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전설-16화 (16/194)

────────────────────────────────────

────────────────────────────────────

선지자의 해골

리치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희한한 일이다.]

“......?”

[마치 죽음을 한번 겪어 본 것처럼 이야기하는군.]

태호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빤히 그를 보았다. 리치는 문득, 허공 저 편을 바라보았다.

[혼돈의 힘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 내가 이성을 유지하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

“무슨 의미죠?”

[판타로스의 힘은 혼돈의 힘. 고대의 마도문명조차 갖지 못 한 미지의 힘이로다. 그 힘과 계약을 한 자는, 필연적으로 혼돈의 심연 저 깊숙한 곳에 빠져들게 되지.]

그의 긁히는 듯 한 목소리가 귓가를 자극했다.

[결국, 타락하게 된다.]

타락.

리얼포스의 확장팩이 나올 때 마다 부각되는 단어 중 하나였다. 본래 선한 의지의 존재가, 모종의 이유로 타락하여 확장팩의 보스가 된다거나 하는 등의 내용이 제법 있었다.

[나는 아직까지 버텨 왔으나, 이 역시 얼마 가지 못 할 것이다. 점점 더 혼돈의 힘이 강해지고 있다.]

리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어쩌면, 이 쯤에서 미련을 놓는 것이 좋을 지도.]

“......”

리치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인간이여.]

“예.”

[그대에게는 어둠의 성향이 느껴지는군.]

“......예.”

태호는 흑마법사로 전직했다. 때문에 그의 성향은 무속성에서 어둠속성으로 바뀐 지 오래였다.

이는 고대 여섯 왕국에서 연마되던 불, 물, 바람, 땅, 빛, 어둠의 속성 중 어둠을 뜻한다.

[나의 왕국의 밤은 찬란한 어둠이었노라. 나와 나의 백성들은 불카노스를 섬기는 존재들이었지.]

불카노스.

이는 흑마법사로 전직할 때 ‘불카노스의 가호’를 받았다는 메시지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어둠을 관장하는 세계관 상의 존재였다.

[허나 어둠의 신 불카노스께서도 결국 판타로스의 힘에는 미치지 못하셨음이다.]

그런 불카노스조차 판타로스에겐 상대가 안 됐다니.

[판타로스를 상대하려면...... 강대한 혼돈의 힘에 맞설 힘이 필요할 것이다. 그의 힘은 공포적이다. 일개 인간에게는 버거운 일이겠지. 불가능에 가까울 터.]

“......예.”

태호는 묵묵히 대답했다.

[공포에...... 순응하지 말라.]

“......”

딸각!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리치는 그 말을 남긴 채 두 눈의 안광을 잃었다. 그의 머리가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떨어져 내려, 데굴데굴 굴러 와 태호의 발치에 닿았다.

태호는 천천히 그의 머리를 들어 올렸다. 머리의 크기는 점점 더 작아졌다.

[등급 : 에픽]

[종류 : 장신구(목걸이)]

[이름 : 선지자의 해골]

[영생이란 무엇이었을까요? 고대의 한 왕국에, 이름 모를 왕이 있었답니다. 그는 결국 미지의 존재를 찾게 되었고, 그에게 영생을 얻었다고 하죠. 그는 자신의 생명의 원천을 비밀스러운 곳에 보관했다고 해요. -초보 학자, 카실론]

[옵션 : 발동 시, 매 초 마다 10%의 체력이 감소됩니다. 또한 모든 마법의 성능이 2배로 증가합니다. 이 아이템의 효과로 플레이어가 사망 시, 재사용 불가 24시간의 패널티를 얻습니다.]

“......”

드디어 이것을 얻었다. 태호는 멍하니 그것을 내려다 보았다. 어느새, 거대했던 해골은 더더욱 작아져 새끼손톱 만 한 크기의 형태로 변했다. 금속 줄이 만들어져, 목에 걸게 돼 있었다.

이것이 선지자의 해골!

태호는 긴 한숨을 내쉬며 그것을 착용했다.

[에픽 콜렉트]

[현재 보유 중인 에픽 아이템은 2종입니다.]

메시지가 떠올랐다.

