합체였다는 점인데, 아무튼 그 전쟁이 1년 가까이 이어지며 다양한 에피소드를 만들어 냈다.
그 후로 많은 유저들이 새삼 깨달았다.
리얼 포스는 사냥도 중요하지만, PVP 역시 대비해 둬야 한다는 것을.
물론, PK를 일삼는 머더러에게는 엄청나게 큰 패널티가 존재하지만 그건 나중에 이야기 할 문제였다.
유저를 죽인 상태인 ‘카오’ 가 아닐 때 죽더라도 나름의 패널티가 있다. 바로 경험치량의 감소와 장비의 내구도 감소가 그것이었다.
장비의 내구도 관리를 안 해 두면, 재수 없이 장비가 깨지는 경우도 생긴다.
레이드나 보스 몬스터 사냥을 앞두었을 때도 큰 문제가 된다. 소위 막타 스틸 때문이다.
보스 몬스터를 거의 공략해 나갈 때 쯤, 슬쩍 다가와 PK를 시작해 버리면 손도 못 쓰고 죽어 나가기 마련이다. 다 잡은 보스를 눈 앞에 두고 죽어 버리면, 정말 천추의 한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보상 아이템이 적어도 수억에서 수십억을 호가할 테니까.
덕분에 새로운 레이드를 시작하는 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용병 고용이 되어 버렸다. 레이드를 안전하게 할 수 있도록, 보디가드 역할을 대행해 주는 길드가 새로이 창설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큰 의미로는 레이드의 큰 틀을 확립했다는 점에서 그들의 전쟁은 유의미했다.
아무튼 결국 니힐럼 길드의 불마법사 ‘프로진’ 은 그 후 자신의 sns에 유명한 한 마디를 남긴다.
-All in status, All fuck up!
돌아와서.
그 니힐럼의 광역 누커 프로진 이 사용했던 에픽 장비 중 하나가, 다음 태호의 목표였다.
바로 ‘선지자의 해골’ 이다.
에픽 목걸이로서, 세트 효과가 아닌 고유 효과를 가진다. 바로, 발동 시부터 매 초 체력의 10%를 소모하며 모든 마법 대미지를 2배로 늘린다- 라는 것.
체력이 0이 되면 당연히 사망이고, 아이템 사용의 패널티를 받아 1시간 동안 재사용이 불가하다.
구하는 방식은 제법 난이도가 있다.
우선, 리치가 봉인된 북대륙 끝으로 향해야 했다.
리치의 또다른 이름은 불사왕(不死王) 쿤.
그는 고대 여섯 왕국 중 하나의 왕이었다. 고도의 마도문명을 숭배하였던 그는, 결국 어둠의 힘에 손을 대게 되었고 불사의 힘을 얻었으나 타락하고야 만다.
그는 북대륙 끝, 세상의 끝이라 불리우는 만년설산에 봉인되는데 질긴 목숨줄만은 남아 대격변을 거쳐서도 그 자리에 서서 새로운 계약자를 찾고 있었다.
과거에는 이 설정을 그냥 재미있는 세계관 중 하나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다.
과연.
고대의 여섯 왕국, 그리고 대격변. 미래에 등장할 판타로스. 의문의 여인. 이 세계에 존재하는 ‘신’ 이라는 것들.
아무래도, 리얼 포스가 업데이트 할 앞으로의 확장팩들은 한 세계가 담고 있는 거대한 이야기 같다고 느껴진 것이다.
리치의 공략법은 이미 니힐럼 쪽에서 공개한 지 오래다.
과거, 그들은 자신들의 유튜브 채널에 아이템과 입수법을 유료 동영상으로 공개한 바 있었다. 레이드 과정, 그리고 맹점, 의외로 찾게 된 재미있는 솔로잉 가능성까지.
그것으로 그들은 대형 스폰서를 세 개 얻었고, 수억 뷰의 수익을 수수료10%만 제외한 채 고스란히 먹었다.
뭐, 그건 미래의 일이다.
태호는 그것을 목표로 잡았다. 시도하는 시간은 최대 일주일 이내다. 최대한 레벨링을 한 뒤 ‘선지자의 해골’ 에 도달한다는 것이 다음 계획이다.
우선, 중요한 것은 따끈 열매였다.
지금의 알바롱 인근에서는 필수요소였다. 방한복을 입어도 따끈 열매가 없으면 행동이 느려지는 패널티가 있었으니까.
인벤토리 창에는 따끈 열매가 대략 150개 가량 남아 있었다. 설인들을 모아 사냥하면서도 꾸준히 모으기 위해 노력한 보람이 있었다.
‘더 많이 모아 두는 게 좋겠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태호가 움직인 곳은 알바롱 마을 내부의 큼직한 목조 건물 앞이었다.
기본적으로 초보자 마을로 설정된 곳엔 기본 구성 NPC들이 모두 존재한다.
대장장이, 직업선택NPC, 잡화상인, 경매장NPC까지.
게임이 오픈 베타를 시작한 지 고작 9시간 됐다. 설인들의 재료로 만들어 낸 이런 단검도-
[등급 : 2급]
[종류 : 무기(단검)]
[이름 : 설인의 발톱 단검]
[옵션 : 공격력 50]
팔린다는 말이다.
2급의 장비.
공격력이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단검의 특성상 양 손에 하나씩 들 수 있고, 가볍고 빠르다.
눈 앞의 목조 건물이 바로 경매장이었다.
건물을 열고 들어서자, 휑하다. 아직 유저의 발길이 이 곳에 닿지 않았단 증거다. 은행 창구처럼 만들어져 있는 곳에 NPC들이 상담원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경매장을 이용하시겠어요?”
