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전설-14화 (14/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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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뀐 역사의 핵심에는

‘이 새끼 뭐지?’

쉬폰은 생각했다.

기묘한 일이었다.

‘레벨이 엄청나게 높나?’

쉬폰의 레벨은 현재 65였다. 그는, 머더러가 된 후 유저들을 학살하며 손쉽게 경험치를 올리고 있었다. 머더러 관련된 최초위업과 히든피스들을 모조리 독식하며, 자신만큼 빠르게 레벨업을 한 유저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좋다. 레벨이 더 높다고 치자.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걸 떠나서.

‘근접전 기술들이 죄다 씹히고 있잖아.’

놈의 반응이 이상했다. 통상적으로 마법사 직업군과 근접 딜러가 붙어 싸움을 벌인다면, 근접 딜러의 압도적인 승리가 당연했다. 그것이 통상적인 가상현실 게임의 룰이었다. 아니, 그간 RPG 게임이 지켜 온 밸런스의 원칙 같은 것 아니었나?

이건 사실 말이 안 됐다.

놈의 대응은 WOF에서도 보기 드문 고등 기술이었다. 공격의 핵심에 일부러 파고들어 대미지를 최소화시키며 공격 모션 자체를 막는다던가, 얻어 맞을 때에도 일부러 맞는 반대방향으로 몸을 던져 피해를 최소화 시키고 있었다.

게다가 근접 딜러와 근접 전투를 벌이는데 한 치도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 진보된 발재간과 압도적인 마이크로 컨트롤로 비등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스텟이 혹시 올 힘이나 올 민첩? 아니면 올 체력?’

그것도 아니었다.

만약 그렇다면 전면전이 펼쳐졌을 테지만, 이 놈은 그게 아니다. 그냥 기술로서 공격을 흘려 내고 있었다. 힘이나 민첩, 체력이 낮다는 증거였다.

시스템이 공인한 ‘스킬’ 이 아니라, 그냥 말 그대로 플레이어가 일체감을 기반으로 만들어 내는 ‘기술’ 이었다.

지끈 지끈!

잡념이 오래 가질 못 했다.

피부가 따끔하다는 감각이 울리며,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독에 걸렸습니다.

-절망에 걸렸습니다.

‘에이 씨!’

이 빌어먹을 지속 스킬들이 체력을 야금야금 깎아 먹고, 이동속도에 제한을 걸고 있었다.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체력은 이미 바닥을 기고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 새끼, 일체감이 대체 몇 퍼센트야?’

60? 아니다. 그렇게 낮은 수준은 진절머리나게 상대해 봐서 잘 안다. 그 정도로 허접한 수준이 아니다.

70? 이것도 아니다. 스웨덴 출신의 프로게이머, ‘에브라’ 와 상대했을 때에도 이런 무력감은 아니었다.

75? 이건...... 자신이 달성한 세계 신기록이었다.

그럼.

그 이상이란 말인가?

‘그게 가능하다고? 대체 누가?’

그가 눈을 가늘게 뜨며 검을 내질렀다.

‘어떻게 그보다 더 높은 세계에?’

푹!

놈의 어깻죽지에 드디어 검이 꽂혔다. 쉬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드디어 한 방 먹였다는 쾌감이 짜릿하게 복부를 타고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푹푹!

쉬폰의 공격이 이어졌다. 복부를 두번 꿰뚫고, 심장으로 향하려는 검이.

팅!

지팡이에 막혔다.

헌데.

지이잉! 지이잉!

놈의 전신에서 시커먼 기운이 일렁이더니, 별다른 대미지도 없다는 듯 손을 뻗어 오는 것이 아닌가.

‘생존기를 돌렸다.’

쉬폰은 그의 손이 자신의 얼굴을 덮어 오는 것을 깨달았다.

쾅!

그리고 전신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폭사를 당했습니다.

이내, 그의 손이 자신의 얼굴을 쭈욱 밀어 균형을 잃은 자신의 몸이 바닥으로 꽂히는 것도 깨달았다.

-광역 상태이상을 당했습니다!

-광역 상태이상을 당했습니다!

-시력 상실을 당했습니다!

이미 체력은 거의 바닥이었다. 동시에 사방의 시야가 시커멓게 변했다.

-광역 폭사를 당했습니다.

쾅!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당신은 사망하였습니다.]

