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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기사단
300! 90!
300! 90!
300! 90!
중독의 대미지가 상당했다.
에픽콜렉트의 1단계, 30%추가 대미지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확실히 에픽 모으기 시작하니까 써볼 만 해 졌네.”
태호는 대미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그럼......”
이번엔 선지자의 해골을 발동시켰다.
[선지자의 해골이 발동 중입니다.]
[생명력이 1초당 10%씩 깎입니다.]
둥! 둥! 둥!
생명력이 순식간에 내려가고 있었다. 태호는 최대한 빠르게 자신이 가진 스킬들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중독이 걸리고.
600! 180!
절망과 시력상실을 걸었다.
그 뒤에 새로 배운 스킬들을 사용했다.
‘어둠의 비.’
콰아아아!
데스나이트의 반경에 시커먼 구체의 바닥이 깔리며 까만 비를 내렸다.
900! 270!
900! 270!
이미 체력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태호는 체마교환을 사용했다.
‘체마교환.’
마력의 절반이 체력으로 치환되며, 태호의 체력이 다시 꽉 차올랐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다시 지팡이를 쭉 뻗었다.
‘생기 흡수.’
지팡이에서 시커먼 마력이 쭈욱 뿜어져 나가, 데스나이트의 몸에 달라붙었다.
쪼오오옥!
300! 90!
300! 90!
초당 390의 체력을 흡수하는 생기 흡수가 이어졌다. 사람에게도 이런 대미지가 들어간다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대미지의 향연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리얼포스의 시스템은 PVP 시 유저에게는 대미지 감소 시스템이 일괄적용된다. 덕분에 몬스터를 상대로 할 때의 소위 대미지 뽕맛이 있긴 했지만.
물론 사냥 시에도 충분히 좋긴 했다만, 이 스킬은 제 자리에 서서 직접 유지하는 스킬이기에 캔슬을 당한다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거나 공격을 받으면 바로 캔슬된다.
마지막으로.
태호는 나지막히 읊조렸다.
“폭사.”
쾅!
중독, 절망, 시력상실, 어둠의 비 상태이상이 중첩된 상태에서 폭사가 터졌다.
4000! 1200!
‘썩 괜찮군.’
대미지들을 보니 마음에 쏙 들었다. 태호는 선지자의 해골의 발동을 해제하고, 남은 체력량을 살펴보았다.
90%의 체력이 남아서 일렁이고 있었다.
예전, 니힐럼의 불마법사 ‘프로진’ 은 선지자의 해골을 사용하며 모든 버프와 힐링 몰빵을 받았다. 그래서 계속 유지하며 2배 보너스를 유지했었다.
그 당시의 불마법사라면, 그야말로 리얼포스에서 대미지 딜링 하나는 원톱으로 치는 최상위권 직업이었으니 위력을 알 만 했다.
태호가 대미지 테스트를 하며 뭔가를 생각하는 동안 데스나이트는 부리나케 움직이고 있었다.
‘뭐지 저 인간은.’
그는 생각했다. 피하기 위해 정신없이 움직이는 와중에도 대체 왜 마법들이 귀신처럼 날아와 틀어박히는 걸까? 피해도 피해도 답이 없었다.
‘비겁한 자식!’
안 되겠다.
데스나이트는 도망치기로 결심했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이대로 있다간 손도 못 쓰고 죽을 것 같았다.
막 도망치려던 그 때였다.
“어딜 가려고.”
지잉!
뭔가가 날아와 꽂혔다.
데스나이트의 시야가 사라졌다.
* * *
태호는 마법 숙련도를 올릴 겸, 이런 저런 스킬들을 쓰며 대미지를 테스트해 보기도 하고 스텟에 따른 대미지 차이를 계산해 보기도 했다.
어둠의 비가 속박을 걸고, 절망이 이동속도를 감소시키고, 시력상실이 시야를 가린다.
세 가지 스킬이 번갈아 가며 리필되니 도저히 옴짝달싹 할 수가 없었다.
데스나이트는 그야말로 꼼짝없이 모르모트가 돼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괴롭힘을 당했을까?
태호는 깨달았다.
‘저거, 진짜 안 죽네.’
놈은 어마어마한 피통을 가졌다. 때문에, 이렇게 오랜 시간 두들겨 패도 아직 살아 있는 것.
태호는 이제 볼 일이 끝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막 다시 중독을 걸려던 찰나였다.
[자, 자, 잠깐!]
데스나이트가 빽 소리질렀다.
“......?”
태호가 고개를 쓱 내밀어 그를 보았다.
[이런 비겁한 자식! 그렇게 비겁하게 싸우면 부끄럽지도 않나!]
“딱히.”
애초에 정공법이 아니다. 태호는 그런 것 따윈 아무렇지도 않았다.