그중 하나의 앞으로 가, 고개를 끄덕인다.
째랭!
눈 앞에 큼직한 경매장 목록이 떠올랐다. 잘 정돈된 경매장 메뉴에서는 아이템의 정보와 생김새까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어디보자.”
오픈한 지 하루 밖에 되지 않은 게임.
경매장 매물의 질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물론, 아무리 사람이 없다 없다 한들 정말 몇십 명이나 몇백 명 정도의 유저라는 말은 아니다.
최소 수천 단위에서 만 단위는 될 것이다. 서버가 전 세계 단위로 열려 있으니 말이다.
허나 올라와 있는 아이템의 대부분은 아직 잡템 수준이었다. 재료 아이템들이나 쓸모가 크게 있지 않은 반복 퀘스트의 잔재물들이 헐값에 올라와 있었다.
‘어디보자.’
우선 태호는 쓱 경매장을 스캔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빛무리의 결정체. 이건 조금만 지나면 가격이 오를 거야.’
빛무리의 결정체는 현재 개당 3실버에 올라와 있다. 잡화상인이 1실버에 사 가는 잡다한 아이템이었다. 생산지는 저 아래, 남쪽 끝 스타팅 포인트였다.
막 구매하려는데.
[매물이 없습니다.]
라는 메시지와 함께 결제가 취소되었다.
‘흠?’
어느 순간. 빛무리의 결정체가 점점 줄어 나갔다. 전부는 아니지만, 누군가가 빛무리의 결정체를 사 모으고 있었다.
'뭐지?'
태호는 다른 매물들을 보았다. 나중에 가격이 꽤나 오르기로 예정돼 있던 아이템들이 하나 둘 조금씩 줄어 간다.
분명히 누군가가 사 모으고 있다는 증거였다. 벌써부터 경매장 아이템을 사 모으는 별종이 있나?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경매 화면을 끈 태호가 팔짱을 끼었다.
그때.
“......”
저 편.
경매장 구석에 아빠다리를 한 채 앉아, 턱을 괴고 뭔가를 하고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
가만히 그 남자를 주시했다. 어디서 많이 본, 묘하게 낯익은 커스터마이징이었다.
짧은 머리에 굉장히 어려 모이는 얼굴. 그리고 만사가 귀찮다는 듯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는 특유의 느낌.
‘설마. 그 녀석이 첫날부터 리얼포스를 시작했던 건가?’
“뭐야.”
문득.
시큰둥한 표정을 짓는 남자의 시선이 태호에게 향했다. 그는 귀찮음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볼 일 있냐? 왜 사람을 빤히 쳐다봐?”
틀림 없었다.
예의 따위는 밥 말아 먹은 저 싸가지와, 특유의 말투까지.
“볼 일 없으면 고개 돌리고 할 일 하쇼.”
“......강민.”
태호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강민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날 알아?”
“워낙 유명하니까.”
“흠.”
강민이란 남자를 안다.
그는 향후 리얼 포스에서 가장 많은 재화를 가진 장사꾼이 되며, ‘황금왕’ 이라고 불렸다. 인벤 토리 안에 보유된 재산이 수천억에 달한다는 추론이 즐비한 미래의 거목이었다.
그는 리얼 포스를 플레이하기 이전, 바람의 왕국이라는 가상현실 게임의 지배자였다. 경제라는 관념이 중요한 그 게임에서, 강민은 게임을 쥐락펴락하는 최대의 권력자이자 제왕이었다.
아마, 관심이 있다면 그에 대해 누구나 한 번 쯤은 들어 봤을 정도로.
추측컨대, 오픈 첫날인 지금 경매질이 가능한 것도 강민의 팀원들이 리얼포스의 전역에서 플레이중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수십 명은 될 그들의 철저한 게임 분석과 골드 수급이 아니면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하다. 그러니까 퀘스트 보상 아이템들만 골라 살 수 있는 것이고, 첫날임에도 불구하고 골드가 풍족한 것이리라.
리얼 포스에 대한 정보가 없는 것은 모두가 평등하니, 그에게도 정보 수집의 수단이 필요했을 거다.
아이템 거래 사이트에서도 골드 구매를 시작했음이 분명했다. 현금으로 몇 억 정도는 투자금 셈 칠 녀석이었다.
'하긴, 바람의 왕국 때도 휘하 직원이 오십 명은 된다고 했었나.'
그는 현실에서의 법인사업자이며, 거대 상인 그룹의 수장이었다.
“이 몸이 그렇게 유명하긴 한데, 커스터마이징 만으로도 알 정도인가?”
강민은 이런 대우가 퍽 익숙한지 별로 깊게 생각 하진 않는 눈치였다.
이내, 태호에게 물었다.
“너, 치킨런 중이냐?”
“......”
“치킨 런 중이면 잡템이랑 퀘스트 보상 같은 거 나한테 팔아. 내가 현금으로 다 사 줄게. 첫날이라 골드가 귀하걸랑. 그걸로 가서 치킨이나 시켜 먹든가.”
치킨 런.
오픈베타한 가상현실 게임에 접속해, 초반 선점효과를 이용하여 빠르게 재화를 쌓아 현금화를 한 뒤 빠지는 유저들을 지칭했다. 그 돈으로 치킨을 사 먹는다고 해서 그런 별칭을 붙인 것.
“아니.”
태호는 자신도 평대로 말투를 바꾸었다.
“그럼. 랭커라도 돼 보실라고?”
“그럴까 하는데.”
강민은 씩 웃었다.
“그렇다면 좋은 선택. 이 게임은 백 프로 뜬다. 왜냐? 이 몸이 오픈 첫날부터 접속해서 경매질을 하고 있기 때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