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전설-17화 (17/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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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나이트

햇빛이 좋았다.

태호는 간만에 현실의 태양을 만끽하며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든 채, 저 편을 바라보았다.

10월이 가고, 11월이 왔다.

이제 날은 선선한 것을 넘어 슬슬 쌀쌀한 정도가 되었다.

리얼 포스의 접속제한은 하루 18시간. 태호는 하루 6시간의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보통은 잠을 자지만, 가끔 이런 식의 기분전환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불사왕 쿤!

리치 때는 운이 좋았다. 그에게서 복잡한 계약이나 머릿씨름 없이 원하는 바를 얻어냈으며, 그의 과거와 리얼포스의 새로운 가능성 역시 깨달은 바 있었다.

본래, 리치와 조우하기 위한 필수조건은 레벨 65였다. 이는 최소도달조건 때문이었다. 본래의 공략에서, 리치를 깨워 계약을 이행하기 위한 최소레벨이 있었기 때문이다.

‘데스나이트의 심장을 얻으려면, 하루 정도면 되려나.’

데스나이트는 남서부의 섬, 심연의 미궁의 중심에 존재하는 몬스터였다.

몬스터 레벨은 100, 정예 몬스터다.

이 역시 최소도달조건은 70이다. 그 미만의 레벨은 심연의 미궁에 접근조차 할 수 없다.

의외로 생각보다 높지 않은 난이도라 생각할 수 있지만, 미궁 자체가 난이도를 부과하는 방식이었다.

미궁을 처음으로 발견한 것은, 탐험가 길드의 클락이라는 유저였다.

그는 리얼포스에 존재하는 미확인대륙을 탐방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는데, 미궁을 발견하곤 혼자 공략을 시도하러 들어갔다가 그 안에 갇혀버린다.

클락은 두 달이나 미궁을 혼자서 공략해 나갔고, 결국 성공했다. 그가 올린 미궁의 공략법은 정말 자세했기에, 크게 감탄했던 기억이 생생했다.

당시는 리얼포스가 오픈한 지 약 반년이 채 안 됐을 때였다. 물론, 그 후로는 다양하고 기발한 편법들이 등장했다. 그래서 그 뒤로 미궁류를 클리어할 땐 아예 다른 방법을 쓰게 됐지만 말이다.

태호는 데스나이트의 심장을 얻기 위한 최소조건인 레벨70을 진작 달성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쉬폰과 우연히 만나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허나, 리얼 포스의 오픈 초에 그 심장을 아주 손쉽게 얻기 위해선 11월달 즈음부터 산란을 위해 움직이는 특수한 물고기들이 필요했다. 굳이 리치를 위해 먼저 움직였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아무튼.

리치 쪽은 해결됐다.

지금 상태에서 데스나이트의 심장은 반드시 손에 넣어야 했다. 이게 없다면, 선지자의 해골은 반쪽짜리일 뿐이다.

데스나이트의 심장이 가진 기본 옵션은, 선지자의 해골이 선사하는 말도 안 되는 패널티를 완벽하게 상쇄시켜 준다. 뿐만 아니라, 선지자의 해골이 있기 때문에 데스나이트의 심장 역시 더더욱 빛나는 요소가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선지자의 해골과 데스나이트의 심장을 꼭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데스나이트의 심장을 해결한다고 치자.

그 다음 목표는?

태호는 곰곰이 생각했다. 혼자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에픽아이템 획득은 이제 몇 개 남지 않았다.

‘엘 로스의 가면, 군자의 지팡이 정도면 조만간 최소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을 것 같고.’

성과가 있었다면, 선지자의 해골과 함께 얻은 ‘어둠의 계약’ 이었다.

‘이건 과거에는 등장한 적이 없었어.’

즉.

과거에는 등장할 수 없었다는 가정이 맞을 것이다. 때로, 어떤 에픽 아이템은 시기를 놓치면 아예 얻을 수 없다는 가정이 성립된다.

머리가 살짝 아파오기 시작했다.

‘거대한 세계.’

그렇다.

리얼포스는 그 자체로 살아 있는 하나의 세계였다. 그 안의 생태계는 철저히 현실세계의 야생처럼 살아 숨쉬고 있었다.

