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전설-19화 (19/194)

────────────────────────────────────

────────────────────────────────────

막시무스

[메인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태호는 데스나이트와 퀘스트 메시지를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 역시 계획엔 없던 이야기였다.

리얼포스의 역사상, 별도의 메인 퀘스트를 받아낸 기록은 한 번도 없었다.

[메인 퀘스트 : 영광의 기사단을 수락하였습니다.]

메인 퀘스트란 무엇인가?

바로, 리얼 포스를 관통하는 거대한 이야기의 흐름에 탑승하는 것이다. 메인스토리는 고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플레이하는 유저들의 행동에 따라 저마다 달라지고, 나아가 거대한 이야기에 영향을 미친다.

헌데 지금 받은 ‘영광의 기사단’ 이란 메인퀘스트는 아예 듣도 보도 못 했다.

‘대박이다.’

솔직히 대박이었다.

샤샤샥!

그때.

데스나이트의 형체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점점 더 줄어든 데스나이트는 주먹 만 한 크기로 변했다. 그 상태로 태호를 올려다 보길래, 태호는 녀석을 들어 올렸다.

“이건 또 뭐야?”

[도와준다면 네게 적극 협력한다고 말했다. 내가 아는 정보와, 얼마 남지 않은 내 능력을 바치지.]

데스나이트의 목소리가 얇고 작게 변했다. 꿍얼거리듯 들려왔지만 확실히 전달이 됐다.

메시지가 떠올랐다.

[데스나이트가 당신의 펫이 되었습니다.]

[펫 소환, 소환해제 스킬이 추가되었습니다.]

펫.

펫 시스템이란, 보통은 네크로멘서 계열이나 소환사 혹은 사냥꾼 등이 갖게 되는 시스템이었다. 펫으로 갖게된 녀석들은 저마다 고유의 능력을 주인에게 부여하며, 소환과 소환해제가 가능했다.

한번 살펴 볼까.

[이름: 데스나이트]

[레벨 : 100][정예]

[상태 : 일시적 동맹]

[특수능력 : 주인의 획득 경험치 증가 35%]

“......”

진짜냐.

태호는 어이없다는 듯 데스나이트를 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군.”

뭐든 좋았다. 일석 이조가 확실했다.

* * *

리얼포스에 존재하는 대도시들은 저마다의 역할에 충실한 편이었다. 대도시의 NPC들은 사회의 구성원들이었으며, 독립적인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다.

리얼포스가 인기를 얻게 되며, 대도시에는 유저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상인NPC의 제자가 되어 상점에서 일을 하고, 또 누군가는 대장장이NPC의 제자가 되어 일을 했다.

그들은 주로 주급을 받게 되는데, 리얼포스 유저의 수가 나날이 늘어감에 따라 현실에서 일 하는 것 보다 많은 돈을 벌게 된다.

아이러니!

기존의 RPG들의 틀이 깨어져 버린 것이다.

오직 사냥과 아이템 수집, 그리고 골드 파밍만으로 돈벌이를 하던 과거의 게임들과는 확연히 다른 차이점이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프로 게이머’ 란 직업군의 변화였다.

과거의 프로게이머들은 ‘정식 리그’ 가 존재하는 게임에만 존재했다. 승부를 다투거나, 팀을 위해 연봉을 받고 게임을 했다.

허나 리얼포스의 흥행 이후 프로게이머의 행보 역시 달라졌다.

이제, 프로게이머들은 자신의 플레이를 한다.

사냥,PVP,제작,장사 등등. 현실의 직업이 다양한 것처럼, 그들의 행동도 자유롭다. 그 과정을 생중계하며 스폰서의 광고노출 효과를 준다.

말 그대로 1인 미디어 시대가 된 것이다.

.

.

.

.

.

.

어숨푸레한 새벽이 밝아가고 있었다.

시계를 본다. 새벽5시 15분.

‘여기도 오랜만이네.’

태호는 거대한 성벽을 올려다 보며 씩 웃었다. 서남부 땅에서 가장 가까운 대도시인 노펜시아의 성벽이었다.

