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전설-20화 (20/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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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휘의 궁전

“어서 오게.”

눈앞의 상인이 보였다. 그의 이름은 데런. 향후 리얼포스의 많은 유저들로부터 ‘개새끼’ 혹은 ‘씹새끼’ 로 불리게 되는데, 그 이유는 단순했다.

데런은 ‘옵션 재설정’ 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

옵션 재설정은 뭐 태호가 하려는 ‘카오스 스톤’을 이용한 특수옵션 재설정이다.

문제는 그 옵션의 랜덤함에 있는데, 노멀 등급은 어차피 1스텟 고정이다.

허나 레어등급부터는 재설정된 옵션은 최소치와 최대치라는 것을 갖는다. 많은 유저들이 최대치의 옵션을 받고 싶어 계속 돌리다, 결국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후에 데런은 그 악명 높은 ‘어세신즈’ 에게 청부살해당하기에 이르는데, 이유는 ‘저 새끼가 열 받게 해서’ 였다. 의뢰금이 어마어마했다나.

아무튼 업보를 쌓으면 안된다는 교훈을 널리 퍼트린 일화이기도 했다.

태호는 빙긋 웃으며 어둠 기사단의 투구를 올려 놓았다.

데런은 그 장비를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유니크 아이템이로군!”

“예.”

태호는 시계를 보았다.

마침 새벽7시 6분이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뭘 하겠......”

“특수옵션 재설정이요.”

태호는 말도 듣지 않은 채 카오스 스톤을 지불했다. 카오스 스톤을 든 데런이 그것을 쥐자, 작은 소용돌이 같은 문양이 일더니 어둠 기사단의 투구로 스며들었다.

시간은 딱 7시 7분으로 넘어갔다.

[특수 옵션이 재설정되었습니다.]

“자, 작업이 끝났네.”

데런이 얼떨떨한 얼굴로 아이템을 내밀었다.

받자마자 특수 옵션을 본다.

[지능 +5]

[지능 +5]

[지능 +5]

‘됐다.’

태호는 씩 웃었다. 두 가지의 행운이 중첩되어서 일어난 결과였다. 유니크 아이템의 최소스텟은 1, 최대는 5였다. 특수옵션을 용감무쌍하게 돌려 버린 이유는, 믿는 구석이 있어서였다.

‘행운, 그리고 시간.’

행운의 여신이 리얼포스의 대륙을 지켜보는 오전 7시 7분 1~7초 사이. 거기다, 태호가 가진 ‘행운’ 이라는 패시브 스킬까지.

‘좋아. 재설정은 이렇게 하면 된다는 얘기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할 즈음, 데런이 입을 열었다.

“이거 놀랍군. 카오스 스톤은 말 그대로 대격변의 혼돈이 만들어낸 광물. 때문에 특수옵션의 설정은 절대 뜻대로 되지 않네. 이렇게 한 번에 동일한 옵션이 최대치로 등장한 건 처음이야.”

“......”

태호는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잠깐 마음으로나마 그가 오래 살 길 바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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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급 퀘스트]

[메인 퀘스트]

[영광의 기사단]

[:영광의 기사단의 단서를 찾아, 대도시의 도서관에서 정보를 수집하세요.]

[보상 : ???]

태호는 지금 대륙 북서부의 한가로운 산 초입, 풀숲에 앉아 있었다.

그 옆에 데스나이트가 소환돼, 주먹만 한 크기로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야, 바깥 세상은 역시나 좋구나.]

놈은 미궁 생활이 영 지긋지긋했는지, 꽤나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태호는 놈을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 시선을 책으로 돌렸다.

대도서관에서 뽑아 온 책들은 대부분 그들의 일대기를 그렸다.

페이지로 치면 대략 평균적인 소설책의 1/5정도밖에 안 됐는데, 읽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뽑아 온 책을 모조리 읽자,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하셨습니다.]

[보상 : 경험치]

[레벨이 올랐습니다.]

태호는 이제 71레벨이 되었다. 곧이어, 연계 메인 퀘스트가 떠올랐다.

[8급 퀘스트]

[메인 퀘스트]

[영광의 기사단][연계]

[:입수한 정보를 토대로, 영광의 기사단 중 하나의 기사를 찾기.]

[보상 : ???]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곳은 대륙 북서부의 산. 유저의 발이 닿으려면 아직 반 년은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이 곳은 아직 아무것도 없는 산기슭이기 때문이다. 뭐 기묘한 점이 없지는 않다. 단례로 산짐승조차 없는 조용한 산이라는 점, 그리고 이 근방 주민들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 같은 이야기가 있었다.