언뜻 보면, 10%의 체력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정신나간 패널티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데스나이트의 심장을 얻는 순간, 지속 패시브처럼 변해 버린다. 그야말로 상시 2배 보너스가 붙어 다니는 것이다.

파시시시식!

저 편, 리치의 몸이 가루가 되어 흩날리기 시작했다. 금세 형태도 없이 사라진 그의 몸은, 마치 자유를 찾아 떠나는 듯 사방으로 흩날리며 저 편으로 날아가 사라졌다.

“......!”

리치가 앉아 있던 왕좌.

그 곳에, 기묘한 책 한 권이 남아 있었다. 태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걸어가 책을 쥐었다. 그리고 식겁할 수 밖에 없었다.

[스킬북의 습득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당신의 속성은 어둠.]

“뭐?”

다급히 책의 정보를 확인했다.

[등급 : 에픽]

[종류 : 스킬북]

[이름 : 어둠의 계약]

[어둠의 힘이란 파도적이며 악랄함이죠. 하지만 그거 아세요? 고대 왕국의 마법들은 죄다 그랬어요. 상상해 보세요, 불덩이에 맞아 타죽는 고통과 흑마법에 맞아 죽는 고통 중 뭐가 더 아플까요? 신성화에 맞아 전신이 녹아내리는 고통은요? 예? 신성 모독이라고요? -초보 학자 카실론.]

[옵션 : 어둠 속성의 스킬 공격력이 30% 상승합니다.]

“......”

어둠의 계약?

태호는 곰곰이 생각했다. 이런 종류의 스킬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고대의 태양왕이라 불리던 몬스터가 있었다. 그는 리얼포스 동쪽 끝, 무한의 사막에서 정말 어렵고 복잡한 연계 퀘스트를 클리어 시 개방되는 레이드 던전의 보스였다.

그를 공략해 낸 공격대가 얻은 아이템이 바로 ‘태양의 계약’ 이었다.

옵션은 불 속성의 스킬 공격력 30% 상승.

그 사기적인 옵션에 모든 불마법사들이 그 아이템을 탐내기 시작했다. 마침내, 100억이 넘는 가격에 중동 부호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리얼포스가 출시된 지 5년이 넘은 뒤의 얘기였다.

그게 전부다.

‘여지껏 본 적이 없는 아이템이야.’

솔직한 심정으론 기뻤다. 리치와의 조우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굉장한 아이템을 두 종이나 얻었으며, 비밀 역시 일부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여지껏 태호가 알아 왔던 에픽 아이템의 수집 방식에, 변수가 있다는 점도 확실히 느꼈다.

리얼 포스의 세계는 변화한다. 확장팩이 등장할수록, 또 그들 간의 상호작용으로 인하여!

과거의 리치는 악의 상징이었다. 그는 사악한 악마의 수장이었으며, 악랄한 괴물이었다. 태호는 니힐럼의 유튜브가 공개한 레이드 영상을 보면서 새삼 느꼈던 것이다.

허나 지금의 리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어둠의 힘을 담당하는 고대 왕국의 왕이었으며, 백성을 사랑하는 성군이었다.

‘흑마법사가 악(惡)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편견이었어.’

어찌 보면 편견은 아니다.

타 게임의 설정이나, 여지껏 매체에서 다루던 설정 자체도 악의 성향은 맞았다. 스킬들의 이름이나, 효과를 봐도 악랄한 편이다.

허나 그것은 현대의 사정. 고대의 사정과는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불덩이를 쏘아 몬스터를 죽이는 것도 악랄하고, 얼려 죽이거나 빛으로 태워 죽이는 것도 충분히 악랄하다.

‘뭐, 그건 둘째 치고.’

이제, 스킬북의 처리를 고민해야 할 차례다.

‘배워야해.’

당연했다.

백억을 준다고 해도, 이 스킬을 다시 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에픽 아이템이니까 단 한 종 밖에 없다.

백억!

그 천문학적인 돈! 태호는 그 돈의 가치를 정확히 알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높은 가치가 미래에 있었다.

“......”

망설임 없이 스킬북을 열었다.

[에픽 스킬북 : 어둠의 계약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예.”

샤아악!