세상이 회색 빛으로 바래졌다. 그는 눈을 꿈뻑이며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사내를 쳐다보았다. 놈의 표정이 대단히 이질적이었다.

무표정!

별다를 것도 없다는 듯 가만히 내려다 보고 있는 저 표정!

두근

두근

두근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심장이 격하게 뛰었다. 입가에선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비질비질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의 패시브 스킬이 자동 발동되었다.

-적수 감지가 발동되었습니다.

[상대와 당신과의 레벨 차이는 5 미만.]

[상대의 체력은 현재 100%입니다.]

[당신은 상대에게 전체 체력의 25%에 달하는 피해를 주었습니다.]

[적수 등급이 설정됩니다.]

[‘강적’]

[아직은 버거운 상대입니다.]

[리벤지 퀘스트가 생성됩니다.]

회색 빛 바래진 세계에서 자신을 내려다 보는 사내를 조금이라도 두 눈에 담기 위해 애썼다.

두근

두근

두근

강적이라고?

그의 입가에 점점 더 미소가 번져나갔다. 이 감각은, 마치 WOF를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과 같았다.

즐거웠다.

더 이상 적수가 없던 WOF와는 달랐다. 이 정신 나간 놈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일체감 자체가 그간 접해 온 그 어떤 놈들보다 높았다.

어쩌면, 자신보다 더 높을지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재미있네.’

.

.

.

.

.

.

태호는 쓰러진 쉬폰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역시나, 윤형석이 다웠다.

‘여전히 잘 치네, 새끼.’

놈의 인성은, 미래의 리얼포스에서는 꽤나 유명했다. 전 세계적으로 ‘코리안 싸이코’로 통했으니까. 그 특유의 어마어마한 팬덤이 있던 것도 사실이었다.

태호는 자신에게 떠오르는 메시지들을 확인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놈을 처치한 것 만으로도 2레벨이 상승했다.

[위업 달성!]

[위업 : 지역 현상수배범 처치!]

[악명을 떨치는 지역 현상수배범을 최초로 처치하였습니다.]

[보상 : 패시브스킬 ‘머더러 헌터’를 획득했습니다.]

우수수 메시지들이 뒤를 이었다.

[지역 현상수배범 ‘쉬폰’을 처치하였습니다.]

[‘쉬폰’ 의 현상금, 300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쉬폰’ 이 장비하고 있던 아이템 2종이 드랍됩니다.]

과연.

놈의 시체가 사라지고, 그 곳에는 한손검과 방패가 남아 있었다.

태호는 씩 웃으며 그것을 주워 들었다. 옵션을 한번 확인해 볼까.

[등급 : 4급][레어]

[종류 : 무기(한손검)]

[이름 : 강렬한 핏기의 한손검]

[옵션 : 공격력 200]

[특수옵션]

[:힘+5]

[:체력+3]

[등급 : 4급][레어]

[종류 : 보조(한손방패)]

[이름 : 강렬한 핏기의 한손방패]

[옵션 : 방어력 100]

[특수옵션]

[:체력+5]

[:체력+3]

어쩐지 체력이 높다 했다. 저런 것들을 쓰고 있으니 체력이 높을 수 밖에 없었다. 아마, 강렬한 핏기라는 이름이 붙은 아이템들은 머더러의 유저 학살 보상의 일환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월드 메시지가 떠올랐다.

[지역 현상수배범 ‘쉬폰’ 이 죽었습니다.]

[‘쉬폰’ 은 머더러 사망 패널티와 향후 24시간의 접속불가 패널티를 받았습니다!]

그나저나.

태호는 팔짱을 낀 채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예정에 없던 일인걸.’

쉬폰을 여기서 만나게 된 것은, 순전히 과거와는 달라진 게임 플레이 방식 때문이었다.

태양초가 필요했던 것은, 선지자의 해골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과거의 선지자의 해골은 ‘팀 니힐럼’ 의 소유였다. 태호가 구할 방법은 없었는데, 이번 생에는 달라졌기에 이렇게 된 것이다.

‘앞으로는 귀찮아지겠는걸.’

다양한 에픽 아이템을 얻기 위해 움직일 때 마다, 리얼 포스의 역사는 조금씩 바뀔 것이다. 세력 구도도, 유명했던 레이드 팀도 조금씩 변화가 생기겠지.

하지만 확실한 점 하나가 있다.

그 바뀐 역사의 핵심에는, 언제나 자신이 있을 거라는 것.