‘아주 오랜 옛날, 이 곳에 하늘에서 떨어진 한줄기 빛이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은 일대의 모든 생명체를 싸그리 잡아먹고는 조용히 산 속에 깃들었다.’

그렇다.

이 곳에는, 특수조건을 충족시켰을 때 발생하는 이벤트로 던전이 열리게 된다.

이번 던전은 난이도가 제법 된다. 몬스터들의 평균 레벨은 100대이며, 보스는 120레벨의 정예 ‘광휘의 기사 레온하르트’ 다.

현재 태호의 레벨이 71이니, 제법 시간을 들여 공략해 나가야 할 것이다.

물론 장점은 존재했다.

이 곳은 한번 클리어 하면 몬스터들이 리젠되지 않는 ‘특수 던전’ 이라고 불린다. 과거 태호가 발견했던 초심자 레벨링 코스용 던전과는 달랐다.

여기는 정말로 독식이다. 드랍되는 아이템의 질도 상당히 좋은 편이며, 무엇보다 경험치가 어마어마했다.

우선.

태호는 산 중턱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울창해지는 숲 사이, 정말 짐승의 기척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산 중턱에는 기묘하게 생긴 바위 하나가 서 있었다. 언뜻 보면 그냥 조금 길쭉하게 생긴 바위겠지만, 또 어떤 각도에서 보면 검 하나가 거꾸로 박혀 있는 생김새였다.

이 자리에서, 시간조건을 충족시키면 된다.

그의 이름은 광휘의 기사.

즉, 태양이 정점에 이르면 개방조건의 시간이다.

대략 한두 시간 정도 기다리면 될 것 같아, 태호는 그 자리에 앉아 인벤토리 창에서 데스나이트의 심장을 꺼냈다.

[엇!]

데스나이트가 제 심장을 보더니 반응했다. 그리곤 어쩐지 시무룩해져, 고개를 숙였다. 그 반응이 웃겨 지켜보던 태호는 이내, 아이템을 사용했다.

[에픽등급 아이템, ‘데스나이트의 심장’을 사용하시겠습니까?]

[본 아이템은 사용 시 캐릭터에 착용 귀속되며, 거래가 불가능합니다.]

데스나이트의 심장 매물이 돌지 않는 이유다.

이 심장은, 사용 즉시 거래불가로 바뀐다. 아마 이 아이템을 얻은 모험가 클락이, 니힐럼의 불마법사 프로젠에게 판매했다면 리얼포스의 역사는 바뀌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착용한다.”

[데스나이트의 심장을 착용했습니다. 본 아이템이 캐릭터에 영구귀속됩니다.]

태호의 생명력이 두 배로 뛰었다.

태호는 그대로 선지자의 해골을 사용했다.

[선지자의 해골이 발동 중입니다.]

[데스나이트의 심장이 발동 중입니다.]

두 개의 아이템이 동시에 발동되기 시작했다. 선지자의 해골의 효과로 1초당 10%의 체력이 무지막지하게 깎여 나가지만, 데스나이트의 심장이 그것을 곧바로 채워 버렸다.

“......”

동시에 태호는 자신에게 적용되는 옵션들을 확인했다.

[모든 마법 성능이 2배로 증가.]

[10%이상의 생명력손실 시 즉시회복, 이 옵션이 발동될 때 마다 5초간 방어&마법방어 무시.]

[생명력 2배 상승.]

[어둠 마법 공격력 30% 상승.]

[30%추가대미지.]

“......”

이런 정도는, 적어도 과거에는 꿈만 꾸던 세팅이었다.

물론 에픽 아이템들을 다수 모아 본 경력이 있는 태호였다. 허나, 이렇게 필요한 것들로만 딱딱 모은다는 것은 예전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이번엔 데스나이트를 살펴 본다.

[이름 : 데스나이트]

[레벨 : 100][정예]

[생명력 : 50000]

[공격력 : 1500][방어력 : 500]

[스텟 : 힘0 , 민첩0, 체력0, 지능0]

[마력 : 0]

[보유스킬 : 왕실 검법]

[보유장비 : 없음]

‘생명력이 엄청 높네.’

이전에는 데스나이트의 심장까지 보유하고 있었을 테니, 태호가 처음 만났을 때 이 녀석의 생명력은 10만을 돌파했을 거다.

어쩐지 안 죽는다 했다.

태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인벤토리 창을 뒤적였다. 이 녀석을 관찰한 결과, 유저가 사용하는 장비를 착용시킬 수 있겠단 결론이 나왔다.

아무래도 저 녀석이 지금 입고 있는 철판 갑옷 같은 건, 기본으로 갖춰진 생김새 같은 것 같았다.