슬슬 닥치고 사냥으로 레벨업 하는 것도 한계였다.

벌써 70레벨이다.

이쯤 부터는 메인 퀘스트의 스토리 흐름에 편승하는 것도 괜찮았다. 아직 첫 확장팩도 등장하지 않은 시점인지라, 스토리 자체는 국가간의 전쟁과 이종족과의 분쟁 및 고대 문명들에 대한 암시 등등의 이야기들이었다.

태호의 머리를 아프게 해 오는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으니......

[리얼 포스란 무엇인가?]

[프로게이머 윤형석의 메시지가 의도한 것은?]

[윤형석! WOF에서 종목변경을 암시?!]

하루가 다르게 올라오는 뉴스 기사들 때문이다. 태호는 팔짱을 낀 채 윤형석의 SNS를 살펴보았다.

Good bye, WOF!

The next stage, REAL FORCE!

놈은 전세계 1억 팔로워를 가진 슈퍼스타였다. 단순한 SNS의 한 마디라고 보기엔 그 파급력이 어마어마한 것이다. 아무래도 리얼포스의 부흥이 과거보다 더 빨라질 것 같았다.

당초 예상한 두 달 15일에서, 조금 더 당겨질 것이다.

‘그건 그렇게 나쁜 일은 아냐.’

유저들이 늘어나서 특정 행동을 해야만 조건충족이 되는 히든피스도 존재했다.

특히 반드시 입수해야 할 에픽 스킬북 몇 개가 그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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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포스에 접속한 태호가 몸을 풀었다.

남서부 초보자 포인트로 이동한 뒤, 반나절 쯤을 서쪽으로 이동하면 거대한 바다가 나타난다. 에메랄드빛 맑은 물을 자랑하는 그 곳에는 어민들이 조업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태호는 그 곳의 한 어민에게, 2골드를 주고 고깃배 한 척을 빌렸다.

낚싯대와 그물, 그리고 미끼 역시 돈을 주고 구매한 뒤 인벤토리에 넣었다.

이제 배를 타고 바다를 가로질러 가야 했다.

촤아악!

태호는 노를 저으며 천천히 나아갔다.

배를 타고 이동하는 건 대략 두세 시간. 귀찮아도 감내하기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촤악!

촤악!

노를 저어 가며 현 상황을 정리해 나갔다.

[아이디 : 카이저]

[레벨 : 70]

[직업 : 흑마법사][2차전직]

[성향 : 중립][속성 : 어둠]

[생명력 : 950][마력 : 1225]

[공격력 : 16][마법 공격력 : 246]

[방어력 : 247][마법 방어력: 46]

[스텟 : 힘15(+1), 민첩15(+1), 체력16(+2), 지능40(+6)]

[업보 : 20]

[특이사항 : 모든 정령들의 적대를 받는 중.]

[*위업- 최후의 생존자]

[*위업- 비밀던전의 첫 해방자]

[*위업- 비밀던전 첫 클리어]

[*위업- 지역 현상수배범 처치!]

현재 태호의 장비는 이러했다.

[등급 : 3급][레어]

[종류 : 방어구(상의)]

[이름 : 시린 빛의 가죽 상의]

[옵션 : 방어력 100]

[특수옵션]

[체력 +1]

[지능 +1]

[등급 : 2급][레어]

[종류 : 방어구(하의)]

[이름 : 시린 빛의 가죽 하의]

[옵션 : 방어력 50]

[특수옵션]

[지능 +1]

[체력 +1]

[등급 : 4급][노멀]

[종류 : 방어구(발)]

[이름 : 시린 빛의 가죽 신발]

[옵션 : 방어력 50]

[특수옵션]

[지능 +2]

[등급 : 3급][레어]

[종류 : 무기(지팡이)]

[이름 : 빙하의 마법 지팡이]

[옵션 : 마법 공격력 200]

[특수옵션]

[지능 +1]

[지능 +1]

눈여겨 보아야 할 장비들은 위와 같았다.

이 장비에 현재 스킬 숙련도를 비약적으로 상승시켜 주는 ‘고대 왕국의 증표’ 와 얼마 전 얻은 ‘선지자의 해골’이 존재했다.