노펜시아.

리얼포스에 존재하는 대도시 중, 가장 많은 유저들이 찾아오는 대도시이다.

이유는 간단한데, 가장 많은 플레이어들이 남부 대평야에서 시작을 해 메인 퀘스트를 따라 이 도시로 오기 때문일 거다.

거대한 성벽의 입구로 들어서자, 그 화려하고 어마어마한 내부가 나타났다.

과연.

도시에는 이미 제법 유저들이 도착해 저마다 할 일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제법 있는 것을 보니, 역시 노펜시아 다웠다.

“파티 사냥 하실 힐러분 모집합니다!”

“탱커 모집! 메인퀘스트 파티입니다!”

여기 저기서 사람들이 목청 떨어져라 파티원을 모집하고 있었다.

리얼포스도 어찌됐든 RPG 게임이다. 가장 많은 직업군은 뭐니뭐니해도 딜러였고, 힐러와 탱커가 가장 적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대도시의 생김새는 기본적으로 현실의 도심과 크게 다르지 않다. 건물 양식은 중세 서양식이었지만 높낮이가 다양한 건물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으며, 색감은 베이지색 톤이었다.

도심 초입에는 거대한 석상 하나가 서 있었다. 태호는 그 석상의 이름을 알았다.

‘헤페 여신.’

풍요의 여신인 헤페였다.

헤페의 석상 주위로 분수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태호는 그 분수대 앞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메인 퀘스트를 확인했다.

[영광의 기사단의 단서를 찾아, 대도시의 도서관에서 정보를 수집하세요.]

[보상 : ???]

영광의 기사단.

과거에는 분명히 찬란하게 빛났을 다섯 기사.

그들의 왕은 판타로스와의 계약으로 리치가 되었고, 최후까지 싸우다가 다섯 기사들 역시 혼돈의 힘에 저주를 받아 패퇴한다.

그중 하나는 데스나이트였다.

태호는, 나머지 네 기사들의 행방 또한 알고 있었다. 과거의 네 기사들은 저마다의 던전 보스로서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들을 모두 잡으면 ‘어둠 기사 세트’를 완성할 수 있다. 이 어둠 기사 세트는 그야말로 에픽세트 급 옵션을 인정받는 얼마 안 되는 세트 아이템이었다.

‘정말 괜찮은 세트 옵션이 있었지.’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도서관이라.

마침 잘 됐다.

태호가 기억하고 있는 히든피스 중 하나를 이 노펜시아의 도서관에서 얻을 수 있었다.

* * *

대도시는 도서관 하나도 허술한 법이 없다. 사람이 거의 없는 대도서관은 총 5층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중, 태호가 갈 곳은 고서적이 가장 많은 5층이었다.

사람은 정말 아무도 없다.

태호는 펫을 소환했다.

[......]

데스나이트는 예전처럼 주먹만 한 크기로 등장했다.

이것이 비전투모드인데, 전투모드로 돌입하면 태호와 마주했던 크기로 변할 것이다.

“여기서 네 동료들에 대한 책들을 골라 봐.”

사실은 자신이 굳이 고생해 가며 책들을 고를 필요가 없다. 데스나이트라는 좋은 펫이 생겼으니까.

[알았다.]

데스나이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크기는 주먹만 한 크기로.

“......”

날이 샐 것 같았다.

태호는 녀석을 전투모드로 바꾸고, 등짝을 한 대 내리쳤다.

“빨리 빨리 움직여.”

[......알았다.]

놈이 뭔가 불만에 찬 듯 고개를 끄덕였다.

태호 역시 고서적들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대도시의 도서관마다 숨겨진 히든피스들이 존재했다.

‘대충 이런 느낌의 책일 텐데.’

태호는 빼든 책의 제목을 보며 생각했다.

[마도학 개론]

고대시대의 마법에 대한 저술서인데, 제목은 그럴 듯 하나 낭설들을 엮어 만든 일종의 페이크였다. 그대로 계속 여기 저기를 찾아 보던 그 때였다.