인벤토리 창을 뒤적이던 태호가 투구, 상하의, 장갑, 신발, 그리고 검과 방패를 꺼냈다.

검과 방패는 특히 쉬폰을 사냥하고 얻은 전리품들이었다. 꽤나 고가에 팔릴 예정인 아이템들이 눈 앞에 쏟아져 내렸다.

[......뭐냐 이건.]

“뭐긴.”

태호는 손가락을 까닥였다.

“입어.”

[저, 저, 정말이냐? 나 주는 거냐?]

“주진 않고 빌려줄게.”

[그, 그럼 왕께서 하사하신 내 투구도!]

“그건 내가 쓸 거야.”

[으응...... 그, 그렇겠지......]

데스나이트가 어쩐지 의기소침해져 고개를 푹 숙였다. 데스나이트가 주섬 주섬 아이템들을 주워 입기 시작했다.

투구는 초록색, 갑옷은 빨간 색, 하의는 노란 색, 신발은 하얀 색이었다.

알록달록한 것이 퍽이나 우스워 태호가 킬킬대며 웃자, 데스나이트는 다시 의기소침해져 고개를 푹 숙였다.

* * *

어느새 해가 정점에 달했다.

태호는 데스나이트를 어깨에 올린 채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네 과거의 동료는 내 손에 죽을 것 같은데, 괜찮겠어?”

[......기쁜 일은 아니지만, 내가 하려고 했던 일이기도 하다.]

데스나이트가 대답했다.

“그렇겠지.”

태호는 고개를 까닥이며 기묘하게 빛나기 시작한 길쭉한 돌을 바라보았다.

쑤욱!

돌의 윗부분을 잡아 뽑아내자, 손쉽게 돌이 뽑혀나왔다. 그리고 산 전체가 덜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구구구구궁-!

사방의 나무며 흙 풀들이 진동을 견디지 못 하고 쓰러지거나 쏟아져 내렸다.

이내 흙과 나무로 뒤덮혀 있던 산이 정체를 드러냈다.

그 자체로 충분히 거대한 백색의 궁전이었다.

샤라락, 샤락!

태호가 딛고 있던 곳은 그 곳의 거대한 문과 맞닿아 있었고, 저 아래론 긴 계단이 만들어져 있었다. 마지막 흙덩어리까지 쓸려 내려가자, 태호는 목을 좌우로 꺾었다.

“가 볼까.”

* * *

끼이익!

문을 열었다. 가만히 기다리자, 위업이 떠올랐다.

[위업 달성!]

[위업 : 특수던전의 첫 해방자]

[리얼포스에 존재하는 특수 던전의 첫 해방자입니다.]

[보상 : 올 스텟 +1]

‘좋고.’

[던전 : 광휘의 궁전]

[던전을 첫 개방한 유저입니다.]

[특별 던전 보너스!]

[축복!]

[3일 동안 던전 내의 경험치량과 아이템 드랍률이 50% 상승합니다.]

[던전이 오픈된 첫 날 한정, 올 스텟 10 상승의 축복을 받습니다!]

[던전은 초기화 되지 않으며, 클리어 시 유저의 소유가 됩니다.]

과거 이 던전은 레이드 팀으로 명성 높은 일본 팀 ‘무라사메’ 의 소유였다. 그들은 이 곳을 길드 아지트로 사용했고, 뭐 나중에는 관광 명소로도 꽤나 수입을 올렸었다.

던전 내부로 들어서자, 정말 호화스러운 내부장식이 한눈에 들어왔다.

고급스러운 가구와 장식품들, 그리고 기사의 형상을 한 돌조각들이 여기 저기 즐비하게 오와 열을 맞춰 서 있었다.

마치 진시황의 무덤 속 기마병들을 보는 듯 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허나 태호는 놈들의 정체를 잘 알고 있었다.

저것들은 하나 둘 깨어나, 유저를 공격해 올 것이다.

끼이익! 쾅!

태호가 들어서자, 문이 요란하게 닫혔다. 던전을 나가려면 죽거나, 클리어하는 길 뿐이다.

긴장이나 두려움은 전혀 없었다. 메인 퀘스트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면, 이대로면 금세 레벨을 올릴 수 있었다.

앞서 나간다.

남들보다 월등하게 앞서 나갈 모든 조건이 충족된 것이다. 이미 지금도 충분하지만,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될 것이다.

향후 다수의 유저들이 모여서 진행해 나가야만 하는 에픽 아이템의 조건들에서도, 분명히 빛날 것이다.

태호는 천천히 숨을 들이쉰 뒤, 입을 열었다.

“자, 돌격.”

[......으응?]

“빨리 가 임마. 가서 몸빵 해.”

태호가 데스나이트의 등짝을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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