남들이 쉽게 갖지 못 한 레어등급 장비를 이렇게 둘둘 말고 다닐 수 있는 이유는, 던전을 독식했으며 운이 제법 좋았기 때문이다.

드랍률 보너스를 등에 업고 사냥을 했으니 이외에도 레어급 아이템들이 인벤토리 창에 수북했다.

이것을 되팔 날이 자못 기대가 되는 태호였다.

일단.

아이템만으로만 지능 6, 체력2가 상승했다. 그 외의 반지, 투구 등의 장비들은 힘이나 민첩 등을 올려주는 녀석들을 착용하고 있었다.

리얼 포스는 게임 자체가 스텟에 대한 옵션이 짜기로 유명했다. 에픽 아이템이 대단한 가치를 지니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반에는 분명한 도움이 된다. 1스텟의 차이는 1레벨의 차이나 다름없으니까.

이제 스킬을 볼까.

중독의 숙련도는 현재 420.

절망과 폭사 등의 숙련도는 150~200 사이였다.

중요한 것은 60레벨부터 새로이 배운 스킬들이다. 우선, 시력상실은 태호가 쉬폰을 잡을 때 유용하게 써 먹은 적이 있다.

그 외에는.

[기본 흑마법사 스킬]

[등급 : 3급]

[쿨타임 : 0초][숙련도 : X]

[스킬명 : 체마교환]

[원하는 만큼의 마력을 생명력으로 변환하거나, 생명력을 마력으로 변환할 수 있다.]

이것과, 70레벨에 도달하고 난 뒤 배운 것이 두 개.

[기본 흑마법사 스킬]

[등급 : 3급]

[쿨타임 : 20초][숙련도 : 0]

[스킬명 : 어둠의 비][소모마력 15]

[일정 범위 안의 적들에게 10초 동안 지속 대미지를 주며, 속박 상태이상을 가한다.]

[기본 흑마법사 스킬]

[등급 : 3급]

[쿨타임 : 0초][숙련도 : 0]

[스킬명 : 생기 흡수][소모마력 15]

[상대에게 생기흡수를 시전하여, 최대 10초 동안 생명력을 빨아들여 자신의 체력을 채운다.]

흑마법사는 기본적으로 체력 회복을 위한 스킬들이 자잘하게 세팅되어 있었다. 점점 더 스킬이 늘어날 것이고, 전투 때 제법 유용하게 쓰일 스킬들이 향후에도 얼마든지 존재했다.

3차 전직의 레벨은 100.

그렇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저 편을 보았다.

어느새, 해변은 저 멀리로 멀어졌다. 하늘은 맑고, 태양이 쨍쨍 내리쬐는 바다 한가운데였다. 아래를 보니 반투명한 에메랄드빛 바닷물 속 헤엄치는 물고기와 생물체들이 보였다.

끼루룩 끼룩!

갈매기 소리와 조각구름이 보였다.

어쩐지 한가로운 시간. 태호는 쉼 없이 노를 저으면서도, 어쩐지 그 기분이 좋아 그 시간을 즐겼다.

“어디보자.”

노를 저으며 사방을 관찰했다. 이곳 저곳으로 움직이면서, 바다 안쪽을 세심히 관찰했다.

한참 동안이나 지켜 봐도 목표로 한 물고기가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시기가 아닌가? 벌써 11월 초인데.’

영 불안해지기 시작할 무렵.

다양한 물고기들이 노니는 가운데, 한 종류의 물고기 떼가 움직이는 것이 포착됐다. 태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럼 그렇지.’

조심스럽게 인벤토리 창에서 미끼 하나를 꺼내 들었다.

안개 새우다.

해안가 NPC들은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는 이들이기에, 낚싯대나 그물 미끼 등을 판매했다.

미끼를 휘, 휘, 사방에 뿌린다. 목표로 하는 물고기들은 안개새우를 가장 좋아했으니까.

곧.

바다 저 편에서 헤엄치던 물고기떼가 반짝! 하고 고개를 돌렸다. 이내, 태호가 타고 있는 조각배의 사방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파닥파닥파닥파닥!