스킬북이 가루가 돼 사라지며, 태호의 전신으로 스며들었다.

[스킬을 배웠습니다.]

[현재 보유중인 에픽 아이템은 3종입니다.]

[에픽 콜렉트의 1단계 추가 대미지가 적용됩니다.]

방금 태호는 백억짜리 스킬을 배웠다. 그 이질감에 킬킬대며 웃어 버렸다.

“하하하.”

자꾸 웃음이 나왔다.

“아하하하하.”

하지만, 한켠으론 마음 한 구석에 두려움이 깃들었다. 그 대단한 과거의 왕도, 어둠을 관장하는 신 불카노스도 판타로스에게 미치지 못 했다.

나는.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미래의 나는, 놈과 다시 조우하여 결국 놈을 틀어 막을 수 있을 것인가?

.

.

.

.

.

.

김진석은 올해 나이 서른 둘의 매니저였다. 그의 직업은 프로게이머 매니저. 연봉은 아마 업계 최고일 것이다. 왜냐? 그가 매니지하는 프로게이머가, 사상 최강의 최종병기 윤형석이었기 때문이다.

WOF의 투신!

불패의 아이콘!

그런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정말 황당하기 그지 없는 말이었다.

“아니, 아니 아니...... 형석아. 야, 윤형석이!”

“왜.”

눈 앞에 태연한 얼굴로 윤형석이 서 있었다. 김진석이 이마를 짚으며 입을 열었다.

“은퇴라니? 너, 은퇴라니!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야.”

“좀 쉴라고.”

“뭐어?”

두 눈을 껌뻑일 수 밖에 없었다. 윤형석은 별 감흥 없다는 듯 팔짱을 낀 채, 다리를 꼬고 스마트폰을 내려다 볼 뿐이었다.

“아니 아니...... SK게이밍이랑 계약 만료되면 너 데려간다는 팀이 수십 곳이야. 지금 형 바쁜 이유 몰라? 연봉협상 스케쥴만 오늘 여섯 군데 잡혀 있다고.”

윤형석이 빤히 그를 보았다.

“형한텐 항상 고마워하고 있어.”

“......”

말문이 턱 막혔다.

김진석은 냉수를 벌컥 벌컥 마셨다. 그리고 가슴을 진정시킨 뒤,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이유를 제대로 들어 보자. 쉰다는 것 만으론 이해가 안 돼. 정확히 뭐야?”

“......”

“형이 너 데뷔할때부터 쭉 매니저 해 왔잖아. 이젠 알아. 너 눈만 봐도 안다고. 쉬고 싶은 눈이 아니야.”

말 그대로였다.

윤형석의 두 눈은 생기가 넘치고 있었다. WOF의 불패신화를 이륙했지만, 언제나 반쯤 흥미를 잃고 썩은 동태 눈을 하던 예전과는 달랐다.

그는 지금 생생히 살아 있었다.

김진석은 잘 알았다. 녀석이 처음 WOF에 입문했을 때의 그 눈빛과 똑같았다.

미지의 전장!

그 곳에 입성할 때, 하룻강아지였던 그 녀석이 건방지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 김진석은 안다. 녀석은 강아지가 아니고 호랑이였다. 그래서 그 눈빛의 의미를 알고 싶었다.

윤형석은 피식 웃었다.

“역시 형 눈은 못 속여.”

“......”

“종목을 바꿔 볼까 하는데.”

솔깃한 말이다.

“종목 변경?”

“그래.”

“무슨 게임으로?”

“리얼 포스.”

리얼 포스?

김진석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 이름을 곱씹어 보았다. 그리고, 얼마 전 오픈한 가상현실 게임을 떠올렸다.

“그거 프로 리그가 있나?”

“내가 볼 땐, 그런 거 필요 없어.”

“응?”

“그리고, 이미 저질러 버렸는데.”

윤형석이 키득대며 웃었다.

“저질러 버렸다니......?”

이내 그가 보여준 스마트폰 액정에 시선이 갔다.

그의 SNS 계정이었다. 팔로워가 1억명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SNS에 남긴 글이 보였다.

[Good bye, WOF!]

[The next stage, REAL FORCE!]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