찌직!

태호는 마을 이동 스크롤을 찢었다.

* * *

다시 돌아온 알바롱에서, 태호는 이제 거침 없이 움직일 생각이었다.

그간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달려왔다. 바로, 선지자의 해골 말이다.

마을로 돌아오자 마자 태호는 달렸다. 목표는, 북쪽 끝 설산의 정상이었다.

쌔애애앵!

돌아오자마자 혹한의 추위, 그리고 흐리멍텅한 날씨가 반겼다. 이런 망할 날씨도, 며칠 안 남았다. 태호는 인벤토리 창에서 따끈열매를 하나 꺼내 와득, 씹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달려나갔다.

서벅 서벅!

눈 밟히는 소리가 점점 더 선명하게 들려왔다. 사방에서 설인들이 자신을 인식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우- 우우-

설인들을 스쳐 지나가며, 태호는 다시 한참을 달려 결국 예전에 한번 와 본 적 있는 정상에 다다랐다.

과거, 태호는 이 곳에서 첫 번째 에픽 장비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정상의 깎아지는 절벽 아래에 존재했던 그 녀석 말이다.

하지만 이번엔 저 편을 본다.

시간은 아직 낮. 이른 오후다.

저 편, 눈보라 사이 반짝임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태호는 인벤토리 창에서 사전에 구매해 둔 밧줄과 말뚝을 꺼냈다. 잡화상인이 파는 기본 아이템 중 하나였다.

밧줄에 매듭을 만들고, 말뚝으로 절벽 위에 단단히 고정시킨 뒤 몇 번 확인을 거듭했다.

그리고, 밧줄을 쥐고 심호흡을 했다.

‘여전히 익숙해지지가 않는단 말이지.’

일체감 100%의 몸이 느끼는 추락의 감각. 그것은 엄밀히 따지면 ‘착각’ 이었다. 뇌가 일으키는 착각이지만, 느낌은 리얼했다.

심호흡을 몇 번 한 뒤, 망설임 없이 절벽으로 몸을 던졌다.

절벽면에 발을 딛고, 줄을 풀면서 거침 없이 하강한다.

하강하는 도중, 동굴이 보였다. 예전에 한번 와 본 적 있던 동굴. 태호는 빙긋 웃으며, 점점 더 아래로 향했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자 바닥에 닿을 수 있었다.

얼음!

그 때부터 얼음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북대륙.

이 곳의 날씨는 방금 태호가 타고 내려온 설산을 기점으로 완전히 뒤바뀐다.

영하 ?54°c. 이 곳의 기후는 언제나 비슷한 정도를 유지하며, 하루 두 번 폭설과 칼바람이 분다.

-상태이상, 절명의 추위가 가해집니다!

: 1분 이상 노출된다면 사망합니다.

인벤토리 창에서 따끈 열매와 태양초를 꺼내, 와작 와작 씹었다.

-상태이상! 후끈후끈!

: 온 몸의 열기가 엄청납니다!

거기에 방한복까지 꺼내 입었다. 그제야 추위가 모조리 상쇄되며 움직임의 제한이 사라졌다. 태호는 걸음을 옮겼다.

이득이 있다면, 사전에 예상했던 시간보다 더 빨리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의 태호에게는 '얼음 걸음' 이 있다. 이런 지형에서는 이동속도 10%를 항시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미끄러지듯 얼음지대를 주파해 나가던 무렵.

끼루루루룩!

저 편에서 거대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저 편을 본다.

[Lv 100]

[빙하 지룡]

거대한 빙하지룡이었다.

대략 5층 아파트 크기의 길이를 가지고 있으며, 몸통은 통나무를 네 개는 합쳐 놓은 것 처럼 두터운 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대가리에 하얀 뿔이 두 개, 그리고 새하얀 두 눈과 시뻘건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녀석들이었다.

빙하지룡들은 이 곳에 터를 잡고 사는 거대한 퇴화용들이었다. 과거, 대격변 이전의 고대시절에는 많은 드래곤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리얼포스 대륙에는 곳곳에 과거 드래곤이었던 것들의 후예들이 살아가고 있는데, 저 빙하지룡 역시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번엔 패스다. 상대하려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재수 없게 죽기라도 하면 큰 낭패였다.

목표는 이 얼음지대의 끝.

세상의 끝이라 불리우는 곳에 위치한 리치의 봉인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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