온 사방의 물이 파닥이며 물고기들의 등장을 알렸다. 태호는 기다렸다는 듯, 인벤토리 창에서 그물을 꺼냈다. 그리고, 가장 물고기들이 많이 모인 곳에 냅다 던진 뒤 잽싸게 당겼다.

[등급 : 1급]

[종류 : 재료]

[이름 : 바람복어]

[살아 있는 생명체입니다. 인벤토리 창에 들어가면 사망합니다!]

그 중 한 마리가 톡! 튀어 배 안으로 들어왔다.

1급의 재료.

사실, 별 하잘것없는 복어 떼였다. 몸통은 주먹만하며, 꼬리가 길쭉한데 색감은 진청록색이었다.

이 녀석들은 평소 깊은 심해를 헤엄치며, 전 바다를 움직이는 회유어종이었다. 전 바다를 떠돌다가, 11월부터 3월 사이 겨울철에나 이 곳으로 돌아와 얕은 바다의 돌이나 산호 등에 알을 낳는다.

때문에 얕은 바다로 오기 전 까진 발견하기도, 잡기도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태호가 이 녀석들을 기다린 이유는 다음과 같다.

파닥파닥!

튀어나온 바람복어 하나를 쥔 태호가 가만히 녀석의 양 뺨을 눌렀다.

곧.

놈의 양 뺨이 빵빵하게 부풀었다. 그리고, 원래의 주먹만 한 몸의 대략 열 배 이상 거대하게 몸을 키우는 것이다. 태호는 그런 녀석을 가만히 손바닥 위에 두고 지켜보았다.

점점 더 커진 몸을 주체할 수가 없는지, 어느새 녀석은 거대한 풍선처럼 변해 바둥거렸다.

둥실!

마치 진짜 풍선처럼 하늘로 둥실둥실 떠오른 녀석은 저 멀리까지 솟아 오르다가, 피시시식! 하며 급격히 쪼그라들더니 바다로 첨벙 빠져 버렸다.

저것을 이용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

훗날, 하늘성이라는 지역이 개방되면서 부유석이 등장한다. 말 그대로, 부유를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마법의 돌인데 하늘성이 열리기까진 아직 몇 년이란 세월이 남아 있었다.

태호는 그물을 풀어주고, 다시 노를 젓기 시작했다. 노를 저으면서도 계속해서 안개새우를 뿌려 주며, 복어 떼를 이끌고 섬 쪽으로 향했다.

* * *

그렇게 얼마나 노를 저어 갔을까?

태호는 슬슬 사방이 어두침침해지기 시작했음을 깨달았다. 맑고 청아하던 하늘은 점점 저 멀리로 사라지고, 머리 위로 시커먼 먹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다.

잔잔하고 평온하던 바다는 제법 사납게 변했고, 바람이 쌩쌩 불어오고 있었다. 고깃배의 돛이 바람을 맞아 반달처럼 휘었다. 배에 가속이 붙어, 쌩쌩 달리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 보았다.

저 편.

새카만 섬 하나가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하늘로 쭉 솟은 네모난 건물 같기도 했다.

동시에 태호의 눈 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심연의 미궁에 도착했습니다.]

심연의 미궁!

과연, 그 이름에 걸맞는 거대한 미궁이 하나 서 있었다.

이 섬 전체가 그냥 거대한 하나의 미궁이었다.

높이는 대략 100미터 정도. 까마득하게 높은데다, 미끈미끈한 특수재질로 만들어져 있어 기어 오르는 것도 당장은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훗날 개방될 지역에서 얻을 수 있는 끈끈초를 이용한 벽타기도 등장하지만 나중의 일이다.

태호는 육지를 앞에 두고, 고깃배의 돛을 확인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미궁 쪽으로 들이닥치고 있었다.

파닥파닥파닥!

따라오는 복어 떼는 이미 1/4수준으로 줄어들었지만, 이 정도만 남아도 충분했다. 그물을 던지고, 녀석들을 잔뜩 잡아 들어 올렸다.

퍼덕퍼덕!

그물에 모인 복어들을 고깃배 위에 올려 놓고, 인벤토리 창에서 거대한 식탁보를 꺼냈다. 잡화상점에서 흔히 살 수 있는 식탁보였다.