[마정학 개론]

‘아 이건가.’

태호는 먼지가 가득 쌓인 책 한 권을 뽑아 내 탁탁 털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글자 차이인데도 보물과 쓰레기가 갈린다. 이는 리얼포스의 학자들이 너도 나도 고대에 대한 논문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학자들은 대부분 대도시에 존재하는 마법사의 탑 소속 마법사들이다. 대도시의 마법사들은 정말이지 게으르고 나태한 종으로서, 그저 부와 명예에만 관심 있는 돼지들이었다.

이후의 확장팩에서는 그들에 관련된 이야기도 나오지만 이 역시 훗날의 일이다.

태호는 책을 펼쳤다.

[신비의 고대 마도세계에 대한 정보가 수집됩니다.]

[지능 스텟이 5 올랐습니다.]

‘오케이.’

히든피스로 지능스텟을 5 올렸다. 노펜시아의 대도서관에서 에픽 스킬북을 얻게 되는 날은 머지 않았다. 허나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유저수가 조금더 늘고, 도서관을 방문하는 이가 늘어나야 최소조건이 충족되기 때문이다.

그 무렵.

데스나이트가 책 네 권을 뽑아내, 태호에게 가져왔다.

[이것들인 것 같다.]

태호는 책을 받아들었다. 책들은 저마다 하나씩 기사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광휘의 기사 레온하르트]

[성혈의 기사 하테온]

[증오의 기사 디트로히]

[섬멸의 기사 치훌린]

저마다의 이름.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대로군.’

그들은 저마다의 이름을 가진 보스로 등장하게 된다. 그들의 위치도 대충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 그리고 이거.]

데스나이트는 험험, 기침을 하더니 다른 책 한 권도 내밀었다.

[강철의 기사 막시무스]

“......?”

태호는 그 이름은 처음 보았다. 곰곰이 그 이름을 떠올려 본다.

막시무스라. 적어도 리얼포스 내에서 그런 이름을 가진 선 굵은 몬스터가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태호의 눈에, 데스나이트의 얼굴이 들어왔다.

놈의 얼굴은 기본적으로 어두컴컴한 어둠 같은 것으로 형성돼 있었는데, 표정을 볼 수가 없었다.

허나 팔짱을 낀 채 다리 한 쪽을 달달 떠는 저 거만한 모습이 어쩐지 수상쩍다.

[이건 나다.]

“......그렇냐?”

[그렇지.]

데스나이트는 험험, 다시 헛기침을 했다.

* * *

도서관을 나와, 태호는 인벤토리 창을 뒤적였다. 꽤나 모아 둔 아이템의 개수를 확인해 보았다.

[등급 : 3급]

[종류 : 재료]

[이름 : 카오스 스톤]

[아이템의 특수옵션 재설정에 사용되는 재료. 혼돈으로 가득 찼던 대격변 시기에 생성된 특이물질이다.]

카오스 스톤이다.

태호는 이번에 얻은 유니크 장비인 ‘어둠 기사단의 투구’의 옵션을 재설정 할 생각이었다.

현재 어둠 기사단의 투구는 힘,민,체 스텟이 5씩 상승한다. 그 중, 지금 가장 필요한 스텟인 체력과 지능 위주로 옵션 재설정을 할 생각이었다.

태호는 한참을 걸어, 대도시의 정 중앙에 도착했다.

가장 중앙에 큼직한 간판이 걸려 있었다.

[웨폰&아머]

명색은 무기 및 방어구 상점이지만, 과거 리얼포스에서는 ‘도박판’ 이라 불리며 악명을 떨치던 곳이었다.

간판 앞에는 몇몇 유저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넋나간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저 카지노에서 확률 게임을 하다 갈려나간 유저가 아마 수천만명은 될 것이다.

태호는 그 자리에 서서 시계를 보았다.

새벽 6시 50분.

마침 시간은 적당하다. 행운의 여신이 슬슬 리얼포스의 대륙을 한번 봐 줄 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