[......]
데스나이트는 당황한 듯 움찔거리더니, 재차 입을 열었다.
[워, 워, 원하는 게 뭐냐! 대답하라!]
“......”
‘그렇지 참.’
태호는 내심 생각했다. 이 세계에서 인간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급의 보스급 몬스터들이 있다는 것을. 태호는 리치를 떠올렸다.
그 역시도, 감정을 가지고 있는 존재였다.
[혀, 혀, 협상을 하자.]
태호는 곰곰이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너를 죽이면 나는 데스나이트의 심장, 그리고 네가 가진 갑옷 중 하나를 얻을 수 있다. 경험치는 당연히 덤이고 말이야.”
[주, 죽인다고!]
“그럼 죽이지도 않을 건데 이렇게까지 패진 않을 거 아냐.”
태호가 어이없다는 듯 받아쳤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태호가 예전 본 ‘데스나이트 공략’ 에서는, 데스나이트를 죽이고 데스나이트의 심장과 소위 ‘어둠 기사단 세트’ 라고 불리우는 갑옷 세트중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어둠 세트’ 라고 불리우는 이 장비는 투구,상하의,신발, 장갑으로 구성돼 있다.
미궁의 데스나이트가 하나 떨구고, 나머지 피스들은 저마다 다른 보스몬스터들이 주는데 그건 향후의 이야기였다.
[어이씨! 이런 몸이 돼서 사는 것도 억울하고 비통한데 이렇게 죽다니!]
데스나이트의 중후한 목소리는 온데간데 없어졌다. 그것에 흥미가 생긴 태호가 재차 입을 열었다.
“네가 만약에 데스나이트의 심장과 갑옷 세트 중 하나를 내어준다면, 그냥 가도록 하지.”
[......]
데스나이트는 가만히 태호를 올려다 보았다. 태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싫음 말고. 미안하지만 나도 그것들이 꼭 필요해서 말이야.”
이내 지팡이를 겨누며 덧붙였다.
“그만 죽어라.”
[자, 자, 잠까안!]
데스나이트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휘저었다.
[주 준다! 준다! 주겠다!]
“......진짜?”
약간 얼이 빠졌다. 의사소통이 되는 녀석들은, 솔직히 말 해 리얼포스에서도 드물었다. 과거를 손꼽아 봐도 정말 드문 일이었던 것이다.
엘프의 숲의 엘프들이나, 고등 지능을 가진 드래곤의 후예 등 물론 존재는 했다.
그런데 그 의사소통을 통해 아이템을 갈취하는 경우는 또 처음 봤다. 태호는 지팡이를 거둔 채, 의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진짜면, 일단 심장부터 이 쪽으로 던져.”
데스나이트는 다시 망설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의 갑옷 안 쪽으로 손을 넣더니 뒤적이다가, 큼직한 붉은 빛 보석을 꺼냈다.
그것을 태호에게 던졌다.
[엇!]
보석은 태호를 지나쳐, 저 위로 올라가 벽에 맞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시, 실수다! 죽이지 마!]
데스나이트는 후다닥 달려가 재차 그것을 쥔 다음 태호에게 던졌다.
이번엔 제대로 왔다.
태호는 아이템 이름을 확인했다.
[등급 : 에픽]
[종류 : 장착(캐릭터에 장착귀속됨)]
[이름 : 데스나이트의 심장]
[고대 이름 모를 왕국에, 고귀한 기사단이 있었다고 해요. 그들은 진실되고 위대한 기사들이었죠. 하지만 대격변이 오고, 그들은 미지의 힘과 싸우다 참패를 겪게 되었대요. 다섯의 기사들은 전 대륙으로 뿔뿔이 흩어져, 미지의 힘이 내린 저주에 몸부림치며 살게 되었다나? 뭐, 믿거나 말거나지만요.-초보 학자, 카실론]
[옵션 : 일격에 10% 이상의 체력손실을 겪게 되면 그 체력을 모조리 회복합니다.]
[생명력이 2배로 상승합니다.]
[생명력을 지속적으로 회복시킬 때 마다 5초 동안 물리&마법 방어무시 대미지 효과를 얻습니다. 이 효과는 중복되지 않습니다.]
‘뭐야 이거.’
진짜였다.
태호는 눈을 껌뻑이며 데스나이트를 바라보았다.
“너 심장을 빼도 안 죽냐?”
[주, 죽지야 않는다.]
하긴.
데스나이트는 죽음을 초월한 존재. 심장 따윈 없어도 살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태호는 다시 손을 내밀었다.
“그럼 갑옷도 내 놔.”
[......아, 알겠다.]
데스나이트가 투구를 벗었다. 벗겨진 투구 사이에 인간의 형태를 한 시커먼 어둠 같은 것이 도사리고 있었다. 놈이 그것을 태호에게 던졌다.