그 식탁보 안에 복어들을 넣고, 끝부분끼리만 묶어 매듭을 지었다. 홀쭉하고 헐렁하기 그지없는 보따리가 되었다.

태호가 그 보따리를 가볍게 한번 들었다 바닥에 놓았다.

콩!

곧.

성난 복어들이 몸집을 부풀린다.

헐렁하던 식탁보가 급격히 팽창했다. 마치 기구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둥실둥실 떠오른 것이다. 태호는 식탁보의 매듭 부분을 꼭 쥐고 같이 떠올랐다.

둥실!

까마득하게 높은 미궁 벽의 꼭대기와 시선이 마주하기까지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람이 씽씽 불어, 태호의 몸이 점점 더 미궁 안의 하늘로 파고들고 있었다.

미궁이 그나마 한눈에 보일 정도로 올라가자, 이 넓고 악랄한 미궁의 정체가 여실히 드러난다.

정말 복잡하게 꼬이고 또 꼬여, 자칫 실수라도 하면 미로 속을 헤메이다 자살로 리스폰할 수 밖에 없이 만들어 놨다.

태호의 몸은 점점 더 미궁의 중심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

미궁 안, 탁 트인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안을 배회하는 것은 시커먼 갑주와 검을 든 기사의 형상이었다.

데스 나이트.

제대로 왔다.

쌔애애앵-

기분 나쁜 바람이 불며 음산한 기운을 풍겨오고 있었다.

자.

미궁의 정 중앙까지 안전하게 접근했으니, 목표는 저 곳이다.

태호의 시선은 데스나이트가 배회하는 미궁 중앙의 벽 중, 한 곳에 고정됐다.

중앙의 내부에는 미궁벽의 중하단, 움푹 들어간 약 1평 정도의 공간들이 군데 군데 있었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횃불이 들어가 있는 공간인데, 저 곳에 안착하는 것이 목표였다.

피시시싯!

복어들이 공기를 내뿜어 내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태호의 몸은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피시식!

피시시시식!

가장 가까운 벽에 찰싹 달라붙은 채 천천히 추락하던 태호는 움푹 들어간 공간에 접근하자마자 보따리를 놓고 반동을 이용해 몸을 던졌다.

휘익!

마법으로 만들어진 횃불을 덮치며 그 안으로 안전하게 안착한 태호는 그제야 한 숨을 돌렸다.

단순한 과정이었지만, 성공했으니 이제 데스나이트 잡는 건 따논 당상이었다. 일방적인 딜교환이 시작될 테니까.

* * *

슬쩍 고개를 내밀어 저 아래 데스나이트를 쳐다보았다.

[Lv.100]

[정예]

[심연의 미궁을 지배하는 자]

[데스나이트]

리치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놈의 머리 위에는 확연하게 몬스터임을 알리는 글자들이 떠 있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데스나이트도 이 쪽을 보고 있었다.

[누구인가, 나의 미궁에 찾아온 불청객이.]

놈이 중후한 목소리로 쩌렁쩌렁 외쳤다. 태호가 반응이 없자, 놈이 재차 소리쳤다.

[이 곳은 나의 공간. 침범한 이에겐 죽음 뿐이다!]

그리고 태호가 있는 곳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

물론, 데스나이트에게 원거리 공격 기술이 있다는 건 들어 본 적이 없다.

과거 이 곳을 찾았던 모험가 클락은 레벨 150의 유저였다. 그는 100레벨 정예인 데스나이트를 크게 어렵지 않게 잡아낼 수 있었다. 레벨 차이가 50이나 나니까.

그가 올린 공략영상에서 데스나이트는 순수한 근접전의 스페셜리스트로 등장했다. 때문에 태호는 저 녀석이 뭘 하나 보자, 싶은 마음으로 계속 지켜 보았다.

[당장 그 곳에서 내려오라!]

“......”

[당장!]

데스나이트가 불호령을 내렸다.

“......”

어쩐지 놈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어서!]

머리에 총 맞았냐, 거길 내려가게.

태호는 그렇게 생각하며 지팡이를 겨누었다. 놈을 겨누고, 중독을 쏘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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