태호는 그 아이템도 정보를 확인했다.
[등급 : 8급][유니크]
[종류 : 방어구(투구)]
[이름 : 어둠 기사단의 투구]
[옵션 : 방어력 500]
[특수옵션]
[힘 +5]
[체력 +5]
[민첩 +5]
[세트 옵션이 존재합니다.*비활성화*]
‘시발, 진짜잖아.’
태호는 투구를 만지작거리다가, 인벤토리 창에 넣었다. 그리고 데스나이트를 보다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가만.’
이내 재차 입을 연다.
“생각이 바뀌었다.”
[뭐, 뭐라고!]
“생각해 보니까, 이대로 너를 죽이면 다른 갑옷 하나를 떨굴 것 같아. 그게 더 이득인 것 같군.”
[어이씨 저거 완전 사기꾼이네!]
“......”
태호는 그 뒤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은 채 놈을 지켜보았다. 전전긍긍하던 데스나이트가 이내 체념한 듯 제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네가 뭘 바라든, 이 이상은 없다. 과거 왕께 하사받은 그 투구 뿐이란 말이다. 나머지들은 나의 형제나 다름없던 이들이 하사받았다.]
과연.
투구를 벗은 그의 몸이 기묘해졌다. 어둠이 가득한 윤기 띈 갑주들은 빛을 잃었고, 마치 철판처럼 변한 것이다.
[살아서 그 분을 다시 뵙게 될 날이 올 거라 생각하며, 목숨줄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냥 죽여라.]
살아서 그 분을 다시 뵙는다라.
태호는 생각했다.
-나의 백성들......
잠깐만.
이거, 혹시.
태호는 자신이 착용하고 있던 선지자의 해골을 꺼내 그에게 보여주었다.
“혹시 이거냐?”
[응?]
데스나이트는 고개를 들어 태호의 손을 보았다. 이내, 화들짝 놀랐다.
[억! 왕께서 늘 착용하시던 목걸이가 아닌가! 네놈이 그걸 어찌?]
“......”
설마가 역시였냐.
“네 왕은 죽었다. 북대륙 끝에서, 혼돈의 힘과 계약한 자신을 후회하고 있었지.”
[......]
“아마.”
태호는 잠시 망설이다 덧붙였다. 이건 진심이었다.
“내 생각엔, 좋은 왕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왕의 부하였다면, 너 역시 나쁘지 않은 녀석일 수도 있겠지.”
[......왕께서 임종을 맞으셨다고?]
“그래. 혼돈의 힘과 계약한 자신을 평생 후회하며 죽어갔다. 맹세컨대 내가 죽인 건 아냐.”
[당연하다. 너는 강하지만 그 분께는 한주먹 거리도 안 됐을 테니까.]
퉁명스럽게 내뱉던 데스나이트는 어쩐지 망연자실한 듯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가 어깨를 들썩였다. 아무런 목소리도 나지 않고, 찰그락 찰그락 쇳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렇군...... 그 분이 돌아가셨군.]
마음이 이상했다.
태호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이 녀석들이 가공의 인물이 아니라고.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가공됐다면 감정의 희로애락을 느낄 수가 없다. 느끼더라도 ,제한적이다.
기분이 묘하다. 그냥 가 버리고 싶을 만큼.
‘에이 씨.’
태호는 결단을 내렸다.
이내, 1평 공간에서 뛰어내려 벽 밑의 바닥으로 착지했다. 그리고 그의 앞에 섰다.
데스나이트는 딱히 태호를 보고도 공격의지를 표하지 않았다.
“마음이 변했다. 날 죽여라, 집에 갈란다.”
경험치와 방어구 내구도가 깎이지만, 미궁에서 탈출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데스나이트가 고개를 돌려 태호를 보았다.
[......왕께서 남기신 말씀을 들려 줘.]
태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공포에 순응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군.]
마침내 데스나이트가 일어섰다. 그는 자신의 검을 쥔 채 태호를 똑바로 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퀘스트 발생!]
[8급 퀘스트]
[메인 퀘스트]
[영광의 기사단]
데스나이트가 입을 열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 것은, 나의 동료들을 내 손으로 없애기 위함이기도 했다. 그들은 최후의 전장까지 용맹히 싸웠으나, 결국 공포에 순응한 채 판타로스의 꼭두각시가 되었다.]
메인 퀘스트!
이런 종류의 메인 퀘스트는 처음이었다. 그간 전래가 없는 일이었고, 태호 역시 예측하지 못 한 일이었다.
[나와 함께 그들을 무찌르는 데 힘을 보태 줘. 왕의 유언이라면, 나는 기꺼이 남은 생명을 바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